<운문 장원>
축제
과천고등학교 2학년 권순호
벚꽃 축제가 열린 서울대공원 입구
두 다리 뭉툭 잘린 사내가
벚꽃나무 아래 납작 엎드려 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아랫도리가 펄럭이는 사내
손톱 사이마다 그늘이 져 있는
두 손은 하늘을 향해 오므렸다
다 찌그러진 깡통엔
구릿빛 다보탑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벚꽃 축제 구경 나온 사람들
가족끼리 알록달록한 옷을 잘 차려입고
사내의 앞을 지나간다
그러나 누구 하나 사내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한때 그는 한 마리 수달이었다
매일 안전모를 쓰고 나뭇가지를 물어다
아내와 자식의 생계를 위해
집을 짓곤 했었다
그러다 소용돌이에 휩쓸려
두 다리를 잃은 사내
집을 더 이상 짓지 못하는 그는
끝내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다
유리가루처럼 화르르 날리는 벚꽃들
사람들은 만지면 하얀 물이
손끝에 묻어 나올 것 같은 저 벚꽃들을 향해
느낌표를 내뱉는 중이다
여전히 땅바닥에 붙어있는 사내
그러나 그의 두 눈동자 속
지나간 봄날의 축제가 한창이다
제8회 ‘전국 고교생 문예 백일장’ 시부문 심사평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주최 제8회 〈전국 고교생 문예 백일장〉에 수백 명의 응모자가 작품을 보내왔다. 이 중에서 시적대상에 대한 인식의 새로움, 이미지의 자연스런 흐름, 주제를 형상화하는 능력 등을 기준으로 39명을 본심에 올렸다. 그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지난 5월 27일(토) 문예창작과 전용강의실에서 백일장을 치렀다.
본심을 치르고 나서, 심사위원들은 예심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서 본심을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주어진 시제로 작품을 쓰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소재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성찰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쓰기 이전에 독서와 사색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김유경(서울문영여고 2)의 '축제', 권순호(과천고 2) 의 '축제', 최나래(안양예고 3)의 '축제'는 선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김유경의 경우, 시적발상이 재미있고 삶의 구체성이 잘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과장된 표현이 있어 시가 자연스럽게 전개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권순호의 경우, 시적 대상에 다가가는 태도가 따뜻했고, 삶에 대한 긍정적 시선도 잘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구릿빛 다보탑”과 같은 진부한 표현이 눈에 거슬렸다. 최나래의 경우, 작고 여린 생명이 내뿜는 생명의 열기를 축제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지만, 한편의 시 속에 많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 흠이었다.
이 셋을 놓고 심사위원들은 주제를 형상화하는 솜씨와 개성적인 발상을 보여주는 권순호의 작품을 장원으로, 김유경과 최나래의 작품을 차상으로 선정했다. 이 외에도 차하와 장려상을 받는 학생들 중에 신선한 발상을 보여주는 학생들이 없지 않았으나, 시로 형상화하는 데 문제가 있었음을 밝혀둔다. 이런 학생들이 여유를 갖고 차분하게 시를 썼다면, 좋은 결과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문창과의 백일장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심사위원: 김은수(광주대 문창과 교수)
이은봉(시인, 광주대 문창과 학과장)
신덕룡(문학평론가, 광주대 문창과 교수)
<산문 장원>
거울
-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
나주여자고등학교 3학년 최남미
아침 다섯시. 나는 오늘도 깜깜한 어둠 속에서 기지개를 켰다. 내 방창문 왼쪽 벽에는 커다란 전신 거울이 떡하고 걸려 있다. 일어나자마자 거울을 마주 본 나는 그 속에 흉측하게 생긴 얼굴을 본체 만체 하고 살금살금 기어 욕실로 향했다. 거실에는 이미 엄마와 언니가 아침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엄마, 제발 내 방에 거울 좀 치워 줄 수 없어?" 그러자 옆에 있던 언니가 "너 미쳤어? 여자 방에 거울이 없다는 게 말이나 되냐구." 이번에도 또 실패구나 생각하며 세수를 하러 가는 데 세면대에 서자마자 또 거울이다. '으악, 거울.' 또 다시 우울해졌다. 그러고 보니 거울에 대한 혐오감이 생긴 것도 8년째가 되어 간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초등학교 5학년 11살 무렵부터 내 얼굴을 멋대로 점령해 버린 그 유명한 여드름 때문이었다. 여드름이 청춘의 보석이라고? 아니 나에게는 청춘의 비극이다.
"빵빵." 마을 승강장에서는 유일하게 버스를 타는 학생이라곤 나 혼자 밖에 없으니 다행이었지만 그 안도감은 몇 정거장 가지 못해 산산조각이 났다. 버스가 승강장에 멈춰 서자 내 또래의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다시 버스가 출발하자 아까 버스를 탔던 남학생들의 무리 중에 비아냥거리기 좋아하는 목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야, 저 여자 애 얼굴 좀 봐, 화상 입었나 봐. 푸하하."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난 아무 것도 못 들은 척 하며 책을 읽었다. 하지만 고개는 점점 책 속으로 기울었다.
학교에 도착하자 거의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책상에 앉아 고개를 돌리니 짝꿍은 거울에 코를 박고서 인공 쌍꺼풀을 만들기 위해 실 핀으로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 붉은 나의 얼굴을 보고 짝꿍이 한 마디 툭 던졌다. "너 여자 맞니? 꼬락서니하고는, 거울 좀 보고 다녀." 교실은 거울 천지였다. 한창 멋 부리기 좋아하는 여고생들의 손에는 필수품처럼 각양 각색의 손거울들이 들려 있었다. 비단 우리 교실뿐이랴. 외모 지상주의에 심취한 세상 모든 여성들의 핸드백 속에는 꼭 거울이 있을 것이다. 그들 속에 그저 나란 존재는 다른 나라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날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외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띠리리리리리." 4교시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른 때 같았으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전력 질주로 급식실로 향했을 나였지만 이번 달 급식 순서는 3학년이 꼴등이었으므로 난 그냥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3분이 좀 지났을까. 학생회장이자 절친한 친구인 은주가 교실 벽에 붙어 있는 전신 거울을 들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 학생회실 가지." 은주의 꿈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패션 모델이 되는 것이다. 학생회실 사물함에 전신 거울을 비스듬히 세워 두고 경쾌한 음악을 틀어 놓고 은주는 거울을 향해 당당하게 워킹을 하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는 키 크고 날씬한 긴 머리의 여고생이 도도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저 당당함이라니. 순간 나는 가슴이 뛰었다.
학교가 끝나고 시장통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섰다. 무수한 상가 건물들의 유리창에 나의 모습이 비춰졌다. 그 모습이 어찌나 낯설고 싫었던지. 사실 난 얼굴에 난 여드름 때문에 속으로 말못할 고민들을 많이 겪었다. 찬물에 얼굴이 닿기만 해도 화끈거렸고, 누군가의 비웃음거리가 될까봐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생각하니 슬퍼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거울을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렸을 적 나는 멋 부리길 좋아했고, 하루 종일 거울을 보며 멋을 내는 일이 나의 일과였다.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여드름이 나기 시작하면서부터 괴물처럼 울퉁불퉁 해진 얼굴 때문에 거울을 보는 일이 무서워졌다. 오늘도 나의 눈은 수많은 사람들의 거울이 되어 그들의 표정과 옷차림, 발걸음 등을 관찰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나 자신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내 방 벽에 걸린 전신 거울 앞에 당당히 섰다. 거울 속에는 이제 것 내가 외면했던 여드름투성이의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조금은 어색하지만 그 여자아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웃고, 울고, 찡그리며 나는 여러 가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속에는 또 다른 수많은 내가 비춰졌다. 누군가 비웃기만 했던 그래서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을 이제는 내가 더 많이 사랑하겠노라고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마음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제8회 ‘전국 고교생 문예 백일장’ 산문부문 심사평
예심을 통과한 33명의 학생들이 이번 백일장에 참여했다. 예심을 통과한 학생들이기 때문에 그 실력이 만만치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렇게 만족스런 수준은 아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원고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이다. 글쓰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원고지 쓰기이다. 평소에 워드를 사용하는 학생일지라도 글을 쓸려고 마음먹은 학생들은 원고지 사용법을 철저히 익혀 둘 필요가 있다.
소설을 쓴 학생들은 그 줄거리를 미리 만들어 갖고 와서 시제에 맞추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줄거리 전개가 억지스럽고 주제 또한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었다. 억지스런 소설을 쓸 바엔 차라리 시제에 맞추어 수필 형식으로 쓰는 것이 이런 잘못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백일장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수필 가운데는 기발한 발상을 보여 준 작품도 더러 있었다. 다만 그 기발한 발상이 끝까지 유지되지 못하고 논리적 모순에 빠져 혼란을 주어 아쉬웠다. 수필에서 논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논리적 모순에 빠진 글은 결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가령 거울을 의인화하여 여러 가지 관점에서 서술한 것은 좋은데 후반부에서 논리적 모순에 빠진 경우가 있었는데 참으로 아쉬운 작품이었다. 기발한 발상이 그 모순 때문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선을 하다 보니, 자연 문장에 무리가 없고 주제가 뚜렷한 작품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평이한 작품들이지만 그 탄탄한 기본을 높이 산 것이다. 입선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문순태(소설가, 광주대 문창과 교수)
배봉기(아동작가, 광주대 문창과 교수)
유태영(소설가, 광주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