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금남정맥 07차(중장고개~진고개)
산 행 일 : 2012. 04. 28.(토)
산행코스 : 중장고개 ~ 팔재산 ~ 널티재 ~ 성황산 ~ 구수리고개 ~ 망덕봉 ~ 진고개
(산행거리 17.7km, 8시간 소요)
산행참가 : 21명.
<산행지도>
지난해 초겨울에 시작한 금남정맥이 이번 구간을 마치면 한 번의 산행 밖에 남지 않는다. 물론 지난겨울 대둔산 구간 산행 때 폭설로 인해 탈출을 하였기에 나중에 땜빵 산행을 해야겠지만, 그동안 거제지맥 산행과 기타의 특별산행으로 한눈을 많이 팔면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반년만에 정맥 하나가 없어졌다. 이제 금남정맥을 완주하게 되면 남은 정맥길은 서울에서 가까운 세 곳이 남는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다. 주화산에서 이어온 뚜렷한 금남정맥은 지난번 계룡산을 기점으로 급격히 고개를 떨구어 이번 구간의 최고봉인 팔재산이 364m 밖에 되지 않고, 정맥길도 온통 사람의 손길이 닿아서 밭과 도로 등으로 변해서 정맥 능선의 구분조차 힘든 곳이 많다 하니, 등로 찾기가 만만치 않을 듯 보여 염려스럽기 그지없다. 정맥꾼의 염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양재를 출발한 버스는 휴게소에서 적당히 쉬면서 산행시간에 거의 맞추어 계룡면 중장고개에 도착한다.
중장고개(윗장고개)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마치고,
<중장고개(윗장고개)> 공주시 반포면 구왕리와 논산시 계룡면 중장리를 이어주는 고개다. 691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윗장고개로도 불린다.
고갯마루 도로 옹벽을 오르며 팔재산을 향해 정맥산행을 시작한다.
팔재산 오름길은 약간 가파른 곳도 있고 자그마한 너덜지대도 있으나, 맑은 날씨 탓인지 하늘에서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의 소곤거림을 엿들으며 선선한 밤바람의 기운이 싫지 않을 정도에서 오름길은 끝나고 팔재산 정상에 도착한다.
팔재산 정상.
<팔재산(364m)>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와 기신리, 봉명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정상 아래에 있는 돌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여 팔재산 또는 팔자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계룡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계룡산이 자리하고, 서쪽으로는 월암천이 흐르고 있으며, 팔재산의 남쪽은 갑사 곡구를 비롯한 계룡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정상에는 정상 코팅지와 작은 돌탑, 그리고 이번 구간에서 유일한 삼각점이 있다. 팔재산의 서쪽은 공주~논산에 이르는 구조곡이 있는데, 이 골짜기를 따라 현재 국도 23호선이 달리고 있다. 팔재산의 남쪽에는 계룡저수지가 있는데, 이 계룡저수지에서 북동쪽으로 계룡산의 유명한 사찰 중 하나인 갑사가 자리 잡고 있다. 정상 주변은 벌목이 되어 있어서 어둠이 감추지만 않았다면 주변 조망이 좋을 듯하다.
팔재산 정상에서 느긋한 쉼을 한다.
남쪽 계룡면 방향으로 계룡저수지도 어렴풋이 보인다.
우측 동쪽 방향으로 지난 구간 걸었던 계룡산 주능선이 밝아오는 하늘과 경계를 선명히 하고 있다.
팔재산 내림길에 주위는 훤히 밝아오며, 전방으로 계룡면 봉명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돌아본 계룡산 방향.
농로로 내려서서,
시멘트 포장 임도를 따라 널티고개로 진행한다.
<널티고개(板峙, 96m)> 충남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와 월암리를 잇는 고개로, 널티는 무너미고개라고도 하며 원남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널티고개를 지나는 충남 공주시 정안~공주간을 잇는 23번 국도는 호남지방과 서울을 잇는 교통요지였다. 그러나 지난 2002년 12월, 23번 국도와 나란히 천안논산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통행량이 급격하게 줄었다.
널티고개에 도착하여 23번 국도를 통과하기 위해 남쪽 방향으로 진행하면,
지나온 팔재산과 310봉 모습.
남쪽 봉명리 방향으로 200m쯤에서 국도 아래로 통하는 도로를 따라 국도를 통과한다.
23번 국도를 통과하면 22번 지방도와 만나고, 22번 지방도를 따라 다시 북쪽 널티고개 고갯마루로 진행한다.
22번 지방도를 따라 "국제자원"이란 간판(불 켜진 간판)을 지나면,
우측으로 오르는 도로를 따라 널티고개 들머리로 들어선다.
잘 가꿔진 묘지를 통과하며 숲길로 오른다.
돌아본 널티고개.
지나온 310봉과 팔재산이 꾀나 높아 보인다.
오늘 산행은 묘지 박람회장에 온듯하다.
218봉을 지나 정맥길이 우측으로 급격히 꺾이는 지점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잠시 쉼을 한다.
등로 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좋아서,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초록을 음미하며 금남길을 이어간다.
직진을 해도 될 듯 하지만, 우측으로 안내하는 표지기들의 안내를 받아 우측 아래로 내려서면,
정맥길은 숲길을 벗어나 밤나무 단지로 접어든다.
정맥능선 주변이 온통 밤나무 밭으로 변해 있어서, 정맥꾼의 기분을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주 밤은 맛있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안 된다고 여러 산행기에서 신신당부한 지점이다. 금남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는 능선 위 임도를 따른다.
지나온 연초록의 금남길 능선을 뚫고 아침해가 떠 오른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다.
잡초로 우거져 있던 정맥능선이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상리 임도 너머 가야 할 안골산 분기 봉우리가 꾀나 높아 보인다.
좌측 상리 조망.
금남길은 능선 위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이어지고,
잠시 전에 구릉에서 좌측 능선을 타야 했으나, 임도를 따르다가 좌측 능선으로 트레바스!
꽃잎을 떨군 할미꽃!
상리 임도로 내려서서 좌측 고갯마루로 진행한다.
<상리 임도>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와 월암리를 연결하는 조금만 농로다. 이곳에서 도로로 내려와서 허름한 농막을 끼고 다시 산으로 오른다. 상리 임도를 따라 안골산 방향 들머리가 있는 고갯마루로 이동하는 백두들.
임도 우측의 농막 옆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르면,
안골산갈림길 능선 오름길에 돌아본 상리 임도 방향.
묘지 주변에는 온갖 들꽃이 지천으로 피어나 있다.
밋버리(묘지 주변이란 뜻의 사투리)를 지나 안골산 방향 숲길로 향하는 백두들.
오~호!
밋버리 좌측 끝으로 표지기들이 보인다. 도토리 키재기형 묘지군!!
지난 구간 걸었던 계룡산 주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머위나물 군락지를 통과하여,
나란히 누워계신 분들도 뒷동산의 머위나물을 맛나게 먹으며 살았겠지..,
등로는 제법 가팔라진다.
안골산 갈림길 도착. 안골산은 정맥길에서 우측으로 약간 비켜나 있고, 금남길은 좌측 능선으로 이어진다.
<안골산> 공주시 이인면과 계룡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안골산이라 부른 배경에는 안산들(野)과 안산 안쪽에 있는 산이라서 그리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안쪽에 있는 골짜기의 줄임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인면과 계룡면 사이는 골짜기와 산릉이 번갈아가며 나타나고 있는데, 안골산은 그 경계부의 중앙이자 안산들의 동편에 위치해 있다. 안골산의 서편 산릉을 따라가면 안산이 자리잡고 있다. 안골산의 서쪽 전면에는 곡저평야인 안산들이 펼쳐져 있으며, 두 개의 지류 하천이 발원하여 금강의 지류 하천인 용성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별로 봉우리 같지 않은 곳이지만, 지도에는 340봉이라 표시되어 있다.
잠시 후 능선 좌측으로 시야가 트이며 계룡산 능선이 장관이다.
능선 분기봉인 368봉에서 금남길은 우측으로 꺾여 이어진다.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시야가 트인 벌목지대 능선 위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장소가 협소하니 옹기종기 사이좋게 모여 앉게 된다..ㅋㅋ
우측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발양리 안산들을 바라보며 느긋한 최고의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금 산행 준비를 갖추는 백두들.
발양리 안산들 방향.
조금 당겨본 모습.
식사를 마치고 벌목지대로 이어진 정맥길을 따르면,
벌목지대라 고사리가 지천이다.
등로 주변의 고사리를 뜯느라 약간 지체되기는 하지만,
가야 할 벌문이재 방향의 능선도 편안해 보이며,
능선 위로는 벌목을 위해 임도까지 닦여져 있다.
가야할 금남능선 우측 사면은 모두 벌목이 되어 있다.
등로는 임도를 벗어나 능선 위로 이어지고,
능선 분기점에서 어느 방향 능선이 금남정맥인지를 고민하기도 하다가,
우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르면,
금남길은 벌목지대를 벗어나 잠시 숲으로 이어지고,
좌측 향지리 방향.
이동통신 기지국을 지나게 된다.
묘지 박람회장의 둥근형 묘지군. ㅋㅋ
남서쪽 방향 멀리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개설된 임도로 벌거벗은 금남능선을 잠시 따르면,
벌문이 고개가 내려다 보인다.
벌문이 고개를 지나는 17번 지방도 공주 방향.
벌문이재로 내려서는 백두들.
벌문이 고개로 내려서서,
<벌문이 고개> 논산시 노성면 반송리와 공주시 이인면 발양리를 잇는 17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고분티 고개라고도 부른다. 벌문이 고개 전경.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도로를 건너 성항산 오름길로 들어선다.
성항산 도착.
<성항산(237m)이 아닌 성정산(城頂山)> 논산시 노성면 반송리와 공주시 이인면 작골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정상부에 800여 미터 둘레의 백제시대의 용산성터가 남아 있으며, 원래 이름은 성정산이라고 한다. 지도에는 ‘성항산(城項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한문으로 '정수리 정(頂)'을 '목덜미 항(項)'으로 잘못알아 표기한 것이다. 마루금은 이곳 정상에서 직진하지 않고 남쪽으로 90도 꺽어 진행해야 하니 독도에 주의해야 할 곳이다. 성항산 정상에서 가져온 과일을 나누며 느긋한 휴식을 갖는다.
성항산 정상에서 금남정맥 일곱번째 산행 인증을 남긴다.
좌측 향지리 방향 조망.
235봉 능선 분기점. 235봉은 우측 능선 위에 있고, 정맥길은 좌측으로 90도 꺾여져 밤나무밭 가장자리로 이어진다.
한시간 전쯤에 발생한 검은 연기가 바람을 타고 동쪽으로 퍼지고 있다. 마치 검은 구름처럼 보이지만 심각한 오염을 일으킬 수도 있어서 사뭇 걱정스럽다.
살짝 당겨본 연기의 진원지.
백두들도 사뭇 걱정이 되는 듯...
마치 유화 작품을 보는 듯 하지만, 마음은 편치가 않다.
밤나무밭 가장자리를 따르던 정맥길은 다시 숲길로 들어가고,
검은 연기는 바람을 타고 계룡산을 넘었다.
금남길은 앞에 보이는 183봉 오름길 중간쯤에서 우측으로 꺾어서 가야 한다.
가야 할 반송재 방향.
이미 고사리가 배낭에 가득한데도 지천으로 널린 고사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183봉 능선에서 우측으로 꺾어서 반송재로 향한다. 금남정맥은 여기까지 오지 않고 중간에서 우측 지능선으로 가야 했지만 놓쳤다.
여하튼 길은 이어져 반송재 앞으로 나오고,
밭을 가로질러 철문을 열고 반송재에 도착한다. 정맥길은 183봉 오름길 중간에서 지능선을 타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 내려와야 했다.
<토골고개/반송고개> 지도에는 반송고개로 표시되어 있는데, 공주시 이인면 산의리와 논산시 노성면 반송리의 경계이다. 뒤따르던 백두들이 반송재를 향해 밭을 건너오고 있다.
반송고개를 건너서 오르는 백두들.
반송고개 들머리를 지나 묘지 위쪽 능선을 따라 숲길로 들어선다.
돌아본 반송고개.
우측 이인면 산의리 마을 전경이 정겹다.
능선 남쪽 사면 양지바른 곳에는 어김없이 앞선 이들의 안식처가 있고,
검은 연기는 아직도 피어오르고 있다.
당겨본 연기의 진원지.
고개 숙인 할미꽃은 검은 연기가 보기 싫은지 ..ㅉㅉ
편평한 능선 등로가 계속 이어지더니,
다시 밤나무 단지가 나온다.
복룡리 방향의 산들이 온통 벌목되어 있다.
묘지 박람회 탐방과 숲길이 연이어지더니, 마침내 또다시 오늘 산행 중 가장 큰 밤나무 단지를 만난다. 그러고도 모자라 또다시 밤나무 단지를 만들려는지 산을 발가 벗겨 놓았다. 지난해 낙남길 진주~사천 구간 보다도 더 심하게 훼손된 정맥길은 아예 밤나무 단지와 묘지에 묻혀 버린 모양새다.
밤나무밭 한켠에 위치한 묘지 위에서,
한가로이 쉼을 하며..
할미꽃에 얽힌 이야기도 나누고..
요즘의 장묘 문화에 대해서 토론도 한다.
창고 건물을 둘러싼 능선을 따라 돌아서 진행하면,
밤나무 밭은 능선 우측에서 영역을 넓혀 양쪽 모두를 점령하고 있다.
좌측으로는 천안~논산간 고속도로가 까까이 보이더니,
이동통신 중계소를 지나 좌.우 어느 쪽으로 가도 복룡고개를 통과할 수 있으나, 우리는 바른쪽 우측으로 내려선다.
고속도로와 697번 지방도가 지나는 복룡고개(구수리고개)에 도착한다.
고갯마루 인듯한 곳으로 "복룡리"라는 이정표가 있고,
<복룡고개(구수티고개)> 논산시 노성면 복룡리와,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를 이어주는 고개다. 697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재로, 구수티 고개라고도 한다. 여기서부터 여태껏 좌측편으로 계속해 같이 왔던 논산시 노성면과 이별을 고하고 공주시 탄천면으로 접어든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통과하기 위해 우측으로 잠시..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고속도로 아래에서 좌측으로 오르는 들머리가 나온다.
고속도로 절개지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다가 절개지 안쪽으로 들어서면,
논산 방향.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논산방향> 민자고속도로로 대전으로 둘러서 전주, 광주 방향으로 가는 호남선이 이 도로가 생기면서부터 시간이 많이 단축되긴 하지만 요금이 너무 비싼 게 흠이다. 이런 민자도로가 인천공항도로, 대구~김해간 고속도로,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 서울~춘천간을 잇는 고속도로 등등 최근의 신설 주요 도로는 대부분이 기관투자자나 인프라펀드가 투자하고 건설하여 일정 부분 이익을 챙겨가는 형식인데.. 계약 당시 너무 많은 양의 교통량을 부풀려서 그 부분이 모자라면 세금에서 메워 주는 방식인데, 정말 배가 많이 아프고 비싼 통행료를 낼 때마다 부아가 치민다. 고속도로 절개지 보수용 철사다리가 나온다.
천안 방향 이인휴게소가 보인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이인 휴게소 방면> 충남 공주시에 소재한 이인면(利仁面)은 조선시대에 이도역(理道驛)이 설치되어 있던 곳으로, 이도가 임금의 이름과 소리가 같다 하여 이인역(利仁驛)으로 바뀌었고, 이인역 일대를 이인리(利仁里)라 하였다. 1915년 목동면 사무소를 목동리(木洞里)에서 이인리로 이전하면서 마을 규모가 더 큰 이인리로 면 이름을 정하였다.
절개지 상단을 향해 철사다리를 오른다.
돌아본 복룡고개.
지나온 금남능선 너머로 계룡산이 병풍처럼 버티고 있다.
고속도로 절개지 상단에는 사진으로 보던 굴이 있고,
절개지 상단에서 벌목지대 가장자리 능선을 따라 잠시 진행하면,
정맥길은 다시 숲으로 든다.
갈림길에서 좌측 길로 들어서고,
또다시 만나는 갈림길에서도 좌측으로 진행하면,
이번에는 제법 번듯한 묘지가 나온다.
이제 정맥길은 고도 차이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로 바뀌고, 우측으로는 40번 국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지척인 듯 들려온다.
망덕봉 도착.
망덕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금남길 좌측으로 염소목장이 조성된 듯, 철사 울타리가 둘러져 있다.
호젓하게 이어지던 금남길이 임도와 만나고,
이내 다시 숲으로 들어서서 잠시 더 진행하면,
이내 망덕봉 표식이 나무에 걸려 있다.
어디가 봉우리인지 종잡을 수 없는 능선길은 계속 이어지고,
금남길은 다시금 벌목지대로 이어진다.
좌측으로는 이제 계룡산에서 향적산으로 이어진 금남정맥 줄기가 확연히 조망된다.
208봉을 지나며 금남길은 다시 한번 좌측으로 분기하고,
우측 사면으로는 묘지터를 조성한듯한 곳이 나온다. 살아 계실 때에도 저런 지극 정성으로 모셨겠지 ..ㅉㅉ
이제 금남길이 완만한 내림길로 바뀌더니,
좌 후방으로 지당박물관 인듯한 건물도 보이고,
이내 진고개로 내려선다.
마지막 구간 들머리도 확인하고,
마을 이정표 옆에는 지당박물관 표식도 있다.
<진고개(81m)> 공주시 탄천면 안영리와 삼각리를 넘는 고개로, 645번 지방도가 지나는 아주 얕트막한 고개다. 건너편에는 할머니 혼자 사신다는 슬레이트 주택 한채가 있고, 길 양쪽에 '광명리' 표지석과 '지당세계박물관' 간판이 있다. 지당박물관은 지당(地堂) 류육현(박물관장/철학박사)씨가 전 세계에서 수집한 약 25만여 점의 조류, 나비표본, 희귀보석, 화석, 수석, 어류, 패류, 공예품 등을 전시하고 있는 자연교육 박물관으로, 설립자의 사재로 만든 개인박물관이라고 한다.
진고개를 뒤로하고,
공주로 이동하여 지난 산행 때 들렀던 곳에서 느긋한 목감을 하고,
공주시내 새이학가든이라는 곳에서,
모처럼 쉽게 끝낸 산행 예기도 나누며 석갈비와 공주 국밥을 맛보고,
공주를 가르는 금강 변에 있는,
공주산성도 조망한다.
<공주 공산성> 공주는 금강의 중류에 위치한 역사 도시다. 선사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부 지역 거점으로서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한 중부지역 대표도시의 하나이다. 남한에서 최초로 조사된 석장리 구석기 유적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이미 50만년 전 인류가 거주하던 공간이며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를 거치며 도시 형성이 이루어졌다. 공주가 우리나라 역사에 크게 부각되는 것은 475년 백제의 수도가 한성으로부터 공주로 옮겨지면서다. 이때의 지명은 웅진(熊津)이었고, 국외의 사서에는 ‘고마성’, ‘구마나루’등으로 기재되어 있다. 538년 도읍이 부여로 옮겨가기까지 64년간 5명의 왕이 즉위하였고, 그 가운데 특히 백제를 안정시킨 제25대 무령왕의 왕릉이 1971년 풍부한 유물과 함께 발견됨으로써 공주가 백제의 왕도였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백제 멸망 이후 충청지역 거점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686년(신문왕 6년) 웅천주(熊川州)로 개편되어 30여개의 군.현, 대략 오늘날의 충청남도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 정치도시였으며, 757년(경덕왕 16년) 웅주로 바뀌었다. 공주(公州)라는 이름은 940년(고려 태조 23년)부터 쓰였으며, 공주의 ‘공’은 웅진, 웅천의 곰에서 비롯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983년(성종 2년) 전국 12목의 하나가 되었으며, 주변지역 4개 속군과 8개의 속현을 관할함으로써 지역 거점도시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1603년(선조 36년)에 충청감영이 충주로부터 공주로 이전되어, 이후 3백여간 감영 혹은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감영의 공주 이전에 따라 조선 후기에는 충청도의 명칭이 공충도, 공홍도, 공청도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감영의 위치는 한때 공산성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나 봉황산 기슭에 건물을 조영하여 이용되었고, 1895년 8도 제가 폐지되고 1896년 충청도가 남도와 북도로 분리되면서 충남 도청이 1932년까지 유지되었다. 공주는 조선시대에 삼남지방 물산의 중심지였다. 영남이나 호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모든 것은 공주를 통해야만 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인 1905년 개통된 경부선과 1914년에 개통된 호남선은 보수적인 공주 유림과 주민들의 반대로 공주를 비켜 허허벌판이었던 대전으로 지나가게 되고, 그로 인하여 대전은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그를 계기로 도청 소재지도 대전에 빼앗기게 되었다. 그래도 세상은 돌고 돌아 이제 대한민국의 행정수도가 공주로 이전하게 되었으니..
뒤풀이 장소인 새이학가든.
회장님은 모시러 온 친구분의 차로 매년 있는 동창회에 참석하러 가시고,
남겨진 백두들은,
금강변 강바람을 맞으며 추억을 남긴다.
다음 구간에 만나게될 금강과의 이별을 고하고, 서울로 향한다.
금남정맥 마지막 구간은 6월에 이어질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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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을 곁들인 산행기를 재미있게 읽었읍니다. 직접 걸어온 길인데도 낯선?곳이 많네요. 산행길 안내하랴, 사진 촬영하랴, 그리고 이젠 산행기 까지... 바쁜 와중에 수고가 많습니다. 덕분에 편히 앉아서 금남길을 복기 했네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백두 산우회 파이티~~~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