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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왕실의 예술 작품을 대중들에게 공개한 첫 번째 미술관은 아니지만 공공 서비스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첫 번째 갤러리다. 당시 대부분의 미술관들은 관람객들에게 일정한 격식을 요구했지만 내셔널 갤러리는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어린이들을 입장시킨 최초의 미술관이다. 어린이를 보살피는 하인을 두지 못하는 서민 가정을 배려하기 위함이다.
http://www.nationalgallery.org.uk |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 한스 홀바인 2세의 <대사들>이다.
실문 크기로 제작된 이 작품은 평범한 2인 초상화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초상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뛰어넘어 훨씬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사들>은 프랑스 대사인 장 드 댕트빌와 조르주 그 셀브 주교의 2인 초상화로 두 사람은 1533년 헨리 8세가 앤 볼린과 결혼하기 위해 가톨릭교회 탈퇴를 선언하기 직전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영국에서 외교 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화면 중앙에 있는 비틀린 해골이다. 이러한 기법은 왜상이라고 하는데 극단적인 각도에서 보아야만 원래의 형태를 알아 볼 수 있다. 왜곡된 해골을 제대로 보려면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유리 실린더나 홀바인 시대에 유행했던 유리잔을 통해 보면 제대로 된 해골이 보인다. 해골의 의미는 인간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죽음은 가까이 있으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암시한다.
탁자 위에는 과학 도구들이 놓여져 있다. 천구의에는 별자리가 그려진 것이 아니라 프랑스를 상징하는 수탉이 독수리를 공격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실제 천구의라기보다는 댕트빌의 애국심을 나타낸다. 그 옆에 있는 것이 원통형 달력으로서 날짜는 4월 11일을 나타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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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 홀바인 2세의 <대사들>, 1533년, 패널에 유채, 207*209,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
가운데 부분 나무로 만든 기구는 시간과 천문을 측정하는 토르케튬이고 옆에 해시계는 당시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를 의미한다.
과학 도구들은 두 사람이 탐구하는 지식인임을 암시하면서 지식인들의 활동은 수세기 동안 사회의 틀을 깨고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탁자 아래쪽 선반 지구본에는 유럽이 가운데 있으며 댕트빌의 고향 폴리시와 그가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도시 그리고 새로 발견된 아메리카 대륙이 보인다. 지구본은 이 작품을 주문한 댕트빌의 경력과 함께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찬송가책이 펼쳐져 있는 것은 종교적 갈등을 겪고 있는 사회에 홀바인은 통합된 교회를 지지한다는 자신의 열망을 나타낸 것이다. 루트는 화합과 조황의 상징이지만 줄이 하나 끊어져 있다. 끊어진 줄은 신구교간의 갈등을 암시한다.
한스 홀바인 2세(1497/8~1543)는 두 인물의 나이를 알 수 있는 장치를 해놓았다. 탁자 위 주교 드 셀브 팔꿈치 아래 있는 라틴어로 쓴 책에 쓰여 진 글은 주교의 나이 25세라는 뜻이며 대사가 들고 있는 단검에 새겨져 있는 숫자 29도 대사의 나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 중에 유머러스하면서도 에로틱하게 표현한 작품이 틴토레토의 <은하수의 기원>이다. 이 작품은 헤라 여신의 젖이 은하수를 형성한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내용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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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는 알크메네의 남편 암피트리온으로 모습을 바꿔 그녀를 유혹해 헤라클레스를 낳는다. 제우스는 어린 아들 헤라클레스에게 영생을 보장해주고 싶었지만 헤라의 원한이 염려스러웠다. 제우스는 꾀가 많은 메르쿠리우스 신에게 헤라의 원한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헤라의 모성애를 자극하면 헤라클레스에 대한 원한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메르쿠르우스 신은 헤라가 잠든 틈을 타 헤라클레스를 그녀 몰래 젖가슴에 안겨주었다. 그러자 헤라클레스는 엄청난 힘으로 헤라의 젖을 빨았고 세어 나온 젖이 하늘에 닿아 은하수가 되었고 땅으로 떨어진 젖은 백합이 되었다.
이 작품은 제우스가 헤라클레스를 헤라 몰래 젖을 훔쳐 먹게 하다가 헤라가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을 묘사했다.
이 작품에서 공중에 떠 있는 붉은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제우스다. 그 밑에 있는 발톱으로 번개를 움켜쥐고 있는 독수리는 번개와 마찬가지로 우주의 질서를 부여하는 제우스를 상징하고 있는 상징물이다. |
▲ 틴토레토의 <은하수의 기원>, 1580년경, 캔버스에 유채, 148*165,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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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오른쪽 공작새는 헤라의 상징물이고 어린 소년이 들고 있는 그물은 제우스가 아내 헤라 몰래 사랑에 빠져 헤라클레스를 낳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암시한다.
헤라의 젖을 빨고 있는 헤라클레스는 이 작품에서 아직 신의 요소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야코포 틴토레토(1518~1594)의 이 작품은 프라하에 있는 루돌프 2세의 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4점의 연작 중에 일부다.
미술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화가가 카라바조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카라바조의 특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이 <엠마오의 저녁식사>다.
이 작품은 신약성서 루가 복음 24장 13~32에 나오는 장면을 표현했다. 부활절 오후 늦게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 그리스도가 두 제자와 동행을 하였으나 제자들은 집에 들어가 그가 빵을 떼어 줄때까지도 부활한 그리스도인 줄 몰랐다는 내용이다.
화면 한가운데 앉아 있는 붉은 옷을 입은 그리스도가 식탁 위의 음식을 축복하고 있다. 카라바조는 그리스도를 수염이 없는 젊은 모습으로 표현해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화면 왼쪽에 머리에 모자를 쓰고 서 있는 남자가 여관의 주인이다. 여관 주인은 그리스도가 축복을 내고 있는 중요한 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여관주인의 침착한 태도는 비기독교인임을 나타낸다. 카라바조는 보통 종교화에서 볼 수 있었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후광을 이 작품에서 여관주인의 그림자로 만들었다.
화면 오른쪽 양팔을 벌리고 있는 남자의 과장된 제스처는 그리스도의 기적에 놀란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가슴에 달려 있는 조개껍질은 이 남자가 성인 야고보라는 것을 나타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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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바조의 <엠마오의 저녁식사>, 1601년, 캔버스에 유채, 141*196,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
카라바조(1573~1610)는 식탁 위의 정물로 이 작품에 주는 메시지를 나타냈다. 식탁 위의 불안정하게 놓여있는 과일 바구니 안에 썩은 사과와 색이 변한 무화과는 인류의 원죄를 암시하며 석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 식탁 위의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킨다. 그리스도가 저녁식사에 나온 음식을 축복하는 이 장면을 카라바조 이전의 화가들도 즐겨 그렸지만 이 작품처럼 등장인물들로만 화면을 구성한 것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점묘기법(점묘기법이란 선을 배제하고 형태를 철저히 색점으로 분해해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으로 풍경을 표현한 작품이 쇠라의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다.
이 작품은 수많은 데생과 유화 습작을 거쳐 완성된 쇠라의 초기 기념비 작이다. 이 작품은 1884년에 살롱에 출품되었으나 낙선했으며 그 다음해에 앙데팡당전에 전시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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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라는 1800년대 평범한 파리 시민들의 즐거운 놀이터이자 휴식 공간이었던 세느 강변 아니에르를 다니면서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을 스케치했다. 그는 현장에서 스케치 한 것을 화실에서 구도를 철저하게 연구하고 그렸다.
화면 오른쪽 끝에 땅의 끝부분이 보임으로서 이곳이 섬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수평선 가까이 공장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쇠라의 이 작품은 평범한 일상을 그린 작품으로서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자연스럽다. 등장인물이나 사물들이 인형처럼 움직임이 전혀 없다. 물 위에 떠 있는 배도 마찬가지다. 마치 사진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화면 오른쪽 손으로 뱃고동 소리를 내고 있는 소년이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한 여름의 정적을 깨고 있다.
정지된 화면은 무거운 정적감을 주고 있지만 섬세한 터치와 부드러운 색조는 이 작품을 무겁게 하지 않고 한 여름 날의 화사함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
▲ 쇠라의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 1884년, 캔버스에 유채, 201*300,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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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피에르 쇠라(1856~1891)의 이 작품은 그가 처음 그린 대작이면서 첫 번째 실험작이다. 그는 32살이라는 짧은 생애동안 7점의 중요한 작품을 남겼다.
내셔널 갤러리는 영국 미술뿐만 아니라 1250년부터 1900년대에 이르기까지 영국 국가가 수집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독일, 네덜란드 등 서유럽 미술 걸작 23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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