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똥과 글의 상봉
이노우에 히사시 작
김경원 번역
프롤로그
"글"의 주제가
훔칩시다. 훔쳐요.
닥치는대로 잡히는 족족.
모두들 사이좋게 훔칩시다.
글이 한 것처럼 훔칩시다!
미운 놈에게선 그 미운 곳을
나쁜 놈에게선 그 나쁜 곳을
거만한 분에게선 그 거만을
난 척하는 분에게선 그 나척함을
부자에게서는 그 토지를
지주들에게서 그 토지를
군대로부터는 그 무기를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그 가난을
슬픈 사람에게서 그 슬픔을
중환자에게서 그 병을
학자들에게서 그 학문을
모든 권위로부터 그 권력을
그러면 모두
단순한 인간
자 단순한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해...
훔칩시다요. 훔쳐요
닥치는 대로 잡히는대로
모두들 사이좋게 훔칩시다.
글이 한 것처럼 훔칩시다.
1. 「글」현상
무대 중아에 큰 텔레비젼 수상기. 뉴스의 테마음악, 타이틀, 왼쪽 구석 아래 시각 개시 "7:00" 테마음악이 끝나
자 <일련의 이상현상은 글>이라는 글자가 나온다. 글자가 사라지자 화면, 아나운서의 상반신.
아나운서 :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최근 세계각지에서는 영문을 알수 없는 이상현상이 발생하고 있
습니다. 뉴욕항의 명물인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던 횃불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기점으로 템즈강에서는 강
물이 일시에 사라져 버리고 빵집에서는 앙꼬빵의 앙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 대하여 시
청자 여러분들도 매스컴을 통하여 충분히 알고 계시리라 생각 됩니다. 한데 오늘 오후 1시 드디어 이 이상현
상의 범인이 밝혀졌습니다. 범인은, 자기는 소설가 오오토모 똥 씨의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4차원의 인간 글이
라고 자칭하고 있으며 글이 자백을 한 것은 달나라 위에서 이었습니다. 다음 장면은 오늘 오후 1시 NHK에서
미국 우주선 스페이스 얼로우호의 달표면 착륙 실황중계를 한 것으로 문제의 범인이 나타나 화제가 되고 있습
니다.
아나운서 사라지고 화면에는 달의 황야, 황야 한가운데에 성조기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얼로우호의 더스틴
중위가 도중에 카메라 방향을 향해 자세를 바꾼다.
중위 : 여기는 더스틴 선장. 성조기가 쓰러져 가려고 하는데 똑바로 고쳐 놓아도 좋을까요?
휴스톤기지의 소리 : 여기는 휴스톤. 과연 훌륭한 생각이다.
중위는 양손으로 크게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고는 성조기 쪽으로 간다. 그러자 갑자기 성조기가 코카콜라의
자동판매기로 변한다.
중위 : 여기는 더스틴 선장. 지금까지 있었던 성조기가 코카콜라 자동판매기로 변했다. 영문을 아는가?
휴스톤기지의 소리 : 여기는 휴스톤. 글쎄, 그걸 누가 알겠는가?
중위 : 여기는 더스틴 선장. 달표면에 코카콜라 자동판매기가 있는 줄 알았다면 동전을 가지고 올건데 말이다!
휴스톤기지의 소리 : 여기는 휴스톤. 더스틴 선장. 그 자동판매기에 가까이 가서는 안되겠다. 기압 관계로 콜라
병이 폭파할 위험성이 있다. 재빨리 우주선으로 귀착하라!
중위 : 오케이! 오케이!
휴스톤기지의 소리 : 여기는 휴스톤. 더스틴 선장. 서둘러라! 우주선으로 1초라도 빨리 돌아와! 정체 불명의 생
물이 자네한테 접근하고 있는 중이다!!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는 중위. 저쪽에서 우주복을 입은 물체가 중위가 있는 쪽으로 가까이 온다.
여고생글 : 안녕하세요. 선장님-. 세라복 좋아하세요?
글은 중위한테 손을 내민다.
중위 : 다, 당신은 누구요? 우주인인가? 알고 계시겠지만 이 달은 지구인의 것이요. 1967년 7월에 이미 지구인
이 착륙했었으니까.
여고생글 : 염려 마세요. 저도 지구에서 왔으니까요.
중위 : 지구에서! 어떻게?
여고생글 : 텔레포테이션에 의해서요.
중위 : 텔레포테이션?
여고생글 : SF소설에 등장하는 순간이동이라는 것 말예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삽시간에 이동하는...
중위 : 아! 그 션! 하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여고생글 : 믿고 싶지 않으면 믿지 않아도 상관 없어요. 어쨋거나 이곳에 지구의 자동판매기를 운반해 놓은 사
람은 바로...
여고생글 사라지고 귀신글이 나타난다.
귀신글 : 나 야.
중위 : 너, 넌 또 뭐야?
귀신글 : 선장님, 놀라지 마세요. 난 우주괴물 따위는 아니니까요. 지금 현재는 귀신이긴 하지만...
중위 : 도대체... 이건
귀신글은 공중에서 컵을 잡아낸다. 컵안에 맥주가 있다.
귀신글 : 드세요.
중위 : (얼떨결에 받아 한 모금 마신다.) 오호, 우주에서 마시는 맥주는 또 맛이 다른데. 좋아, 당신. 이 맥주맛
을 봐서 현재는 귀신이라고 하는 그 바보같은 소리를 못들은 걸로 해주지. 무슨 마술쇼 같은 걸 하는거 같은
데 말야.
귀신글 : 이건 마술이...
귀신글 사라지고 약장수글 나타난다.
약장수글 : 마술이 아니야. 한번 믿어보시라.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시시껄렁한 마술과는 차원이 틀려.
중위 : 정말 굉장하군. 어쨌든 당신만 생각이 있다면 그 마술이랄가 화신술로 한 재산 만들 수도 있겠어.
약장수글 : 날 뭘로 보고 하는 소리! 동서남북, 사방팔방 지나가는 사람 잡고 물어봐. 난 그런거 안해도 좋아.
중위 : 왜?
약장수글 : 왜? 왜냐구 지금 나에게 물으신다면......
약장수글이 손을 살랑살랑 흔든다. 약장수글 사라지고 여고생글 다시 나타난다. 손에는 중위의 속옷이 들려있
다.
여고생글 : 지구에 계신 여러분! 저는 글이라고 해요. 직업은 도둑. 요즘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모
두 저의 소행이죠.
중위 : 기지, 기지.
휴스턴기지의 소리 : 여기는 휴스턴! 글이라고 하는 인간에게 묻는다. 자네는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되었나?
여고생글 :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일본의 소설가 오오토모 똥씨의 소설 <글>에서 빠져나온 글이라고 할 수 있
죠. 저를 낳아 준 부모는 똥 선생님이예요. 이것이 똥 선생님의 소설 <글>이지요. 출판사는 아사히 서점. 많이
들 애독해 주세요.
누드쇼풍의 일본 무용 레코드가 돌아간다. 여고생글 음악에 맟춰서 옷을 벗기 시작한다.
중위 : 여기는 더스틴 선장. 저 여자의 스트립쇼를 이대로 보고 있어도 될까요?
휴스턴기지의 소리 : 여기는 휴스턴. 물론이다. 여기서도 즐겨보기로 한다. (휘익하는 휘파람)
여고생글 : 자, 벗겨줘요.
중위 : 여, 여기는 더스틴 선장...
휴스턴기지의 소리 : 일일이 지시를 기다리지 마라. 자네도 사내 아닌가?
중위 : 여기는 더스틴 선장. 매우 잘 알았음!
휴스턴기지의 소리 : 여기는 휴스턴. 휘익! 휘익!
텔레비젼 화면의 테두리가 차차 76인치로 다시 줄어들었을 때 녹화는 사라지고 그 대신 아나운서 등장.
아나운서 : 이렇게까지 본인이 자백을 한 이상은 그를 범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가 없겠습니다마는 확실한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아마도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되는데요. 그럼 여기서, 우주 중계가 끝난 오늘 오후 2시를
전후로 전국의 서점에 소설 <글>을 사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바람에 도쿄에서 3사람, 교토에서 2
사람, 코오치에서 1사람, 합계 6명의 부상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이 폭발적인 글 붐에 편
승해 보겠다는 건지, 각지의 흥행업소인 빠찡꼬나 빠아, 캬바레에서는 어느새 「빠찡꼬글」「빠아글」「캬바레 글」등으로 즉각 간판을 바꿔건 곳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NHK가 취재한 바로는 글이란 발음을 집어넣은 다
수의 상품들이 늦어도 근래 1개월 안에는 전국에 나돌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것을 예를 들어 보자
면 「글팬티」「글생과자」「글구두솔」「글등긁개」「글쥬스」「글널판」「글텍스」「글차」......
-암전-
2. 오오토모 똥의 집
처량하게 우는 벌레소리. 무대. 아주 서서히 밝아진다. 중앙에 사과 궤짝을 앞으로 하고 앉아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사내는 덥수룩한 수염에 더벅머리, 구멍난 양말에 무릎이 헤진 바지, 런닝 셔츠 위로 소매끝에 솜이 삐
져나와 있는 잠옷을 입고 있다. 사내는 나무궤짝 위에 신문 갈피에 끼워 들어오는 광고지를 올려놓고 그것의
뒷면 백지 위에 끝이 닳아 빠진 대나무 자를 대고 열심히 줄을 긋고 있다. 이윽고 사내는 재채기를 연발하며
코밑을 손등으로 2,3차례 문지르더니 심하게 몸을 부르르 떨고나서 객석을 멍청히 바라본다. 잠시 후 사내는
눈에 힘을 주고 객석을 향해 따지는 듯 노려본다.
똥 : 난 오오토모 똥이다. 똥은 한자어로 분이라고 쓰는데, 그 분은 성낸다, 분노한다는 뜻의 글자야. 논어에
「분을 발합으로 먹을 것을 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때 쓰는 분이라구. 그것은 식사를 잊을 정도로 분발
해서...라기 보다는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경우가 많았긴 하지만...(자랑스러운 듯이)어
쨌든 나는 하류작가야. 하필이면 하류 작가냐고? 난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서 작가라는 직업을 택한 것이지, 출
판사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 이 길로 나선 것은 아니기 때문! 난 충분히 생각해서 열번이고 백번이고 납득한
다음이 아니고는 펜을 잡지 않는단 말이야. 게다가 나의 문학은 고상한 것이어서 어중이 떠중이 여대생 정도
의 교양으로 먹혀 들어가지도 않을 거라구. 그래서 내 책은 안 팔리는 거야.
똥은 잠시 광고 용지 위에 줄긋는 작업에 열중한다. 그라자 다시 객석을 의식하고
똥 : 작가라면서 왜 글은 쓰지 않고 줄만 잔뜩 치고 있는 거냐고 묻고싶은 듯한 얼굴을 하고있군. 난 광고지
뒷면에 줄을 쳐서 손수 원고 용지를 만들고 있는 중이란 말이요. 원고 용지에 비하면 광고 용지는 종이질도
훨씬 좋지. 게다가 가끔 세로로 21줄씩 줄을 쳐야 해야 할걸, 20줄씩 치기도 한다구. 그렇게 하면 400자 원고
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361자용 원고지가 만들어 지거든. 한 장당 39자 이익이라 이거지! 쉿! 그리구 말이지,
고급 원고지에 썼다구 해서 그 소설이 꼭 고급이라고 할 순 없는 거잖아! 찌라시 용지 뒷면에 소설을 썼다구
해서 그 소설의 급이 떨어 지는 것두 아닐 테구 말이지. 고급 크리넥스 티슈로 닦든, 꼬깃꼬깃한 신문지로 닦
는 엉덩이는 다 똑같은 엉덩이, 똥은 다 같은 똥이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어른거린다. 차가 아주 가까운 곳에 정차한 것 같다.
똥 : 내겐 이런 야밤중에 찾아 올만한 친한 친구가 없는데...
서점주 : 안녕하십니까?
하고 위세 좋은 목소리로 가죽 차림의 중년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누런 종이 봉투를 들고 있다.
똥 : 누군가 했네그려. 아사히 서점 주인 아닌가? 당신이 와 봤자 배부를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담배쯤은 갖
고 있을테지? 한 개피 주우.
서점주 : 내 그러실 줄 알구, 세븐 스타를 한 봉다리 사왔습죠. 그리구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즉석라면, 녹차 한
봉지, 센베과자 한 봉지, 건빵 5봉지.
하고 서점주는 누런 봉지 안에 든 물건들을 나무 궤짝 위에 늘어놓는다. 그런 서점주인을 보고 똥은 크게 소
리를 지른다.
똥 : 진탕 늘어 놓고 자랑한 뒤에는 「아, 이거 다른 집에 가지고 갈 건데, 뭐가 잘못 됐군.」하고 다시 봉지
속에 집어 넣을 거지?
서점주 : 무슨 말씀을요! 이건 그냥 간단한 선물이고 진짜 선물은 이 수표지요. (잠바 안주머니에서 수표를 꺼
내) 수표 액수는 50만엔. 자 이것 보세요.
똥 : (아연해져서 입을 딱 벌린다.)
서점주 : 실은 말씀이죠. 선생님, 올 여름에 출판시켜 주신 똥선생님의 소설 「글」이 날개 돋치듯 팔리고 있
단 말입니다. 초판으로 인쇄한 2천 부가 어느새 다 팔려 품절돼서 이번에 1만 8천부를 찍어내 보기로 한 것입
니다. 그 수표는 1만 8천부에 대한 인지대금...
똥 : (화가 난 것을 억제해 가며)내, 내, 내 책이 그렇게 잘 팔리도록 가만 놔두고만 있을 것 같아?! 내 자존심
에 맹세코 말하지만, 난 그렇게 간단하게 잘 팔리는 그런 소설을 쓴 기억이 없다. 사르트르처럼 난해하고 쾨테
처럼 황당무개하고 헤밍웨이처럼 웅대한,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 자신도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소설을 쓰려고
했을 뿐이다. (격해져서) 그런 소설이 증간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내 소설이 증간 될 정도로 팔린
다는 건 용서할수 없어!...... 그, 그래도 돈은 역시 좋은 거로구만!
서점주 : 게다가 소설속의 글이 달나라에까지 나타나 책의 선전을 해주는 바람에 서점마다 책이 모자라 난리
가 났다구요.
똥 : 그게 무슨 소리야. 글이 달나라에 나타나다니...
서점주 : 아니, 모르고 계셨어요?
똥 :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서점주 : 선생님 가끔은 뉴스도 좀 보고 그러세요. 선생님 소설속의 글이 달나라에 나타났다니까요. 게다가 이
놈이 자유의 여신상에서 앙꼬빵의 앙꼬에 이르기까지 온갖것을 도둑질 하고 다닌다 이겁니다요.
당황한 똥 상자속을 뒤진다. 오래 된 원고 <글>을 찾아 낸다.
똥 : <글>이라. 세기의 도적 글의 화려한 모험 생활...<글>이란 누구인가. 글은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
해 신출 귀몰한, 하는 짓은 기발한 발군의 실력자. 불가능한 것이 없이 모든일이 가능하다. 어떠한 소원도 다
성취해 내는 큰 도둑이다. 글은 광속도의 4분의 3의 스피드로 난다. 알세에느 루팡이라든지 괴도 지바고 라든
가 하는 세상엔 큰 도둑들이 수없이 많지만 글 앞에서는 갓난아이다. 까닭인 즉 글이 4차원의 사내이기 때문
이다. ...그래, 맞아. 4차원의 사내, 글. 정말 굉장한 소설이지. 명글이고 달문이며 글의 의의가 명료하고 글에
덕이 스며들어 있어.
서점주 : 저 선생님... 전 이만..
똥 : 그런데 이놈이 지금 바깥 세상을 활개치고 다닌다 이건가?
서점주 : 네. 그게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뭐..
똥 : 말도 안돼. 4차원의 인간인 이 놈이 3차원의 이 세상에서 설치고 다닌다면... 그래 경찰에서는 뭐라고 하
던가?
서점주 : 그게 말입죠. 그 날고 긴다는 산스케 경찰도 영문을 알 수 없다고 하니...
똥 : 자네 차로 왔지?
서점주 : 네.
똥 : 날 그 산스케 경찰관에게 데려가 주게.
서점주 : 선생님, 갑자기 무슨 생각을...?
똥 : 시끄럽네. 이거 사건이 급하게 됐어.
3. 무상식한 상식인
경찰장관 실. 책상이 2개 큰 것이 쿠사키 산스케의 것. 작은 것은 여비서용. 비서용 책상 위에 전화기가 5대
놓여 있다. 쿠사키 산스케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 놓고 무언가 생각에 골몰해 있다. 비서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전화가 한꺼번에 울린다. 여경관 제복을 한 미인 비서가 전화기를 차례로 귀에 갖다대더니만 이윽고 5개
전부를 늘어 놓은 후에 큰 소리로.
비서 : 경찰이 놀고 있는 게 아니라구요. 사건의 핵심을 향해 차근차근 접근해 가고 있는 중이,,, 네에, 알겠어
요. 네, 틀림없이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서는 수화기를 하나하나 전화통에 올려 놓으며
비서 : 5통 모두 주부한테서 온 항의 전화였어요.
산스케 : 뻔해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것은 경찰이 태만해 있다는 증거다」「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냐」
「이 세금 도둑들아」...?
비서 : 맞아요. 첫 번째 주부는 빨간 잉크를 도둑 맞았다고 화를 냈어요. 가계부의 적자 표시를 이번엔 무슨
색 잉크로 쓰면 좋겠느냐며 우는 소리. 두 번째 주부는 요 2, 3주일 사이에 왠지 갑자기 말수가 적어 진 것 같
대나요? 전에는 자기도 지칠 정도로 수다쟁이였었는데 요즘에 와선 어쩐지 이상하다는 거예요. 혹시 수다떨기
라고 하는 유일무일한 즐거움을 도둑 맞은 게 아닐까 하고...... 그렇게까지 떠들어 내는 걸 보면 아직도 상당한
수다스런 부인이긴 했지만요. 세 번째 주부는 빨래줄에 걸어 놓은 팬티를 도둑 맞았다나 봐요.
산스케 : 그건 이웃에 사는 치한의 짓이겠지. 그런 시시콜콜한 사건을 경찰 장관인 나에게 일일이 신고해 올게
뭐람.
비서 : 네 번째 주부는....
그 때 사무실 문이 반쯤 정도 열리면서 똥이 얼굴을 내민다.
똥 : 저... 쿠사키 산스케 장관을 만나고 싶어서 왔수다.
비서 : 장관님을 만날려면 접수계에 가서 신청하세요.
똥 : 접수에서 단번에 거절 당했수다.
비서 : 그럼 안돼요. 돌아가 주세요.
하고는 문을 닫으려 한다. 똥은 몰래 안으로 들어온다.
똥 : 접수도 이런 식으로 통과해 왔다우. 어쨋거나 장관한테 중대한 이야기가 있소.
산스케 : 상식없는 인간이로군. 가택 침입죄로 체포되고 싶은가?
똥 : 내 얘길 들어보라구요. 틀림없이 나에게 감사할거요!
산스케 : 그럼, 되도록 짤막하게.
똥 : 요 일주일 사이, 세계 여기저기서 기괴한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 같은데 그 범인을 내가 잘 알
고 있수다.
비서와 산스케 깜짝 놀라서 의자에서 굴러 떨어진다.
산스케 : (일어나며) 저, 정말이요?
똥 : 예, 범인은 글이라고 하는 큰 도둑이요.
산스케 : 글?
똥 : 그래요.
산스케 :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다.) 이봐, 안 그래도 우주 중계인가 뭔가에서 말도 안돼는 소리를 떠들어서
혼란 스러워 죽겠는데... 이젠 아예 여기까지 찾아와서 날 골탕먹이려 들어. 세상이 온통 미친 놈들 투성이라니
까....
똥 : 날 믿으시오.
산스케 : 뭐, 믿으라고? 소설 속에서 등장 인물이 빠져 나온다는 걸 나한테 믿어라구?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똥 : 그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4차원의 인간이라구!
산스케 : 어쨋건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똥 : 글의 앞에 상식은 통용되지 않지!
산스케 : (탕하고 책상을 치더니)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구?! 그건 경찰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들 경찰은 상
식을 유일한 근거로 삼아 사건을 처리 해 나가구 있다구!
똥 : 그러나......
산스케 : 모든 조사는 상식을 기준으로 행해진다. 「한 인간은 같은 시간에 둘 이상의 다른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상식을 기본으로 해서 우리들은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조사하고 또 범인을 밝혀낸다.
똥 : 그렇구 말구요. 그러나......
산스케 : 「인간은 어느 누구도 똑같은 지문을 가지고 있지 않다.」그것이 상식이야. 그래서 우리들은 용의자
의 지문과 현장에 남겨진 지문을 조회해서 범인을 알아낸다.
똥 : 그러믄요. 그러나......
산스케 : 좋으면 선인, 나쁘면 악인, 이것이 상식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선인을 지켜 주고 악인을 사로잡는다.
똥 : 정말로 수고가 많으시군요. 그러나...... 장관! 세상에는 상식을 넘은 것도 존재하고 있소!
산스케 : 소설 속에서 인간이 튀어나왔다고 하는 그런 비상식적인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먹혀 들어갈 것 같은
가? 자, 깨끗이 단념하고 돌아가시지!
비서가 권총을 겨냥하고 있다.
똥 : 정말로 유감이군요.
똥이 나간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던 산스케, 책상 위의 전화 다이얼을 돌린다.
산스케 : 나다. 2분쯤 후에 정면 현관으로부터 한 중년 남자가 나갈 것이다. 나이는 35, 6세, 지저분한 차림, 키
는 작고...... 그래, 우선 2, 3일 미행하라. (전화끊고) 글이라......
산스케 바쁘게 퇴장, 비서도 따라나간다.
4. 안녕하세요, 똥 선생님
똥의 집. 똥이 예의 사과궤짝에서 무언가를 정신없이 쓰고 있다. 조명담당, 마이크담당, 출연자들로 복작댄다.
아나운서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세계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4차원의 큰도둑 글의 생부이신 소설
가 똥 선생님의 댁에 와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고)아무리 봐도 형편없는 집이야! 독자의 비위를 맞추지 않
는 소설가란 이런 집에서 밖엔 살수가 없는가 보군요. 아이쿠, 안녕하십니까요! 똥 선생님!
똥 : 오오
아나운서 : 선생님. 소설 「글」을 쓰셨던 책상이 이것입니까?
똥 : 으음
아나운서 : 형편없는 책상이로군요.
똥 : 15년 간 줄곧 이 책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근처의 채소가게에서 얻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어쨋든
이 책상의 전신은 사과상자였지요.
아나운서 : (카메라를 향해)시청자 여러분! 이곳에 한 가지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비록 낡은 책상일지라도
그러니까 사과상자 위에서도 걸작은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한 손에 들고) 이거, 광고지 아닙니까?
똥 : 음, 이웃집에서 광고용지를 얻어다가 뒷면 백지 위에 줄을 친, 제 원고지올시다.
아나운서 : (카메라를 향해)여러분! 여기 또 한 가지의 진리가 있었습니다. 광고 뒷면은 소설을 쓰는 데에 가
장 적합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소설은 인생의 뒤안길을 취급하고 있는 것이므로 아무래도 뒷면에 쓰는 것이
좋겠지요! 그런데, 선생님. 올해의 노벨상 문학상 후보자 명단 가운데에 선생님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고들 하
는데, 이 점에 관해서 어떠한 소감을 지니고 계시는지요?
똥 : 그건 제 취향이 아닙니다. 전 아쿠다가와 상이나 나오키 상을 훨씬 더 좋아한답니다. 뭐니뭐니 해도 거기
에는 30만 엔의 상금이 딸려 있기 때문이지요.
아나운서 : 노벨상은 그것의 100배 이상의 상금이 나오는데두요?
똥 : 그게 정말입니까?
아나운서 : 정말이구 말구요.
똥 : 그렇담, 노벨상쪽이 더 낫겠군요!
아나운서 : 노벨상을 타려면 일본 펜클럽의 회원이어야 된다던데요?
똥 : 아, 난 들지 않았는데요!
아나운서 : 지금부터라도 가입을 해 두시면 어떻겠습니까?
똥 : 허지만, 전 연필로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연필 애용자가 펜클럽에 들어가는 것이 과연 가능할른지요?
아나운서 : (카메라를 향해) 여러분! 한 가지의 진리가 또 있었습니다. 세상 일은 몰라도 소설은 쓸 수 있다고
하는 이 진리! 그럼, 다음 차례로는 선생님의 이부자리를 엿보기로 할까요.
사회자는 구석에 있는 벽장문을 연다. 벽장 속에는 노끈으로 꽁꽁 묶여 있는 한 사내가 입에 자갈이 물려 있
는 채, 틀어박혀 앉아 있다. 그 남자는 사회자가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으며 체구도 거의 같다.
아나운서 : (싱글거리며)아니, 으응?!
똥 : (번갈아 비교를 해 보고) 아, 아니! 어느 쪽인가가 가짜라는 얘긴데! 설마! 설마, 네가!
글 : 네, 선생님 처음 뵙겠어요!
글은 벽장문을 닫고 똥 옆에 앉는다. 어시스던트 디렉터가 와이어레스 마이크를 향해 소리를 친다.
어스서던트 : VTR차! VTR차! 예행연습 때는 없었던 얘기입니다. 어떻게 하지요? 중단할까요?... 이렇게 글이
나와 버린 이상 시청률이라도 실컷 올려버릴까요? 이대로 계속? 하아, 알았습니다!
똥 : 이봐, 글. 도대체 얼마나 세상을 휘젓고 다닐 셈인가. 응?
글 : 글쎄요.
똥 : 물론 널 애초에 4차원의 인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내 잘못이야. 하지만 만약 모든 소설 속의 주인공들
이 너처럼 줄줄이 원고지 속에서 밖으로 빠져 나온다고 해봐. 세상은 소설 주인공들로 꽉 차고 말거야. 풍차와
괴물을 혼동하는 돈키호테, 인정사정 없는 수전노 샤일록, 주인 왕을 살해하는 멕베드, 뭐 그런 괴상망측한 인
간들로 꽉 차버린다구.
글 : 선생님께 말대꾸를 하는 것 같지만 말이죠. 방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괴상하고 망측한 인간들은
과연 소설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똥 : (멍하니)이봐, 글.
글 : 왜요, 선생님.
똥 : 소설가가 터무니 없는 거짓말투성이를 무책임하게 늘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원고지에 쓴 인물이란 절대로
이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는 보증이 있기 때문이야. 어쨌거나 자넨 너무 설치고 다니고 있다구.
글 : 아직 멀었어요.
똥 : 세상은 네가 설치고 다니는 일에 지금은 박수갈채를 보내주고 있으나, 분명 머지않아 미움을 받게 될거
다.
글 : 나혼자 원고 속으로 들어가도 소용없잖아요. 소설「글」1권에서 다른 글들이 한명씩 원고 밖으로 튀어나
오기 시작했어요.
똥 : 그, 그렇담 초판이 2천부, 재판이 만8천부, 3판이 10만부, 합계 12만......
글 : 그래요. 12만 명의 글이 이 세상으로 튀어 나왔단 말이에요.
똥 (머리를 쥐어싸며) 너같은 놈이 12만명이나......?
이때, 쿠사키 산스케 장관이 튀어나온다. 장관의 손에는 권총.
산스케 : 4차원의 도둑, 글! 도둑질을 해서 세상을 어지럽힌 죄다! 체포한다!!
글 : 아이구머니, 경찰장관님께서 손수! 이 무슨 영광이람!
산스케 : 저항하면 쏜다.
글 : 어머나, 쏴 주실 거예요? 기뻐라! 쏘세요. 자, 어서요!!
산스케 : 이노옴!
방아쇠를 당긴다. 찰칵하는 소리만 날뿐.
산스케 : 아니?
글 : 탄환은 제가 보관하고 있어요.
글은 마루바닥으로 탄환을 내던진다.
글 : 분명 6발이었죠? 자, 세어 보세요!
산스케 : (억울해 하며 발을 구른다.)이, 이, 이걸 그냥!
글 : 그럼, 똥 선생님, 건강히......
산스케 : 서라! 글!
글, 사라진다. 산스케 글을 따라 쫓아간다.
똥 : 이, 이봐, 글. 잠깐만!...... (쫓아가려고 하다가 문득 자기 손을 펼쳐 보인다. 손안에 한 장의 메모)뭐, 뭐야
이건?
5. 물질에서 마음으로
호텔의 레스토랑. 글의 테마곡. 경음악으로 편곡한 것이 엷게 흘러나오고 있다. 테이블이 둘. 그곳에는 똥, 또
한곳에는 고급스런 부인들이 3사람. 귀부인들은 똥을 힐끔힐끔 훔쳐보고 있다. 똥은 그 시선이 몹시 마음에 걸
리나, 예의 메모를 살펴보며 중얼중얼 거린다.
똥 : 「선생님, 의논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내일 정오 호텔 노쿠라의 그릴로 나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내게 의논할 일이라...?
보이장이 바닥 위를 미끄러지듯 걸어서 그에게 다가온다.
보이장 : 어서 오십시오. 소설가 똥 선생님이시지요? 어제 텔레비젼에서 뵈었습니다. 글 찌라시를 이용한 원고
용지는 정말로 감동적이었어요...... 선생님, 주문은?
똥 : 즉석라면
보이장 : 네에?
똥 : 이곳엔 싸구려 음식일랑 없겠군.
보이장 : 네에 네에!!
똥 : 식은 밥에 된장국을 말아서 그위에다 고기가루를 살짝 얹인......
보이장 : 네엣?!
똥 : 같은 것은 물론 없을 테지?......
보이장 : (당황하고 있는 똥을 구해주듯 타이밍을 아주 잘 맞춰서)괜찮으시다면 오늘의 특선요리같은건 어떨
런지요?
똥 : 특선? 오오, 특선이라면 괜찮겠지? 무슨 특선인진 모르지만 그걸 부탁하네.
보이장 : 네, 잘 알았습니다.
보이장, 마루위를 미끄러지듯 하여 사라진다. 3인의 귀분인 1,2,3이 등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귀부인1 : 저이가 화제의 똥 선생님이신가요?
귀부인2 : 그런 것 같으시네요!
귀부인1 : 꾀죄죄한 분이시네요!
귀부인3 : 소설「글」이 팔리기 전까지는 거지와 다름없는 생활이셨다지요? 아마?!
귀부인1 : 오호홋. 그럼, 갑자기 돈을 벌어서 이런 일류 호텔에....?
귀부인2 : 그런 것 같은시네요!
귀부인3 : 무리하고 계시는 것 같은네요!
귀부인2 : 무리하시면 안 좋으실 텐데!
귀부인1 : 태어날 때부터 애초에 갖고 있는 기품이란 것이 없어서야, 원!
귀부인2,3 : 맞아요. 바로 그거지요!!
귀부인1 : 기품이 없으면 집안의 격식을 유지할 수가 없지요. 그렇잖아요?
귀부인2,3 : 그럼요. 그렇다마다요!!
보이장. 바닥을 미끄러지듯이 걸어 다가온다.
보이장 : 사모님께선 영국왕실 풍 키드니 파이를 주문하셨지요?
귀부인1,2,3 : 사이잔스, 사이잔스
보이장 : 정말 죄송스럽습니다마는 키드니 파이를 만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귀부인1,2,3 : 어마, 유감잔스.
보이장 : 허지만 그 대신 틀림없이 좋아 하실만한 요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귀부인1,2,3 : 뭐지요?
보인장 : 구-운!
귀부인1,2,3 : 구-운?
보이장 : 구마!
귀부인1,2,3 : 구마?
보이장 : 촌스런 단어로 말씀드리자면 「군고구마」라고......
귀부인들 1,2,3의 입이 뾰루퉁 튀어나온다. 이때 보이장은 세 사람의 귀부인 머리위에 오른손을 뻗어 올려 살
랑살랑 흔든다. 그러자 부인 1,2,3의 태도가 돌변해져서 왈가닥들이 된다.
귀부인1 : 이것봐요. 뽀이양반! 군고구마 준댔잖아요!
귀부인2 : 키키키키, 난 고구말 좋아해!
귀부인3 : 뽀이 아찌, 군고구마 어떻게 된 거예요?
보이장 : 저기, 키친쪽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귀부인1 : 키치-인? 아이구, 폼재고 있네! 영어 같은 거 쓰지 말라우야! 부엌이라는 말을 놔두고 왜 그렇게 어
렵게 살려구 해? 이봐, 여편네들! 지금부터 우리 저 부엌으로 쳐들어 가자우!
귀부인2,3 : 좋~지!
귀부인1,2,3. 웅성거리며 퇴장.
똥 : (유심히 보이장을 관찰하고 있다.)너...... 글이지?
글 : (육체노동자 글의 입놀림) 역시 선생님이셔. 잘도 알아보시는 군요. 저희들의 분신을 알아차린 사람은 선
생님이 처음입니다.
똥 : 너, 아까 그 귀부인들한테서 뭔가를 훔쳤겠다.
글 : 네, 허영입니다.
똥 : 허영?
글 : 허세에다 잘난 척! ......인간들은 이상한 것을 좋아하는군요.
똥 : 그래. 똥, 의논하겠다는게 뭔가?
글 : 요즈음 전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형태가 있는 물건을 훔치는 것은 시시하다는 생각을요.
똥 : 그렇지, 그렇지. 도둑질 같은 건 시시껍절한거야. 따분하다구. 그러니 그만두고 내 원고 속으로 되돌아 오
렴.
글 : 글게 아니구요. 앞으론 방침을 좀 바꿔갈까하구요. 이제부터는 말이라든지 음악 또는 인간의 허세라든가
허영심 따위의 그런 형태가 없는 것을 훔쳐볼가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똥 : .......모르겠다. 대체 넌 무엇 때문에 훔치려는 거지?
글 : 전 도둑이에요. 두둑으로 태어난 이상, 이왕이면 인간한테서 가장 중요한 것을 훔치고 싶다구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 인간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게 물까요, 선생님?!
똥 : 몰라. 내 일생 역시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가를 알아내는 일이었지. 그라나 그 인생의
중반을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태껏 그것을 모르겠거든.
글 : 역사를 훔친다면 인간은 어찌 될까요?
똥 : 그만해 둬! 온세상이, 인간들이 단체로 기억상실증이 되어 버릴 뿐인야.
글 : 허지만 인간에게 역사같은 건, 있어 봤대자 별 도리가 없다고 생각지 않아요? 인간이 정말로 역사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면 한번 저지른 실패는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인간은...
예를 들면 아주 끊임없이 전쟁을 반복하고 있잖아요. 인간들은 역사라는 보물을 두고 썩히고만 있는 격이지요.
어쨌거나 저는 좀 방법을 바꿔보겠어요.
똥 : 글! 가면 안돼! 난 방금 세상에 대해 책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이상 널 내버려 두면 안되겠어. 안돼,
가선 안돼! 원고 안으로 다시 들어와!!
글, 똥을 향해 묘한 예의 손놀림.
글: 똥 선생님, 선생님의 역사를 훔쳐봤어요!
글, 왼편으로 사라진다. 동시에 오른편에서 스프접시를 받쳐든 보이장이 미끄러지듯 등장한다.
보이장 : 오랫동안 기다려셨습니다. 오늘의 특선요리는 먼저 알이 든 토마토 스프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똥 : (완연히 천진난만한 태도로)아저씬 누구? 유치원 선생님?
-암전-
6. 악마의 아름다운 미래
심야의 경찰장관실. 쿠스키 산스케가 안절부절 못하며 방안을 걸어다니고 있다. 멈춰서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
다가
산스케 : 이거 너무 늦구만. 대체 그 여잔 뭘 하고 있는 거지?
또 다시 걸어 다니기 시작한다.
산스케 : ...「글」들의 수법이 바뀌었다. 하루에도 기억상실증 환자가 15만 명에 달하고 있어. 「쿠사키 산 짱
이니? 우리집에 놀러 안올래? 딱지치기하자! 그리구 있잖니, 앞으론 날 에이 짱으로 불러줘, 응?」(거의 울고
있다.)일국의 수상께서 자기집에 딱지치기 안할래라니!(콧물을 훌쩍 들어 마신다.)이 모든 일이 다 그 글의 소
행이야.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글이 무엇 때문에 수법을 바꾼 것일까?
장관의 책상위에 놓여 있던 전화가 울린다. 산스케, 수화기를 든다.
산스케 : 쿠사키 산스케다......(갑자기 직립부동의 자세가 되어)아이쿠 이거....관방장관 각하! 네? 글을 3일 안에
체포하라구요? 그렇지 않으면 사직? 네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곧 이쪽 카드패에 조커가 한 장 들어오게
끔 되어 있으니까요...... 승산은 있습니다. 맡겨주십시오...... 그럼......
수화기를 내려놓은 순간 문이 열린다. 비서가 기이한 사내의 등을 밀면서 들어온다. 그 남자는 빨강, 파랑, 노
랑, 보라, 초록등 갖가지 색의 구슬을 꿴 염주를 목에 걸고 있어, 마치 히피들의 왕초풍이다.
산스케 : 분명히 이 남잔가?
비서 : 네에!
산스케 : 수고했다!
비서 : 그럼....
산스케 : 음.
비서 퇴장. 산스케는 뚫어져라 사내를 훑어보고 있다.
악마를 부르는 사내 : 그런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지 마쇼. 난 이래뵈도 소심하다구요.... 아무튼 경찰장관 앞으
로 호출 당할만한 그런 나쁜짓을 한 기억이 없는 데요. 올해는 인도에서 불을 뿜는 사내라는 자를 불러왔습죠.
가솔린을 마신 뒤 3미터나 되는 불길을 뿜어낸다고 하더니만 글쎄 이 놈이 어찌나 먹수인지 가솔리 대신 술만
처마시구, 불어댄다던 건 허픙만 잔뜩 불어대더라니까요. 큰 손핼봤죠. 작년엔 이란의 인간 펌프라는 자를 불
렀더랬습지요. 못이건 유리이건 닥치는 대로 먹어버린다고 하더군요. 그놈은 가짜는 아니었지만 동물같은 놈이
글쎄 세 끼니를 13번이나 먹어버려 손해를 봤습니다요. 내년에는 헬싱키에서 방구쟁이 사내를 부를까 하고 있
습니다만, 이놈은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방구를 뀐다는 구머요. 비에나 필 하모니와도 협연했다는데 그것도
정말인지 모르겠어요.
산스케 : 숨기지 마!
사내 : 네?
산스케 : 네 놈의 본업은 악마초대업이렸다?!
사내 : ....저어, 악마를 부르는 일에 대해서는 정식허가를 받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그것이 혹 무슨 죄라도.....?
산스케 : 되지!
사내 : 저, 저어...... 결코 나쁜 뜻은 없었습니다요!
산스케 : 적어도 20년은 살걸?!
사내 : 뭐라구요? 이거 큰일났네. 아이쿠 내겐 맏이가 5살 짜리에서부터 7명의 자식놈들이 있는데, 게다가 마
누란.....
산스케 : 그러니까 나랑 거래를 하자는 거 아냐. 내게 악마를 불러주기만 하면 무면허 딱지 영업을 눈감아 주
겠다.
사내 : 악마를 불러낼 수 있는 건 하루 한번. 한밤중 12시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국장님, 악마를 부르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불러내는 방법에 따라 악마의 계급도 다르거든요.
산스케 : 돈은 상관없다.
사내 : 그럼, 최상의 등급인 스페인식으로 하십시다.
산스케 : 후후후후후후 그럴 줄 뻔히 알았지. 스페인식이라면 거울이 2개 필요할 걸?
사내 : 잘 알고 계시는 군요!
산스케 : 멋으로 장관복을 입고 있는게 아냐.
과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곳에는 거울같은 것이 2장 세워져 있다. 세로 1.8미터, 가로 1미터 정도가 되는
큰 거울이다.
사내 : 그럼 잠시 손을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이곳에 이렇게 수직으로 한 장을 세우겠습니다. 각하
께서는 제가 세운 이 거울과 평행이 되도록 나머지 거울을......
산스케 : 오케이
산스케는 사내의 거울과 평행이 되도록 또 한 장의 거울을 세운다.
사내 : 이걸 보세요. 이렇게 하면 한 거울 속에 또 하나의 거울이 비치고 그 속에 또 거울이 비치고...... 이런
식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깊숙한 통로가 생기잖습니까? 이 거울 통로의 저 먼 끝. 아득히 먼 저쪽 깊숙한 곳에
서......
산스케 : 악마가 나타난단 말이지?
사내 :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호출을. (라틴어와 같은 말로) 삐-떼루 노스떼루인 인휄루무.....(잠시동안 입안
에서 중얼중얼).......이노미데 빠-또리 에또 사땅구떼 스삐리똠 엔시 소와 열.
주문을 다 외우고 나자 거울과 거울 사이에서 검은 타이즈에 귀여운 핑크색 꼬리를 단 악마가 출현한다.
악마 : (매혹적인 목소리로)안녕하세요! (산스케에게 윙크) 잘 부탁해요!
산스케 : (긴장해 떨고 있다)
악마 : 아-이, 싫어요. 무얼 그리 떨고 계신담! 아저씬 악마하고 만나는 것, 첨이유? 첫 경험? 무서워할 것 없
어요!
산스케 : 이건 마치 긴쟈의 클럽에서 호스티스와 얘기하고 있는 기분인데....!
악마 : 긴쟈의 호스티스보다는 양심적일걸요. 저희들은 절대로 손님들에게 바가진 안씌워요! 그리고 약속은 무
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죠! 그럼, 즉각 비즈니스 상담으로 들어갈까요?
악마는 책상위에 한쪽다리를 요염하게 뻗는다.
악마 : 당신이 주문하시는 거라면 뭐든지 하겠어요. 그 대신 당신의 혼을 갖게 되는거예요. 오케이?
산스케 : 혼이라구? 상관없지! 혼같은 건 소중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있다면 좋은 거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다.
악마 : 그럼 됐어요. 그럼 전 당신께 뭘 해 드리면 되지요? 돈? 돈이라면 300억엔까지 빌리실 순 있어요. 물론
무이자, 무담보, 무독촉.
산스케 : 돈 같은 것 지금은 탐나지 않아.
악마 : 그렇담, 출세? 거지왕초 자리에서부터 대통령까지 여러 가지가 있지요.
산스케 : 출세도 아냐. 이래뵈도 난 경찰관으로서는 최고의 지위에 있다구.
악마 : 그럼 절 차지하고 싶으세요? 좋아요, 서비스해 드리죠.
산스케 : 아냐.
악마 : 그렇담, 제가 무얼해야 되는 거죠?
산스케 : 글이라고 하는 대도둑이 있다. 그 녀석을 처치해라!
악마 : 아휴, 고작 그런 것이었어요? 그런 건 누워서 떡먹기죠, 뭐. 피스톨을 빌려줘요. 그걸로 한 방에 처치해
드릴테니까요.
산스케 : 피스톨? 자넨 악마잖아! 뭐좀 악마스런 그런 무기가 있을 법도 한데....!
하며 악마에게 피스톨을 빌려준다.
악마 : 군사무기에 관한 한은 인간들편이 훨씬 진보해 있다구요. 작은 것은 피스톨에서부터 수소폭탄에 이르기
까지 굉장한 위력! 인간의 지혜나 노력은 저희들이 언제나 배우는 중이예요. 배울게 너무 많거든요.
산스케 : 과연! 그런데 이봐. 자네들도 옛날 고리짝부터 상당히 애를 써서 인간의 혼을 수중에 넣으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인간의 혼에 집착하는거지?
악마 : 인간의 혼을 하나라도 더 많이 손에 넣으면 그만큼 우리 악마들의 꿈이 실현되는 날이 빨리 다가오기
때문이죠.
산스케 : 악마들의 꿈이라. 그게 어떤거지?
악마 : 네, 가르쳐 드리죠. 악마들의 꿈은 온 천지가 모두 잿더미가 된 지구 위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일이에요.
산스케 : 피크...
사내 : ....닉?
악마 : 네, 그 잿더미 위에서 인간의 해골로 축구를 하는거죠.
악마는 감격에 젖은 나머지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산스케와 사내는 망연해져서
산스케 : (혼잣말처럼) 우리들의 해골을 악마가 차던져? 대체 어떤 소리가 날까?
사내의 머리를 툭하고 두들긴다.
산스케 : 이런 소릴까?
사내도 산스케의 머리를 맞두들긴다.
사내 : 아니, 이런 소리가 아닐까요?
이하 두 사람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서로의 머리를 번갈아 가며 두들기면서 「오히려 이런 소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그럴듯한 소리에 접근했단 생각이 들긴 하지만요. 좀 어떨까요?」하며 주고 받는다.
7. 글, 큰악마
심야 도쿄의 교외 똥의 집. 똥이 혼자서 실뜨기를 하며 놀고 있다. 괘종시계가 한 시를 친다.
똥 : 아이구 벌써 한 시 아냐? 잠자야 할 시간이야! 내일 아침 유치원에 지각하고 말겠다. 그래두 실뜨긴 차암
재미있는 거야. 돛단배 모양만 떠놓고 자야지.
똥은 다시 정신없이 실뜨기를 시작한다. 어느사이엔가 글이 나타나서 그러한 똥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똥 : 와아, 됐다, 됐어, 됐다구! 돛단배가 됐어. (글이 있는 것을 알아채고) 아저씬, 누구?
글 : 똥 선생님. 선생님의 과거를 돌려드리겠습니다.
글은 똥의 머리위에서 오른손을 살랑살랑 흔든다.
똥 : 앗, 자넨 글이 아닌가? (손에 실뜨기가 들려 있는 것을 내려다보고) 뭐야, 이 실은?
글: 실뜨기를 하고 계셨던 것 같아요!
똥 : 내가 실뜨기를?
똥, 실을 바닥에 팽개치면서
글 : 선생님, 인간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을 발견해냈어요. 앞으론 그것만 훔칠 계획이예요.
똥 : 그게 뭔데?
글 : 권위입니다.
똥 : 권위?
글 : 삶을 마음먹은데로 움직일 수 있는 그 어떤 것! 어떤 사람에게는 팔자 수염, 어떤 사람에게는 과거의 ;영
광, 의사선생님의 흰 가운, 훈장, 국회의원 뺏지, 문학상...... 인간은 그런 것들을 좋아한답니다. 그런 것들을 좀
더 많이 차지해서 그 위세로 사람을 마음먹은대로 조정하려고 하고 있어요. 돈도 출세도 자랑도 정진도 좋은
일도 뭐든지 다 권위를, 그 힘을 갖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똥 : 으음, 그런데 그 권위가 뭘 어떻다구 그러는가?
글 : 인간으로서는 눈이 흐려져버린다구요. 일단 권위를 손에 쥐게 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파렴치
한 짓도 눈하나 깜짝않고 하게 돼요.
똥 : 잠깐. 나 좀 보라구 글. 인간이라는건 말이네, 응애! 하고 태어나면서부터 고생을 쌓고 닥쳐오는 운명과
싸워서 겨우 중년이 될 무렵에서야, 제각기 남들과 견줄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거라네!
글 : 선생님.....!
똥 : 그것으로 좋은거야. 자네의 사고방식은 너무 엄격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글 : .......선생님
똥 : 나 역시 그러네. 오늘의 일류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지한 노력이 들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소설이
날개 돋치듯 팔렸고 올해의 문학상들을 나 혼자 독차지 하는게 아니냐는 소문마저 나돌고 있지.
글 : 「내 책이 그렇게 잘 팔리도록 가만 놔둘 술 없다!」고 고함을 치던 때의 선생님은 정말 멋져었는데.....
똥 : 인간은 변해. 조금씩 성장해 간다. 그때의 난 아직 원숙되지 못했던걸세. 지금은 좀 다르지. 감으로 말한
다면 떫었던 맛이 사라지고 마악 먹음직스러운 때......
또 다시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글 : 또 한번 선생님의 과거를 빼앗아 가겠어요. 똥 선생님께서도 유명해 지시더니 다른 사람들과 같군요. 슬
퍼요.
똥 : .....당신, 울고 계시는군요?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손수건을 꺼내서) 자, 눈물을 닦아요!
글 : (그 손수건으로 눈두덩이를 누르며) 똥 선생님. 과거가 사라지니 선생님의 얼굴은 정말 부드럽고 인자한
얼굴이 되셨어요. 선생님, 오늘밤은 저, 여기 좀 머물러도 괜찮을까요?
똥 : 그럼, 그럼, 얼마든지. 갈 곳이 없다면 언제까지라도 여기 있으라구. 사람은 곤란해 있을 때 서로가 돕는
거다. 라고 유치원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 이부자리도 내 깔아줄까?
권총을 겨냥한 악마가 벽장안에 들어가 서 있다.
똥 : 거 누구요?
악마 : 비켜! 난 글을 죽이려 왔다!
똥, 떠밀리면서, 그러나 글을 막아주려고 애를 쓴다.
똥 : 안돼! 그 누가 됐던지간에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건 용서할 수 없다! 그 어떠한 사정이 있다고 해도. 유
치원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더랬어.
악마 : 글! 자알 들어둬! 모습을 감추거나 하면 나 이 아저씨를 쏠테니 알아서 해!
글 : 선생님은 비키세요!
하고 글은 똥 앞으로 나온다.
똥 : 아니, 안돼! 도망쳐! 진짜로 자넬 쏘려 하고 있어!!
똥은 글 앞으로 몸을 덥친다. 그때 악마의 권총이 불을 뿜는다.
똥 : 앗.
똥, 신음을 하면서 쓰러진다.
똥 : 난 괜찮네. (글을 쳐다본다.)
글 : 저도 무사해요. (라고 오른손의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 사이로 잡은 총알을 보인다.)
악마 : 아니?!......
글 : 네가 악마라구?
악마 : 그, 그래.
글 : 악마치곤 어리석군. 난 빛 속도의 4분의 3의 스피드로 달릴 수 있지. 그건 1초에 22만 5천키로에 해당하
지.
똥 : (감격하여) 신칸센의 히카리호와 같군!
글 : 너의 피스톨 탄환 속도 일랑은 비교도 안돼! 난 내몸을 막아주신 선생님의 심장에 탄환이 박히기 0.00008
초 전에 이미 선생님 앞에 서 있었더랬지. 그리곤 0.00005초 후에는 탄환을 잡고 있었는걸!
악마 : 젠장, 귀신같은 놈! 괴물! 도깨비! 악마!
글 : 악마는 너 아니니?
악마 : 어쨋거나 제기헐...... 언젠가는 꼭 이 빚을 갚고야 말테다. 기억해 두고 있으라구!
악마, 사라진다. 글은 몸을 구부리며 똥을 끌어아는다.
글 : 선생님, 괜찮으세요?
똥 : ......으응.
글 : 내 생명. 아니,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내던지신 선생님. 선생님께서라면 이제 과거를
가지셔도 좋아요!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과거를 돌려 드리겠어요!
똥 : 야아, 이거 글이 아닌가. 그런데 이거 어떻게 된거야?
글 : 선생님께선 지금 막 저의 생명을 구해주셨어요!
똥 : 오호, 내가 말인가? 왜 그랬을까? 어째서 내가 자네의 생명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그렇군! 이
제야 알 것 같구먼!
글 : ......
똥 : 내가 자네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으네.
글 : 저를요?
8. 가짜 글
경찰장관 실. 쿠사키 산스케가 몸을 담요로 돌돌 말아싸고 의자위에서 가수면을 취하고 있다. 창문으로부터 젖
빛 아침 햇살이 비치고 있다. 산스케가 갑자기 부시시 잠에서 깨어나며 소리친다.
산스케 : 관방장관 각하! 저를 해고 시키지 마세요! 약속 기한까진 아직 20시간이나 남아 있는걸요!...... (정신
이 들어) 꿈이었나? .......심상찮은 꿈이야!
악마가 생기있게 들어온다.
악마 : 안녕하셨어요.
산스케 :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공갈쟁이 악마. 넌 총살이야!! (잽싸게 책상 위에서 권총을 집어든다. 악마에게
겨냥해서) ... 네 놈이 글 암살에 실패했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어. 게다가 더더욱 용서할 수 없는 일은 그 후
네놈이 52시간이나 행방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건 중대한 약속위반이라구.
악마 : 마아마아, 고정하세요.
산스케 : 시끄러워! 난 지난번 밤에 관방장관께 3일 안으로 꼭 글을 잡아서 바치겠다고 약속했다구. 그 기한이
오늘밤 11시 반. 그런데 네놈은......
악마 : 글쎄 좀 참으시구 제 말을 좀. 글은 잡힌거나 마찬가지에요!
산스케 : 뭐, 뭐라구?
악마 : (문밖을 향해 큰소리로 부른다.) 자아, 들어오시지요!
30세 정도의 사내가 두툼한 워고용지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들어온다. 사내는 야마타가 도우사쿠. 이틀밤을 꼬
박 새다왔기 때문에 좀 멍청해 있다.
악마 : 프리 주간지 기자, 도우사쿠 씨예요. 저 사람에게 곧 500만엔 짜리 수표 한 장 끊어주세요.
산스케 :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저 사낸 뭐야?
악마 : 저이에게는 「문학의 천재」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그가 대학생이었을 무렵, 소설 3편을 써서
출판사에 보냈답니다. 그랬더니 한 편은 「문학계 신인상」, 또 한 편은「대중상 신인상」, 또 한 편은「소설
최대 신인상」을 받았지요.
산스케 : (약간은 흥미를 느낀 듯이) 호오 그래!
악마 : 그런데 일은 그때부터입니다. 모든 상을 취소당하고 말았단 말입니다. 1년 후에.
산스케 : 왜, 어째서?
악마 : 어느 인기 없는 소설가가 말이죠, 「도오사쿠의 세 개의 소설은 300개 이상의 소설을 풀과 가위로 오리
고 붙여서 뜯어 붙인 도작이다」라고 하는 편지를 일본 문예가 협회에 보냈단 말입니다. 협회의 서기 국장은
당장에 조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는 투서대로였지요. 세 편 모두 한 줄도 도오사쿠씨가 창작해 낸 문장
이란 없었고, 세익스피어에서 토스토에프스키까지 무려300여 개에 이르는 작품을 너무도 교묘하게 잘라서 낱
낱이 분리한 뒤, 다시 꿰서 붙여만든 모자이크 작품이였습니다. 그리하여 저이는 문단에서 살져갔고 지금은 매
스컴 언저리에서 붙어먹는 신세가 됐죠.
산스케 : 그렇담 자업자득이 아닌가! 난 조금도 동정할 의향이 없다구. 500만 엔은커녕 500엔도 줄 생각이 없
단말이다.
악마 : (개의치 않고) 전 저이의 도작 재능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냈죠. 소설가 똥씨의 소설 「글」을 저이에
게 읽혀서 똥씨의 문체를 흉내내 「속. 글」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게하면 어떨까 하구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저이를 조사해본 결과, 의외의 사실을 알아냈지요. 저이의 세 편의 소설이 도작이라고 투서를 문예가 협회에
보낸 사람은 똥씨 였어요.
야마가타 도오사쿠는 분해서 신음소리를 낸다. 물론 똥을 원망하며 화내고 있는 것이다.
산스케 : 이거 흥미로운 얘기로군. 그래서....?
악마 : 곧장 그의 아파트로 찾아가서 「똥한테 복수하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돈도 벌고 싶지 않아요?」하고
제의 했더니, 그는 쾌히 응낙했지요. 그래서 이틀밤 철야로 써 내놓은 것이 (도오사쿠가 들고 있던 원고를 빼
앗아 산스케의 책상위에 올려놓으며).... 이것이 「속. 글」입니다. 새로운 「글」은 전의 글이 그랬듯이 원고에
서 빠져나온다. 그리곤 한 발 앞서 세상에 나온 전의 글들에게 「이봐, 사람님네들한테 그렇게까지 폐를 끼쳐
서야 되겠는가?!」하곤 처치해 버린다. 이것이 대강 줄거리입니다.
산스케 : 굉장해!
악마 : 그리고 또 한가지. 제가 글을 총으로 쏘려다 실패는 했지만 그 때에 똥과 글의 사이가 매우 좋다는 사
실을 알아낸 거예요. 마치 둘은 애인 사이 같았죠. 그래서......
산스케 : 됐다, 됐어. 똥군은 인질로 잡으면 글이 설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다 이 말이지?
악마 : 바로 그거에요. 오래된 「글」들의 움직임을 막아놓고 그곳을 새로운 글들에게 해결케 한다 이거예요!
산스케 : 과-연! 물샐틈 없는 양면 작전이다. (수표첩을 꺼내 금액을 적어 사인하고 도오사쿠에게 내민다.) 자
네의 수고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뜻으로 쬐끔 덤을 붙였다. 자, 501만엔.
도오사쿠 : (받으면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전 해냈어요! 그 똥 녀석의 문체는 물론 서체까지 똑같이 흉내
내서 이 소설을 썼습니다. 도작에 성공한 거에요!
악마 : 어때요. 이번의 제 작전이?
산스케 : 부라보!
이때 한 남자가 나타난다.
산스케 : 누, 누구냐?!
가짜글 : 처음 뵙겠습니다. 가짜 글입니다만......
산스케 : 오, 새글인가? (일어나 악수를 청하려 하다가는) ......하반신의 선이 신통칠 않군. 어쩐지 뒤뚱거리는
느낌이야.
가짜글 : 전 전신에 영양이 골고루 퍼져있지 않아요. 왜냐면 (도오사쿠를 가리키며) 여기 계신 주인 양반님께
서 그 뭐더라...... 왜, 그, 소설에 있어서도 살을 붙이는 것 있잖습니까? 그런 것이 하반신에 있어서는 좀 불충
분했지요. 이런 말씀을 드리기에는 좀 뭣한데, 본가의 글, 원조의 글, 오리지널 글을 쓰신 똥선생님은 과연 진
짜배기 소설가의 기백이 담겨 있지요. 네! 확실히 그 작문에는 발란스가 제대로 잡혀 있습죠. 해서 박력있는
발란스가 잡혀진 원조 글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 점에 비교하면 전 어디까지나 분가한 몸이라, 아
무래도.
산스케 : 원조라느니 분가라느니 잔소리가 많군! 모나카나 종로떡집의 본가 같은 걸 찾고 있을 때가 아냐! 내
말 잘 들어두게. 자네가 빠져나온 이 세계는 약육강식. 즉 실력만이 통하는 세계라네. 자넨 비록 지금은 가짜
이겠지만 진짜를 감당해내면 그때 자네가 진짜가 되는거다! 알겠나? 냉큼 일에 착수햇!
9. 글 대회
경기장. 무대의 삼면은 소설 「글」속에서 빠져나온 글들로 만원이 된 관객석. (물론,
이것은 무대의 배경 그림으로 대처한다.) 무대위에 있는 글들은 모두 젊은층이다. 「글
전원 투쟁」이라고 페인트로 휘갈겨 놓은 헬멧을 덜어 쓰고 더러운 수건들로 입을 가린
채, 손에는 몽둥이나 화염병을 들고 있다. 오른편 단상에서 글(인텔리 글)이 서서 외치고
있다.
글 : 내 형제들, 우리 동포 글이여! 마이 부라더스여! 메후레에르여! 형제들 가운데는
이미 알고 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들의 생부모이신 소설가 똥 선생님께서 오늘
아침 일찍, 쿠사키 산스케 경찰장관에게 체포되셨습니다.
장내, 동요가 인다.
글 : 비겁하게도 장관은 똥 선생님을 특수한 장치로 조작된 감옥안에 가두었습니다. 이
감옥은 우리들의 손으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젊은 글 가운데에서 한 사람, 119999호가 일어서서 외친다.
119999호 : 오리지널 글. 말씀 도중 실례가 됩니다만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저는
119999호 글이라고 합니다....
글 : 호오, 그렇담 자네는 최근에 증간된 소설 「글」에서 튀어나왔구먼.
119999호 : 네에. 제가 탈출해 나온 책의 순번이 119999번 째입니다. 오리지널 글! 싸
워보지도 않고 그냥 포기한다는 건 패배주의자나 할 일입니다.
119998호 : 옳다!
119997호 : 오리지널 글은 노인네가 됐느냐!
119996호 : 우리들은 단호히 싸우겠다!
119995호 : 똥 선생을 즉시 소환하라!
오리지널 글의 등 뒤에 비켜나 있던 중년 글들 중에 한 명이 단상으로 뛰어오른다. 그는
글 2호.
2호 : 젊은 형제들이여. 나는 초판 2천 권 가운데에 팔린 순위가 2번째이다. 다시말
해서 자네들의 대선배가 되는데 젊은 형제들이여. 과격파 학생의 흉내를 내어서는안
된다. 생각해 보라! 우리들은 요 10일 사이에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로부터 권위를 훔
쳐내어 일반대중의 갈채를 받고 있다. 우리들의 평판은 좋은 것이다. 그 평판을 소중
히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자네는 젊은 형제들의 충동적인 행동과 폭력은 우리들
의 평판을 헛되게 만든다. 그건 세상 사람들을 결국 적으로 모는 격이 되고 마는 것이
다.
찬성하는 자, 반대하는 자, 여기저기에서 의론이 분분히 인다. 그때 객석에서
뒤뚱거리며 무대로 올라온 중년사내가 있다. 이미 바로 예의 가짜 글.
가짜글 : 여러분! 조용히! 직접적 행동은 삼갑시다.
선동적이던 회장 안이 잠잠해진다.
가짜글 : 여러분. 이 세상은 그렇게 단번에 바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각기 소속한 지
역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어 가는 것이지요. 물론, 젊은 형제
들의 기분은 압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자중해야되지 않을까요. 경솔한 행동은 삼가
해야 합니다!
가짜글 : 여러분, 제가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오늘의 제1회 글대회 책임자인 오리지널
글에게 모든 걸 맡깁시다.
글 : 나에게 맡긴다니, 무얼?
가짜글 : 지금은 정책이니, 작전이니, 전략이니 하는 정치주의는 일체 버리고 인간주의
로 나가야 할 때입니다. 똥 선생을 그토록 도와주고 싶으시다면 당신이 대신 감옥에
들어가시면 어떨른지. 똥 선생은 우리의 생친, 소중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똥선생님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이만한 조직을 희생으로 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요?
똥은 가짜글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한편 젊은 글들은 가짜글을 향해 돌을
던지거나 토마토를 던진다.
젊은 글들 : -그만둬! - 거래는 하지 마라! - 너야말로 정치주의가 아니고 뭐냐! - 똥
선생의 일은 곧 우리들의 일이다!
돌멩이 하나가 가짜글의 얼굴에 던져진다.
가짜글 : 뭐, 뭣들 하는 짓이야! 기동대를 부를테다. 앗!
가짜글은 허공을 휘저으며 크게 신음. 만장이 그제서야 조용해진다. 이때 가짜글의
등에 단도 하나가 꽂히고 글, 쓰러진다.
글 : 우리 형제들이여. 이 놈을 죽인 것은 나 오리지널 글입니다. 왜 이 녀석을 죽였느
냐! 그건 이 놈이 가짜이기 때문이지요. 보세요! 이 놈의 이빨에는 충치가 하나도 없
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충치가 각자 3군데나 있습니다. 똥 선생이 그렇게 쓰셨기 때문이
지요. 틀림없이 이 놈은 쿠사키 산스케가 다른 소설가를 시켜서 쓰게한 도작소설 「글」
에서 빠져나온 가짜글일 겁니다. 자, 나의 형제들이여. 똥 선생을 구할 방법은 아무래
도 단 한 가지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들 글 전원이 전국으로 흩어져
경찰서나 파출소에 자수를 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젊은 글들 동요로 술렁거린다.
글 : 잘 들으십시오! 우리들은 아무 의미도 없이 체포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뿌리
부터 바꾸기 위해서 붙잡히러 가는 것입니다. 그 방벅은..... 지금은 말할 순 없지만 나
의 형제들이여, 저를 믿어주십시오! 지금 곧 자수해 주십시오!
이 대사 중에 조명이 점차로 어두어지기 시작, 글이 말을 마쳤을 때에는 완전히
암전상태로.
10. 자수.
감옥. 똥이 나무상자 위에 턱을 괴고 있다.
똥 : ......오늘 아침 일찍 글이 내 집앨 찾아왔다. 그리곤 「선생님, 오늘은 함께 꽃구경
안가시겠수?」?!어쩐지 평소의 태도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그 녀석이 가짜
글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는데, 그 곳은 꽃이 있는
화단이 아니라, 보시다시피 이 감옥 안. 아 - 어리석은 이 똥 선생! 허지만 뭐 - 상관
없다. 쿠시키 산스케 장관에게 요구했던 이 사과궤짝과 종이, 연필만 있으면 일은 할
수 있지. 어디에서 살든 사는 곳 그 곳이 고향 아닌가!
멀리서 누군가가 뭐라고 외치고 있다.
감옥 밖에서
- 글이다.
- 글이 이곳으로 온다!
- 한눈 팔지 마라!
라고 외침소리.
똥 : 뭐, 뭐라구?!
뒤를 돌아보니 틀림없이 철장 저쪽으로 글이 서 있고 권총을 겨눈 경찰들이 글의
주면을 넓게 둘러 싸고 있다.
똥 : 호오! 글!
글 : 선생님을 이곳에서 곧 내보내 드리겠어요.
똥 : 글! 안으로 들어와서는 안돼!
글 : 전 잡히러 왔어요. 제가 감옥에 들어가는 대신 선생님을....
똥 : 괜찮네, 글. 날 구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자네는 내 작품이다. 알았나? 작품을 지
키기 위해서라면 난 죽어도 후회될 것이 없다!! 그리고 좀 슬픈 일이긴 하지만 자네는
지금 나 혼자만의 글이 아니라구. 소설 「글」을 읽고 주인공인 자네를 아끼는 모든 사
람들의 글이네.
글 : 잘 알고 있습니다.
똥 : 그렇담.....
글 : 그러나 똥 선생님을 감옥에 가둔 채로 놓아둔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
다.
똥 : 그러나 글.....
글 : 선생님,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하게 내버려 두세요.
똥 : 글.......
글과 똥, 한참동안 서로를 쳐다본다. 그때, 쿠사키 산스케, 경관대의 등뒤에서 큰소리로,
산스케 : 오오, 이제사 나타나셨구만. 기다리고 있었어! 이것으로 내 지위는 안전하다.
전국각지의 파출소니 경찰서에서도 자네의 동지들이 잇달아 자수해 오고 있다네. 나의
압도적인 승리.....
글이 산스케 쪽으로 양손목을 모아 내민다. 그러나 산스케는 대만족.
산스케 : 과연 큰도둑답군! 아주 산뜻한 처신이다. 그러나 글. 자네를 감옥에 집어넣기
전에 한 가지만 다짐해 두지. 잘 들어 둬. 도망가거나 해서는 헛일이야. 그렇게 되면
또다시 똥 선생을 끌어넣게 되어 있으니 말이네.
글은 똥에게 시선을 돌린다. 글은 무슨 일에서인지 싱글싱글 웃고 있다.
11. 글재판.
검사(소리) :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을 훔친 죄로 징역 5년!
템즈 강의 물을 훔친 죄로 징역 1년!
얼룩말의 얼룩을 훔친 죄로 징역 1년!
벽을 뚫고 지나간 죄로 징역 5년.....
고기압과 저기압을 훔친 죄로 징역 30분!
원고 속에서 튀어나온 죄로 징역 10년!
스모씨름꾼들로부터 삽바를 훔쳐 사람들 앞에서 할 부분을 모두 드러나게
한 죄로 징역 5년 6개월!
.. 도둑이 훔친 죄로 징역 2년!
달걀 노른자를 훔친죄로 징역 1년!
악마가 쏜 권총알을 훔친 죄로 1개월!
그 밖에 고양이 수염을 훔친 죄로 1개월!
개나리 훔쳐서 반일!
보따리 훔쳐서 3일!
소쿠리 훔쳐서 5일!
항아리 훔쳐서 10일!
돗자리 훔쳐서 20일!
재판장 ; 본 법정은 글을 3년과 5년을 더해 8년, 거기에다 1년하고도 6개월 하고도 5년과 3시간과 5년과 1년
과 10년과... 에- 글을 317년과 10개월 10일의 징역을 선고합니다!
폐정!
12. 형무소로 가자.
글 등장하여 두리번 거린다.
여직원 : 어서 오세요.
세련된 제복을 입은 건강에 넘쳐 있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글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여직원 : (일사천리로 그러나 상냥하게)오늘, 쇼오난 형무소까지 와 주신 것을 환영합
니다. 견학오신 분은 로비 안쪽에 있는 접수계로 와 주십시요.그리고 입소를 희망하시
는 분은, 일단 밖으로 나가셨다가 살인미수, 강도, 사기, 횡령, 스리, 도둑질 등 해당하
는 범죄를 저지르신 후에 경찰관의 인솔하에 다시 들어와 주십시요.
똥 : 이곳 형무소 맞지요?....
여직원: 여기는 틀림없이 형무소랍니다. 수용인원은 약 2천 명. 오리지널 글을 비롯
해, 소설「글」속에서 빠져나온 글 2호에서부터 1893호까지가 이곳에서 자신들이 지은
죄를 보상하려고 갇혀 있습니다.
똥 : 난 소설가 똥이라고 합니다. 그 오리지널 글을 면회하러왔는데요.
여직원 : 네에,잘알겠습니다.「오리지널 글」님께 면담을 희망하시는「똥」님이시라구
요?(하며 손님의 주문을 받는 웨이트레스처럼 전표같은 것을 꺼내서 무엇인가를 날렵
하게 적고나더)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직원 나간다. 똥, 줄곧 탄복하면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똥 : 여기가 형무소라니 믿어지지 않아.최신식 테레비에 오디오, 헬스기구까지 없는게
없군.마치 일류 호텔에 와 있는 기분이야. 게다가 저렇게 쭉 빠진 여자가 형무소의 여
직원이라니!
로비 안쪽에서 쿠사키 산스케가 급한 걸음으로 나타난다.
산스케 : 여어 똥!
똥 : (깜짝 놀라 일어서서 뒤돌아보더니) 아니, 자넨 쿠사키 산스케 경찰장관이 아닌
가!(하며 다시금 놀란다.)
산스케 : 자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네. 이 형무소를 안내해 줄까 해서 먼저 와 있
었다구.
똥 : 기다리고 있었다구? 내가 여기에 올 줄을 어떻게 알았나?
산스케 : 자네에겐 항상 미행자가 붙어 있다는 걸 잊었나?
똥 : 아참,그랬던가? 그런데 이 형무소는 정말로 대단하구만.
산스케 : 이 형무소는 내가 수상과 후샌장관에게 진언해서 내 감독하에 세워진 것일세.
그러니까 나의 친 자식과 다름없지. 그렇게 칭찬해 주시다니 더할 나위 없군.
똥 : 그것보다도 여보게. 전국의 죄인들이 모두 여기로 들어오고 싶어하면 곤란할텐데,
안 그런가?
산스케 :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네.
똥 : 아니, 어째서?
산스케 : 전국에는 이것과 똑같은 형무소가 100군데나 있지. 예를 들면 훗카이도의 프
리즌 오이라세, 쟈오 온천지의 프리즌 퍼시픽, 도쿄의 39층 빌딩에 있는 프리즌 스카이
라운지등등.아!.그리고 아타미에는 프리즌 시어터가 있지.
똥 : 프리즌 시어티?
산스케 : 죄수들에게 저녁 식사를 이용하여 쇼를 보여 주고 있다네.
똥 : 모를 일이로군.
산스케 : 무얼?
똥 : 호사스런 일류호텔을 뺨치는 형무소들을 그렇게 닥치는 대로 만들었단 말인가?
산스케 : (고뇌에 찬, 매우 음울한 심정이 되어 그러나 한 마디 한 마디를 천천히, 그리
고 분명하게.) 그 말은 당연한 말일세!...... 12만 명의 글을 될 수 있는대로 장수시키기
위해서이지.
똥 : 호오, 그렇게 글을 증오하던 국장이 글의 장수를 바라고 있다구?
산스케 : (더욱 고뇌에 차며) 증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장수를 시키는 거지. 글은 우리
들을 마음껏 괴롭혀 왔다. 날 출세의 계단에서 위협해 굴러떨어뜨리려고 했다. 그랬던
만큼 형무소에서 놈들에게 고역을 치루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될 수 있는대로 아주
오래토록...... 가능하다면 317년간, 흠씬 말이지. 형무소 안에서 고통을 겪게 하지 않음
안된다구!
똥 : 과-연! 그래서 글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이렇게 훌륭한 장소에다
이렇게 격조높은 형무소를 세웠단 말이로군.
산스케 : 바로 그거네. 글에게는 의사가 3사람, 간호원이 10명 전속으로 딸려 있지.
똥 : 병에 걸려 죽거나 하면 복수고 뭐고 할 수 없게 된다. 이거로군.
산스케 : 게다가 실내풀장과 실내 트랙, 냉난방, 환기장치, 모든 설비가 완벽하지.
똥 : 자네에겐 손 들었네!
산스케 : 글을 되도록 형무소 안에 오랫동안 살려두어 새장생활의 고충과 쓴 맛을 실
컷 맛보게 하겠네. 이것이 그에 대한 우리들의, 그리고 구가의 복수다.
이때, 글이 철장 저쪽에 나타난다.
글 : ......똥 선생님.
똥 : 오오, 글. (철장으로 다가가서) 건강해 보이는군.
글 : 덕분에요. 만나 뵙고 싶었어요. 선생님.
똥 : 나도 마찬가지였다네.
하고 둘은 한참동안 서로를 마주 본다.
산스케 : 모처럼 말인텐데 훼방을 하고 있는 것 같군. 글. 지낼만은 한가? 후후후후, 무
서울 정도로 쾌적할거야. 아뭏든 꼭 장수를 해야 하네. 그리고 또 한가지, 잘 들어둬 글.
우린 똥 선생을 인질로 붙잡고 있다. 그러니 수상한 마음을 먹어선 안 돼.
가려고 하는 산스케의 등에 대고
글 : 개연실 앞 복도를 왕래하는 구둣발 소리가 시끄러운 것이 지금으로서는 결점이다.
산스케 : 구둣소리가 시끄럽다구?
글 : 복도의 리노륨이 좋지 않아.
산스케 : 흥! 가소롭게 굴긴. 그런 정도 쯤이야 참아야지. (하고 다시 나가려고 한다.)
글 : 구둣소리가 너무 신경에 걸려 오늘 밤 같은 땐 정말 죽고 싶을 정도였다구요.
산스케 : 죽으면 곤란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야 만다! 복수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인데!
글 : 목매달아 둑어볼까 하구 한 두 차례 생각해 봤어요. 혀를 깨물을까하고 생각한 것
은 5차례......
산스케 : (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간수장!! 잠깐 와 봐! 여긴 간수장도 없냐!
아주 먼 곳에서부터 메아리져 오는 목소리.
간수장 : 하-이! (하며 등장. 군대식 걸음걸이로 산스케의 코앞까지 다가오더니) 각하,
무슨 일이십니까?
산스케 : 바보자식! (뺨을 갈긴다.) 오늘 밤부터 이 형무소, 아니 전국의 형무소 안에서
구둣발 소리를 내며 걸어 다니는 것을 금한다!! 그렇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다간 글이
자살하고 만단말이야! 알았나? (하며 다시 한번 때린다.)
간수장 : ......차라리 절 해고시켜 주십시오!
산스케 : 뭐라구?
간수장 : 전 방금 두 차례 얻어 맞는 순간, 결심을 했습니다. 절 해고시켜 주십시오. 그
리고 이 형무소에서 죄인으로서 절 집어넣어 주십시요!
산스케 : 자네, 어떻게 된 거 아냐?
간수장 : 지극히 정상입니다. 이 정상적인 머리로 생각해 본 결과, 이 형무소의 죄인이
되는 편이 아무래도 나을 것 같아. 그렇게 결심했습니다.
산스케:죄인도 아닌 사람을 형무소에 집어 넣으라구?네 녜석의 머린 정상이기는커녕 상해도 한참 상해있다!
간수장:그럼 저도 글처럼 훔치겠습니다.첫 개시로 각하의 지위를 나타내는 견장을 훔치겠습니다.
간수장은 산스케의 금으로 덮여진 견장을 비툴어 뜯어낸다.
산스케 : 뭐, 뭘하는 거야, 이 고얀놈 같으니라구!!
간수장 : 다음은 그 멋진 제모를 훔치도록 하겠습니다.
산스케 : 뭐 뭐야, 그 요상한 눈초린? 멈춰! 멈추지 않으면 형무소에 처넣을테다!
간수장 : 감사합니다! 그러나 하는 김에 완전히 하겠습니다. 그 모자.....
산스케 : 그만 둬! 놓지 못해?
산스케는 후퇴하여 도망간다. 간수장은 그를 쫓아가며 사라진다.
똥 : 정말이지, 형무소 직원으로 혹사당하고 그 땀의 댓가로 참새 눈물 만큼의 월급을 받는 것보다는 죄인이
되어서 형무소에 들어가는 편이 풍족하고 즐거운 일이란 말이지? 저 간수장의 두뇌는 틀림없이 정상이군. 머
리가 좋아.
글 : 머리가 좋은 건 저 간수장만이 아닌 것 같네요. 저의 동지들도 이 일주일 사이에 전원 호화롭고 쾌적한
형무소르 이송됐다고 하더군요. 케다가 전국의 시민들이 도둑질을 시작했데요.
똥 : 뭐야?
똥은 철장 넘어서 텔레비화면을 가르킨다.(객석에서 화면은 보이지 않는다.)
기자 : (소리)네! 현재 이곳 시부야에는 대단히 혼잡해 있습니다. 가까운 백화점과 상점에서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물건을 훔치고 있으며 자수하기 위해 파출소 앞에 줄을 서있는 사람들 수가 이미 5천명을 넘고 있습니
다. 지금 거리에는 이미 도둑질을 끝낸 사람들, 지금 훔치고 있는 중인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훔칠까
하고 궁리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 혼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산스케와 형무소 직원들, 쫓고 쫓기면서 사라진다.
기자 : (소리)할머니, 할머니께선 무얼 훔치셨나요?
노파 : (소리)...... 아직 아무것도.
기자 : (소리) 훌륭하십니다. 이렇게 양심있는 서민들도 아직은 건재한 듯 합니다. 할머니, 이 소동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노파 : (소리) 아, 고마운 일이다마다. 이렇게 기쁜 일이 어디 있겠나 글쎄!
기자 : (소리) 네엣?!
노파 : (소리) 아, 글쎄 뭔가 훔치면 형무소엘 들어갈 수 있대믄?! 형무소에만 들어갈 수 있다믄 만사 오케이
지! 이게 여생일랑은 걱정 안해도 된다네. 그래, 난 무얼 훔칠까나~ 으응, 그렇지, 고 마이크 이리 내놔!
기자 : (소리) 하, 할머니!!
노파 : (소리) 내 놓으라면 얼른 내놓지 못해!
산스케와 형무소 직원들이 다시 나와서 쫓고 쫓기고 있다. 오른쪽 위편에서 글과 똥과 다음과 같은 대와.
똥 : 고달픈 세상에서 고생하기보다는 호텔보다 더 쾌적한 형무소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누려 보려는거군.
글 : 그렇습니다 선생님. 사실은 그것이야말로 우리들이 목적했던 것이였답니다. 그리고 그건 선생님께서
도......!
똥 : 으-음. 그럴지도 몰라. 어쨋거나 글. 그렇담 나 역시 이 철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글 : ....... 선생님!
똥 : 기다려다오!
또다시 쫓고쫓기는 무리가 난입해 들어온다. 똥도 그들 사이로 섞인다. 글, 진정으로 흐뭇해 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똥과 무리들은 드디어 산스케를 붙잡는다. 그리고 성대한게 노래를 부르며 산스케로부터 여러
가지 것을 볏겨 빼앗아간다.
- 암전 -
13. 분열.
수많은 사람들의 잡담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무대 그 위에는 온통 일본에서 모여든 글, 단국에서 온 글, 토
련에서 달여온 글 등 120개국의 글들로 메꾸어져 있다. (또한 글들은 각기 출신국 별로 모여 있다.)
글 : 조용히 해 주세요. 세계 120개국에서 모여주신 글 여러분. 자아, 조용히들!
잡담소리가 멈춘다.
글 : 지금부터 「제 1회 세계글대회」를 개최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글 : 오늘, 이곳에는 1862만 5921명의 글이 모여 있습니다. 오늘의 이 대회가 저희들 세계 각국의 글들이 앞으
로 어떠한 활동을 전개해 가면 좋을른지에 대해 우리들의 기본 활동방침을 정하는 실로 중대한, 그리고 뜻깊
은 모임이라는 것을 제가 새삼스레 언급하지 않아도 된 줄로 믿는 바입니다.
글 : 일본은 지금 커다란 변혁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정오까지의 숫자입니다. 만요 1주일 사이에 형
무소에 들어가기를 지원해서 도둑질을 한 사람이 160만 5천 30명에 이르렀습니다. 똥 선생님게서도 지금 형무
소에 계십니다. 일주일전 똥 선생님은 다른사람들과 함께 산스케의 바지를 벗겨내셨기 때문이죠. 선생이 인질
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 글들도 이렇게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일본의 국민들은 「법의
힘을 거꾸로 이용해서 보다 편안한 생활을 누리겠다.」고 하는 방법론은 지금자신들이 손소 실천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형무소」라는 지금가지 상식은 「아니, 그런 것이 아니지는 않을까? 오히
려 형무소 안이 바깥 세 살보다 더 편한 세상을 할 수 있는 것을 아닐까?」라고 세상이 180도로 뒤집혀 버렸
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멋진 발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박수)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 사
이에서도 이런 발상이 퍼지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저희들은 소위 그 산파......
이때 토련의 글 1호가 일어선다.
토련글 1호 : 당치도 않은!
글 : 무슨 말씀이신지.....?
토련글 1호 : 나는 토련에서 온 글 1호다. 오리지널 글은 「국가」나 「법」을 왜그리 적대시하고 있는 건가.
시각이 한 쪽으로 치우쳤다. 그건 형편없는 편견이라 생각한다.
장내에 소요가 있다.
토련글 1호 : 우리 조국의 주원은 프로레타리아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프로레타리아 국가. 정치제도로는 인
민 민주주의 국가. 경제, 사회체제로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한 마디로 얘길해서 프로레타리아 사회주의 인민국
가이다. 다시말해 세계에서 제일 진보된 국가인 셈이데 그런 에서 태어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구.
글 : 어떤 나라에든지 간에 그곳엔 법률이라는 것이 필요하지요.
토련글 1호 : 지금 현재는 거의 대부분으 l나라가 법치국가인 것이다. 거런건 당연한 일 아닌가!
글 : 그러나 불행히도 이 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단순한 문장임에, 즉 말에 불과해요. 문장이나 말이라는 법
은 눈 앞에 굴러다니는 국어가전과 다를 바 없는 것이며, 국어사전이 도둑을 체포할 힘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로 법만으로는 도둑 한놈 잡을 수 없는 거지요.
토련글 1호 : 그래서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글 : 바로 그렇습니다. 그 법률에겐 보조자가 필요합니다. 조수가 그리고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실은 힘이란
수상쩍은 놈이라서 조수였던 것이 법을 조수로 만들어 버린다구요. 그런 다음 법을 자기 부하로까지 만들어
만들어 버리는데 어느새인가 그의 힘은 무적의 사나이가 되지요. 이렇게 해서 법과 힘을 휘둘러 지배하는 자
와 또 그 지배를 당하는 자가 생겨납니다. 바꿔말하면 어떤 훌륭한 국가라고 해도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생겨
난다 이거지요.
남도코니카 공화국의 글 1호가 일어서서 글에게 다가온다.
남도코니카 공화국 1호 : 난 남도코니카 공화국의 글 1호인데 이봐, 오리지널 글. 내 눈엔 당신의 정체가 대충
보이기 시작했다구. 자네는 모든 국가를 부정하고 있다. 자넨 무정부주의자렷다?
「아나키스트는 꺼져라!」「아나카즘 같은 건 철없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정치는 학급회의가 아니다.」라
고 외치는 자들은 단국, 토련, 남도코니카 공화국 등의 글들. 한편, 이에 대해서 「아나키즘이 뭐가 나쁘냐!」
「게다가 오리지널 글은 아직 아나키스트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오리지널 글의 이야기를 들어라」하고 응
수하는 글들도 있다.
글 : 내분은 그만둡시다! 적에게만 유리할 뿐이라구요. 우리들의 생친은 소설가인 똥 선생님인 것입니다. 그러
니까 우리들은 똥 선생의 생각 그대로 행동만 하면 되는 겁니다.(기모노 허리춤에 끼워 두었던 똥 저서「글」
을 거내서 페이지를 펼친다.) 일본어판 소설 「글」의196페이지에 선생께서 분명히 이렇게 써 놓으셨습니다.
(하고 읽는다.)「훔칩시다. 훔쳐요. 권위, 상식, 금은, 다이야, 모두들 사이 좋게 훔칩시다요. 글이 한 것처럼 훔
칩시다. 미운 놈에게서 미운 곳을, 나쁜 놈에게선 나쁜 곳을, 귀품있는 분에게선 귀품을, 군대로부터는 그 무기
를, 모든 권위자로부터 그 권위를 훔치자. 그렇게 하면 모든 인간은 모두 순수한 인간이 될 것이다. 순수하고
훌륭한 인간으로」다시말해 선생께서는 어떤 나라라 할 지라도 국민들 맘대로 쥐흔드는 행위에 대하여 항상
「능.농.농.」 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상태로 자신들을 가꿔가아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둑질을 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됐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똥 선생님의 생각에 충실하지 않
으면.... 어찌 됐든 똥선생님이 우리들의 생친이니까 말이지요. 제가 「국가」나「법」에 대해서 늘 양미간에
주름을 잡고 얘기하는 건 다시 말해 똥 선생님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박수. 단국의 글들. 토련의 글들. 그리고 남도코니카 공화국의 글들은 각자, 그 그나라의 말로 번역된 소설
「글」을 보고 있다가
토련글 1호 : 잠깐만! 토련엎나의 「글」에는 「.....권위, 상식, 금은, 다이야........」같은 건 적혀있지 않는데?
글 : 뭐라구요?
토련글 1호 : 토련어 판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훔칩시다. 훔칩시다요. 사과, 오렌지, 완두콩, 모두들 사이좋게
훔칩시다. 글이 한 거처럼 훔칩시다.」
글 : 어이가 없군. 그렇담 글은 단순한 광리 도둑, 야채도둑이잖아.
토련글 1호 : 시끄러워! 여하튼 그렇게 되어있다구.
단국글 1호 : 단국어 판에는 이렇다,「도둑을 맞았다면, 도둑을 맞았다면, 권위, 상식, 금은, 다이야가 도둑을
맞았다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나중에 곡 TCIA가 다시 찾아 줄거에요.」그리고 단국어 판을 보면 글은
끝에가서 개심을 해서 TCIA에 취직하는 걸로 되어있다.
토련글 1호 : 앗. 단국의 그 부분은 우리들 토련어 판과 똑같네. 토련어판에도 글은 끝에가서 그러니까 국가
비밀 경찰에 많은 보수를 받고 들어가게 된다.
단국글 1호 : 그거 축하합니다.
토련글 1호 : 피차가 마찬가지구만요!
단국과 토련의 글들, 서로 악수, 그 가운데는 서로 포옹을 하는 무리도 있다.
남도코니카글 1호 : 저-어. 남도코니카어 판에는 방금 지적한 곳 말인데 「XXXX 합시다요, XXXX합시다요,
XXXX XXXX XXXX XXXX 모두 사이좋게 XXXX합시다. 글이 한 것처럼 XXXX합시다요」라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X표의 연속이다.
일본의 젊은 글 119999호가 야유를 한다.
119999호 : 남도코니카의 글은 꽤나 정력가인가봐. 분명 돈황같은 사람ㄷ르만 모여 있는 것임에 틀림없어.
남도코니카글 1호 : 그게 무슨 뜻이야?
119999호 : 글쎄 X표시가 4개 연속해서 있는 것의 의미는 보X저X를 뜻하고 있는게 틀림없다고.
웃는 소리.
단국글 1호 : 남도코니카어 판에 X마크가 많은 것은 필시 인쇄소의 활자가 모자랐었기 때문이다. 자네 나라는
아직 발전도상국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우리나라처럼 국가와 국민이 하나가 되어 고도성장에 전력을 다
한다면 머지 않아서 카브리해의 대국이 될 수 있다마다!
토련글 1호 : 그렇구말구. 절대로 한탄할 건 없어.....!
남도코니카글 1호 : (위안이 되어) 고맙습니다.
토련글 1호 : 그래서 그 남도코니카 판의 결말은 어떻게 끝났었지?
남도코니카글 1호 : 자내들과 마찬가지로, 비밀 경찰이 되었어.
토련. 단국들 1호 : 훌륭해!
3사람의 글 1호들 서로 악수를 청한다. 욕지껄이 터져 나온다.
글 : 자네들은 틀렸어.
3인의 글 1호 : 뭐라구?
글 : 아니야. 책임은 번역자한테 있다. 자네들 나라가 각기 주자하는 무슨 무슨 주의들과 기름처럼 아주 판아
하게 틀린 것은 사실이지만 일종의 전제국가인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잇다. 정부에 대해 불리한 출판
물은 거의 발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번역자는 펜을 억제한다. 사실 번역자만을 문책하는 일은 가혹한 것이다.
어떤 용기있는 번역자라도 검열에는 당해낼 자가 없을테니.... 그래도 끝까지 펜을 무기로 해서 싸워가야 마땅
한 일! 투지가 없다 투지가!
남도코니카글 1호 : 시끄러!
단국글 1호 : 입닥치지 못해?
토련글 1호 : 입 닥쳐라!
글 : 아니, 못닥쳐요. 어쨋건 우리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똥 선생님으로부터 태어났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똥
선생님의 생각 밖에서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3인의 글 1호 : 그만하라면 그만해!
남도코니카글 1호 : 똥 선생님의 낳아준 부모라면 번역가는 우리를 기럴준 부모이다.
단국글 1호 : 낳는 고통이겠지만 이 험난한 시대에 기르는 고생도 못지 않지!
토련글 1호 : 낳아준 부모를 버릴지라도 우리들은 길러준 부모를 따르겠다.
119999호 : 배반자
119998호 : 분파행동은 그쳐라!
119997호 : 원전(原典)으로 돌아가라
119996호 : 자본론...이 아닌 소설 「글」을 원전을 제각기의 나라, 그 나라의 정세에 맞춰 읽는 것이야말로......
119999호 : XXXX라고 하는 X마크 투성이의 텍스트 따위를 어찌 읽을 수가 있단 말이냐!
일본의 젊은 글들 : 그렇다!
남도코니카글 1호 :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군.
한고 119999호의 멱살잡고 흔들다가는 탁 놓는다. 119999호, 쓰러 질 듯 하면서도 간신히 다시 일어나 남도코
니카 글 1호를 흘깃 노려본다.
119999호 : 해 볼래?
남도코니카글 1호 : 그래. 널 죽여주지. 이래봐두 난 불가능이란 것이 없는 4차원 인간이라고 하질 한던가! 죽
인다고 하면 꼭 죽이고야 말지.(하고 나이프를 꺼낸다.)
119999호 : 얼마든지 방어를 해 보여주겠다.
여기저기서 수없는 서로의 반목. 지금 고비사막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수한 살기뿐이다. 하늘은 어두컴컴 구
름이 끼고 천둥소리 우르릉.
글 : (절규) 여러분, 냉정을 되찾읍시다! 우리들 글이 살생하면 그거야말로 눈리적 모순아닙니까?
단국의 글 1허와 토련글 1호가 슬슬 글에게로 다가온다.
단국글 1호 : 홍, 논리적 모순이라구?
글 : .....죽이려 생각하는 자는 불가능이 없는 4차원 인간. 죽지 않겠다고 하는 자 역시 불가능이 없는 4차원의
인간, 글. 이 들이서 서로 대립을 하면 최후에는 죽일 수 있는대도 죽지않는, 또는 죽지 않는데도 죽일 수 있
다는 모순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가위에 눌리는 듯 하게 빳빳히 굳어져 버리는데.......
단국글 1호 : 후후후후. 그럼 두 사람의 글이 한 사람의 글을 죽이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지?
글 :..........?
토련글 1호 : 그건 내가 가르쳐 주지. 1대1이라면 그러한 모순이 생기지만 2대1때는 공격하는 쪽의 둘 중에 어
느 한사람이 굳어져 버려도 다른 사람은 무사하다. 그러니까, 나 아니면 단국의, 글 1호 중 누군가가 남기 마
련! 그 한사람은 만능의 4차원 인간, 그 정도면 전 세계를 그가 지지하는 나라 아래, 복종시킬 수가 있다.
글 : 그렇담, 어떻게 해서라도 날.......?
토련.단국글 1호 : 죽이조야 말겠다.
글 : 어지만 당신네 중, 한 명은 굳어져 벌릴 걸!
글은 상대를 서로 노려다 보고 있는 119999호와 남도코니카의 글 1호를 가리킨다.
글 : 벌써 굳기 시작하네!
아니나 다를까. 119999호와 남도코니카의 글 1호는 금속제 동상이 되어 버리고 만다. 단국의 글 1호와 토련의
글1호. 그제서야 움찔해 지더니 조심조심 가까이 다가가서 만져보거나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겨본다. 글은 이러
는 사이에 자취를 감춘다.l
단국글 1호 :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로군 그래.
토련글 1호 : 으-응.(글이 서 있던 자리로 눈을 e로이면서 앙천) 오리지널 글이 없어졌다!
단국글 1호 : 도망쳤군. 어디 두고보자.....
토련글 1호 : 음.
하고 둘도 사라진다. 그러자 어디선가 깔깔거리는 악마의 웃음소리.
14. 또다시 논리를, 상식을.
경찰장관실
산스케 : 푸하하! 그러니까 그 오리지널 글이란 놈이 동료 글들에게 쫓기고 있다?
악마 : 네. 나머지 글들을 한결같이 서로 싸우며 노려보다가 거의가 동상이 돼 버리고 있지 뭐예요. 이것이 그
동상인데 샘플로 하나 가지고 왔어요.
산스케 :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악마 : 걱정은 잡아 매세요. 하늘이 우리 편이 되어준다면 오리지널 글은 이 동상과 똑같이 될거라구요!!
하며 동상을 발로 걷어찬다.
산스케 : 호오!
악마 : 만약에 단국 아니면 토련의 글이 오리지널글과 마찬가지로 동상이 되어버린다 해도 남은 한 놈은 사상
적으로는 우리들과 같죠! 분명, 유익한 동료가 되어 줄 것이라고 믿어요.
산스케 :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린다) 왓핫핫. 좋아. 좋아. 완벽해! 자네 정말 수고가 많았어. 그래, 앞으
로 자네에게 가볍게 혼을 팔아넘길 자들을 몇천 명 아니, 몇 만 몇십만 몇 백만명이라도 가르쳐주지.
악마 : 저, 정말?
산스케 : 머지않아 국민 총등판 번호 제도를 실시해서 혼을 팔 듯한 번호를 빨간 연필로 체크해 놓겠어.
악마 : 일이 훨씬 쉬워지겠네요. 권유하기가 한결 쉬워지지요. 아아! 전 세계 제일의 악마 세일즈 우먼이 될지
도.......!
산스케 : 그래그래. 지금은 그 어느 것이라도 될 수 있다구. 우리 두 사람은 말이야!
하고 산스케는 악마에게 손짓을 한다.
산스케 : 이리 오련. 귀여운 악마양. 난 자네가 웬지 타인처럼 생각되질 않아.
악마 : 저두 그래요.
산스케, 악마 : 꼬옥!
하고 껴안는다. 그곳에 비서가 들어와서 깜짝 놀란다. 비서, 질투에 불타오르는데
산스케 : 오오. 마침 잘 들어왔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메모해 주게. 그리고 당장 각 담당부에 전할 것!
비서, 마지못해하며 받아쓸 준비를 한다.
산스케 : 첫째, 소설「글」의 원고와 아사히 서점의 인쇄소에 있는 원판을 몰수해서 소각해 버리리 것! 소설
「글」을 두 번 다시 인쇄하지 못하도록 하는 거다!
악마 : 두번째, 세계 120국에서 번역 발행되고 있는 각국판 「글」을 일본어 판과 비교 검토할 것!
비서가 시큰둥해 있으려니, 악마가 그녀를 걷어 찬다.
악마 : 어서써!
산스케 : 그래, 빨리 쓰질 못해!
비서 : (왕 울음을 터뜨린다) 너무해요 너무해! 이건 정말 너무해요!
장관쪽으로 가서
비서 : 어쩜 제가 있는데.......
악마, 비서의 등에 나이프를 꽂는다. 비서, 맥없이 마루마닥 위로 쭈욱 뻗는다.
악마 : 여자 인간들은 어째 공과 사를 혼동해 버리는 걸까? 일하는 시간에 사적인 것을 들추는 건 직업 여성
의 수치야.
산스케 : 하, 하지만 넌.......
악마 :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실은 그녀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했으면서. 사체 처리는 저한테 맡겨 주시라
구요. 그런데 국장 나리, 당신 부하 중에 위험 인물은 더 없나요?
산스케 : 있긴 있지. (악마의 귀에다 귓속말) 속닥속닥...... 라는 이름의 남잔데 경찰관에도 노동조합이 필요하
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친구다.
악마 : 그렇담, 그 녀석의 사물함에 이 여자의 사체를 집어넣어 두겠어요. 그가 국장 비서와 눈이 맞은 것 까
진 좋았지만 방해거리가 되자 그녀를 찌러 죽였다는 어처구니 없는 기사가 내일 석간에 실릴 거예요. 당신은
「부하의 불미스런 일은 곧 나의 부덕함이라 할 수 있다」라고 시치미 떼고 있으면 돼죠!
산스케 : 자넨 정말 싸먹을 만한 여자로군.
악마 : 유능하죠!
산스케 : 음.
악마 : 이 시각부턴 제가 당신의 비서예요.
라고 비서의 시체를 발로 뒤집어 놓은 후 연필과 메모장을 주워 시체를 톡하고 두들기니 시체, 사라진다.
악마 : 자, 그럼(하고 메모를 한다)....... 각국판 「글」을 일본어 판과 비교해 보아, 정확히 번역해서 행한 나라
에서는 다시 판권을 넘겨받아 이후 단 한권이라도 증간하지 못하게 할 것!
산스케 : 셋째, 에......
악마 : 서민의 편임을 자칭하던 글들이 피로써 피를 씻는 무자비한 집단이라는 선전을 대대적으로 할 것!
산스케 : 음, 음! 넷째, 대규모 형무소는 모두 패쇄!
악마 : 그리고 민간 관광업자에게 싸게 팔아 넘긴다. 수상이나 대신들과 친밀한 관광업자가 상당히 많다고 듣
고 있는데 그들을 때로는 즐겁게 해 주자구요. 정치 자금을 거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잖아요?
산스케 : 좋아! 다섯 째! 소설가 똥에 대해서는 본보기로 글 대신에 징역 317년의 형을 언도할 것! 이 모든게
다, 녀석이 쓴 소설 「글」이 불씨가 되어 일어났다. 지하감방에 평생 처박혀 두어야 해! 놈이 두 번 다시 소
설을 쓸 수 는 없을걸! 후후후후...... 이젠 됐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구. 질서가, 상식이 그리고 논리가
이 세상에 다시 돌아왔다!
이쯤에서 말할 수 없는 희열 속에 감겨드는 국장과 악마.-암전-
17. 땅 끝, 저 밑에서......
지하감방. 어둡다. 엉클어진 머리, 지저분한 수염의 똥이 검은 벽에 등을 기대이고 꼼짝않고 앉아 있다
똥 : (혼자말로)......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어 버린 것일까? 안락한 형무소 안에 들어가 글과 사이 좋게 창작삼
매경에 빠져볼까 해서 쿠사키 산스케의 바지를 벗겼던 건데...... 더럽고 어둡고......, 이 좁은 곳에 갇혀 버리고
말았군. 날 기다리고 있어야 할 글도...... 이곳에 없다! 반년이나 넘도록 소식이 끊겼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글이 찾아와 주기만이라도 한다면 이 생지옥도 극락으로 바뀔 수가 있을텐데. 3일에 한 끼라니 이건 너무해!
게다가 목욕은 5년에 한번. 이거야말로 바퀴벌레 이하의 생활이 아니고 무어랴......
언뜻 마루바닥을 보더니 표정이 아주 진지해진다. 느린 동작으로 앞으로 꾸부정한다. 그리고는 손을 느릿느릿
뻗쳐 마루바닥을 덮는다. 바퀴벌레를 잡은 것이다.
똥 : 나같은 놈에게 잡히는 걸 보니 네 놈도 어지간히 체력이 딸려있는 모양이로군. .......그래, 네 놈 몫까진 꼭
오래 살아줄테니 절대로 억울해 하진 말거라.
똥, 바퀴벌레를 천천히 먹는다.
똥 :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해도 네 놈의 눈알만은 정말 먹기가 거북하구나...... 미안하지만 눈알은 남기겠
어.
하고 힘없이 눈알을 토해낸다. 그때 글이 한쪽 벽사이를 횡하고 지나더니 다른 쪽벽으로.
똥 : 아, 너! 글 아니냐?
몹시 엉클어진 모습을 한 글이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선다.
글 : ......네. 글입니다......
똥 : 도통 기운이 없는 대답이로군. 좀 더 호들갑스럽게 놀래서 반겨줘야할 게 아냐!
글 : 그럼, 아이고오오! 똥 선생님!
똥 : 오오, 글!
하며 똥은 비틀비틀 글 쪽을 향해 무릅으로 기어간다.
글 : ......그럼, 안녕히 계세요.
똥 : 이 이것봐.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글 : 미안합니다. 바삐 가야해요.
똥 : 허지만, 못다한 얘기들이 쌓여 있다! 묻고 싶은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글 : 저 역시......
똥 : 그럼, 거기 않아.
글 : 똥 선생님. 제가 이곳에 머물러 있게되면 전 이 세상에서 없어져요!
똥 : 무, 무슨 말인가?
글 : 세상이 완전히 전과같이 되돌아 와 버렸습니다.
똥 : 자네가 있는데 4차원의 대도둑 글이 있는데 왜, 어째서 이 세상이......? 무슨 말인가?!
글 : 온 세상의 글들이 내부 분열로 서로가 통괄싸움을 해 버린 바람에......, 지금 살아 남아 있는 것은 저하고
단국의 글 1호와 토련의 글 1호, 이렇게 3명 뿐입니다.
똥 : ......
글 : 단국하고 토련의 글 1호는 저를 죽일 셈으로 저의 뒤를 반년동안 1초도 쉬지않고 뒤쫓고 있습니다. 둘은
저와 사상적인 입장에서 전혀 다르거든요!
똥 : 확실히 단국과 토련의 번역은 좀 심했던 것 같으네! 난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라고 번역자한
테 항의를 겸한 편지를 보냈었지만 답장 한 장 없다네...... 아, 아니! 그렇담 똑같은 글이라도 번역에 의해 그
성격과 사상이 전혀 달라졌단 얘기인가? 그래서...... 서로를 미워해서......?
글 : 역시 원작자이시로군요. 우리들은 모두가 무엇하나 불가능한 것이 없는 4차원의 인간으로 설정되어 있습
니다. 이 만능 인간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살의를 품고......
똥 : 논리적 모순에 빠진 게로군! 그 다음에 올 것은 서로의 영원한 대립, 도망을 택하는 수밖엔 없지!
글 : (자기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흘리며)제가 얼마나 선생님 곁에 있고 싶은 지 그것을 알아주신다면...... 하지
만 그럴 수 없어요. 그것보다도 저것들 둘한테 붙잡히지 않으려면 이렇게 도망을 다니지 않음 안되어요. 그렇
지 않으면 선생님의 소설 「글」이 이제 완전히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만단 말이어요.
똥 : 이를 어쩌나. 이렇게 딱할 수가!
글 : 선생님......
똥 : 글, 널 불러 세워서 정말 미안하다. 어서 도망가거라!
글 : 그, 그럴께요.
똥 : 하지만 글. 이제부터라도 조금만 더 참아준다면......
글 : ......?
똥 : 널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또 하나 아니 두 개, 아니지, 살아있는한, 얼마든
지 소설을 쓰면 돼! 너와 똑같이 강하고 올바른 그리고 마음 착한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말이다. 그러면 그
들이 내 원고에서 빠져나와 너를 도와줄......
이때 단국의 글 1호와 토련의 글 1호가 「서라! 오리지널 글」「어-이, 오리지널 글!...... 노려보기 안할래?」하
는 소리
똥 : 글, 어서 가보게!
글 : 그, 그럼 선생님......
똥 : 잘 도망쳐야만 하네! 반드시! 붙잡히면 안돼!
글 : 네. 선생님도 부디 건강히!
하고 글을 벽을 통과해 사라진다
똥 : (비틀비틀 일어서서 그의 뒤를 쫓아 두 세 걸음을 걷는다.) 아암, 건강히 있구말구. 내일이 끝나기 전까지
는 돌멩이에 들러 붙어서라도, 아니 시멘트 벽을 꽉 깨물고서라도 꼭, 살아남아 있을거다!
비틀비틀 하다가 멈췄을 때 단국과 토련의 글 1호, 벽을 통과해 오더니 다시 벽으로 사라진다. 그 둘은 물론
똥을 뚫고 지나간다.
단국글1호 : 오리지널 글. 게 서지 못해!
토련글1호 : 노려보기 하자구!
똥,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다.
똥 : (큰 소리로)이봐. 간수!! 종이 좀 갖다줘. 만년필하고 잉크도! 만년필은 몽블랑이 좋겠다!...... 이렇게 말한
들, 가져다 줄 리가 만무하지......!!
어깨의 힘을 풀썩 떨어뜨리고 나서는
똥 : 이거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벽위에 머리를 마구 박는다. 그러다가 다시 그 벽을 뚫어져라 쳐다 보다가
똥 : 종이가 없다면, 펜이 없다면 이 열 손가락이다. 잉크는...... 손가락에서 뿜어나오는 내 피다!
똥은 벽을 향해서 정좌를 한 후 에잇!! 하고 오른손의 집게손가락을 깨물기...... 바로 직전에
똥 : 아플거야?! (하고 자기는 모르는 새에 그 손가락을 빨고만 있을 뿐.)
「똥 선생님......!」
「기다려!」
「노려보기 안할래?」
쫓기는 글과 쫓는 단국과 토련의 글 1호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먼 곳을 향해 또다시 지나가고 있다.
똥 : ......!!
똥은 자세를 또다시 바로 잡고 앉아서, 무릎 위에 양손을 올려놓은 뒤, 이번엔 아주 서서히 오른 쪽 집게 손가
락을 입으로 가지고 간다. 무대, 어두워진다. 한 줄기의 스포트만이 똥의 둘째 손가락을 언제까지나 비추이고
있다. -막-
첫댓글 이노우에 히사시 선생도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시네요. 일본의 한 시대를 풍미하셨던 분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