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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ation
Par les soirs bleus d'été, j'irai dans les sentiers, Je ne parlerai pas, je ne penserai rien :
Arthur Rimbaud Mars 1870. |
감각
아르튀르 랭보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하여 몽상가의 발밑으로 그 신선함을 느끼리.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주겠지.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계집애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번역이 영 좀 그렇지만 "아르튀르 랭보"의 "감각"이라는 시다. 이 시는 감성을 이루는 랭보 자신의 감각을 썼다. 시에서 감성이란
'느끼는 성질'이다. 우리로 하여금 어떤 대상에 대하여 무수한 감정 반응을 일으키게 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며, 대상으
로 부터 감각되고 지각되어 하나의 표상을 형성하게 되는 인식능력인 것이다. 따라서 감성은 이성과 함께 우리의 정신세계를 형
성하고 있는 두개의 큰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동안의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이 감성의 기능이나 중요성보다는 이성의
힘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우위에 놓여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합리주의적 사고와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기는 서구사
회에 그토록 눈부신 과학의 발전과 산업의 발달을 가져오게 한 것이 이성의 힘이었던 만큼, 이러한 이성의 막강한 능력과 비교해
볼 때, 감성은 상대적으로 뒤쳐지고 등한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현대사회도 감성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십여년 전부터 '감성지수'니 '감성교육'이니 하며 감성바람이 불었지 아니한가?
필자는 시를 배우던 초기에 이 감성이란 것에 대하여 시 창작을 하면서 당연히 기본적인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자유주의 사상감
상시의 필요성과 좀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서정시보다는 다른 시 쟝르로 나아갔다. 하지만 역시, 시는 기본적으로 시인의 감성지
수가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시인의 이 감성을 정치적으로 표퓰리즘적으로 악용하는데 있다 할 것이다. 많은 대다수 국민들과 일
부 자유주의 지성인들에 의해 요즈음 국가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국민들이 많이 하게 되었지만 필자는 솔직히 이명박 정권때까지
이땅의 얼치기 좌파, 종북세력들에 의하여 예술을 빙자한 파괴정신에 의해 많은 국민적, 정신적 오염이 있어왔으며 아직도 그것들
에 의한 우리사회의 그늘진 바이러스성 암존재의 정신작용이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 여기에 지대한 공헌을 일조한 우리사회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물론, 무슨무슨 협회 이름의 문단'아니겠는가?
등단 시인들 중에서 "나는 아니다"라고 항변하기에도 충분 하겠지만,,,김대중 정권부터 지금까지 내가 겪은 지식인들 중에 가장
나약하고 비열한 곳이 또한 문단이기도 했다. 권불십년들이라고는 하는데 김대중,노무현 ‘노네상스’ 좌파 찌라시 정권 이후, 이명
박 정권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아니다" 라고 한 시인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그럼 당신들은 과연 무엇을 하셨는가?" 과연
문단에서 권위원로 운운 하실 수 있는지? 나는 무척 의문이다. 우리 문단은 계속 더 점점 본래의 순수성, 예술성, 심미성, 장인정신
의 투철함, 제대로 공부한 올바른 사회비판의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무슨 껍데기 "생명" 운운하며 가재미 눈으로 이
눈치 저눈치 보아서야 그것을 제대로 된 시정신이라 할 수 있겠는가? ‘갈지 자 걸음과 눈치코치 가재미 눈 현상’은 자신들이 공부
되지 않아서 확신이 없을 때 100% 잘 나타난다.
시인도 정치할 수 있다. 정치도 시의 아주 중요한 창작소재 중 일부다. 문제가 부딪히면 뚫어야지 무슨 초야에 묻힌다면서 회피하
고 도망가는 것이 시정신인가? 그래서 "붕시인" 소리를 듣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정치가 과연 무슨 정치냐? 제대로 공부한
힘있는 정당성과 정신의 정치인가? 나는 감히 지금까지 정치판에 나선 시인, 작가들을 아무리 보아도 그런 시인겸 정치인을 보지
를 못했다. 자신의 편협한 주변만의 치기어린 개인 감정의 발로가 문단을 위한 정치인가? 덜떨어진 좌파애들 눈치보고 표모으
며 베끼고 스스로 공부하지도 않은 개폼철학이 무슨 당당한 사상(思想)인가? 파리의 택시 운전수가 대한민국을 조종한다면 대한
민국의 모든 택시기사들도 웃을 일이다. 그야말로 웃기는 개소리다. 공부 안되있고 능력 안되면 그만 조용한 것이 오히려 도움이
라고 나는 본다. 나는 박근혜 정권의 수혜자도 아니지만 좀 詩眼으로 보이는 것이 붕괴직전에 있는 북한의 문제다. 이 정권은 운명
적으로 "통일"에 대해서 매우 심각하게 생각해야될 바 당연히 "자유민주" 주도의 "통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시인들이 좌
파사상은 어디서 좀 줒어 들었고 "자유주의 사상"은 정책들은 커녕 사상가가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니 이 한심한 문단의 지성적 상
황을 어이할꼬?
차치하고 “서정적, 자유주의 사상감상 시”의 기치를 처음 내 건 필자의 입장에서도 하여튼 감성바람이 불고 있는 이러한 현상이 생
긴 요인은 우리사회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이 산업화와 민주화, 기계화, 정보화의 시대를 넘어 이제 “창조화”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화 시대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개인의 창조성이며 창의성이다. 그런데 감성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무한한 창조성의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각 개인마다 독특하게 지니고 있는 고유성이며, 끊임없이 사물과 부
딪쳐서 다양한 새로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성의 창조성이 가장 큰 구실을 하는 곳이 바로 문학이며,
그 중에서도 ‘시’다. 감성은 시 창작의 바탕이다. 결코 논리적인 사고나 합리적인 사고가 시를 창작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사물에 가 닿아서 시인의 가슴에 구체적인 감정과 느낌을 생생히 불러일으킬 수 있는 투명한 감성이 시를 낳는
것이다.
막 잎 피어나는
푸른 나무 아래 지나면
왜 이렇게 그대가 보고 싶고
그리운지
작은 실가지에 바람이라도 불면
왜 이렇게 나는
그대에게 가 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지
생각에서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고
암만 그대 떠올려도
목이 마르는
이 푸르러지는 나무 아래
---- 김용택,<푸른나무1>전문 -----
시인의 깨어 있는 감성은 지금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어린 이파리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새봄이 와서 새롭게 피어나고 있는
어린 잎들을 보면서 부재중인 그대가 더욱 그립기 때문이다. 이 이파리들의 아름다움이 눈부실수록 이런 고운 봄날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는 안타까움은 더욱더 간절함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은 이파리며 실가지들, 또 거기에서 살랑대는 바람
한 점까지 놓치지 않고서 그것을 통하여 이렇듯 지순한 서정을 샘물처럼 퍼 올릴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시인의 맑은 감성에서 비
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를 창작하려는 사람들은 이러한 감성에 귀를 기울려야 하며 감성의 거울에 비추어지는 사
물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그 누구의 것도 흉내내지 않은 자신의 마음이 발견하고 포착한 사물의 모습이 있고 진실이 담
겨 있다. 감성은 자신의 진심으로 사물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에는 꾸밈도 없고 거짓말도 없다. 사물에 대한 자기 진
실함의 표현만이 있을 뿐이다. 필자의 필명을 “맑은 샘”으로 지었던 이유도 다 이런 이유에 바탕하였으며 특히, 나는 우리 창작카
페의 대표및 회장으로써 산해천님, 이석환님, 수필의 김승은님도 그렇지만 가장 동료로써 받아들일 수 있는 최우선 조건으로 시를
창작하는 마음, 즉 시심(詩心)이 얼마나 맑은지를 본다. 시를 잘 쓴다고만 해서 나는 아무나 받아 들이지는 않는다. 내가 겪은 우
리 정회원님들은 선,후배 창작동료로써 갈고닦은 남모르는 창작 기법들도 기법이지만 언제나 감사하기도 하고 누구보다도 맑은
시심들을 가지셨다는 점을 나는 인간적으로 100%보증할 수 있다.
아이들이 난다
산해천
귀뚤이가 삭이는 달에게
속삭이네
아!
그 환하디 환한
가느다란 풀잎처럼
하얀 목을 찾는다
눈부신 하늘
홀씨마저 낮게
가르는 때를 맞느니
부서지는 파도야
나도 빨갛게 멍이 들었다
산과 산 사이로
먼저 차 오르는 것을...
식으면 커다란
검은 산에
하얀 꽃잎이 날리겠지...
날갯짓하는 아이들이
산 밑에서 난다
난다-
아이들만 난다
산해천님의 위 시의 감동 역시 시인의 따뜻한 감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것이다. 아이들처럼 맑은 감성으로 시인 자신의 주변을 보니 좀 서글픈 것 아니겠는가? 시인의 눈과 아이들의 동심에서 본 가을이 서글픈 것이다. 조지훈 시인은 “시적 진실은 예술적 가치로서 정서적 감동이다. 감성으로 받아들이고 감성으로 표현하며 감성에 자극하는 것이 시의 정통적 본질이다”라고 하며 감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시창작에 있어서 이렇게 중요한 바탕이 되는 감성은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지니고 나오는 선천적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이 감성도 다르게 가지고 태어난다. 시를 창작 하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남다른 감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어릴 적을 생각 하자면 사업을 하시던 아버님의 맽고 끝는 성격, 책임, 남성미와는 달리,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과 유치원 때, 어머니에 의해서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는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해 태어난 도시전체의 꽤 큰 賞을 타기도 했으니 말이다. 중학교 때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방학 때 어린이용 딱따구리 그레이트 북스와 세계문학전집을 외할머니 마루에 앉아 독파하던 기억도 나고 교내 백일장에서 賞을 받았던 생각이 난다. 대학 때는 시인이나 언론인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하여튼 사람은 무의식적으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이글을 읽으시는 임산부들이 계시다면 아기의 태교에 매우 신중하고 명심하시기 바란다.
인간의 감성은 사소한 풍경이나 사물일지라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고 거기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경이롭게 느낀다. 그러나 우리들의 얼굴 모습과 인상이 삶의 환경이나 질에 의해서 변화하고 바뀌듯이 타고난 감성도 무수히 변화하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맑고 순수했던 감성도 삶의 온갖 세파 속에 휩쓸리고 거기에 찌들어 버리면 따라서 함께 흐려지고 탁해진다. 나는 시를 아주 늦은 나이, 20대 후반에 배우기 시작했는데 법학공부를 하면서 딱딱하게 굳어졌던 머리를 토,일요일 돌아가신 시스승을 찾으면서 좀 완화하고 이성(理性)대신 감성(感性)을 찾는 훈련을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초현실주의 슈르기법 자체가 어린아이처럼 맑은 감성상태를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슈르기법으로 시를 쓴다고 한다면 책으로 프랑스 시인들의 시나 이론을 읽은 것만으로 체득했다 할 수 없다. 시인 자신이 시를 쓰면서 음악을 공부,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마음에서 선율이 우러나와 작곡이 되어야만 제대로 이 기법을 체득했다 할 수 있다고 나는 분명히 말하며 필자 또한 오선보에 옮겨놓은 독창적 자작곡이 있기도 하다.
그것은 돌아가신 필자의 시스승도 마찬가지였으며 그분 자신도 알고 지냈던 시인들은 많았으나 시를 쓸 때 시인자신의 자작곡이 나오지 않으면 자신의 제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분이었으며 유일한 그분의 제자가 필자 한명이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즉, 비전(祕典)이 전수된 이유다. 이것은 무의식의 매우 맑은 정신상태를 즐기면서 강한 집중을 통한 초월상태로 들어가야 가능하다. 잘 안될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아주 약간의 음주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신이 불안정한 사태에서의 음주는 나는 권하고 싶지 않다. 잘못하면 큰일난다. 이 비전(祕典)을 얻기 위해 정신병원으로 간 분들도 다수 있으니 술을 아무리 마셔도 타인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않는 경지의 인격에 도달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하시지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요즈음 나는 회사일로 바쁘지 않아 시골의 전원에서 고요히 집중이 잘 되어 술을 마시지 않고도 가끔 이런 정신적 경지를 경험하기도 하며 극도의 기도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세파에 찌들리면 샘물처럼 맑게 솟아나던 감성이 메말라 버리고 굳어지듯 시심(詩心)도 함께 메말라 버리는데 이렇게 탁해지고 메말라 버린 감성으로는 결코 좋은 시를 창작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므로 시를 쓰려는 이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샘물처럼 맑게 솟아나는 자연스러운 감성을 지키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을 더욱 풍성히 키우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즉, 우리의 오관을 통한 사물의 체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감수성을 키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은 사물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 관습적으로 굳어져버린 인식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물을 처음 대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한 동심과 경이로운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뛰노니, 나 어린 시절에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에도 마찬가지리니....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했던 워즈워드의 시 구절처럼 순진무구하고 자연스러운 동심을 자신의 마음 속에 영원히 지속시켜 나갈 줄 알아야 한다.
다음은 사물이 지닌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탐구하는 마음을 갖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현실을 살피고 관찰하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고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기려 든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가시적인 것도 많지만 불가시적 부분들이 더 많다. 남들에게도 다 보이는 것을 창조적 예술가가 똑같이 보여주면서 무슨 “이 새롭고 경이적인 세계를 보시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불가시적인 부분들이 지닌 의미와 비밀들을 찾아내어서 새로움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 창작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미지의 세계를 믿고 그 안에 내재된 우주적 질서와 본질을 찾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끝으로 욕심이 없는 겸허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온갖 탐욕이 찬 마음에는 그 욕심만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어서 다른 사물들은 들어올 수가 없다. 남들이 보기에는 필자가 그래도 꽤 괜찮은 언론사에서 간부로 일하며 승진도 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등단시인에다가 큰 문학대상도 탔으니 무슨 욕망이나 욕심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보지만 필자는 천만에 만만에다. 나는 내 직업도 시도 무슨 욕심에 의한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온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으며 그것은 내 양심을 걸고 말할 수 있다. 대학다닐 때 언론인과 시인이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만 나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하지는 못하지만 남들보다는 책임을 가지고 좀 열심히 했고 남들이 싫증을 내고 떨어져 나갈 때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밀어붙였을 따름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賞을 타기 위해 시를 쓴다면 나는 말리고 싶다. 賞중에서도 문학상(文學賞)은 어떤 賞이라도 그런다고 될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정도 노력에의한 발전은 있겠지만 필자가 볼 때 그렇게 받은 문학상(文學賞)은 정도(正道)의 길을 걷는 시인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 자신도 언론사 간부에 대한 목표도 없었고 그저 아둥바둥 먹고 살려보니 이까지 오게 되었고 등단도 문학상(文學賞)도 아무런 목표도 없이 좋아서 하다보니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남들이 주시게 된 것이다. 특히 나는 대학때 문학전공자, 문예창작전공자도 아니었으며 시를 배운 것은 우연한 인연으로, 취미로 시작했던 사람이다.
마음의 눈이 흐려져서 사물의 모습조차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되면 참으로 시인으로서는 낭패다. 맑고 겸허한 마음이 사물의 진정한 모습을 비추고, 끝없는 우주로까지 우리의 영혼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 속에서 사물을 보는 눈은 타성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생생하고 새롭게 그것들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풍부하게 유지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더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수성이 시창작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일이다. 물론 시창작이 감성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감정의 노출로 드러나서는 안된다. 또한 결핍된 상태로도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고 지금의 나는 보고 있다..
황무지(荒蕪地)
T.S. 엘리어트
한번은 쿠마에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어.
"죽고 싶어"
보다 낳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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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웁니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여름은 우릴 놀라게 했어요, 슈타른버그호 너머로 와서
소나기를 뿌리고는, 우리는 주랑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인 이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대공의 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 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사람의 아들아, 너는 말하기는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 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Frisch weht der Wind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Wo weilest du?>
고향으로 불어요 Der Heimat zu
아일랜드의 님아 Mein Irisch Kind,
시 <황무지>의 엘리어트는 평생 강박불안을 가지고 살았다. 그는 지나치게 신중하고 정확성을 기하느라고 시간을 끌곤 하였다. 특히 성과 육체를 혐오하는 결벽증이 있어서 부인과 성생활도 하지 않았다. 꽃향기 만연한 계절에 욕정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의 행위를 엘리어트는 불결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욕정의 발산인 정액이 말라서 가루가 되어 꽃가루처럼 공기 중에 떠다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인지도 모른다.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은 정서적 교류를 가장 힘들어한다. 사랑의 열정으로 몸살을 앓지도 않고 이별의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감정의 고통을 느끼게 될까봐 지적인 세계로 더욱 파고 들거나 일에 열중하여 감정과 사건을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메마르고 냉담했던 엘리어트는 결혼생활도 평탄치 않았다. 변덕스럽고 의존적인 부인은 예민한 엘리어트의 심정을 전혀 알아주지 못했고 그를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엘리어트는 생계를 위해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은행일을 하루 종일 해야 했다. 사랑하지도 않는 아내와 불필요한 성생활로 체력을 낭비하게 하고 아내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탕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결혼 생활은 정력 낭비, 시간 낭비, 재능 낭비, 인생 낭비일 뿐이었다. 이 모든 낭비가 집결된 ‘낭비의 땅’(waste land)이 바로 황무지이며 결혼 생활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탈장이 심해서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지도 못하고 늘 혼자 있고 수줍음이 많았던 엘리어트는 결혼에서 오는 실패감을 견디기 위해 오로지 지적인 세계로 몰두했다.
감정적 소용돌이를 두려워하는 강박증 환자들은 동토에 홀로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아무리 거부해도 봄은 오고 꽃은 핀다. 엘리어트가 시 창작을 통해 자신의 결혼생활의 환멸을 폭로하고 그럼으로써 위로받았듯이,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도 안전한 봄을 맞을 수 있기를 바란다. 강박증은 의외로 빨리 치료될 수 있다고 어느 정신과 의사는 말한다. 필자도 엘리어트를 명시인이기는 하지만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사람으로 보는데 엘리어트는 ‘감수성의 분열’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이것은 시인의 사고와 감정이 서로 통일되고 조화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시인에게 있어 진정한 감수성이란 지성과 감성, 사고와 감정이 서로 융합되어서 통일을 이룬 상태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를 창작하는 모든 시인들이 언제나 희구하는 정신적 상태인 것이며 시창작에서 매 순간마다 유지시켜 나가야 할 정신적 태도인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다음편 예고 : 시를 창작하는 정신과 마음
2. 열정, 그 장인정신
3. 정신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