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海浸瑤海 靑鸞倚彩鸞 푸른 바다는 구슬 바다에 젖어 있고, 푸른 난새는 오색 난새에 기대네,
芙蓉二七朶 紅墮月霜寒 스물 일곱 송이 아름다운꽃, 달밤 찬 서리에 떨어졌네.*난새:전설의 새*
위의 시는 허난설헌이 죽기 1년전 1587년에 자기의 운명을 미리 예감하고 지은 詩이다. 천품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용모를 타고나 어렸을 때는 女神童이라고 불리었다. 그의 초명은 楚姬 호는 난설헌 양천 허씨(지금의 서울 양천구)다.
그는 1563년 강릉에서 태어나 15세에 안동 김씨 金誠立과 결혼한다. 그의 아버지는 양천 허씨 草堂 許曄으로 1575년 당쟁이 시작될때 김효원과 함께 동인의 영수였다.부제학을 거쳐 귀양살이 끝에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때 상주객관(당시에는 상주에 경상우도 감영이 있었음)에서 객사하였다.
허엽은 첫째 부인 청주 한씨와의 사이에서 이조판서를 지내고 1590년 학봉 김성일과 함께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岳鹿 許筬및 두 딸을 두었는데 그 한사람이 남인의 영수가 된 禹性傳의 부인이였다.
첫 부인이 죽고 강릉 김씨 부인과 재혼, 그 몸에서 荷谷 許봉, 허난설헌, 蛟山 許筠이다. 허난설헌은 어렸을때 오빠 許봉에게 글을 배우고 손곡 李達에게 詩를 배웠는데 오빠 허봉은 이율곡을 탄핵하다가 甲山에 귀양갔고 李達은 당대 한시문학으로는 최고 였으나 서얼 출신이였다. 또한 동생 허균 역시 당대의 최고 재주꾼이 였으나 스승 이달의 영향을 받아 서얼 출신들과 어울려 평등한 사회건설의 이상향을 꿈꾸다 모사꾼 이이첨에게 걸려 광해군때 역적으로 몰려 죽는다.
어찌 되었던 제도권 밖에 있는 이들에게 배운 탓에 현실보다는 이상의 가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였다.
허난설헌은 친정집의 몰락과 詩作을 못마땅하게 여긴 시집 부모와 무관심한 남편, 그런 와중에 두남메 마져 죽고 극심한 우울증으로 뱃속에 있는 아이도 유산하게되자 삶의 의욕을 잃고 위의 詩를 짓게 된것이다.
그는 죽기전 세가지 恨풀이를 하였다. 첫째, 나는 왜 조선에서 태어났는가? 둘째, 나는 왜 여자로 태어났는가? 셋째, 나는 왜 하필이면 김성립에게 시집을 갔는가? 였다.
양천 허씨! 그 후 그들은 해남 윤씨, 압해 丁씨와 더불어 남인의 강경파로써 조선 중기 이후 당쟁에 깊이 간여하였으며 서로 혼맥을 주고 받으면서 윤선도의 증손 공재 윤두서에게 화풍을 배워 오늘날의 남종화단에 우뚝서게 되었으니 진도의 운림산방에 그 꽃이 활짝 피어났습니다.
허난설헌! 조선과 시대는 그를 버렸지만 역사는 그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첫댓글 야천 권오정 교장, 참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는군, 자넨 나에게는 틀림없는 스승이야. 인생을 새롭게 보는 안목을 일깨워 주니까 말일세. 허엽은 퇴계 이황의 매화시첩 발문을 쓰기도 하였는데 이제 그 내력을 어렴풋이 당쟁사를 읽어 보네, 야천 덕분에 말일세.
沼隱 선비 ! 퇴계선생의 문집에 발문을 쓴 사람이 허난설헌의 아버지 였는지 자네에게 들어 알았네! 자네야 말로 문집을 많이 읽어 경북북부의 가문의 내력을 소상이 알고있어 내가 많이 배우고 있네! 당쟁사 읽고 많은 이야기 해 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