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잡초 제거하기]
나는 2001년 7월 14일자로 내가 사랑하는 둘째딸 정현이를 시집을 보내는 날에 2중 겹치기 경사인지는 몰라도 행정자치부 중앙소방학교 연구실장으로 발령이 나서 이곳 소방학교에 온지도 이제는 2주가 넘어 섰다. 이곳에서 출퇴근 시간을 3시간 동안에 나의 개발을 위하여 토요일에만 집에 가서 사랑하는 가족도 보고 터 밭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돌아본 터 밭은 정말로 가관이었다. 농사짓는 밭이 아니라 일주일 간이나 돌보지 못한 것이 완전히 잡초 밭으로 변신을 하려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한국공무원문학회 모임이 있어서 아침에도 고추에 농약을 뿌려두고 가는 길에 유성에 있는 대광농약사에 들려서 천안에서 금년도 김장준비를 하기위하여 배추씨, 무우, 알타리 씨앗과 농약을 구입하고 도착 시간이 좀 늦었더니 경리를 맡고 있는 광순 동생이 집에 전화까지 해서 참석 여부를 확인한 모양이다.
일주일 동안에 잡초가 자라는 속도는 말도 못하게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해서 유수와 같다는 말이 있듯이 잡초가 자라는 속도는 그것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저녁때에도 저녁식사 약속이 없으면 일을 좀더 많이 했을 것인데, 좀 늦춰서 약속을 하기는 했어도 풀매기는 얼마하지 못하고 호박잎과 고추를 좀 따주고 깻잎을 따서 주려고 깻잎을 베어 주면서 풀을 손으로 제거하긴 했어도 마음이 조급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내 성에 차게 일을 한 보람이 느껴지지를 않는다.
하루에 아침에 1시간 반 일을 하고 저녁에도 집에 도착하여 해가 넘어가도록 일을 하다보니 500평 정도의 터 밭은 손쉽게 내가 아침과 저녁으로 했던 일의 분량이 엄청난 량의 일을 했다는 것을 실감 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 속담에도 부지런한 부자는 하늘도 못 말린다는 말이 있는가 본다. 터 밭을 만들고 가구고 하면서 많은 경험을 통해서 농사일기까지 써 가면서 재미있는 나날을 보낸 것 같다.
이러한 추억이 나의 기록으로 남겨지고 내 자손들이 나를 후대에 평가해 주리라 믿는다. 나의 근면성을 구전으로 전하는 것 보다는 내가 기록으로 남기고 후세에 나에 대한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는 것도 재미있는 한 드라마의 장면과도 같다고 말을 할 수가 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