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하여 집에 있다 보니 하루하루의 일상이 새롭게 느껴진다. 해가 몇 시에 뜨고 몇 시에 지며 햇빛이 어디까지 드는지, 먼 산의 눈이 얼마나 남아있고 논둑길도 얼마나 굽었는지, 그리고 아침에 무엇을 먹고 간식으로 무엇을 먹는지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이 자그마한 일상들이 우리 삶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면에서 일상에 대한 이해가 삶에 대한 이해를 깊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생활은 관습이나 제도와 같은 추상적인 것뿐만 아니라 수저와 그릇, 자동차와 기차, 쌀과 술 등과 같은 물질문명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결국 일상은 사상, 관습, 제도, 그리고 물질문명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종합체이며, 일상에 대한 역사는 미시적 세계와 거시적 세계가 통합되어 있는 종합사라고 할 수 있다. 작은 것 속에 세계가 구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에서 일상사 연구가 가장 활발한 곳이 프랑스다. 이는 20세기 초부터 역사학에 변화를 가져왔던 아날 학파의 땅이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명나라시대 중국인의 일상>>(제롬 케를루에강 외 지음 이상해 옮김, 서울 : 북폴리오, 2005.10)도 프랑스 역사학의 성과이다. 저자인 제롬 케를루에강은 AFEC(프랑스 중국학회)의 일원이자 '에뛰드 쉬누아즈'의 편집위원이다. EHESS(프랑스 고등 사회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명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사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또 역자인 이상해는 한국외대 대학원 불어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릴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2005년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우선 저자와 역자의 소개를 보자.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중국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남아있다. 중국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애증을 불러일으키는 그래서 무관심할 수 없는 ‘거대한 타자’로 여겨진다. 3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중국 문명은 유럽의 문명이 활짝 피어난 것과는 다른 하나의 천재성으로 태어나고, 발전하고, 눈부신 문화를 빚어 낸 생생한 증거다. …… 오늘날 우리가 관광하는 자금성, 천단공원, 만리장성, 그 유명한 청자와 백자, 가장 위대한 희곡들과 가장 널리 알려진 대하소설들이 모두 명나라시대의 것들이다. 이러한 가시적 유산들 이외에도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중국은 인구와 경제 규모 면에서 획기적인 신장세를 보였다. 그것은 해외에 문호를 개방한 중국, 도시 문인 문화가 절정에 달한 중국, 미신적이고 신앙심이 깊으며, 서류 절차가 복잡하고 부패했으며, 창의적이고 근면하며, 투쟁적인 동시에 타협적이며, 쾌락을 추구하는 동시에 고통스러워하며, 상냥하고 사랑스러우며, 조금도 정체되지 않은 변화무쌍한 중국이다. 이 책이 나아가려고 하는 방향은 서구인들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이 눈부신 시대의 일상을 들여다봄으로써 당시 일반인들의 생활을 내부에서 발견하는 데 있다.”
역자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프랑스 유수 출판사인 라루스 출판사에서 기획한 <일상사 시리즈> 중 한 권으로 프랑스의 중국학자들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타자’,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중국문화가 활짝 꽃핀 명나라시대 중국인들의 생활을 지극히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책이다. 이 책은 사회 지배층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들을 시간의 축으로 삼아 기술하는, 이른바 정사와는 크게 다르다. 마치 한 시점을 기준으로 역사라는 도도한 흐름을 잘라 현미경으로 그 단면을 들여다보듯, 황제에서 노예, 도시에서 변방, 농사에서 전쟁, 출산에서 죽음, 생활풍습에서 자연재해 등등에 이르기까지 당시 생활상을 마치 한권의 사전처럼 풍부한 자료와 함께 총망라해 보여주고 있다.”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1장 가족과 풍속
가족 / 결혼 / 임신과 출산 / 어린 시절 / 교육 / 사랑과 섹스 / 사회적 관계
2장 주거와 안락
집과 정원 / 인테리어 / 편의시설 / 도시와 마을 / 정원
3장 의복과 신체
복장 / 액세서리 / 치장 / 건강 / 질병과 의학
4장 양식과 식탁
곡물 / 채소와 과일 / 육류와 어류 / 주류와 음료 / 요리와 식사
5장 사회와 공공질서
사회 질서 / 관리 / 시험 / 세금제도 / 사법제도 / 처벌
6장 문화와 여가
문자 / 문학 / 미술 / 음악과 춤 / 놀이 / 축제
7장 종교와 신앙
신 / 믿음 / 죽음 / 미신
8장 노동과 교역
노동 시간 / 농부 / 가축의 사육 / 장인 / 수공업 / 상업 / 광산과 염전 / 화폐 / 무역
9장 국토와 이동
영토 / 자연 / 육상 수송 / 수로 / 이주
10장 군대와 전쟁
군대 / 병사 / 방어 / 전투 / 국경
부록 - 연표, 지도, 참고 자료, 사진 및 그림 자료, 찾아보기
이 책은 가족과 풍습, 주거 환경과 안락, 의복과 몸, 양식과 식탁, 사회와 공공질서, 문화와 여가, 종교와 미신, 노동과 교환, 국토와 이동, 군대와 전쟁이란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5개에서 8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어제 하루, 지난 1년, 그리고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지난 세월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 이 10개의 장의 어느 하나에 속하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요새 관심이 많은 오락과 놀이에 대해서 찾아보자. 이것은 ‘문화와 여가’에 들어 있으며 다음과 같은 8개의 항목(문화 4개, 여가 4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항목은 3-4개의 소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즉,
글 : 문자 / 서예 / 도구와 종이
문인 : 유유자적 / 아주 고전적인 지식 / 세련된 탐미주의자 / 책 수집광
이미지 : 회화 / 이미지의 세계 / 삽화를 그려 넣은 책
음악 : 다양한 학기 / 음계와 음조 / 악사 / 노래와 춤
축연 : 연극 / 거리의 구경거리 / 명절
놀이 : 솜씨나 운을 겨루는 놀이 / 도박꾼의 지옥 / 약간의 성찰 / 말로 재치를 겨루는 놀이
신체활동 : 신체 단련 / 소림 전설 / 구기
동물 : 귀뚜라미에 대한 열정 / 황실 동물원 / 재주를 부리는 동물들
이 가운데 놀이 부분(pp.108-109)을 보자.
‘솜씨나 운을 겨루는 놀이’에서는 ① 운을 겨루는 놀이(패, 주사위 놀이, 저포(樗蒲), 여러 가지 도미노 놀이, 쌍륙 놀이, 알아맞히기 놀이), ② 솜씨를 겨루는 놀이(투호)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놀이에서 중국인들은 내기를 좋아했으며, 진 사람이 술잔을 비우는 것, 먹을거리를 내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가끔 값나가는 것을 걸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운을 겨루는 놀이를 못하게 하였는데, 이는 시간을 낭비하고 선량한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도박꾼의 지옥’에서는, 당시 도박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금지했다는 점, 처벌이 엄해서 도박장 소유자는 도박꾼과 마찬가지로 태형 80대, 관리가 도박을 하였을 때는 90대였다는 것, 그러나 법조문은 엄격했으나 도박이 일상화되어서 법으로 다스리기는 역부족이라는 점, 환관을 비롯하여 일반인들이 어디서나 일상적으로 도박을 하였다는 것, 부잣집에서는 가산을 탕진할 정도의 큰 도박판이 벌어졌다는 것, 파산한 도박꾼이 집과 전답을 빼앗기고 노상강도가 되거나 부인과 첩에게 매춘을 강요하기도 했다는 것, 도박에 여자(부인이나 첩, 딸 등)를 걸기도 했다는 것, 옷가지 까지 모두 잃은 다음 완전히 벌거벗은 채 도박장에서 쫓겨나는 도박꾼도 드물지 않았다는 것 등을 서술하고 있다.
‘약간의 성찰’에서는 장기와 바둑을 설명하고, 바둑은 구성과 규칙과 더불어 관리의 주된 오락이며 놀이의 규칙을 완벽하게 꿰고 있는 사람은 큰 존경을 받았으며 마치 예술의 대가처럼 대접하고 수를 배웠다고 하였다. 장기에 대해서도 구성과 규칙을 설명하였다.
‘말로 재치를 겨루는 놀이’에서는 2행시 짓는 놀이, 재치 있는 말장난 놀이 등을 들고 잇다. 소주 지방 주민들은 말장난 놀이를 마치 스포츠처럼 즐겼다고 서술하였다.
아울러 이 책의 최대 장점은 화려한 도판을 많이 수록하여 이해를 돕고 있다는 것이다. 놀이 부분의 2 페이지에 걸쳐 ‘바둑을 두고 있는 사안’이란 청대의 그림을 수록했으며 그 아래에 마작의 패 세 개를 수록하여 이해를 돕고 있다. 그리고 이상과 같은 많은 내용을 23㎝× 28㎝의 두 페이지에 짜 넣음으로써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지면을 제한하였기 때문에 충분한 설명이나 도판이 제공되지 못한다는 면에서 아쉽긴 하다. 또 도판의 상당부분이 청대 것이어서 명대에 대하여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문제라면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 책보다 더 깊은 설명을 보기 위해서는 보다 전문적인 책을 참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중국에서 나온 책 가운데는 도박 한 주제에 대해서도 수백쪽짜리 책이 나와 있으니 말이다. 또 읽으면서 어느 시대의 도판인지 생각하면서 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2006.1.7.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