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가 나오는 영화는 많습니다. 공식적인 탱고 광으로 백악관에서 아르헨티나의 메넴 대통령 앞에서 춤을 춘 로버트 듀벌도 탱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죠. 탱고 광이 되어 자전적 영화를 만든 샐리 포터까지 (백악관에서 춤출때 파블로 베론도 있었죠, CNN에서는 듀벌의 이름만 나왔지만).
탱고가 중간에 나오는 영화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아르젠틴 탱고가 아니죠. 예를 들어 '트루 라이즈'의 아놀드의 탱고는 음악은 카를로스 가르델의 Por Una Cabeza 이지만 춤은 영 아니죠. '인도차이나'에서 수양딸과 어머니가 추는 춤도 뭐 전혀 아르젠틴과 상관 없고. 오히려 라울 훌리아의 아담스 패밀리 밸류에서의 과장된 탱고가 더 가깝지만 (실제로 라울은 탱고 영화에 출연했었습니다.).. 윌 스미스가 이렇게 뜨기전 'Six degrees of separation'에서 남자와 탱고를 추는 장면이 있었죠..
거꾸로 실제 탱고를 추면서 음악이 탱고가 아니라 전혀 기분이 나지 않던 경우, 바로 마돈나와 반데라스가 나왔던 '에비타' 이상하게 탱고 댄스 장면은 탱고가 아닌 로이드 웨버의 음악인 경우가 많네요.. 영 별로인데 그래도 여기 탱고 음악이 꽤 나오는 편이죠.
줄리엣 비노슈가 탱고 음악가로 나오는 '알리스와 마르탠' 내가 탱고를 배웠던 다니엘 라파둘라가 탱고를 추는 장면이 나오는 시드니 폴락감독의 작 'Random Heart' 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아 '부에노스 아이레스(해피 투게더)'도 있군요. 거기는 피아졸라의 음반 The Rough Dancer and the Cyclic Night에서 발췌된 곡들이 배경으로 쓰였죠. 춤은 클럽 댄서의 땅고 판타지아와 주인공들의 탱고라고 하기는 어려운 끝없는 락스텝뿐이었지만..
하지만 아마 가장 인상적으로 탱고가 삽입된 장면은 역시 '여인의 향기'에서 파치노가 추는 탱고이겠죠. Do you tango? Por Una Cabeza에 맞춰 멋진 초심자 탱고를 춥니다. 사실 좀 어정쩡 합니다만.. 그리고 여자가 처음 춘다면서 한번도 박자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도 좀... 그래도 거기 그 장면에서 탱고의 느낌이 아주 잘 녹아 있습니다. 누군가에 따르면
'탱고는 삶의 맛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죽음의 향기가 난다.'
이 영화에서 그가 원하던 두가지 모순된 것.. 그것이 탱고라는 한마디로 표현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야기가 의외로 길어지는데.. 하여간 지금 얘기하려는 것은 탱고 그 자체가 중요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아르헨티나에는 많은 탱고 영화가 있습니다. 가르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수도 없는 영화가 만들어 졌죠.. 물론 저도 본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최근 것 몇가지만 얘기해 보죠. 우선 페르난도 솔라나스라는 아르헨티나의 감독이 만든 영화가 탱고를 다루는 일이 많습니다. 피아졸라가 음악을 맡고 또 유명한 탱고음악인은 로베르토 고예네체가 출연한 남쪽 "Sur"가 87년, 파리로 망명한 아르헨틴인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탱고로 표현한 "탱고, 가르델의 망명"이 85년 작품이죠. 이것도 피아졸라가 음악을 맡았습니다. 두 영화 모두 보기 힘든 영화죠.. 인터넷 상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이 영화들을 봤다고도 하는데..
다른 아르헨틴 영화로 라울 훌리아 주연의 'Tango Bar'가 88년에 나왔습니다. 드물 게 유명 배우가 등장한 경우죠. 이 영화는 상당히 많은 탱고 춤이 등장해서 영화 자체는 유명하지 않아도 탱고에 관한 영화를 모으는 사람들에게는 표적이 되는 영화죠. 6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면 살 수도 있는 영화죠.
위의 아르헨틴 영화의 특징은 탱고를 아르헨티나의 독재정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심정에 투영했다는 것이죠.
87년에는 'Tango Bayle nuestro(Tango our dance)'라는 탱고에 관한 도큐멘터리가 아르헨티나에서 만들어져서 유명한 탱고댄서들부터 거리의 탱고인들까지 많은 사람이 등장하죠. 볼만한 댄스 장면이 많은 편인데 이건 amazon.com에서 살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샐리 포터의 Tango Lesson을 알고 있겠죠. 원래 무용을 하다 무용내용을 찍은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포터의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알아 차리고 영화를 만들도록 설득했다죠. 그래서 '올랜도'라는 상당히 훌륭한 영화도 만들고.. 그리고 한참 쉬다가 만든것이 바로 이 탱고레슨이죠. 일단 사운드 트랙이 정말 훌륭하죠. 많은 명곡들이 있고요, 특히 이 영화가 아니라면 알지도 못했을 휴고 디아즈의 하모니카 연주가 빛나는 "슬픔의 노래"가 있죠. 근데 이걸 다시 노래로 편곡해서 마지막에 포터가 부른 노래는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타이틀에 쓰인 원곡은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로만 연주된 것인데 정말 명연이었죠. 이 곡이 수록된 Pero Ye So를 찾아 몇 년을 뒤진 끝에 캘리포니아의 TangoMan이라는 탱고 선생에게서 사기는 했는데 CD-R로 복사한 것이었죠.
이 영화는 평이 많이 갈렸는데요, 좋은 평에서 혹평까지.. 보통 탱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좋은 평을 내리기는 힘들었겠죠.. 하지만 탱고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불평은 있었답니다. 포터가 일급댄서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잠간 나오는 파블로 베론의 원래 파트너말고는 일급 여자 댄서가 등장하지 않죠. 참 혹시 샐리와 파블로가 후일 어떤 관계가 되었는지 궁금하신 분을 위해서.. 백악관에서 파블로가 그의 파트너와 춤을 추었을때 사람들에게 그의 애인이라고 소개했답니다. 물론 샐리 포터는 아니었고요.
부산영화제에서는 상영되었던 스페인의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이 솔라노스의 탱고영화에 단골 출연하던 아르헨티나의 미구엘 앙헬 솔라와 유명한 탱고댄서 후안 카를로스 코페스등을 출연시켜 만든 '탱고'라는 영화가 있죠. 이것도 평이 엇갈리는데요, 탱고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탱고레슨보다 좋지 않은 평이 많더군요. 너무 폼에 신경쓰다가 탱고의 핵심을 놓쳤다는 얘기죠.
근데 의외로 한국에 이미 나와 있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탱고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Naked Tango'란 영화입니다. (한국에서도 비디오로 출시되었다고 합니다.) 90년에 나온 영화인데 정말 의외로 미국영화입니다. 당시만해도 미국에서 아르헨틴탱고에 관해 잘 모르던 시절 '거미여인의 키스'의 각본을 쓴 레오나르도 슈레더라는 사람이 쓰고 감독했었죠. 그다지 유명한 배우는 나오지 않고요. 빈센트 도노프리오라는 인상이 강한 조역전문 배우가 탱고에 미친 깡패 '초로'로 등장합니다. (유명한 영화에 많이 나왔는데 기억나는 것은 '에드 우드'에서 술을 마시다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라"며 우드에게 충고하던 '오손 웰즈'역뿐이네요.)
이건 어떤 탱고에 관한 어두운 역사와 관련이 있는데요, 20년데 많은 유럽인들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오거나 또는 팔려 왔죠. 주인공 스테파니는 말은 이주인데..돈많은 늙은 판사의 부인으로 팔려 오는 셈이죠. 배에서 자살한 소녀를 보게되고. 처음에는 장난으로 자신이 자살한척 위장하고 그 소녀 행세를 합니다. 소녀는 가난때문에 아르헨티나로 결혼하러 오는 '알바'였죠. 유태게 미남 지코가 신랑.. 기대에 부푼 가짜 알바는 그와 결혼을 결심하는데, 사실은 그는 결혼을 미끼로 유럽에서 처녀들을 꾀어 오는 포주였습니다. 완강히 저항하는 스테파니, 그러자 지코는 아무도 당할 수 없는 뒷골목의 왕 초로를 불러오고.. 탱고가 거의 그의 인생이나 다름 없는 이 괴짜 칼잡이 초로는 스테파니를 땅구에라로 만드려고 탱고를 가르치죠. 초로에게 애정과 증오를 동시에 느끼는 스테파니와 초로의 Naked tango. 뒷골목의 칼잡이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한 칼의 탱고와 남자들끼리 누가 더 우월한가 가리기 위한 탱고 등이 등장합니다.
전반적으로 무척 어둡고 어떤 면에서는 좀 싸구려 영화 냄새도 나고... 아무래도 춤은 전문가가 없어서인지 그다지 멋있지는 않습니다만, 절망, 슬픔, 애정 등 이미 잘 알려진 탱고의 면과는 달리.. 광기가 가득한 탱고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영화죠. 동네를 뒤져 보시면 이 테이프가 하나쯤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