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0 과 300
11살 때 (1965년 - 함평초등학교 5학년) 난생 처음 3박4일의 가장 긴 여행길에 올랐다.
가을걷이가 끝나갈 무렵 새벽, 꽥꽥거리며 시커먼 연기를 뿜어대는 증기기관차를 타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간 것이다.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밤잠을 설치고 새벽같이 일어났지만 우리 모두는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로의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긴장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김제평야의 끝이 보이지 않는 너른 들판에 놀랐고, 금강철교 아래에 곱게 펼쳐진 넓은 백사장과
휘감아 내려오는 강줄기의 하얀 나풀거림은 처음 보는 신비한 그림 이였다.
한강철교를 통과할 때는 이미 캄캄한 밤으로 접어 들어가고 있었다.
철교 위를 지나는 기차는 바퀴소리를 쿵쾅쿵쾅 무섭게 울려대고, 강물에 비친 서울의 야경은
촌놈들을 두려움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서울역 건너편 건물에 설치된 재봉틀(아이디알? 브라더 ?)네온사인 광고의 금방이라도 옷을 박아댈 것 같은 움직임은 선생님께서 부르는 소리도 못 들을 정도였으니...
우리는 완전한 촌놈임을 증명해 보였다.
우리의 숙소인 지성여인숙(서울 역 부근)에서 처음 보는 흑백텔레비전의 만화광고 앞에서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창경궁, 동물원, 비원, 남산케이블카와 팔각정, 등에서 찍은 흑백사진 몇 장이 초등학교 수학여행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수학여행비용이 960원이었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남자들이 무덤에 갈 때 까지 잊지 못한다는 군번(71023653)도 기억한다.
논산훈련소 소속(26연대 9중대 4소대)도 기억한다.
그러나 요즈음 새롭게 각인되는 숫자가 있다.
300이다. 기드온의 300용사가 아닌 화순중부교회 기도의 용사 300이다.
어쩜 이 숫자도 무덤에 갈 때까지 간직되어질 영원한 숫자가 될 것 같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300에 들어가는 영광을 우리 모두가 누리면 어떨까 ?
첫댓글 집사님~ 반갑습니다~ 제목이 처음 본 사람으로 하여금 무슨 뜻이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하고 그에 대한 결론은 너무 멋집니다. 300이라는 숫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바로 기도의 300용사였다는 것이.. 저는 군번이 기억이 안나요^^ㅋ 강원도 철원에서 훈련을 받고 경기도 파주에서 근무했으며 1사단 무슨포병대데였는데 대대이름도 기억이 안나네요 ㅎㅎ 아!! 방금 생각났습니다. 629포병대대!!!! 포대는 포병숫자라는 것을 상용하는데 629를 읽을때는 육둘구라고 읽었었죠.. 와~ 집사님의 글 때문에 옛적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되었습니다~ 쌀쌀해져가고 깊어져가는 가을. 건강하게 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