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표현 2000년 9/10월호 시조평
튼튼한 서정의 힘, 삶의 힘
이 재 창
1. 형식논쟁은 계속되고
시조단의 형식 문제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시조 형식에 있어서 전통고수냐, 현대적 실험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논자에 따라서 이론은 천차 만별이지만 결국 그 이론의 끝맺음은 하나로 귀결되고 있다. 그것은 시조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지만 많은 이론을 주장하는 논자들도 결국은 기본 정형과 율격은 인정하고, 그것을 기본전제로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장파들의 실험적 시조들이 시조인가, 자유시인가 하는 논의들도 최근에 와서 부쩍 늘었다. 소장파들이 주장하는 실험적 시조들이 자유시라면 이 시대의 현대시조는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상당수의 정년퇴직파 신인들이 쓰고 주장하는 낡은 서경과 회고적인 시조는 남은 여생을 즐기는 하나의 수단으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시 몇백년을 뒷걸음치는 시조의 퇴행을 의미할 뿐이다.
또한 소장파들이 말하는 <노인후배>들의 대거 등장은 시조의 현대성을 획득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을 시조의 대중화와 보급의 차원이라고 기어이 변명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우리 시조단을 비하하는 부끄러움일 수 밖에 없다.
최근에 발표된 시조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우리 시조단이 소장파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21세기를 지탱하고 지향해 나갈 현대적 서정의 힘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2. 비우면서 받아들이는 삶의 서정
너 대신 흔들리기 위해 거친 땅에 뿌릴 박는다
줄기는 곧게 서서 사람의 키를 훨씬 넘고
널 위해 준비한 흔들림으로 갈대는 언덕에 섰다
맨 처음 꽃 피울 땐 청순한 보라였다
널 만나 흔들리면서 하얀 머리칼 되었다
단단한 줄기 그 속을 비워내기 위해서였다
꺾이고 흔들리는 것이 어디 갈대뿐이냐고
젖은 땅 습지 곁에서 너는 위로하고 있지만
갈대는 더 젖기 위해 늪으로 가고 있었다
-김영재「갈대」전문, 21세기문학
김영재 시인의 서정의 힘은 끈끈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과 흡사하다. 갈대가 하나의 식물이기 이전에 생명을 지니는 운동체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갈대의 모습에서 현대인의 삶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인식하고 있는 세계는 화려하고 사치스럽고 풍요로운 현대적 삶에 대한 물질적 반응이 아니다. “너 대신 흔들리기 위해 거친 땅에 뿌리 박고” 살 듯이 현대인의 개인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요소들을 무력화 시키려는 작자의 의도와 갈대의 서정성이 독자들을 쉽게 매료 시킨다. 또한 갈대 속에 작자의 심중이 이중으로 이미지화 되어 있다. 사람의 키를 훨씬 넘고 그 어떤 대상에 대한 흔들림으로 언덕에 서 있는 모습은 바로 우리 인간이며 현대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다. 속을 비워내기 위한 몸부림은 청순한 보라에서 하얀 머리칼로 비유된다. 그러나 우리네 삶에서 힘든 것은 갈대의 흔들림으로 비유되는 연약함 뿐이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지탱하기 위해 더 젖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갈대와 현대적 인간의 삶에 대한 끈끈한 서정성을 만날 수 있다. 어쩌면 벼랑에 서있는 한 개인의 삶처럼 갈대는 그렇게 흔들림으로서 자신을 비우고 살아가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온전히 비운다는 게 속내를 버린다는 게
흔해빠진 카피처럼 그리 쉬운게 아냐
품속에 와락 안기는 햇살마저 떨쳐야지
사시사철 곁에 와서 속살대는 바람이라도
눈인사나 건네받으며 그냥 그렇게 보내야지
소나기 내리쏟는 밤 번갯불도 사윌 줄 알고...
-이승은「인터뷰-대나무의 말」전문, 시문학 7월호
이승은의 작품도 김영재의 시적 분위기와 일맥상통한다. 김영재의 시가 끈끈한 서정성을 바탕으로한 삶을 내재적이고 정적으로 표현했다면, 이승은의 시는 좀더 동적인 분위기다. 또한 두 시인의 시적 묘사는 현대시조가 안고 있는 시조인가 자유시인가에 논의에 답을 줄 수 있는 수작이다. 단순한 서경과 회고조로 일관하는 작품들에게 이처럼 삶의 끈끈한 서정을 보여주는 참신한 시적 묘사는 그리 흔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대나무가 우리 인간에게 물어본다. 인간들도 대나무처럼 속내를 비울 수 있느냐고. 그리고 비우더라도 온전히 비울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대나무가 인지해 주는 올곧고 청렴결백성의 의지는 모든 것을 수용함으로서 버릴 것은 버리는, 품속에 안기는 햇살마저 떨치고, 소나기 내리 쏟는 밤 번갯불도 사윌 줄 아는 결백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거부의 몸짓이 아니라 비우면서 받아들이는 우리네 삶의 정서를 보여준다.
3. 달과 복사꽃, 동화적 상상력
마음 닿는 곳마다/어머니의 달이 뜬다
산자락 강자락마다/천의 얼굴 천의 모습
때로는 겨울 강 저 너머/잠든 복사꽃으로 뜬다.
-김남환「어머니의 달」전문, 정신과 표현 7, 8월호
하늘이/쏟아진다/아아/그 푸른 광장
그 푸른/한 귀퉁이/누가/찢었는지
먼 은하/전설의 사원도/발이 빠져/쏟아진다.
-강현덕「폭포」전문, 현대시 7월호
김남환, 강현덕의 작품은 형식적 유사점이 있다. 잠든 복사꽃으로 뜨는 어머니의 달과 전설의 사원도 발이 빠져 쏟아지는 폭포의 발상과 유형이 비슷하다. 그러나, 김남환의 시 세계에서 보여주는 인간 내면의 전형성과 강현덕의 시가 보여주는 동화적이고 서정적인 간결성이 사뭇 다르게 보인다.
시인도 이젠 노년에 접어 자신의 생활 곳곳에서 떠나간 어머니의 모습이 천의 얼굴 천의 모습으로 회상되는데, 시인의 마음이 어디에 있든지 항상 가슴에 차오르는 어머니의 얼굴이 바로 달이다. 그러나 때로는 시인을 떠난 강 너머의 복사꽃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시인의 어머니의 대한 그리움을 달과 복사꽃으로 묘사한 모습이 정겹기도 하다. 그러나 강현덕의 폭포는 자연을 통한 우주에 대한 동경을 드러낸다. 간결하면서도 그 의미가 사뭇 진지하다. 하늘 광장 한 귀퉁이를 찢고 나온 폭포. 거기서 동화의 나라를 들춰내는 시적 발상이 특이하다. 어릴적 동경하던 전설의 사원이 있다는 먼 은하, 폭포를 통해 쏟아지는 상상력이 참 좋다.
4. 이 시대의 중심에서 벗어난 사람들
소나무는 한 겨울을 옹이나 만들며 지낼거다
올곧게 뻗은 가지 삭정이로 부서지는
목마른 면벽의 시간 천길 벼랑 위에서
온 세상이 별 수 없이 백기들고 나앉을 때
발톱 다 빠지도록 꽁꽁 언 땅 딛고 서서
쓰디쓴 쓸개 하나쯤 보여주고 싶을거다
암팡진 이 옹이들은 늘 푸른 네 뜻일 거다
조금만 틈을 보여도 서릿발이 서는 세상
지금 또 옹이 하나가 명치끝을 치받는다.
-임삼규「소나무는 옹이가 많다」전문, 정신과 표현 7, 8월호
변두리 나무들도/저간엔 서열이 있어
쥐똥나무는 한사코 중심에 서지 못한다
낙향한/술벗 현씨처럼/오일장에나/들앉는 것.
밀감꽃향 마구 토하는 섬의 오월햇살
좁쌀만한 꽃들을/좌판에 풀고 보면
쥐똥꽃/쥐똥나무꽃/아이들이 깔깔댄다
몇 년째/세금고지서를 받은 적이 없다
늦가을 끝물쯤에/동박새가 거두어 갈
쭉정이/쥐똥 열매들/노숙자의 동전 몇 잎.
-홍성운「나무야, 쥐똥나무야」전문, 현대시 7월호
임삼규와 홍성운의 작품은 소나무와 쥐똥나무를 통해 삶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임삼규는 소나무가 겨울을 나면서 옹이가 생성되는 과정을 통해서, 홍성운은 변두리에 뿌리박고 사는 쥐똥나무를 낙향한 현씨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 소외를 말한다.
최근에 우리는 IMF라는 고난의 시절을 맞이했다. 직장이라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고개 숙인 모습으로 지내야 했다. 고개 숙인 아버지들의 고민은 일터에서 쫒겨나는 마음의 상처와 새로운 일터를 찾아 떠나는 방황과 좌절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임삼규의 작품은 이러한 세태들에 대한 묘사를 소나무의 옹이로 대변한다. 쓰라린 삶의 시간들을 버티기 위하여 한 겨울을 옹이나 만들며 지내고, 천길 벼랑 위에 서있는 면벽의 시간들로 감추어 나타난다. 눈이 내리면 백기들고 나앉으는 세상,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낭만은 아니다. 그들의 현실 앞에 천둥처럼 내려 앉는 좌절감이다. 하지만 이러한 좌절감도 좌절로 끝나지 않는다. 소나무의 옹이 속에 감추어진 현실 극복 의지들이 발톱 다 빠지도록 꽁꽁 언 땅 딛고 서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다. 조그만 틈을 보여도 우리의 삶의 한 구석을 비집고 들어오는 악화의 무리들. 임삼규는 쓰디 쓴 쓸개 하나를 준비하며 좌절의 현실을 극복하려 한다. 암팡진 옹이 하나가 탄생하는 것처럼 삶은 새롭게 태어난다.
홍성운의 작품은 임삼규에 비해 좀더 현실감이 드러난다. 이 시대의 중심에 서지 못하는 사람들. 변두리에서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한 그루 쥐똥나무처럼 우리 인간들에게도 지위와 직책에 따라 서열은 매겨진다. 변두리에서마저 소외 받는 쥐똥나무처럼 낙향한 실직자에게 서열이란 있으나마나다. 중심에 서지 못하는 그들은 현씨처럼 오일장에서 시간을 때우거나 조그만 좌판에 한 시대의 인생과 좌절을 삭인다. 쥐똥꽃, 쥐똥나무꽃처럼 아이들이 갈깔거리며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현씨는 오일장에서 산다. 쥐똥열매와 노숙자의 동전 몇 잎에서 현씨에게 징수 할 세금고지서는 배달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대의 중심에 서지 못하는 쥐똥나무처럼 낙향한 현씨의 모습에서 실직의 아픔과 재도전의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5. <옴니버스 시조>의 다양성과 새로운 창작의 길
노여움도 기꺼움도 가릴 겨를없이 다 마다하고
산그늘 뉘엿한 꽃덤불에 마지막 배내똥 내밀고
숨가뿐 이승 막장을 홀연히 건널 수만 있다면.
하 그리워도 속절없는 굽이마다 잿빛 어룽인가.
고갱이 온갖 것 다 갉아먹고 데쳐먹고, 섬유질․유기질 반죽 말
좃만한 말뚝똥 풀섶 위에 기운차게 박아놓고…. 골기와 이끼 푸른
추녀 끝 솜털구름 머흘던 그 정갈한 내 정낭의 한낮, 볼기짝 닿는
자리 융단 두른 매화를 걸터 앉아 사상낙매(沙上落梅)에 봄비
흩날리듯 뒤를 볼 때
사직의 대들보 한쪽 그렇게 무너져 내리고.
깜냥대로 놓였다가 깜냥대로 흘러 가라 하는가.
당산 무더기만큼 당산 무더기만큼, 금만가 금박 두른 된똥
한번 다스리지 못하고 대명천지 밝은 날 활개똥 구린 냄새 멀
리 북악산 기슭에 실어 보내고…. 아서라 아서라, 노여움도 기
꺼움도 가릴 겨를 없이 다 마다하고.
해거름 물수제비 뜨듯 표표히 떠날 수만 있다면.
-윤금초「해거름에 물수제비 뜨듯-똥에 관한 한 연구.2」전문, 다층 여름호
사설에 대한 확실한 이론 정립이 되어 있지 않지만 최근들어 사설시조에 대한 관심들이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평시조와 연시조, 사설시조가 가지는 각각의 역할을 구분짓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윤금초 시인이 주장하는 <옴니버스 시조>는 타장르에 비해 열세인 시조의 다양성을 획득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며, 새로운 창작의 길을 모색하는 현대시조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일련의 시조 양식에 대한 현대적 실험들은 삼장육구를 낡고 퇴행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정형의 진정한 의미와 시조의 형태적 관계를 유기적이고 긴장된 관계로서 인식함으로서 시조의 현대적 의미를 둘 수 있다고 본다. 위에 인용한「똥에 관한 한 연구」의 부제가 붙은 그의 작품「해거름 물수제비 뜨듯」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그에 대한 확인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윤금초 시인의 <옴니버스 시조>에 대한 견해를 듣고 이 글을 끝내고자 한다.
“한 편의 連作時調 속에 평시조-사설시조-엇시조-양장시조 등 다양한 시조 형식을 모두 아우르는 混作형태를 이루고 있다.『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형식을 지배한다』는 전제 아래 1970년대 이후 시도된 새로운 시조형태이다. 윤금초의 장편시조「청맹과니의 노래」가 그 시발점이며, 근래 패기에 찬 젊은 시조시인들이 다투어 試圖,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현대사회의 複雜多技한 문명의 흐름을 포착하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오늘의 시대에 적응해 가는 인간들의 사고와 심리의 重層構造를 표현하기 위해서는「표현 容量의 확대」는 필수적이다. 286시대, 386시대는 이미 과거 역사로 기록되고 있으므로, 이제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하는 새로운 표현양식을 개발해야 한다. 시나 소설을 구획 짓는 장르개념이 차츰 허물어지고 있는 요즘, 장편서사시조 같은 스케일이 웅장하고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다양한 變奏」를 시도할 수 있는「옴니버스 시조」가 활발하게 창작되어야 한다”
*이재창 시인은 /
1959년 광주광역시 학동에서 태어나
1978년 《시조문학》에 「옛 동산에 올라」로 1회 추천과
1979년 《시조문학》에 「墨畵를 옆에 두고」로 2회 천료,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거울論」 당선,
1991년 《심상》 신인상 시 「年代記的 몽타주 · 2」 외 4편이 당선돼 문단 활동.
시조집 『거울論』, 시집 『달빛 누드』,
창작과비평 6인 시조집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문학평론집 『아름다운 고뇌』 등이 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10여년간 〈시조창작〉을 강의함.
현재, 濟州와 光州에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