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번개팅에서 만난 여인들
서울 번개팅 후기를 좀 써 올려보라는 일련의 성화가 있어 한자 써 보려는데 너무 방대하여 어디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다. 하여 남자의 생물학적 본능상 일단 내가 대면한 여인들에 대한 소감을 몇 자 적는 데 그칠까 한다. 남녀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주제화해야겠지만 남자에 대한 시선은 역시 여자의 것이라야 깊이가 있는 것, 남자 이야기는 여성 동기에게 넘기겠다. 또 나야 여자 동기들에게 내밀한 관심 보인다고 질투할 여자가 옆에 있는 것도 아니고 ㅋㅋㅋ.
상경 전야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나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서울 영등포
영등포 기차역에 내리니 과연 좀 추웠다. 순도 높은 크리스탈처럼 쨍쨍한 대기가 엷은 햇볕에 부딪혀 눈을 시리게 했다. 올 겨울 최고의 추위라 했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에 이른다고도 했다. 하지만 까짓 추위란 게 대수인가? 50년 지기를 만나러 서울에 왔는데. 그리움의 도수를 추위의 도수가 넘지는 못했다. 그런데 서울 땅을 둘러보니, 그 엄동에도 살양말에 졸가리(종아리)를 훤히 내놓고 다니는 처자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그러니 사나이 대장부가 겨울에 날씨 좀 춥다고 호들갑 떠는 건 아니 될 일이었다. 나중에 보니 50줄에 들어선 우리 동기들 중에도 섹시한 살양말을 땡겨올리고 온 여인이 있었다. 이 시대에 누가 아름다움에 대한 여인의 저 도도한 집념을 막을 것인가! 젊으나 늙으나 섹시는 미덕, 나라고 어찌 막을 손가. 눈이라도 즐거우면 그만이지.

회동 장소인 옥임이네 집(옛골)으로 가기 전에 서울 친구들과의 다른 미팅이 한 탕 더 있었는데, 6시 가 다가오자 말순이 한테서 잘 도착했는지 확인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는 사이 내 입에서 사투리와 함께 말순이라는 말이 몇 변 흘러나왔는데 옆에 있던 지인들이 입가에 웃음을 흘렸다. 시대를 초월한 저 순정한 이름에 자신들도 모르게 터져 나온 웃음이었던 것. 그 이름, 60년대의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정겨움의 대명사 아니던가! 재경번개의 출발도, 부르스의 서울 행차도 기실 말순이의 유인력 덕분이었다. 말수니, 서울에 가 연락을 하면 언제나 흔쾌히 달려 나오는 멀고도 가까운 여인.
그러나 소중 12회 졸업 앨범에 그녀의 사진은 없다. 가난하고 궁핍했던 그 시절, 그 시대의 평균보다 더 가난했던 말순은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다고 한다. 원래는 언실에서 살았고(언실은 이날의 핵심 화두였다) 초등학교도 봉의에 이름을 올렸지만 곧 질매지 너머로 떠나야 했다. 그 후 중학교도 3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서울로 떠났다. 그런데도 4년을 다닌 사람보다 소중에 더 깊은 애정을 보이고 있다.
그사이 세월은 흐르고 소보 시골의 정서를 기반으로 서울의 세련된 문화적 감성까지 획득한 모던한 여인이 되었다. 내가 대화의 주제를 거론하는데 고민할 필요가 없는 흔치 않은 르네상스적 교양녀, 늘 고마워하고 있다. 소중 시절의 애수에 찬 눈빛이 이제 저리도 환하게 바뀌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말순히의 전화를 받고 별을 헤는 심정으로 옛골로 향했는데, 불현듯 시 한수 내 가슴에 떠오르는데...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오늘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우리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옥임과
별 하나에 명숙과
별 하나에 순자와
별 하나에 오숙과
별 하나에 진숙과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나는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썼던 소녀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봅니다.
그렇다, 저 이름들이 옛골에 선착해 있던 재경 여인들의 명단이었던 것.
옛골 옥임이네
6시 반 쯤 되어 옥임이네 옛골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서울 친구들이 미리와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에 윤동주의 시를 빌어 언급한 저 여인들 외에 종연, 기진, 광열이가 벌써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면면(최소한 카페에 신고되지 않은)이 있었으니 손기수와 이병균. 신임 회장이 몸소 특임 보좌관을 데리고 등장한 것인데, 몇 가지 중요한 주제를 품고 왔다.
그러니까 손회장은 전날 대구에서 회동을 열고 12명에 이르는 임원진을 구성한 바, 사업계획도 어느 정도 구상해 놓았다는 것. 동기회에 대한 손기수의 관심과 열정은 익히 아는 바이지만 회장이 되고는 명실공이 날개를 단 셈. 천안의 모 여인은 아예 출발도 못한 눈보라 길을 포항에서 달려온 것이다. 조만간 12회 동기회의 새 임원진의 전모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친구를 맞은 옥임의 인심은 엄동설한의 추위 같은 건 가벼이 무시하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뜨겁던지 옛골 안은 춘삼월 봄날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불 한 조각 안 덮었는데 궁둥이 한 쪽이 거의 익어있었다. 음식이야 근 10년에 이르는 노하우에 우정의 양념까지 쏟아 부었으니 나 같은 둔각으로는 평가할 처지조차 못 되었다. 후덕한 윤각에 요염한 웃음, 50대 여인의 조화라면 최고의 조화 아니겠는가.
내가 옥임의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 모던한 아름다움에 지성적 눈빛의 아가씨 한 명과 마주치고 놀랐는데 역시 옥임이를 어미로 둔 여대생이었던 것. 공부를 잘 해 뽑힌바 되어 미국으로 연수 받으러 간다는 데 역시 모전모녀. 씨가 아무리 좋은들 받아 키우는 것은 밭, 청년들이여 먼저 지력을 살필지어다. 앗, 실수! 이날의 후덕한 인심의 근저에는 실상 옛골의 사장 즉, 옥임의 낭군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인사말 외에 대화를 해 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에서 보듯이 그 인정과 섬세함이 몸에 배어 있다.

이날 내게 특별했던 두 여인이 있었으니 오숙이와 진숙이. 내 부실한 양기를 눈치 챘는지, 양 옆에 좌청룡 우백호로 앉아 부지런히 음식을 올려주었다. 나도 내 허한 육신의 현실을 알고 있던지라 오랜만의 진미에 구미가 땡겼을 뿐 아니라 두 숙이의 섬섬옥수를 물리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무리였다. 하지만 난 아직도 하얀 종이에 말아먹는 그 음식의 이름이 뭔지 모르겠다. 아무튼 옥임이네 집 특미 중의 하나인 모양. 좀 안타까웠던 것은 오숙이와 진숙이의 경우 개인적으로 그렇게 내밀하게 대면한 것이 50년 만에 처음이었는데 사진 찍으랴 허기를 채우랴 제대로 대화를 해 보지 못한 점이다. 다음에 또 기회가 오면 특히 오권사와는 내 한 판 담론을 펼쳐보리라 기대한다. 당신의 믿은은 어디에 근거하는지?
시간이 좀 더 지나자, 드디어 대구의 미녀 둘이 도도한 북풍의 저항을 헤치고 도착했다. 희숙이와 순자, 고전적 여인의 이름으로 이만한 것이 어디에 있겠나.
희숙이로 말하자면 대구에서 생존의 현장에서도 종종 만나지만 늘 신세를 지는 드높은 고참이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도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법, 나는 나중된 자로 기꺼이 고개 숙여 예를 표한다. 그네는 내게 언제나 편안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는데 그 수위가 한결같다. 그네의 미모로 말하면 동안이 대세인 이 시대에 그만한 자연 동안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사진빨까지 더하면 그 청연한 이미지를 누가 당하겠는가.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것은 그녀의 신심이 너무 돈독하여 속세의 주제로는 손톱도 안 들어간다는 것, 도전의 유혹을 아니 느꼈던 것은 아니지만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과 경쟁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 일찌감치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도 역시 2차 데카당스파의 음주가무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숙이와 마찬가지로 희숙이도 속세의 친구를 위해 열심히 고기를 굽고 술잔을 채우는 모습을 보니 역시 그 분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내가 노파심에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예수님이 세상에 등장해 가장 먼저 내 보인 기적이 물로 와인을 만든 일이라는 것. 물론 여기까지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대략 아는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 그러나 진정 주목해야 하는 점은 예수님이 와인을 만든 시점이다. 그는 가난한 집의 잔치를 돕겠다고 와인을 미리 부주한 것이 아니다. 괜찮은 집에서 오랫동안 준비한 와인이 동이 난 뒤 2차를 위해 와인을 급조해 제공했던 것이다. 자그마치 100리터짜리 6개의 독을 와인으로 채운 것. 그러니까 예수님은 잔치 집의 사람들이 술을 웬만큼 마신 뒤에 아예 맛이 가도록 추가로 크게 쏜 것이다. 한 마디로, 적당히 마시기는 당시 예수의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는 말쌈,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순자, 지난 동창회 망연회 때, 그녀가 등장한 것은 12회 동기회의 한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연곡에서 3년 동안 알령 고개를 넘어 다니며 그녀의 집을 넘겨다보았지만 눈길 한 번 마주치기 어려웠다. 최소한 내 기억으론 그 3년의 순자는 책 외에 검은 머리의 생물을 가까이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용기를 좀 내 볼 수도 있었지만 대체로 세속 남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책 냄새나는 여자는 두려웠다. 그런데 스무 살을 한 참 넘긴 어느 시점, 그녀에게서 여름 엽서 한 장이 날아왔다. 그걸 기억하는 단서는 딱 하나. von 순자. von은 독일어로 영어의 from에 해당하는데, -누구로 부터라는 뜻이다. 역시 문자로 나를 테스트해온 것이다. 그 단 한 장의 엽서가 소중 이후 그녀를 기억하는 유일한 흔적이지만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게 힘에 겨워. 그런데 지난 망연회 때 다시 만났으니 대략 2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만난 것이다.
참으로 다행한 일은 그네가 더 이상 책순이의 경직된 세계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소주 1.5병을 한 자리에서 마실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가 속세에 충분히 진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서울 번개까지 원정을 자청한 것을 보면 더 이상 창백한 페이퍼의 연인은 아니라는 것. 과연 이날 순자는 패션에서, 주량에서, 담소에서 속인의 경지를 충분히 소화해 내고 있었다. 아쉬웠던 것은 서울에서 유학하는 딸의 부름을 받고 일찍 자리를 떠나서 좀 더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 것. 하지만 앞으로 30년의 세월을 내려가 시간여행을 할 기회가 전혀 없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같은 대구 바닥에 있기도 하지만 그네가 20년 전에 떠나온 소보의 추억에 새삼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재경번개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여인은 경라. 공사 다망한 사람이라 모두 이해했다. 경라로 말하자면 초등학교 때, 언실 최고의 모범생. 학교에서 봉황교를 건너고 범바 고개를 넘어 언실 철판 다리를 건널 때까지 오가는 길이 많이 겹쳤는데, 워낙 앞만 보고 걷는지라 6년 동안 옆모습만 본 것 같다. 그 후 경라의 이미지란 대체로 프로필이었는데, 중학교 때는 어차피 바로 같은 동네 처자들을 재외하고는 바로 쳐다본 여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내, 왜 그리 내성적이고 소심했던지. 때 늦은 후회, 이제와서 한들 무엇하랴.

하여간 프로필이 곱다는 것은 권력의 은유, 과연 경라는 사회적으로도 힘깨나 쓰는 위치에 있다고 한다. 소중을 떠난 이후 20대에도 몇 번 만났는데, 그 때 이미 캐리어를 쌓아가던 여인이었다. 그녀의 어투를 보면 쟁반에 구르는 구슬이 따로 없고 은하수의 얼음 깨지는 소리가 따를까 싶다. 목소리만으로도 틈 없이 범접키 어려운데 노래 소리 또한 보통 세련된 것이 아니었다. 프로필과 목소리와 가창력, 이 삼박자의 조화란 중년 여인의 핵심 매력이자 미덕이 아니고 뭐겠는가.
이날 모임에서 가장 조용했지만 가장 심각한 관심을 받았던 미모의 여인이 있었으니 그 이름, 명숙이. 물론 중학교를 같이 다니기는 했어도 명숙이를 명숙이로 인식하고 만난 것은 역시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이었다. 강산이 3번 반은 변한 세월이었다. 봉의 최고의 골짝 웃언실의 소녀, 그녀에 대한 기억은 늘 노천명의 시 한 구절을 생각나게 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명숙이, 봉의국민학교에서 가장 먼 길을 걸어 다녔던 소녀. 동기라고는 순우 한 명 밖에 없이 홀로 그 먼 길을 사슴처럼 뛰어 다녔던 여학생. 살점 하나 안 보이던 긴 졸가리가 이제는 성숙한 여인이 되었고 애잔한 목을 기울이고 앉아 있는 폼이 과연 사슴의 자태였다. 명숙이를 서울에서 다시 보게 된 것은 거의 신비에 가까운 인연. 그러니 만남의 인연이란 게 뭔가?

불교 쪽에서는 맹구우목이란 말이 종종 회자된다. 인도양 바다 밑에 눈 먼 자라가 살고 있는데, 백년에 한 번씩 햇볕을 쪼이러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 바다 위에는 구멍난 판자 조각 하나가 떠돌아다니고 이 구멍은 자라의 목이 들어가기에 딱 맞는 크기다. 눈 먼 자라가 수면으로 올라와 이 판자 조각을 만날 확률이 바로 지상에사 인간이 인간을 만나는 인연이라고 한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우연이 아니야!
저 불교우화가 괜스런 것이 아님은, 과연 명숙이의 불심은 심히도 깊다고 한다. 내가 간접화법을 쓴 것은 그 긴 시간 동안 그녀 옆에 엉덩이 한 번 붙여보지 못했기 때문에 직접 들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뭇 남정네들이 경쟁적으로 다가가는 바람에 사진 찍는 책무를 맡은 내게는 그 옆에 앉아 볼 기회가 오지 않았다. 내 언제 다시 기회가 오면 그녀가 내장하고 있는 불심의 동기와 근원에 대한 스토리를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수양 깊은 보살 빛 눈망울에서 과연 무슨 사연이 흘러나올 것인가!
노래방에서의 아름다운 광란

노래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없다. 옥임이네 집 지하에 있는 노래방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자정이 훨씬 넘어서의 일이었는데, 그 때 나는 이미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해있었다. 카메라를 열어보고서야 나도 거기 갔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12회 동기들 중 최고의 엔터테이너인 종연이가 너무 일찍 맛이 갔다는 것. 물론 나머지 인사들에게는 그게 오히려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광열, 병균, 기진, 말순, 옥임, 모두 마이크 잡으면 시간을 망각하는 고수들이라 기회가 좀 더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보니 나를 비롯해 대체로 흥겨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내 기억의 필름에 다시 뭔가 맺힌 것은 아침이 되어서였던 바, 옥임이네 집 마루방이었다. 맛 깊은 회장국을 얻어먹고 병균의 구수한 입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는데 한나절이 다 되어 일꾼들이 출근을 하고 있었다. 하나 둘 작별을 고하는 중에 나는 애숙이에게 전화를 했다. 대구 내려가기 전에 한 번 보고 가야겠다고 했더니 맨얼굴을 들고서라도 나오겠다고 했다.
다음 날 그리고 던킨 도넛에서의 애숙이
전날 저녁 코앞까지 왔다가 추위에 택시를 잡지 못해 돌아간 애숙이. 그네가 오전에 지하철을 타고 교대 역 근처 던킨 도너스 집에 나타났을 때, 나는 파리 인상파의 화폭에서 한 여인이 걸어 나오는가 싶었다. 내겐 애숙이 역시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 거의 마지막 씬이다. 경라와 마찬가지로 애숙이도 언실녀인데 가을날 봉황교 전 후에 줄줄이 피던 코스모스 같은 소녀였다. 뒤에서 조금만 놀려도 눈에 물기를 머금고 도망가던 소녀, 그녀가 35년 만에 청초하고도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순간 밀가루 도넛 집에 그녀를 부른 게 큰 실례가 아니었나 생각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역시 시골정을 발휘하여 푸짐한 순대 국밥으로 우리의 허기를 채워주었다. 너무 짦은 만남이었고 너무 빠른 작별이었다. 카메라를 열어보니 유감스럽게도 마지막 두 컷의 사진이 베터리 부족으로 필름에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아,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한 송이 코스모스의 형상.
언제나 트이고 싶은 마음에
하야니 꽃피는 코스모스
돌아서며 돌아서며 부딪치는
물결 같은 그리움
송두리째--희망도, 절망도,
불타지 못하는 육신
늦어도 코스모스 피는 계절에는 한 번 더 보게 되지 않을까. 물결 같은 그리움에 밀려 오가진 않는다해도 서울-대구 왕래하는 일이야 그 사이 한 두 번 쯤은 있을테니까.
귀향길 버스 안에서
1박 2일의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귀향길에 올랐다. 짧으나 짧지 않은 여정을 마치고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 그때서야 피곤과 술로 인한 두통이 전신을 엄습해왔다. 비몽사몽간에 전날의 그림들이 뇌리를 맴돌았고 창밖으로 스쳐가는 겨울바람에 애련의 울림이 들려왔다. 세월은 흐르고 바람은 오고 가는 것. 산다는 건 운명을 지고 가는 것,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운명, 운명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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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편의 드라마 같구먼. 잘 보고 간다~
k0691, 정체를 드러낼 때가 되지 않았나? 좀 알고 지내지.
k는 김씨라는 걸테고 0691전화번호 끝자리? 누굴꼬?
봉의 출신녀 언실녀 중간자 K 리혀설로~~~
언실녀라고? 요즘 언실이 대세군, 그런데 언실엔 여인들이 하도 많아.
무척 힘이 든것처럼 보여요 너무 심오한 옛것을 기억한다는것이 얼매나 애매모호하냐 말이야 난 머리가 어디로 갔는지 그런 기억이 별로 생각나지 않으니 말리요 어찌하든 긴야기거리 잘 읽어보았소...수고 했소이다...
애매모호가 바로 추억의 매력. 좀 무리하게 끌어맞춘 경향이 있지? 불면의 밤에 상념이 날개를 타다보니. 그런데 구미 번개는 언제 치노?
21일 구미 소중회 모임이요 6시반 박대통령 고향인 상모동에서 한다오 낙동생오리 식당 054-465-8952 사진찍으려면 오이소...
블스야말로 진정 여성을 사랑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구려 쉰을넘긴 여성들의 내외면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하니 말일세,원래 내가 술잔을 들면 후반전은 생각않는 사람이라 일찍맛이가는 버릇이있네 또한 감기기운도 겹쳐 그날 컨디션도 안좋았고,일요일엔 처가쪽 친척 잔치가있어 먼길온 님들 배웅도 못하고 미안한맴 뿐일세 담에 한잔 사리다.전하는 왜 안되는고?
부르스가 여성을 사랑한다고? 하하하. 땡규! 이해하네. 자제가 널브러져 해삼처럼 퍼져 있는 모습이 내 디카에도 있지만 우정을 생각해서 공개하지 않았네ㅋㅋㅋ. 허나 과히 아름다웠던 망가짐, 망가짐은 자신을 직시하는 최고의 경지
아이구야~~~, 대작이네! 관찰력이라기 보다는 관심이라 말하고 싶고 정성엔 그저 감동일 뿐이다,
까마득한 중학 시절의 우연한 흑백사진속에서 애수를 읽어내다니 역시 문학인의 관찰습성에 기인했으려니! 작품감상 잘 했삼^&^
고개 튼 모습이 과히 슬픈 형상이었네. 초 조숙한 여인의 감성인듯 ㅎㅎㅎ. 그리 밝고 낙천적으로 발전했으니 감사의 기도라도 올려야 할 듯
우째 여인들의 듣기좋은말만 골라골라 했네..역시 블스의예리한눈 알아줘야겠구만.............
난 사실과 진실만 말하도록 교육받은 사람. 서울에서의 옛골 인심과 풍성함 하마 잊을 수 있겠나. 고마우이!!
아리아를 들으면서...경규야어린시절 먼여행을다녀온 기분이랄까......암튼너무좋은글읽게해줘서행복하고잠시눈을감고 음악을들으면서 회상하고싶다경규하이팅........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들쳐내며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난 저 연주를 들으며 연곡 받두렁을 헤멘다.
엊그제 읽다가 일이 생겨 다 못 읽어 오늘 다시 들여다 보니...................으이그 징하다 징해 ㅎㅎ 사춘기때 눈길 한번 주지도 못했던 여인들을 하루만에 어케 요래 꿰뚫어 봤는지, 어릴때 말 한번도 못 건낸 한풀이 제대로 하는거가?
눈발 좀 휘날린다고 천안에서 서을행을 포기하다니, 좀 아쉬웠네. 또 기회는 오겠지. 그때는 건내온 애틋한 사연들 좀 풀어놓길!
1박2일에 이런 작품이 나오다니 !!! 실력 인정하노라~~~~
하루 밤에도,아니 한 시간에도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다. 기회만 주면 ㅋㅋㅋ.
연곡의 경규 맞지? ^^*
반가워.
우리 친구들 만난 이야길 정성들여 올려줬네.
설명글과 함께 읽으니 모두 기억난다, 다만 오숙이는 옛얼굴이 연결이 안 되네.
친구들 고운 모습, 한참을 보고 간다. 고마워, 경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