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은
높이 338m. 산 전체에 화강암으로 된 암반이 노출되어 있으며,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곳곳에 솟아 있어 조선시대부터 명산으로 알려져왔다. 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 중이 장삼을 입은 듯한 선바위(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4호)는 예로부터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잘 이루어졌다고 하여 유명하다. 일제강점기에 남산에 있던 무신당인 국사당을 선바위 옆으로 옮긴 뒤부터 무속신앙과 더욱 밀착되었으며, 주위에 많은 무신당이 생겨 지금도 굿이 성행하고 있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는 서울의 성곽이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는 자하문·명륜동·동대문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사직동·홍제동까지 이어진다.
제1코스
독립문역1번출구 --> 세란병원좌측 -->현대아파트내 무학동주민센터 -->국사당 --> 갈림길계단--> 좌측선바위-->
갈림길계단(회귀) --> 우측계단 -->성곽길 -->범바위 --> 정상 -->성곽길 --> 부암동(창의문)
제2코스
독립문역3번출구 --> 행촌의원(동네길) -->독립문초등학교 -->쉼터 -->등산길입구 -->성곽길 -->범바위
제3코스
경복궁역1번출구 -->사직공원좌측길 -->종로문화체육센터-->옥경슈퍼앞등산길입구 -->성곽코스길-->범바위
제4코스
경복궁역1번출구 -->사직공원좌측길직진 -->인왕산길 --> 황학정 -->인왕천약수 -->인왕산
북악산제1코스
안국역2번출구 -->02번 마을버스 -->성균관대후문입구하차--> 도로따라5분후와룡공원-->말바위안내소 -->
숙정문 --> 곡장 --> 청운대 -->백악마루(백악산) -->창의문(자하문)
북악산제2코스
경복궁역3번출구 --> 버스승차-->자하문고개 (창의문)하차--창의문안내소 -->숙정문 -->와룡공원
인왕산 기차바위
얼굴바위
모자바위
선바위
인왕산 국사당은 무속신당(巫俗神堂)으로, 태조 이성계(李成桂)와 무학대사(無學大師), 그리고 여러 호신신장(護身神將)을 모시고 있으며, 특히 무학대사를 모시는 데에서 국사당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원래 이 당은 남산 꼭대기 곧 팔각정 자리에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5년(1396)에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고 태종 4년에는 호국의 신으로 삼았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목멱신사(木覓神祠)라고도 불렀다.
이 당은 1925년에 남산에서 이곳으로 이전되었는데, 이것은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저들의 신사인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국사당이 높은 곳에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이전 장소를 인왕산 기슭으로 택한 것은 태조와 무학대사가 그곳에서 기도하던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전할 때 그 재료를 그대로 옮겨 원형대로 복원하였다고 하며, 당의 전면 3칸에 왼쪽에 한 칸이 붙어 있었으나 뒤에 오른쪽 한 칸을 붙였다. 따라서 전면은 약 20여m이고 측면은 9m정도의 크기이다. 기둥 칸살은 전면 어간(御間) 약 2.6m에 협간(夾間)과 측간(側間)은 모두 2.4m로, 내부 넓이는 모두 11평이고 바닥은 마루이다. 또 마루 좌우에는 온돌방이 있는데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다. 마루 전면과 좌우 일부에는 무신도(巫神圖)가 걸려 있고 무신도 앞에는 제상이 있으며 마루는 굿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일반건물보다 단순한 구조이긴 하나 구조는 큰 편이며 집 전체적인 구성은 견실하고 간소하면서도 방주(方柱)의 실귀〔?刻〕이나 문살문의 새김 등과 같은 세밀한 부분에서는 최소한의 세련미가 가해져서 우아한 면도 엿보인다. 또 대들보의 후림이나 서까래의 배흘림, 규격 설정 등에서 경공(京工)의 솜씨를 엿볼 수 있어서, 영조(英祖)·정조(正祖) 이래의 견실과 간결을 위주로 지어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