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북동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프랑스령(領)의 기아나(Guiana),
악마의 섬이라 이름 붙은 절해 고도에서 세번째 탈출을 시도하는 빠삐용,
그는 청춘을 감옥에서 다 보내고 만 뒤였지만 끝내 자유의 몸이 돼 여생을 알바니아에서 보냈다고 한다.
요즘은 관객들 반응이 어떤지 모르나 예전 이처럼 감동적인 장면에선 다들 박수를 쳤었다. 촌스러운가?
* 탈옥 후 쓴 후기가 2백5십만부 팔렸다고 하네요. 당시 사정상 밀리언 셀러가 드물었을 텐데, 곱배기 하고도 절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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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1848년)에 프랑스 정부는 주민들이 혐오 시설로 여기는 교도소를 식민지에 설치함으로써
국내에서의 교도소 유지관리 비용도 절감하는 일거양득의 길을 모색,
가장 변방의 버려진 식민지 기아나에 교도시설을 세운다.
남미 북동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그곳은 울창한 열대우림이 해안선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 뒤덮여 있는 곳이고,
일부 외딴 섬들은 높은 절벽에다 바다엔 상어가 몰려드는 등 탈출 불가능한 천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악마의 섬으로 불렸다.
앙리 샤리에르(빠삐용)를 포함해 약 7만명의 중죄수가 1852년과 1939년 사이에 이곳에 이송된다.
이들을 정부당국은 갱생의 가망이 없는 자들로 간주, 설사 형기를 채우더라도 고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게 추방령까지 내렸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습기 많은 적도의 열대우림 지역인 이곳에서
죄수들 중 90%는 형기를 채우기도 훨씬 전에 말라리아나 황열에 걸려 죽었다고 하니.
이 형무소는 1953년 폐쇄되기까지 프랑스의 마지막 유형지로 남아 있었다.
지금은 해안가 쿠루(Kourou)에 프랑스가 주축이 된 유럽우주센터(European Space Centre)가 들어서서
위성발사 기지로 각광받고 있다.
위치상 적도에 있어 정지 궤도 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비용 절감 등 최적의 조건을 갖춘 탓이다.
또한 기지를 유지 운영하는데 필요한 상당한 귀화 노동력을 끌어들이게 됐는데,
임금이 싼 라오스 등 동남아 농부들이 와서 바꿔놓은 시장터가 술렁거리고, 물가는 프랑스 못지 않게 높다고 한다.
* 형무소로 악명 높았던 기아나(Guiana), 감옥의 잔해가 관광거리로 남아 있다.
* 영화의 마지막 촬영지, 호주 시드니의 왓슨 만(Watsons Bay)에 있는 갭 파크(Gap Park).
빠삐용의 마지막 탈출 장면은 기니아가 아닌 이곳 절벽에서 촬영됐다.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시드니항이 멀찍이 보이고, 시선을 반대로 돌리면 풍광이 이렇게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