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은 먼저 안병무의 민중 신학 사상을 조선사상사의 측면에서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조선의 퇴계 이황의
사상과 그에 대하여 반론을 펼쳤던 기대승과의 8년에 걸친 논쟁을 소개
하며 이러한 조선 사상사적 배경 속에서 조선에 기독교가 수용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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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을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도올은 “기독교가 사상의 황무지인 조선
땅에 들어와 조선을 개화시킨 것이 아니라 깊고 통찰력 있는 사상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조선에 들어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조선사상사에
대한 이해와 그 배경으로부터 기독교를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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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 아래에서 안병무의 민중 신학과 한국인 특유의 사유체계를
비교하며 안병무의 ‘민중구원론'을 언급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다. 오늘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은 민중이다. 우리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민중의 수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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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 민중의 부름이 곧 메시아의 부름이다.
이 부름에 응답하는 실천을 통해서 해방을 경험한 사람이 메시아적 구원을
경험한다. 안 병무는 오늘의 민중사건 속에서 현존의 그리스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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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도올은 “민중 신학에서의 민중은 오직 고조선 이래의 한국적인
체험을 전제로 한 개념”이지만 “갈릴리의 오클로스는 로마제국이 기독교
제국이 되면서 정체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조선의
민중은 반만년 동안 교회라는 조직이나 초월자의 존재 억압 속에서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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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았으며 권력의 폭압에 의한 비참한 삶의 현실은 한으로 승화되어 다양
한 예술을 창조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항거하였고
의거를 일으킨 것이 민중 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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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선의 민중은 문자를 자유롭게 활용하지는 못했다고는 하나 결코
무식하거나 무지하지 않았고 그의 삶 속에서 이미 하나님을 체화시켰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타율적 구원이 아니라 자율적 구원이라는 민중 신학적
외침은 조선의 민중에게는 자연스러운 테제”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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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은 “안병무의 민중 신학은 한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신학 체계”라며 “
한국기독교는 갈릴리의 예수로 돌아가야 한다고“ 힘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역사와 구원은 민족 정신사를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이루어져 가야 한다”고
전제하고 '우리는 과연 우리 역사로부터 무슨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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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한국교회, 신학 없는 목회로 인하여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
교회가 안 병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다시금 일어나는 민중 신학의 계승
분위기와 더불어 예수 정신을 회복함으로써 미래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에
귀추가 주목 됩니다. 도올 신학 강의를 30강쯤 들었지만 아직까지 뭘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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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은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해한 한 가지는 도올은
불트만, 동학, 민중 신학, 안 병무, 진보주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안병무의 생각은 民心(민심) = 天心(천심)이라는 맹자적 사유와 통하며
구원의 주체를 인간(민중)밖에 설정하지 않은 급진적 사유는 동학의 무위이화
와 맥을 같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