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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토요일.흐리다 눈비. 허그너 타르나 여행
08:20 뭉흐바트 만남. 아무라 포기. 나박시 픽업
09:10 볼강도착, 볼강무제 관람
10:20 허르헝솜 도착. 사슴돌군락 관람
12:00 브럭항가이 초원에서 점심식사
14:00 성터 도착(khar bukh ruin-ХАР БУХЫН ВАЛГАС)
15:30 허그너 타르나 입구
17:00 엘슨 태스르해 도착
17:30 집으로
23:00 에르데네트 도착
어제 아무라가 9시 넘어 왔다. 사막 가는 길에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마 길을 알고 싶어서 그런가 싶어 무리지만 같이 가자고 하고 어르헝 팀에 얘기했더니 김박시가 빠지고 싶어 했다. 아무라가 시내만 알고 외곽이나 주변 도시나 관광지 길을 모른다. 그래서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었는데 외려 김박시가 빠져버렸다. 무리였나 보다. 엎질러 진 물이라 그냥 가기로 하고 내일 8시에 시간 어기지 말고 오시라 말씀드렸다. 대신 내일 운전을 안하니 같이 놀러가자고 했다. 일당은 못 준다는 말이다.
6시 반에 일어나 먹을 것 챙기고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 8시 다 되어 확인하니 역시 아직 집이고 부인에게 혼나고 있다고 한다. 못 가겠다고 한다. 으이구!! 사고는 혼자 다 친다. 김박시에게 급하게 전화하니 상황이 안 된다.
차는 금방 왔다. 기사님은 뭉흐바트라고 하고 아반테를 몰고 있다. 나박시를 픽업하고 달렸다. 서로 소개했다. 뭉흐바트는 한국말을 못한다. 42살이고 아이가 13번학교 1학년이라고 했다. 이름도 적어 놨다. 찾아봐야겠다. 부인과 아이 사진도 보여준다.
볼강까지는 길이 포장되어 있고 60킬로라 금방이다. 9시 넘어 도착해서 박물관을 찾아 간다. 박물관을 ‘무제’라고 한다. 볼강무제는 시청 옆에 있었고 오늘 첫 손님이다. 불을 켜면서 관람했다. 우선 자연사박물관이다. 아르갈리 혼(아르갈), 얀기르 야마(아이벡), 처허르 이르웨스(눈표범), 보가(사슴), 차보가(순록)과 사자나 펭귄 박제까지 있었다. 새들도 많았다. 터거로(두루미류)는 없었다.
그리고 역사 박물관엔 근대사진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초이발산과 수흐바타르 등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있었고 볼강이 배출한 인물도 있었다. 볼강이 자랑하는 최초의 우주비행사, 금메달리스트를 특히 강조했다. 81년도에 벌써 우주인을 배출했다. 뭉흐바트가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해 주고 있다. 사슴돌을 구글에서 찾아 보여주었지만 알 수 없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다음에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와야겠다. 토야씨를 데리고 와야 근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겠다.
볼강은 오래된 도시 느낌이다. 대부분 러시아식 건물이었다. 하바로브스크에서 본 지붕이 있는 4,5층 건물이 많았다. 창문도 러시아식이다. 낡았지만 뭔가 정감이 있는 모습이다. 특히 길 가에 10미터 정도 숲을 조성해 놓아서 기품이 있어 보인다.
볼강을 벗어나면 비포장길이 되다가 바로 초원길이다. 구글지도에는 정식 길로 표시되어 있다. 아반떼지만 차는 코란도처럼 몰았다. 차를 험하게 모는 건지 운전을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바람도 세게 분다. 초원에 금방 눈이 쌓인다. 길이 질척해질 정돈 아니고 예보에도 많이 온다고 하지 않아 걱정은 안 된다. 눈 내리는 초원길을 달리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어르흥솜에 도착하기 전에 뭉흐바트가 뭔가를 찾아 헤맸다. 어렵지 않게 찾았다. 사슴돌 군락을 사각형 울타리로 보호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 저기 있던 것을 여기에 모아 놓았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정말 보고 싶었던 것인데 여기서 본다. 2,3천 년 전 사람들이 만든 것을 보고 있다. 절벽에 그려진 것이 아니지만 제대로 된 사슴돌이다. 아마 초원에 세웠던 것이리라. 사슴 뿔이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머리는 다 비스듬하게 하늘로 향하고 있고 입은 삐죽 튀어나와 있다. 사람, 말, 돼지, 해, 띠 모양, 꺽쇠모양 등이 보였다. 모두 음각되어 있다. 사슴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양식화된 형식이다.
사슴을 ‘보고’라고 했다. 사슴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슴돌은 왜 세웠을까? 구석기부터 청동기 이후까지 연속해서 나온다고 하는데 우리들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들 마음과 현실을 상상하기 힘들지만 환타지가 필요하다. 사냥이 잘 되기를 바라기 위해 그렸다고 하는 것은 일차원적이다. 왜 사슴인가? 앵그리 야마, 아르갈도 있고 순록도 있고, 노루도 있는데.
흔히 석기, 청동기 사람들과 우리들은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지능이나 말하는 수준, 관계, 축제, 예술, 사냥, 손기술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아이들에게 게임기를 보여주거나 운전을 배우게 하거나, 기술을 가르쳐도 우리보단 나았으면 나았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손기술은 훨씬 뛰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2주 뒤에 5번학교 죽데르숨베르 생물박시를 만나는데 단번에 순록이라고 했다. 사슴이 아니라 순록이다. 뒷 날 통역 토야에게 다시 물어보니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순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 보니 사슴이 맞겠다. 에르데네트 박물관에서 제대로 보았다. 입구 간판을 해석해 달라고 하니 사슴돌, 사슴이 맞다고 한다. )
어르헝솜에서 어르헝강을 건너 남으로 간다. 솜은 우리나라 단위로 군이다. 군 밑에 박(면)이 있지만 보기엔 도시에만 박이 있는 듯하다. 시골에 무슨 마을이 있어야 박을 만들지. 눈은 그쳤다가 비가 왔다가 한다. 바람은 세차다. 12시에 부렉항가이솜이 보이는 경치 좋은 고갯마루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문을 열었다가 어 뜨거라 바로 닫았다. 춥고 바람이 너무 불어서 자리도 못 펴겠다. 몽골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가? 내려가서 바람이 덜 부는 곳에서 차로 바람을 막고 밥자리를 챙겼다. 눈도 내리는 초원에서 빵과 잼, 햄, 삼겹살햄에 먹으니 그럴듯하다. 떨면서 점심을 빠르게 먹고 차를 탔다.
차가운 음식을 먹고 따뜻한 차 안에 있으니 졸음이 온다. 오락가락 졸면서 오다 두시가 다 될 때 쯤 뭉흐바트가 손으로 가르킨다. 들어 갈꺼냐는 말이다. 큰 건물이나 뭔가가 눈발 속에 어렴풋이 보인다. 쌍안경으로 보니 성이다. 오래되고 무너진 성이다. 오! 당연 들어가야지. 아무라가 말하던 그 성이구나. 아무라는 청나라 시절에 그들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고 믿고 있었다. 작은 내를 아반떼로 건너 입구로 들어갔다. 앞에 작은 헛간 같은 건물은 무제처럼 보인다.
앞에 서니 규모가 보통이 아니다. 외성이 사각형으로 토성이고 내성은 돌과 흙을 겹겹이 쌓았다. 규칙성과 반복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ХАР БУХЫН ВАЛГАС(하르 보힌 발르가스) 다신칠링솜에 있는 고성이다. 넓은 평원 한가운데 성을 쌓았고 옆으로 작은 내가 흐른다. 두시지만 어두컴컴하다. 구름은 짙고 낮게 깔리고 눈은 흩날리고 바람은 거센데 성은 폐허다. 폐허미와 장엄미가 함께하는 곳이다. 맑은 날이라면 이랬을까? 그 장소에 어울리는 날씨가 있다면 딱 오늘이다. 1000년 이상 된 위구르 유적이라고 하는데 유목민이면서 왜 그들은 성을 쌓았을까? 무제가 있었지만 관리인이 가까운 다싱칠링 솜에 나가있다고 해서 못봤다.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 몽골’편에서
칭기스칸 이전 거란성의 폐허다. 하르 보흐 발가스 터, 바람과 흙먼지에 더 많은 애무를 받아서인지 폐허그 자체다. 어린아이가 잠깐 놀다간 모래성보다도 더 아슬아슬하다. 각이 진 돌로 1.5m가량의 폭으로 쌓아 올린 성인데 실제로 폭이 그렇게 좁지 않을텐데 확인할 길이 없다. 성벽 안쪽으로 전당대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다. 917년부터 1120년까지 2만여 군사가 상주하고 7백여 중국인 포로들을 수용한 거란(Khitan)국의 성이었다고 한다. 거란, 즉 키찬이라는 이름은 ‘카타이’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고 나중에 ‘캐세이’의 어원이 되기도 한다니, 항공사 캐세이 퍼시픽에 옛 유목민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면서도 후세의 기록 역사에서 배제된 유목민이 당시에 얼마나 큰 세력으로 유럽에 위세를 떨쳤는지 가늠할 만하다. 중화라는 말에서 자부심 보다는 한편으로 위기의식이 느껴지는 이유다.
유목민 거란족이 이렇게 성을 쌓은 것은 대규모 정주민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연운 16주를 정버라고 다스린 경험이 이런 성을 축조한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정주가 유목민을 멸하게 한 덧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폐허의 상상력이란 흥미롭지만 쓸쓸하고 무상하다.
우리들은 박물관 옆 작은 농기구창고처럼 보이는 박물관에 들어갔다. 허름한 이 작은 창고엔 자작나무 껍질에 경전을 필사한 것도 보인다. 촉트 타이지가 나오는 영화의 한 장면을 찍은 사진도 보인다. 이 허름하고 어수선한 작은 ‘창고’가 바로 거란에 대한 현재의 기억이겠다. 커다랗고 둥근 배를 드러낸 창고 관리인은 방명록을 가리킨다. 무심코 방명록을 들춰보다가 한 일본인의 흔적을 본다. ‘대자연에 세 번째 찾아오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여기까지 그는 세 번이나 찾아왔을까? 그가 말한 대자연은 그저 평화로움의 상징이었는지 혹은 역사를 묻어버리는 대자연과 시간의 힘에 대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직 하르 허르 발가스는 정확하게 모르는 것이 많다. 자료에 따라 위구르의 성, 거란족이 지은 성 , 200년 전 왕족이 성을 지었을 거라는 말, 몽골 울루스 초기 하르호름에 왕궁이 있을 때 별궁이거나 왕족이 지은 성이라는 말 등 기록이 없으니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다시 출발이다. 고속도로를 만났지만 가로질러 갔다. 하르호른과 울란바타르로 가는 고속도로다. 풍경이 바뀐다. 마치 고비에서 보는 풍경이다. 점점이 낮은 관목들이 웅크리고 있고 황량한 곳이다. 관목이 있는 곳은 흙을 품고 있어서 바람에 날리지 않아 점점 높아진다. 전형적인 고비풍경이다. 느낌이 살아나듯 고비가 느껴졌다. 나무는 할르건이라고 했다. 나마박시가 가르쳐준 몽골리카가 할르건이다. 에르데네트 길가에 울처럼 낮게 깔린 나무가 할르건이다. 배운 것이 연결될 때 희열이 온다.
산도 몽골에서 보기 드문 암반이 드러난 산이다. 평원석처럼 보인다고 나박시가 얘기하신다. 평원에 불쑥 솟아난 평원석. 이곳에서 적절한 표현이다. 뭉흐바트가 작은 표지석(이정표)에 선다. 지금부터 хөгнө тарна(허그너 타르나)가 시작된다고 했다. 아니 사막은 어디가고? 사막 사진을 보여주면서 가고 싶다고 했는데 사막은 ‘엘슨 타스르해’라고 알려주었다. 사막은 따로 있고 여기 산들이 허그너 타르나라고 한다. 산 뒤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다. хөгнө тарна(허그너 타르나)가 사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산들이 심상치 않다고 나박시와 계속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렇구나.
뭉흐바트가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말라고 했다. 손바닥을 펴서 가리키라고. 그렇다. 그것도 맞다. 자연에 적응하면서 사는 사람은 자연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맞는 말이다.
저 푸른 영원의 산 – 내 아들의 산
-은혜로우신 아버지 바오께
바오긴 락그와수렌
아련히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속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말처럼 불쑥 솟아오른
저 푸른 영원의 산
내 아들의 산
솟아오르는 태양을
이마로 들이받아 높이 떠오르게 하고
지는 태양을
등에 지고 장관을 이룬다.
태양이 스미지 않고
나뭇잎이 마르지 않는
푸른 영원의 산
아들이 잘 살아가는 것을 들으며
그 곁으로 노래하며 지나가니
산도 노래하네
내 아들의 영원한 푸른 산
반려를 땅에 묻고
그 곁을 울며 지나가니
산도 우네
내 아들의 푸른 영원의 산
늦둥이로 보게 된
하나뿐인 사랑스런 아들에게
말 떼 중 네 말이라고
망아지를 굴레 씌워 주려 하니
너무 어리다는 생각에
연푸른 안개가 피어오른 초원의 지평선으로부터
화염처럼 솟아오른 푸른 영원의 산을 네 산이라고
아들에게 손바닥을 펴 가리켜 주며
흡족해 했다.
아련히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속에서
길들여짖지 않은 말처럼 불쑥 솟아오른
저 푸른 영원의 산
내 아들의 산
(한 줄도 베끼지 않았다. 바오긴 락그와수렌, 문학의 숲)
화장실에서 읽고 있는 시집에 똑 같은 표현이 있다. 나무를, 산을, 동물을,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마라. 함부로 하지 마라. 존중을 어린 때부터 배우는 몽골이다.
눈발은 날리고 구름은 산기슭에 까지 내려와 있다. 초원은 하얗다. 나박시 표현으론 쑥버무리같다고 했다. 산에 바위들도 하얗다. 구름이 내려와 신비롭게까지 보인다. 남쪽을 향해선 산들은 모두 암반이 드러나 있고 쪼개져 있다. 그것도 뾰족하지 않고 풍화되어 두리뭉실하다. 사진을 찍으면 그려놓은 것 같다. 하얀 초원에 말들이 뛰어 다닌다. 소들도 줄을 지어 간다. 동물들이 지나간 곳은 길이 된다. 어디를 봐도 그림이다.
허그너 타르나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지 수많은 하닥과 공물들이 가득한 곳에 섰다. 큰 바위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큰 바위를 빙 돌아서 사람길이 나 있어 돌았다.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하는데 반대로 돌았다. 이곳을 허그너 타르나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토야에게 표지판 글을 해석해 달라고 해야겠다. 이야기가 있는 곳이 틀림없다.
다시 달린다. 시간이 4시를 넘어서 돌아가야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뭉흐바트에게 맡기기로 했다. 멀리 누런 모래띠가 나타나고 게르캠프가 보인다. 엘슨 타스르해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엘슨’이 모래라고 했다. 맞아! 고비사막 ‘홍그린 엘스’에 나오는 그것이구나.
모래언덕 초입에 낙타가 20여 마리 앉아 있고 몰이꾼이 7,8명 있다. 5시가 다 된 시간이고 춥기도 해서 낙타를 탈수는 없고 가까이 슬쩍 보고 오기로 했다. 홍그린엘스처럼 규모 있는 곳은 아니지만 멀리 보이는 모래산까지 가 볼 수 없어서 답답하다. 다시 오지는 못할 곳인데 이렇게 눈도장만 찍고 가다니. 아쉬운 맘에 옆 모래언덕을 가보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다. 지금 돌아가도 12시를 찍을 텐데.
차안에서 남은 빵과 햄으로 간단하게 저녁요기를 했다. 뭉흐바트에게 미안하다. 따뜻한 국물있는 밥을 못 사주고 있다. 이것 저것 먹으라고 주지만 잘 먹지는 않는다. 남은 초코렛을 뭉흐바트 4개, 나박시와 나는 두 개씩 나눴다. 물도 조금 모자란다. 살 곳도 없는데.
오는 길에 날이 개이기 시작한다. 눈도 녹고 있다. 어스름판이지만 맑은 날에 보는 허그너 타르나는 또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아침에 보는 맛도 좋겠다. 이 곳 게르에 사는 사람은 이렇게 좋은 경치를 날마다 보는구나 생각된다.
하알라스(느릅나무)가 군데 군데 한그루씩 살아 있다. 척박한 곳에서도 살아가는 키큰나무다. 10그루 정도가 모여 있는 군락이 있었는데 마치 이발사가, 정원사가 잘라 놓듯이 가지 밑둥이 모두 일자다. 호기심이 일어나는 장면이다. 소들이 이발하듯이 먹었나 싶기도하다. 날이 개인 산에 햇빛이 비친다. 산이 떠 있는 듯하다.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하르 호힌 발르가스’를 지나면서 관리인에게 다시 전화해 보니 아직도 다싱칠링이라고 한다. 출발할 때 뭉흐바트 네비게이션으로는 에르데네트에 9시 반에 도착한다고 했지만 8시반에 부렉항가이에 도착한다. 많이 늦겠다. 9시 40분에 어르헝솜이다. 난 잠에 떨어졌는데 뭉흐바트는 노래를 부르면서 운전하고 있다. 10시 넘어 볼강. 11시 넘어서 에르데네트에 도착했다. 팁을 조금 주고 싶었지만 나박시가 약속한 것만 주자고 해서 참았다. 뭉흐바트 눈가에 피곤이 쩔었다. 담에 만나서 저녁이라도 사야겠다.
뭉흐바트가 알려준 몇 가지
-히르스(코삭여우)를 세 마리 봤다. 그 중에 한 마리는 차 앞에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쳐 갔다. 델은 오른쪽이 터져 있는데 몽골 사람들은 주머니로 활용한다. 빵이나 담배, 돈, 핸드폰까지 뭐든지 다 들어간다. 이처럼 히르스가 오른쪽에서 왼쪽을 지나쳐가야 복이 온다고 한다. 마치 내 주머니로 뭔가가 쑥 들어오는 것처럼.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마라. 손바닥을 펴서 가리켜라.
-겨울 숙영지를 노울쩌라고 한다.
-9시쯤 부렉항가이로 들어가는데 말과 오토바이가 함께 달리고 있다. 차를 말이 달리는 속도에 맞추며 휘파람을 불어주었다. 5분 정도를 그렇게 달려줬다. 상대도 싫지 않은 듯하다. 옷을 입은 말에는 아이가 타고 있다. 연습하는 중인 게 확실하다. 볼강나담이 곧 있다고 했다. 밤에 승마연습을 하다니 대단한 강심장들이다.
-밤에 헤드라이트를 비추면 동물 눈이 환하게 빛이 나는데 동물마다 색깔이 다르다고 했다. 히르스(코삭여우, 초원여우)를 한 마리 보여 줬는데 보여줬는데 환한 형광등색이다. 늑대는 빨갛다고 했다. 조사해 봐야겠다.
뭉흐바트가 몽골어와 손짓,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