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캠페인 –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영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2003)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대화의 한 장면을 보면, 아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묻는다. “무엇이 너를 힘들게 하는 것이니? 학업? 혹시 마약?”, “무엇이 고민이니?” 아버지의 질문에 아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러고는 무겁게 입을 열며 한마디 한다. “사랑이요.” 아버지는 피식 웃는다. 어린 녀석이 무슨 사랑을 알기나 하나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들 녀석의 말에 이내 동감을 표한다. 그래,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이가 많고 적으나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필자는 그 영화를 보고 영화 속 아버지처럼 어린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 아이들의 사랑에 대해 우리나라는 진지하게 보아주지 않으며, 좋아하는 여학생의 치마를 들추어서 울려버리는 것은 좋다는 표현의 하나라고 가르치고 있는 문화를 체험한 사람으로서, 아이 입에서 “사랑때문이예요”라는 말이 나왔을 때 적잖이 당황했었다. 이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가면,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권리를 존중해 주고 어떤 의무감을 가르쳐 주어야 할까? 요즘 세상에는 아이들의 권리 주장이 많이 강해지고 반영도 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에 비해 의무감을 가르쳐주거나 강화시켜주는 어른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이는 ‘학교가 무너졌다’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성적자기결정권. 우리의 아이들에게 자기운명결정을 할 수 있다고 전제하였을 때, 우리 어른들은 이 권리를 존중해 줄 수 있을까?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이라 함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이다. 이 자기운명결정권에 성적 자기결정권이 포함된 것으로, 새삼스레 이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성교육 내용과 관련하여 우리의 인식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그간 우리는 언론보도를 통해 청소년들의 “性”과 관련된 문제로 임신, 낙태, 출산에 대해 들어보았고, 굉장히 위험한 현상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로 치부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함이 제기되어 왔다. 대책 속에 성교육이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서 강화되기 시작한 것이 “性”에 대해 숨기지 말고 정보를 공개하자며 “性정보 개방?”과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무엇이 아이러니한가 하면, 아이들의 호기심을 원인으로 보고 이 때문이라고 단정하였다는 것에 있다. 정말 아이들이 단순 호기심만으로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였던 것일까? 우리 어른들은 이런 이유가 답이 되어 마음 편하게 성에 대해 거침없이 아이들에게 정보를 들이밀며 이제 알게 되었으니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마음을 놓았을지 모르나, 그래서 임신과 출산, 낙태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였으나 어찌보면 정작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알고 싶어 하는 “성적인” 내용은 거의 배제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아이들의 남녀 간의 “사랑”에 의한 현상을 원인이라고 보고 대책을 세웠다면 어떤 교육내용이 구성되었을까? 아이들은 정말 “사랑”에 대해 전혀 모르는 존재인걸까. 그간의 성교육은 정확한 정보전달의 형식이었다면, 근래에는 예방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다. 청소년의 임신과 낙태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성교육 내용에 이들이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을 때, 과연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성적자기결정권 즉, 성에 대하여 주체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짚어보아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청소년 전체를 대상으로 임신, 낙태를 예방하는 교육을 한다는 것은 청소년에게 성적자기결정권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은 성적자기결정권을 곧 행사할 우리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로 보고, 자신의 행복추구권의 하나인 성적자기결정권행사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해줄 수 있는 우리의 아이가 될 수 있도록 성교육을 제공하여 우리의 아이들이 제대로 사랑을 알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세상의 구성원으로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들을 사랑을 해주는 사람은 누구인걸까? 사랑 받으러 태어났다고 하니 무척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막상 받으려고만 하고 줄줄 모를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교육의 장에서 분명히 이에 대해 논의하고 답을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꺼내어 보며 전달하고자 하고 그에 대한 타인의 마음을 반응으로 알아보고 싶은 것이 사랑에 대한 우리의 행태이기에, 성교육은 자신과 다른 이성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교육이다. 자신이 사랑을 받기 위한 그리고 사랑을 할 수 있는 한계의 기준을 정하도록 돕는 진정성 있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존재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정말 슬픈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받기만을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이 세상의 구성원으로서 사랑을 받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도움을 주는 것이 성교육 과정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를 동반하여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수 있는 교육인 것이다.
성교육에 대한 ‘오해’가 이제는 진정 사라지고 자리잡혀갈 것 같다. 정부가 일반국민에게도 무료로 성교육을 제공한다고 하니 말이다. 곧 국민들의 수준이 평준화 되리라고 믿어본다. <행가래로 1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