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金井山) 범어사(梵魚寺)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 금정산 범어사 (청룡동 546)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선찰대본산 범어사
범어사 일주문에서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현판이 있다. 이는 마음의 근원을 구하는 수행도량이라는 뜻으로, 참선을 통해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잡념과 망상을 쉬게 하고, 자신의 참다운 불성을 깨닫도록 한다는 의미다.
구한말 성월스님이 범어사 주지로 있을 때 범어사를 선찰대본산으로 명명하고, 당대의 최고 고승 경허스님을 범어사 조실로 초빙했다.
범어사는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로 불린다. 2012년 11월 대한불교조계종 금정총림으로 지정되었다.
창건과 연혁
신라 문무왕 18년(678년),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창건하였다. <<삼국유사>> 권4, 5편 의상전교(義湘傳敎)에는 의상대사가 열 곳의 절에 교를 전하게 해 화엄십찰을 창건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가운데 '금정지범어(金井之梵魚)' 즉 금정산 범어사가 들어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금정산은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다. 산마루에는 높이 세 길쯤 되는 바위가 있다. 위에는 우물이 있는데, 둘레가 10여 척이고, 깊이가 7촌쯤이다. 물이 항상 가득 고여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빛이 황금과 같다. 세상에 전해 오기를 한 마리의 금색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속에서 헤엄치며 놀았기 때문에 산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여기에 인연하여 절을 짓고 범어사라 불렀다 한다.”
창건 이후 더 이상의 신라시대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또한 고려에 들어서도 저의 역사는 마찬가지로 공백으로 남는다. 임진왜란으로 절의 대부분이 소실되면서 사중의 기록이 모두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진왜란 이후 조선 시대 후기의 여러 차례 중수 및 창건한 사실만이 전한다.
1613년(광해군 5년)에 대웅전, 용화전, 관음전, 나한전, 일주문, 심검당(현 원주실)을 건립하였다. 또한 1684년에는 비로전을, 1700년에는 팔상전, 종루, 불이문, 보제루, 천왕문을 건립하였다. 이후에도 사세의 확장에 따라 크고 작은 개수 및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2019년 범어사의 오랜 숙원사업인 선문화교육관과 2021년 전국사찰 최대 규모의 범어사 성보박물관의 대작불사를 완료하였다.
가람의 구조
현재 범어사는 입구의 일주문부터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완만하게 때로는 가파르게 금정산의 지세와 조화를 이루며 불국토의 세계를 장엄하고 있다.
가람의 구조는 산지가람의 특정이 잘 반영되어 있는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대웅전을 향해 대략 상, 중, 하 3단의 배치를 이루었다.
일주문[조계문, 보물]을 지나 천왕문과 불이문의 입구 구역이 하단이고, 보제루를 절 마당을 둘러싼 종루, 미륵전, 금어선원, 심검당, 원응당 등이 중단이고, 대웅전을 중심으로 관음전, 지장전, 팔상전‧독성각‧나한전, 산령각 등이 상단이다.
일주문[조계문](보물)
조계문은 사역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서 어간에 ‘조계문(曹溪門)’, 좌우 협간에는 각각 ‘금정산범어사(金井山梵魚寺)’와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다른 사찰의 일주문과는 달리 특이하게 돌기둥으로 지붕을 받치고 있는 형식이다.
1614년(광해군 6) 건립되었다. 이후 1718년(숙종 44) 목조 기둥을 석주(石柱)로 개조하였으며, 1781년(정조 5)에 중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781년에 건립한 것이지만, 짧은 목재 원기둥을 받치고 있는 석주는 1718년에 세운 그대로다.
범어사 조계문은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6년 2월 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웅전(보물)
조선 중기 불교 건축의 아름다음을 잘 간직하고 있는 법당이다. 1614년 창건과 1713년 대대적 중건을 거쳤다.
대웅전 계단에는 동백꽃, 동백나무를 조각하였고, 화재 방지를 위해 소맷돌에는 해태상(?)이 위치한다. 왼쪽 문 앞에는 1862년 조성한 금고(쇠북)이 있다.
내부의 불단에는 꽃무늬, 비천상 등을 장식하였다. 닫집에는 운룡(雲龍), 극락조, 비천상 등을 조각하였다. 동서의 내벽 위쪽에는 동방의 약사삼존과 서방의 아미타삼존을 벽화로 모셔, 본존인 석가여래와 함께 불국토를 장엄하였다.
불단에는 석가여래좌상을 주존불로 봉안하였고, 그 뒤에 후불탱, 좌우로 삼장탱, 신중탱을 두었다. 석가여래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는데,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라는 기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