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에 으뜸은 추억을 소환하는 것이 아닐까요? 지난주에
담양투어를 3일간 풀가동 했는데도 부족해서 오늘은 ‘내장산-백양사’를 찍고,
가사문화촌 일정으로‘면앙 정‘을 다녀오는 길입니다. 아침부터 서둘렀어도
벌써 2시네요. 면앙정은 초교 다닐 적에 서너 번 가봤고, 읍네 살면 봉산 면 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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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서 잘 안 갑니다요. 저를 열열이 환영해주는 길가 코스모스에게 답례를 해야
할 것 같아 사진 한방 박았어요. 엇 그제 코스모스군락에서 판타스틱 한 미스 코
들을 원 없이 봤고 만, 이곳 코스모스는 첫사랑 ‘순이‘처럼 느낌이 또 다릅니다.
지금 막 바람이 콧잔등을 터치 하고 달아나는 것도 정겹습니다. 초등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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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은 손가락을 구부려 기다리는 날입니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데이트말입니다.
그래봤자 계란 두 개에 사이다 한 병 갖고 가는 소풍인데 그리도 기다렸을까요?
가을 운동회 6번, 소풍6번 도합12번을 내내 삶은 계란과 사이다세트 메뉴로 6남
매가 통일을 했으니 ‘면앙 정‘ 소풍 때도 어머니가 책가방에 넣어주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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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신문지로 싸 넣은 계란이 하도 많이 걸어서 먹으려고 보니 산산조각이
난 적이 있습니다. 숫기가 없던 소년은 계란을 버리기로 했어요. 버렸는데
선생님한테 혼날 것 같았나 봐요. 연구 끝에 사이다 한 병 중에 반을 버린 계란에
들이 부었어요. 나름 청소한다는 뜻이에요. 헐. 봉산 사는 친구는 박노식, 라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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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기0권이가 이곳 출신일 것입니다. 1년 선배 봉0도 생각이 나네요. 소풍 올 때
담임은 양 정례(3)선생님이나 박 공옥(4)셈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고 삐리 때는 스낵
코너가 지금의 페스트 푸드 이었어요. 그땐 돈-가스를 먹으면서 웬 가-오를 그리
잡았을까요? ‘친구’ 드라마 판에서처럼 포크는 ‘왼손에 든 다 만 다’로 유치찬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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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도 했습니다. 뒤에서 순위를 재는 놈들은 만화방이나 스낵 코너를 안방처럼
들락거렸어요. 저는 만화방은 중2때 끊고 교련복 바지 입고서 스낵 코너 많이
다녔어요. 만화방에서는 ‘달고나‘ , 스낵에서는 만만하게 집어 먹었던 것이 계란 튀김
이었습니다. 제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 것은 초5-6학년(2년)과 중3년 동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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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보온밥통은 부잣집 애들이나 가지고 다녔지요. 그땐 왜 도시락 위에 계란을 꼭
깔았을까요? 면앙 송순(1536-1592)은 선조 때 인물이에요. 문과에 급제 한 후 나주
목사도 하고, 우참찬 겸 춘수관사까지 한 사람인데 벼슬을 버린 것인지 유배를 온
것인지 알 길이 없고 이곳 담양에 낙향을 한 후에 면앙 정을 지었어요. 참찬은 정2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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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으로 정승 바로 밑일 것입니다. 이 양반이 중종 12년(1533)에 김안로가 득세하자
이 꼴 저 꼴 안 보겠다고 한 걸 보면 어쩌면 성균관 출신 원조 보수일 것입니다.
저는 ‘송강’과 ‘송순’이 브라더 인줄 알았고 만 아니거든요. 무식한 제가 오해를 했으니
착오가 없기를 바랍니다. 둘은 사제지간입니다. 제가 선생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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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치권력의 ‘충효사상’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풀려진 부분이 있습니다.
하여간 저는 원래 싸가지가 없어서 선조를 그리워하며 시 몇 수 지은 ‘송 순’ 선생을
마구마구 존경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좀 삐딱하지요? “신선이 어떤 것인가.
이 몸이야말로 신선이구나. 자연을 거느리고 한 평생을 다 누리면(생략) 정다운 회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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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하겠느냐? 이 몸이 이렇게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로다“
‘추월 산’쪽으로 길을 잡았고 만, ‘대통 밥집’이 보이 길래 밥을 먹을까 하다가 ‘문화원
간판’을 보고 들어왔는데 와서 보니 확장을 하고 처음 들어온 것 같아요. 넓은 주차장
때문인지 접근성이 예전보다 좋았어요. 파킹 후에 장고소리가 들리는 쪽부터 걸어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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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어요. 거만한 자세로, 릴렉스하게. 중년남녀가 고스톱을 치고 있네요. 무슨 배짱인지 꼴
사나워 보입니다. 연못 쪽부터 시작하는 방 부목 산책길이 멋져 부러요. 걷기만 해도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네요. ‘유리 온실’과 ‘대나무 품종 원’은 패스했습니다. 혼자걷기 아까운
대숲 길을 맘대로 막걸어가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이런 데는 공지영이나 한비야 같은 여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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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야 자세가 제대로 나올 것입니다. 저기 박 넝쿨 클레스 좀 보시라. 요나가 뺨맞고 가게
생겼어요. 연하장 단골 오브제 싸리문도 있어요, "삽살개가 짓는다"는 시가 이미지모션돼요.
화이트 소국이 소담스럽게 피어있군요. 부스가 보여서 카드를 내밀었더니 1,000원입니다.
지역사람 우대인가? 왜 이리 싼 것이여? 아주 옛날에는 죽제품을 파는 곳이 천변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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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회’옆에 있었어요. 해동주조장 사거리에 우리약국-시대상회-태양상회-죽물센터였으니까
죽물박물관의 모체일 것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사고 싶은 작품들이
꽤 됩니다. 침대, 겉살 소파, 문갑, 기하학적2인 의자, 바둑판 정도는 사서 사용하고 싶고,
장고, 카누, 궁, 도는 소장하고 싶네요. 잘보고 내려왔는데 ‘전 소민’ 작품이 있대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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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봤어요.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찾았어요, 죽 화인지 뭔지 레이저로 지져 만든 작품
이었어요. 제목이 낙죽인가, 아트 기법이 낙죽인가? 전남무형문화재제44호 낙죽장 전수자
라고 하더이다. 인두를 지저서 달마도 그리는 사람은 봤어도 대나무에 레이저로 작품을
만드는 건 처음 봤어요. 제가 그래도 한 아트 하는데 말입니다. 담양 토박이냐고 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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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이고 귀농한지 17년째랍니다. 허허. 담양으로 귀농한사람도 처음 봤어요.
왜 귀농을 했냐고 물었지요. 대나무가 좋아서 귀농을 했답니다. 저 나이에 하고 싶은 일
하고 살아서 그런지 도인 같기도 하고 토킹어바웃 하는 내내 여유가 있어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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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죽에 그려진 용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 건 뭐야? 낭이가 예술적으로 자고 있습니다. 가만있자 17년 전에 귀농을 했으면 33세에 왔다는 애긴데 이 느낌은 뭐죠?
2019.10.7.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