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
캐나다 뮤즈 청소년 교향악단장
밴쿠버 한인문인협회 회장 박혜정
‘친정’이라 함은 ‘시집간 여자의 본 집’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시집을 가니 우리 집을 친정, 우리 엄마를 친정 엄마라고 불렀다. 며칠 전만 해도 ‘엄마’라고 불렀는데 갑자기 ‘친정’이라는 단어를 하나 더 넣는 것이 너무 어색하고 낯설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호칭에 익숙해질 즈음 어느 새 내가 친정엄마가 되어 있었다.
나는 하소연 할 것이 있거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친정 엄마를 찾게 된다. 엄마에게 말을 하고 나면 걱정은 다 엄마에게 맡긴 것 같아 순간 편안해진다. 친정 엄마가 옆에 안 계실 때는 ‘오시면 잘 해드려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막상 만나면 그냥 하시는 말씀인데도 잔소리로 들리면서 짜증이 밀려온다. ‘가신 다음엔 후회를 하고 또 옆에 안 계시면 잘해야지’라는 생각을 반복하면서도 잘 안 된다. 아마 친정 엄마가 제일 만만해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입장이 바뀌어 딸이 짜증을 내면 나는 은근 화가 난다. 두 입장 차를 알면서도 모든 상황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친정 엄마가 한국에 계시면 해외에 살아도 한국에 편안한 마음으로 자주 나가게 된다. 왜냐하면 한국에 가도 친정에 묵을 수 있고 또 친정엄마가 동생 집에만 계셔도 엄마 빽이 든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정 엄마가 계시지 않으면 형제자매가 있어도 한국 가는 일이 점점 뜸해진다고 한다. 그만큼 엄마는 아무 것을 하지 않아도 대단한 존재감이 있다.
친정 엄마는 머리로는 계산이 안 되는 것도 마음으로는 이해가 되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 줄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한 가지 예로, 작은 딸이 악기를 수리해야한다고 라이드를 해 달라고 했다. 작은 애는 학교가 집과 멀어서 나가서 산다. 나 또한 그곳까지 가서 라이드를 해 주기에는 너무 멀어 스카이 트레인을 타고 오면 픽업을 해서 악기점에 데려다 주고 다시 역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다. 머리로 계산을 해 보면 역에 내려서 택시나 버스를 타고 가면 되니 라이드가 필요 없다고 생각되지만 마음으로 이해를 해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학교 수업시간이 늦을까 걱정도 되고 또 수리하는 동안 같이 있어주면 좋아할 것 같아서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나의 친정 엄마는 어느 정도 맹자 엄마를 닮은 점이 있어 ‘맹모삼천지교’를 따라 나를 위해 이사도 갔고 전학도 시키셨다. 나도 어쩌다 보니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이민까지 오게 되어 큰 딸은 치과의사로 작은 딸은 음악가로 키우게 되었다. 그렇게 키워 시집보낸 큰 딸이 손녀와 사위와 함께 집에 온다고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 주는 것이 친정 엄마다운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가까우면 김치나 밑반찬을 바리바리 싸 주겠지만.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정갈하게 보이려고 미장원에 갔었다. 그때 원장님이 조언을 해 주었다. 괜히 멀리 여기 저기 다니지 말고 집에서 맛있는 것을 해주며 애도 봐주어서 딸이 쉴 수 있게 해주라고. 그래서 가까운 곳 중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을 선정해 놓았고 나름대로 저녁 메뉴도 다양하게 준비 해 놓았다(갈비찜, 연어스테이크, 삼계탕 등). 갈 곳은 손녀 위주로 결정했다. 아기들 노는 곳과 밴쿠버 수족관(흰 고래가 세계에서 그곳에만 있고 물고기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선정했고), 또 스키장에서 눈썰매타기(애가 미국 엘에이에 살기 때문에 눈 구경을 할 수 없어서), 그 외에 작은 동물원(동물을 직접 만져볼 수도 있는 곳), 가족사진 찍기(가족이 밴쿠버에 모여 사는 것이 아니라서 다 같이 사진 한 장 찍기도 힘들다. 이것이 이번에 가장 중요한 일.)
요즘은 좋은 세상이라 전화도 화상통화를 하다 보니 손녀가 얼 만큼 컸는지 알게 된다. 그래도 직접 만나 보니 2살짜리가 무슨 말을 그리도 잘하는지. 큰 딸 어렸을 때를 보는 것 같았다. 그때도 하도 말을 잘해서 딸을 돌보아주시던 분이 “혀가 뾰족해서 저리도 말을 잘하나보다” 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또 눈썰매를 타러 가서 손녀가 할아버지 목마를 탄 모습이 딸아이 어렸을 때를 보는 듯 했다. ‘키울 때는 언제 크나 싶었는데 벌써 커서 애 엄마가 되었다니.’
우리 집에 온 첫 날 저녁 손녀가 자기 집 밖에서 자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집에 가지고 막 울어댄다. 딸애가 “우리 집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해서 안 돼. 할머니 집에서 며칠 더 자고 다시 비행기 타고 가자” 라고 타이르니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얼마 칭얼대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리 저리 뛰는데 아래층에서 들으니 조용한 집에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개구쟁이처럼 이리 저리 뛰어도 좋으니 튼튼하게만 자라라.’ 마음속으로 기도해 본다.
나는 이상하게도 ‘내리 사랑’이라는데 손녀보다는 딸에게 훨씬 마음이 쓰인다. 손녀 땜에 딸이 힘들어 하면 우리 딸이 쉬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손녀를 내가 중간 중간 봐 주면 좋으련만 눈앞에 자기 엄마가 보일 때만 잠시 떨어지는 정도였다. 손녀가 태어 난 후로는 딸과 사위가 한 번도 둘만 나간 적이 없다면서 손녀가 잠든 틈을 타 데이트를 하겠단다. 애가 자다가 깨면 전화를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하고 내 보냈다. 왠지 무엇인가를 해 줄 것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고 흐뭇하기까지 했다.
계획된 일들을 다 하고 나니 딸아이가 벌써 갈 때가 되었다. 조용했던 집이 뛰는 소리,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가 텅 빈 느낌이 드는 것 같아 서운했다. 아침에 호빵을 데워주었는데 “엄마 어떻게 이렇게 잘 쪄졌어요?” “렌지 커버를 씌워서 그런 것 같은데” 라고 하니 “난 그런 것 없는데.” 라고 했다. 마침 새것이 몇 개 있어서 가지고 가라고 했더니 짐에 들어가지 않는단다. 트렁크를 열고 전자레인지 뚜껑을 넣고 위에 올라타면서 지퍼를 닫았다. 친정 엄마의 마음은 딸이 원하는 것은 뭐든 해 주고 싶다. 공항까지 배웅을 해 주었다. 딸이 가면서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 “엄마 잘 쉬었다 가요.” 라고 했다. 이번에 오면 딸을 조금이라도 쉬게 해 주는 것이 내 목표였는데 그 말을 들으니 내가 뭔가 친정 엄마답게 해 준 것 같아 뿌듯함이 느껴졌다.
첫댓글 잘 쉬었다 가요~
오히려 그 말이 저는 좀 섭섭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왜냐하면 이제 내 품을 떠났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심어주는 듯한
말이라서요...
저는 친정엄마가 전혀 만만하지 않고 아직도
뭔가 좀 어려움이 있어요
하도 교육을 철저하게 받아서 지금도 그래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큰아들은 엄마가 엄마이니까 엄마한테 화도내고
짜증도 낸다 하네요
받아주기 때문이래요...
우리 엄마도 그러셨어요
우리 큰아들이 애기 때 저 힘들게 한다고
애를 얼마나 잡았는지 애가 할머니만 보면 놀랬으니까요
자기 딸 힘들게 하는 거 싫어해요
시집보내보면 시원섭섭하고 얼마지나면 내품을 떠났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나 대신 책임져줄 사람이 있다는 거라서요.
잘 읽었습니다. 친정 엄마의 애뜻한 사랑이 소록 소록 느껴져요. 잘 쪄졌다는 호빵 대목에서 침이 흐르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