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말라.
슬픔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기필코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난 것은 모두 그리워만 진다.
-푸시킨-
- 알렉산드르 푸슈킨 (Aleksandr Sergeevich Pushkin ) 소설가
- 생몰1799년 6월 6일 ~ 1837년 2월 10일
- 출생지러시아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1799년 6월 6일~1837년 2월 10일)은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외조부는 표트르 대제를 섬긴 아비시니아 흑인 귀족이었다. 경력 생애 초기 그는 모계로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18세기 표트르 대제의 총애를 받은 아브람 페드로비치 간니발 장군의 손녀였다. 외증조부 간니발은 아프리카 출신의 노예였으나 표트르 대제에 의해 속량받아 군인이 되었고, 실력을 인정받아 표트르 대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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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1836 ~ |
잡지 SOVREMENNIK 간행 |
1820 ~ |
장편 서사시 루슬란과 루드밀라 발표 |
1814 ~ |
당대의 저명 잡지 THE MESSENGER 에 처녀시 발표 |
- |
상트페테르부르크 외무성 |
푸쉬킨의 문학 작품은 워낙 난해한 문구가 많아 번역 과정에서 역자에 따라 조금씩 달라 진다고 한다.
이 시는 1837년 2월10일 약관 38세에 손아래 동서, 즉 처제의 남편과 결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복부에 총을 맞고
3일간 움박집에서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푸쉬킨을 간병 하던 문학 비평가 추코프스키 에게 죽어가면서 푸쉬킨이 유언 처럼 읆은시가 바로 "삶. 이라고 한다.
그럼 다시 푸쉬킨과 동서 지간에 결투를 해야했던 사연과 푸쉬킨의 아내에 대해서
이렇게 전해진다.
위 사진은 푸쉬킨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의 사진이다.
일설에 푸쉬킨의 아내, 나탈리아 푸쉬끼나 와 처제의 남편인 네델란드 출신 근위병인 단테스 남작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소문에 소문이 퍼져 결국 푸쉬킨의 귀에 들어가자 당시로선 정당한 것으로 인정 되었던 결투 신청을 단테스가 푸쉬킨에게 제의 했다고 한다.
근위병 출신인 동서에게 상대가 안될 줄 알면서도 고민끝에 남자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푸쉬킨이 이에 응하면서 결투가 이루어 지게 되었다고,,,,
사진에서 보다시피 푸쉬킨의 아내는 상당히 미인 이었다고 한다.
정말로 자기 친동생의 남편과 바람을 피웠을까?. 일부에서는 황실에서 미운 오리 새끼인 푸쉬킨을 없엘 음모로 헛소문을 퍼뜨렸다고도 하고 또는 푸쉬킨이 복부에 총을 맞고 쓰러졌을 때 아내가 달려와서 눈물를 흘릴줄 알았지만 나탈리아가 웃으면서 단테스에게 다가 갔다고 하나 그런 내용은 기술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또한 푸쉬킨에 대해서도 100여명이 넘는 여성들과 자주 접촉하는 바람둥이로 이야기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푸쉬킨이 절절이도 사랑했던 아내,"나탈리야는 단테스와 재혼을 하지도 않았으며 푸쉬킨이 운명한지 8년이 지난 다음에 다른 사람과 재혼 했다고 한다.
푸쉬킨 의 시를 한수 더 옮긴다.
당신을 사랑 했습니다.
-푸쉬킨.
당신을 사랑 했습니다. 그 사랑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 붙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랑으로 인해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지는 않겠습니다.
슬퍼하는 당신의 모습을 절데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말없이 그리고 희망도 없이 당신을 사랑 했습니다.
때론 두려워서 때론 질투심에 괴로워 하며 오로지 당신을 깊이 사랑 했습니다.
부디 다른 사람도 나 처럼 당신을 사랑하길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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