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장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복음서의 기록을 모두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학자들은 여기서부터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이 시작된다고 해석합니다.
그들의 해석에 의하면 이 날은 일요일인데, 예수님은 입성하시기 전에 새끼 나귀를 빌려오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십니다. 제자들이 그 말씀대로 해서 예수님이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민중들이 크게 환영했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이 내용도 마태가 가져가서 마태복음 21장에 수록했습니다. 그러데 마태는 마가복음에는 없는 내용을 첨가합니다. 예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것이 구약 예언의 성취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마가와 누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동족 유대인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드러내는 마태는 이렇게 예수님의 행적이 예언의 성취라는 걸 강조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마태복음서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이어지는 문장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입성한 다음날에 예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그 이유는 단지 예수께서 시장하셨기 때문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12~14절까지 보겠습니다.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를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13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서 보셨는데,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4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이튿날에 일어난 일이랍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다음날이니까 보수적인 해석에 의하면 월요일에 일어난 일이 되겠습니다. 이 본문은 오래 전, 제가 기독교에 입문한 청년시절에 한동안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때가 되지 않아 열매를 맺지 못한 것뿐인데 본인이 시장하다고 애꿎은 나무를 저주하다니요. 다음날에 일어났다는 결과와 본문의 예수님이 보이신 언행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0~24절입니다.
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지나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을 보았다.
21 그래서 베드로가 전날 일이 생각나서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저것 좀 보십시오, 선생님이 저주하신 저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2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벌떡 일어나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4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제가 이 본문을 소개할 때, 그냥 ‘예수님’이라고 하지 않고 ‘본문의 예수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본문의 하나님과 진짜 하나님은 다를 수 있듯이, 신약성서에 기록된 본문의 예수님도 진짜 예수님과는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예수님이 저런 못된 짓을 정말로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본문은 fact가 아니라 이야기라고 대부분의 현대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런 능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마가가 창작했거나, 누군가 예수님의 능력을 과대포장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가 전승을 거쳐 복음서에까지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내용을 걸러내지 못한 것은 마가의, 또는 마가복음의 기록과 편집에 참여한 마가공동체 사람들의 한계라고 보는 학자도 있지만, 이런 해석 또한 21세기 현대인의 시각입니다. 이천년 전 사람들에게서 현대인이 갖고 있는 식물에 대한 생명권까지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 그러니까 무화과나무를 저주해서 말라죽게 했다는 이야기의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예수님이 성전 뜰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기점으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기 시작했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이 본문은 마태가 가져가 자신의 복음서 21장에 수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