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은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기록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곧 바로 사울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먼저 사무엘이 사울에게 전한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2~3절입니다.
2 '만군의 주가 말한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한 일, 곧 길을 막고 대적한 일 때문에 아말렉을 벌하겠다.
3 너는 이제 가서 아말렉을 쳐라. 그들에게 딸린 것은 모두 전멸시켜라. 사정을 보아 주어서는 안 된다.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젖먹이, 소 떼와 양 떼, 낙타와 나귀 등 무엇이든 가릴 것 없이 죽여라.'"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에 총동원령을 내렸고 20만의 병력을 모아 대승을 거두었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그런데 전후처리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9절을 보겠습니다.
9 그러나 사울과 그의 군대는, 아각뿐만 아니라, 양 떼와 소 떼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것들과 가장 기름진 짐승들과 어린 양들과 좋은 것들은, 무엇이든지 모두 아깝게 여겨 진멸하지 않고, 다만 쓸모없고 값없는 것들만 골라서 진멸하였다.
사울의 군대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멜렉의 군사들은 생포하지 않고 모두 죽였답니다. 하지만 아말렉 왕은 죽이지 않고 포로로 잡아왔답니다. 가축들도 부실한 것들은 다 죽였는데 건강하고 기름진 것들은 포획해 왔답니다. 일반적으로 고대시대의 전후 처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능하면 적군이라도 불필요한 살상은 하지 않고 생포하는 것이 좋겠지만, 옛날에는 전염병이나 후환을 없애기 위해 모두 죽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적군을 죽이지 않고 생포하면 포로를 관리할 병력이 별도로 필요하고, 그들에게 들어갈 군량미도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니까요. 하지만 가축까지 모두 죽일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런 기록을 정말로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본문의 하나님은 그때, 그러니까 이삼천년 전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 인식한 하나님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런 사울의 처신에 대해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요. 10~11절을 보겠습니다.
10 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11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이 후회된다. 그가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사무엘은 괴로운 마음으로 밤새도록 주께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신답니다. 우리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그분이 말입니다. 이런 기록에서 논리적인 모순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미 성서무오설이라는 교리에 세뇌되어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은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의 후회하심, 이건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본문의 하나님은, 절대객관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삼천 년 전의 고대인들이 인식한 하나님이라고 여러 차례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중에, 교회에서 너무나 자주 인용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22~23절을 보겠습니다.
22 사무엘이 나무랐다. "주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23 거역하는 것은 점을 봐주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주께서도 임금님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나무라면서 한 말입니다. 목사들 중에서 이 본문으로 설교해보지 않은 분들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본문은, 목사나 교회의 권위에 대들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메시지로 연결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교인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목사의 권위를 확보하고 편하게 목회할 수 있으니까요.
본문이 기록된 의도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고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그런 유혹을 받지 않았을까요? 자신들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고, 자신들이 누리고 싶은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막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나님의 입을 빌어서 한 것이 아닐까요? 구약성서의 본문에는 그런 흔적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성직자라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요.
15장의 본문은 여러모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많습니다. 우리 기독교 공동체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그 분이 아말렉 사람들과 그들이 기른 가축을 몰살시키라고 명령했다는 기록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아말렉 사람들 중에는 선하게 살아간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요? 어린 아이도, 갓난아기도, 단지 아말렉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다 죽여야 한다고요? 이런 기록을 문자 그대로 믿어도 되는 걸까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이니 기록된 대로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목사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그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용어로 신성모독입니다.
종교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고백의 언어’라고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실 줄 압니다. 본문에서 어디까지가 사실의 기록인지를 가려내기는 어렵습니다. 유목민족으로 가나안에 이주해온 이스라엘, 원주민의 입장에서 말하면 자기네 땅에 침략해 들어온 이스라엘과 가나안 원주민 사이에 전쟁이 있었다는 건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20만의 군사가 동원되었다는 건 과장이 거의 틀림없습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에서 포로로 잡아들이면 후환도 두렵고 관리도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남기지 말고 죽이라고 지휘관이 명령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권위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한 당시 지도자들의 불순한 의도는 제대로 분별해서 읽어야 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사무엘과 사울은 결별하게 됩니다. 35절을 보겠습니다.
35 그 다음부터 사무엘은, 사울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죽는 날까지 다시는 사울을 만나지 않았고, 주께서도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
이쯤 되면, 성서무오설과 함께,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고백하는 기독교의 전통 교리가 얼마나 비성서적인 것인지를 본문 자체가 충분히 증언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교우님들 생각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