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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원문보기 글쓴이: 이준태(바우)
5월 5일, 6알 올레 6, 7, 8 코스
오랜 친구 백현제형
우리땅 걷기 본대와 헤어지고 나서 우선 만날 사람이 있다. 해병대 동기생 백현제 형이다.. 1976년에 장교 후보생훈련 18주를 같이 받고 임관을 같이 했던 동기생이다. 그는 소령으로 예편하여 호텔 신라에 경비안전과장으로 십여년 근무를 하였고 현재는 정년퇴임하여 서귀포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그 당시 해병대 장교훈련임관 과정에는 대졸자와 하사관출신이 함께 교육을 받았다. 현제형은 하사관 출신이다. 우리보다 나이가 예닐곱 위여서 동기생이지만 형이라 부른다. 임관후 한번도 같이 근무 한 적이 없어 다른 동기생으로부터 간간히 소식은 들었지만 얼굴은 본적이 없었다. 오래 얼굴을 본적이 없어도 우리 동기생들 54명의 이름과 얼굴을 정확히 기억을 한다. 우리 생애 중 가장 길었던 4개월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아왔던 봄 중에게 그렇게 날자, 요일 별로 정확하게 기억하는 봄은 없다. 벚꽃이 4월초에 피었고, 어버이 날 눈물을 흘렸고, 6월초에 아카시아 꽃을 따 먹었고, 6월 10일경에 대민지원을 나가 모를 심었고, 첫 번째 외출을 10주 만에 나갔고 등등
작년 가을부터 현제형과 통화를 할일이 있었다. 우리 동기생자녀 결혼식 참석관계로 ,몇번 전화를 주고 받았다. 이번 제주도에 가면 얼굴이나 한번 볼까하고 연락을 하였고, 그날 우리땅 걷기 본대와 헤어지고 나서 모슬포 쯤에서 저녁식사나 하고 돌아와 무릉리 생태학교에서 묵을까 생각을 하고, 모슬포까지 버스로 이동을 한 후 약속장소인 모슬포 초등학교 까지 걸어서 갔다. 모슬포 초등학교 앞에서 33년만에 만났는데 얼굴도 크게 변하지 않았고 그대로 였다. 만나자 마나 내 말 들을 필요도없이 배낭을 트렁크에 싣더니만 집으로 가잔다. 썩 내키지는 아니하였다. 수염은 오래 깎지 않아서 틀림 없는 거지 행색을 하고 그 집을 처음 방문하는 손님이 되어 가는 것이 마음이 편하겠는가? 절대 괘념하지 마라 한다. 아들은 대 기업의 지방현장에 근무하고 있어 일년에 한두 번이나 집에 오고, 두 부부만 집을 지키고 있는데, 형수가 손님 오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흑 돼지 고기에 저녁을 대접 받고, 집에 갔다. 형수도 좋은 사람이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해 주었다. 사워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편안한 잠자리였다. 제주에서 지낸 여섯 밤 중 가장 늘어지게 잤고, 쾌적한 잠자리였다.
아침 여덟시 쯤 출발하겠다 하였더니. 아침 준비로 분주하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6코스의 시점인 쇠소깍 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두 부부가 차로 나를 배웅한다. 쇠소깍으로 가던 도중 그 때야 무슨 생각이 났던지. 아쉬움을 표한다. 김밥을 준비해 주었을 것인데하며,
쇠소깍에서 내려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
잠시후 열 한시 쯤 서귀포 해안을 걷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형수가 서운하다고 김밥을 준비해 주었는데 같이 먹자고, 속으로 ‘ 아이 참!’ 하면서 서귀포 항구 입구에서 만나 천지연 폭포 공원에서 김밥을 나누어 먹었다.
오후에 전화가 몇 번 오는데 전화를 받지 않다가, 풍림 게스트 하우스에 숙소를 정하고서 전화를 했다. 이제 숙소를 정했고, 저녁을 먹는 중이라고 , 노발대발 한다.
다음날 제주도를 떠나면서 제주항에서 전화를 했다. 현제 형 왈 “ 야! 니는 친구도 아니다. 바로 우리집 근방인데 우리 집에서 자야지 밖에서 자냐?! ” , “ 형 여행이라는 것은 여행대로의 맛이 있는거야. 편하고 좋은 것만 생각할 것 같으면 집에 있지 뭐한다고 밖에 돌아다니면서 고생하겠나? 형, 형수님 충분히 고마웠서, 다음에 육지에 나오면 꼭 연락해 , 꼭“
쇠소깍에 도착한 시간이 8시 48분, 주위를 돌아보고 물과 간식을 사서 배낭에 넣고 오늘 일정을 시작한다. 쇠소깍이라는 약간 기괴하게 들리는 지명의 유래는 이곳으로 흘러내리는 효돈천의 옛지명이 소의 쇠이고 끝에 있는 沼라 하여 쇠소깍이 되었다는데, 암벽 주위로 상록수림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고, 수심이 깊어 물빛이 시퍼렀다. 여기에 얽힌 사연 또한 애절하다. 옛날에 신분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총각, 처녀가 이곳에서 차례로 몸을 던져 죽었다 한다.
기분 좋은 출발을 하다. 날씨 좋고 바람 선선하다. 해안가 포장된 소로를 따라 간다.
바닷가에 소담한 집한 채 있어 울안을 둘러 본다. 돌담 입구 양옆에 소철이 심어져 있고, 담쟁이 넝쿨 자그마한 화단엔 동백꽃과 종려나무와 사철나무가 심어져 있고, 하얀벽에 파란 지붕이 조화롭다.
한 시간 정도 걸으니 제지기 오름이 나온다. 이 오름에 옛날에 절과 절지키는 사람이 있어 제지기 오름이라 했다 하는데, 표고 95미터 정도 경사가 만만치 않다. 제지기 오름에 오르니 전망이 좋다. 눈 앞에 보이는 섬이 섭섬이라 하는데 오늘 오전은 내내 섭섬을 바라보면서 걷는다.
제지기 오름을 내려 오다가 올레 길을 잃어 한 십여분간 헤맸다. 감각적으로 지도를 보면서 길을 올레 표지를 찾아 냈다. 4차선을 우회전하여 개울을 따라서 해안가로 내려가다보니, 반가운 올레 길이다. 개울을 건너서 약간 올라서는 길에 별장 같이 멋진 집이 있다. 집 주인의 애교스런 경고문이 눈에 들어 온다. 이 아름다운 해안가 암벽에서 강태공의 꿈을 같이 나누어 보자면서, 가져오신 쓰레기는 꼭 되가져 가시라고.
보목2리를 걷고 있다. 길이 내륙으로 향한다. 귤 농장 돌담사이를 지난다. 제주도에서도 가장 남쪽, 이곳 서귀포에서는 귤꽃이 만개하여, 향기가 진하다. 귤꽃의 향기는 처음인데. 라일락 못지않다. 벌들은 분주히 오가고 있다.
보목하수처리장 안으로 들어간다. 서귀포를 돌면서 서너 군데 하수처리장을 거쳐 지났는데. 하수처리장의 정원이 아주 잘 가꾸어져 있다. 혐오시설은 지하로 다 들어가 있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쓰여지고 있다. 어린아이를 가진 젊은 부부들이 잔디 밭위에서 운동도 하고, 자리위에 음식을 펴 놓고 먹고 있다.
바다로 내려서는 길에 국궁장 백록정이 나온다. 갯내음이 물신 풍긴다. 바닷길이 끝나고 언덕으로 올라서는데 공중화장실이 보이는데 화장실 벽에 올레 표시가 있어 갈까 말까 하다가 돌아가보니, 철망 펜스가 열려져 있고, KAL호텔의 경내로 들어선다. 이런 서스펜스가!
기막히게 정돈되고, 짜임새 있는 정원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마침 호텔의 관리인이 서 있길래. “ 이렇게 개구멍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했더니 “ 저쪽에 개구멍이 한군데 더 있습니다.” 하면서 나가는 곳을 가리킨다. 서로 미소를 머금으며 눈 인사를 나누웠다.
낡은 호텔 건물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조경이 잘 되어 있다. 연못에는 정자와 금잉어가 뛰 놀고 있었고, KAL호텔 당사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실제로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수 많은 사람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어찌 올레 길이 가능했을 것인가? 잔디 밭을 지나 대나무 숲을 지나, 아름드리 소나무숲을 지나 간다. 송구스러운 듯, KAL 호텔 경내에는 리본이 없다. 작은 화살표만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KAL 호텔을 지나니 정방폭포에 이른다, 정방폭포를 지나니 정방로 도로변에 시화전이 열려 아름다운 그림과 시한 수가 나그네 발길을 멈춘다.
한기팔 씀
시냇 길로 들어 선다. 복잡한 2차선, 4차선을 넘어 언덕길을 오른다. 이중섭 기념관이다. 불우 했던 천재화가 이중섭, 현해탄 넘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사무치는 그리움에 절규했던 그가 마산의 한 요양원에서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어 거둘이 없는 무연고 시신으로 몇주 동안이나 유기되었던 것은 가슴 아픈 사실이었다.
그가 이 곳 서귀포 이집에서 지냈던 시절은 그래도 행복했던 시절이다. 아내와 아들이 곁에 같이 있었던 시절이었으니.
기념관의 전시품이 빈약하다. 그가 꽁초 오상순 선생이 다 피우고 남긴 담배 은박지에가 그렸다던 은박지 그림 몇점과 황소그림 몇점이 전부다. 돌에 새겨져 있는 그가 쓴 시를 여기에 옮긴다.
소와 말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여기에 곱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서 맑게 두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현제형을 만나 천제연 폭포 공원 나무그늘에서 김밥을 먹었다. 그를 보내고 천제연 폭포를 들려서 나오는 길거리의 화가가 한사람 무료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앉아 있었다.
조금 전에 들렀던 기념관에서 가난한 천재 예술가가 생각이 나서 선뜻 내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했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여러 번 자세 수정을 요구하며 정성을 들이는 듯 했다.
그 예술가 말이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확신 있는 말투로 마음에 안 들면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했는데. 정말로 마음에 안드는 그림이었다. 전혀 내눈에 익숙치 않은 내 초상화였다. 집으로 부쳐달라고 하고 대금을 치르고 길을 나섰다. 그럭저럭 시간을 제법 허비 했다.
6코스의 마지막 외돌개를 찾아 나섰다. 차도를 따라 돌고 돌아서 언덕길을 올라 간다. 하루 중 가장 더운 두시경이다. 발걸음이 팍팍하다. 서귀포 해군 전투함에서 전투배치 훈련이 한창이다.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리고 수병들의 훈련 복창소리 오늘이 어린이 날 휴일일 텐데, 군인들은 훈련에 여념이 없구나.
외돌개 가는 길에 올레 표시를 잘 못 읽어 7-1코스로 들어가 삼매봉을 정상 까지 한바퀴를 돌아서 왔다. 외돌개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줄을 지어 서있다. 수학여행을 온 듯한 학생들이 일시에 몰려서 걷기가 불편할 정도로 붐빈다.
외돌개의 아름다운 경치도 경치지만, 대장금 촬영현장으로 더 각광을 받는 듯 하다. 배경이 좋은 장소마다 대장금 의 흔적이 널려 있다. 아무리 천하절경이라도 이렇게 사람의 생기를 느끼지 못한다면 좀 허전하지 않을까?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이 산천을 더윽 빛나게 하는 것이리라.
다시 길을 나선다. 외돌개에서 시작하는 2KM 정도의 산책로는 신샘의 ‘꿈속에서라도 걷고 싶은 길’에 추천하고 싶을 정도의 아름다운 길이다, 수십 길 되는 바닷가 벼랑위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연이어 있고, 그 벼랑을 따라 목책 가드레일이 세워져 있고, 목재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파도소리를 들으며 소나무 그늘 아래를 거니는 것은 꿈길이다.
산책로가 끝나고 해안으로 내려서더니만 이제는 내륙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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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시가 다 되어서 돌배낭골 민박 집을 지나가는데 이쯤에서 숙소를 정할까 하다가 좀 더 걷고난 후 결정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올레길을 위하여 이 민박집에서는 콘크리트 담을 허물어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호근 위생처리장을 지난다. 소골천이라는 작은 개울을 지나는데 제주에서 물이 흐르는 개울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관상수 농장을 지나쳐 간다. 용설란, 선인장 , 소철 등과 종려나무 비슷한 카나디안 야자가 수백그루 심어져 있는데 손질을 하지 않아 보기 흉하다. 야자나무는 해마다 새가지가 웃자라면 묵은 가지가 말라 비틀어져 쳐내주어야 하는데, 그대로 놔두니 죽은나무 같다. 전에는 한그루에 수백만원 씩 가는 고급 정원수 였는데. 지금은 흔해 빠져 처치 곤란한 애물이 되었다 한다. 해안가 작은 오솔길을 1KM정도 쉬지 않고 오르락 내리락 하며 간다. 농장의 두럭에서 두여인이 무엇을 열심히 따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산딸기 였다. 작은 스테인레스 다라에 산딸기가 그득하다.
오후 다섯시 반 쯤 법환포구에 이르다. 동네 아이들이 콘크리트 제방에 서서 차례로 물속에 뛰어든다. 5월 초에 성급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은 역시 제주 아이들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다리 해안가 별장지를 지나서 비포장도로가 나오더니 갑자기 길이 좁아지며 해안가로 내려선다. 몽돌해안가 오솔길이다. 작은 석축을 쌓아서 도로와 바다를 구획지었다.
앞에 보이는 섬이 썩은 섬이다. 물이 빠질 때 두 번씩 들어갈 수 있다고한다.
해안가 바위를 넘어 가는데 절벽이 나오고 밀물일 때라 길이 끊기지 않았을까 걱정을 하였더니, 암벽을 돌아가는 길이 정확히 만들어져 있다.
다시 언덕에 올라 보리밭길을 지나, 억새밭을 간다. 다시 해안으로 내려와 암반지대를 걷는데 마치 비누거품이 꺼질 때의 모습의 굳어진 현무암 지대를 간다. 다시 모래사장, 나뭇잎이 조류에 밀려와 푹신하다. 제주의 해안은 이렇듯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쉬지 않고 변화가 계속된다. 하루 종일 걸어도 단조로움을 느낄 시간이 없다.
악근천에 이르렀다, 악근천을 넘어서면 풍림리조트 이다. 악근천을 우회하기 위해 내륙으로 들어선다, 해안 길을 두시간 이상 걷고 이제 내륙으로 발길을 돌린다. 여섯시가 좀 넘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풍림게스트하우스에서 오늘 밤을 묵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5월6일 마지막 날
어제 풍림 게스트 하우스에 숙박을 신청하면서 숙박자 명단을 보니, 스탠스님이 들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홉시 넘어서 숙소에 들어와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직까지 입실을 하지 않은 듯 흔적이 없었다. . 자정이 넘어서 시끌벅적하여 잠에서 깨었다. 같은 방에 있던 젊은 친구 두어명이 밖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또 방에 들어와 술판을 벌이려다 잠을 자고 있던 사람들과 파열음이 생긴 것이다.
방에 있던 내가 거실에 나가 보니. 스탠스님이 프런트에 전화를 하더니만, 다른 방으로 옮겨 간다. 여행자 숙소에서 가끔 벌어지는 촌극인데, 있어서는 아니될 일이다. 하루종일 걸어 피곤한 다른 여행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일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다음날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도 그때 잠을 깨어 서너시 까지 잠을 못 이루다가 두어 시간 간신히 눈을 붙이고 아침에 거동을 하였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제공하는 빵과 우유를 들고 스텐스 님의 방에 가서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였고, 여덟시 쯤 둘이서 올레코스에 다시 올랐다. 나는 오늘 7코스의 남은 부분과 8코스를 마치고 돌아가는 배에 오를 것이다. 오후 세시 까지는 나에게 시간이 있다.
우리나라 원양함대의 함대사령부가 들어서는 강정포구를 지난다. 기지 건설공사가 활발히 진행중이다. 스탠스님이 공사를 총괄하는 해군의 관계자를 잘 아는 듯 공사 사무실에 들려 잠시 쉬면서 공사 현황도 들을 수 있었다. 해군함정 정박시설 뿐만아니라. 대형크루즈선 접안시설도 갖추어 동남아를 도는 크루즈선이 입항 하도록하여 제주도 관광활성화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좋은 아이디어이고, 군항을 유치한 강정포구 주민들이 소득증대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겠다.
강정포구를 나서서 잠시 후, 출발하여 한시간이나 흘렀나, 스탠스님 택시회사에 전화를 하더니, 그 곳 해안 까지 온 부름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짧은 시간이다. 서로 아쉬움을 나누고 작별을 했다. “ 건강하시고, 또 언젠가 우리땅에서 다시 만나겠죠.”
아홉시 15분, 월평포구에 도착하였다. 여기가 7코스와 8코스의 분기점이다. 아주 작은 포구이다. 만처럼 깊숙이 들어온 곳에 인공으로 만든 제방이 있고, 두 대의 모타 보트가 계류하고 있다. 오늘로 걷기를 이레 째 이튿날에 물집이 잡혀서 긴장을 했는데. 이제 근육도 매일 장시간 씩 걷는데 적응이 되는 듯 발걸음이 가볍다.
비닐하우스 백합농장을 지나 해안가 벼랑 위를 10여분 걸었다. 햇볕이 들지 않는 울창한 숲을 지난다. 내륙으로 향하는 길이다. 넓은 2차선이 나온다. 중문로다. 바야흐로 제주의 관광단지 중문에 들어선 것이다.
여유있는 2차선이다. 2차선의 차도와 인도가 화단으로 구분되고, 인도는 충분히 넓어 우마차나 경운기가 충분히 다닐 수 있는 2차선로 이다.
길가에 아름다운 꽃 농원이 있어, 비닐하우스에 작업하고 있는 분들에게 물어 보니. 거베라 라고 하는데 노란, 하얀, 빨강, 주황 등의 색깔이 있는데. 주황색이 가장 아름답다.
중문 약천사 거대란 도량이 한눈에 들어온다. 올레길은 다리를 바로 건너지 않고, 다리를 내려서 우회하는 목책의 산책로를 따라 내려간다. 물을 건너는 아치형의 다리가 운치가 있다. 여기서 계곡을 오르면서 잠시 동안 또 올레 표시를 놓쳤다. 돌아가면 되겠지만, 큰길을 따라내려 가다가 감각적으로 올레길 화살표를 다시 만났다. 어제 그제처럼 크게 반갑지는 아니하다. 이미 길을 찾아가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다. 길이 해안가 쪽으로 우회전을 한다. 우회전을 하기 전에 마침 길 건너편에 편의점이 있어 간단히 요기도 할겸 잠시 쉬었다. 제주사랑 편의점, 젊은 부부가 친절하다. 다시 길을 나서 밭두렁 길을 지나는데, 올레 길 중에서 가장 옹색한 길이다. 밭두렁도 아니고 밭 사이에 만들어진 수로의 콘크리트 구거를 마치 외나무다리 건너 듯 살피고 또 살피며 간다.
마늘 밭 두렁을 지나서 , 묵은 밭 잡초사이를 헤치고 해안에 내려선다. 몽돌해안 150미터 정도를 가니 대포동 해녀의 집이 나온다. 지금 앞에 보이는 섬은 밤섬이다.
대포동 해안을 따라가니 문화재 보호구역이라는 표시판과 출입금지 팻말이 띄엄띄엄 설치 되어있고, 목책을 따라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여기가 바로 주상절리 공원이다. 주상 절리 공원은 도 지정 문화재이다. 흑수정 기둥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진 바닷가 절벽, 주상절리, 유명관광지라서 사람이 붐빈다. 주상절리공원을 지나서 전경이 사뭇 다른 경내의 정원에 들어선다. 잔디와 소나무는 가지런히 다듬어져 있고, 적장한 간격으로 지어진 단층의 초가집이 단정하고 깔끔하다. 순간 멈칫해져 올레길 표시를 다시 확인했다. 틀린 길은 아니었다. 지나가는 직원에게 물으니 Seaes Hotel 이란다. 고급스럽고, 품격이 있는 호텔이다. 호텔 관계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호텔을 나서니 11시, 가까운 곳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물어보니 8코스 끝나는 월평포구까지 가는데 두 시간정도 걸린다고, 오후 한시경이면 오늘 시간계획에는 무리가 없겠다.
중문해수욕장으로 내려선다. 모래사장에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중문 해수욕장 언덕을 올라가니 하이야트 호텔의 앞마당이다. 어제 KAL호텔 마냥 정갈하지는 못하다. 시누대 사이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어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니 해안가에 이른다.
여기를 존모살이라고 하나? 금방이라도 쏟아 내릴 듯한 직벽 해안길을 걷고 있다. 굵은 바윗돌 위를 걷는다. 발바닥에 전달되는 암질의 저항력이 강하게 느껴진다.
지금 시간이 정오 쯤, 한낮의 햇살이 부담스럽기도 할 때 쯤 그 암벽 사이로 동굴이 있다. 해안에서 바람이 한데 몰려서 지나가는 곳이니 시원하고 그늘 좋고, 그냥 지나치기 아까워 한참이나 쉬었다.
동굴을 나서니 올레 13.8KM 지점이고 해병대길 시작이라고 되어있는데. 해병대길이라는 의미는 더 알아 봐야겠다. 나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느껴지는데......
색달 하수처리장 앞을 지나간다. 2차선의 포장로가 좁아지며, 시멘트 도로로 바뀐다. 논짓몰에서 2KM 정도 한적한 해안도로이다.
찔레꽃향기가 물씬 풍기는 해안가 소나무 그늘에서 한낮의 더위를 식히고 있다. 앞에 보이는 몽돌해안에서 바지를 물에 적셔가며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의 모습이 여유롭다.
해안을 올라서니 말소낭 밭길이라고 방향표시가 되어 있고 다시 길이 넓어진다.
해안 돌출부로 가는 길이 있는데. 등대로 가는 길일 것이다. 그냥 지나쳐 간다. 오늘의 남은 여정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대로 산길을 돌아가니 하예포구가 나온다.
12시 50분이다. 작고 앙증맞은 포구이다.
13시 12분 8코스 마지막 대평 포구에 도착했다.
6박 7일의 제주도 올레코스 기행을 여기서 마감한다.
그 동안 제주에 왔을 때 비를 안 만났던 기억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 여행에 다행히도 비가 그냥 스쳐지나가는 정도 였고, 여행 이틀 째 발에 물집이 생겨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잘 다스려 여기 까지 왔고, 내 처음으로 수염을 8일 동안 깎지 않고 지내 보았는데 수염을 기르고 보니 하얀 수염이 절반이었다. 나도 늙어 가는 거지.
그리고 이번 기행에 제주도에 대한 갈증을 풀어보려 했는데, 갈증은커녕 앞으로 제주도에 더 와 봐야 겠다는 욕심만 채워왔다.
끝으로 우리땅 걷기 제주 번개기행에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어 주셨던 스탠스 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올레코스를 만들어 준 서명숙 선생에게 깊은 존경을 표 합니다.
첫댓글 몇시간만 걸어도 실증나고 다리가 팍팍한데 적잖은 나이에...거기에 좋은 글 까지 하여튼 부럽다...재미있게 읽고 간다.이준태 이다
바우를행수로모시고물처럼바람처럼무심하게흘러가볼까.
좋은 일이지. 행수가 누가 되든 상관이 없고, 위에 보이는 동굴에 서서 ' 내맘의 강물'을 불렀다. 바닷바람 시원하고 공명이 잘 되었지. 지나 가는 사람들이 모여들더라고. 그렇게 스스로에 빠져 보는 것도 나그네의 특권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