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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서울 강남의 도산대로에 개관한 호림(湖林) 아트센터는 유흥문화로 가득한 이 지역에 품위 있는 문화의 향기를 심어주는 새로운 명소로 되었다. 테제건축(대표 유태용)에서 설계한 이 호림아트센터는 세 개의 건물이 어우러져 하나의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백자 항아리의 곡선을 살린 5층 건물은 호림박물관 신사분관(分館)이고, 빗살무늬토기의 형태를 빌린 15층 건물은 오피스인데 두 건물을 잇는 서비스 공간은 직선으로 디자인되어 현대적이면서 동시에 전통의 체취가 느껴진다.
서울 신림동에 본관을 두고 있는 호림박물관은 대중에게 다가가는 박물관이 되기 위해 이 신사분관을 마련하고 연중 서너 차례의 기획전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그 첫 기획전으로 열린 〈고려청자전〉은 정말로 근래 보기 드문 전시회이다. 호림박물관은 소장품이 우수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왔지만 고려청자의 컬렉션이 이처럼 훌륭한 줄은 관계자들도 잘 몰랐다. 우선 자체 소장품만으로 3개 층의 전시실을 모두 채웠다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그중 나라에서 보물로 지정된 것이 6점이나 된다. 전문가 입장에서 이런 전시회를 평가할 때는 대개 처음 공개되는 명품이 몇 점인가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청자 사자뚜껑 향로' '청자 귀면 장식 네 귀 항아리' 같은 유물은 비록 수리의 흔적은 있지만 종래엔 볼 수 없던 걸작이다. 아름다운 형태미와 다양한 문양의 청자매병이 열 점이나 전시되었다. 이런 비장품(秘藏品)들이 공개되자 그 소문이 일본에까지 퍼져 이미 여러 도자사가(陶磁史家)들이 다녀갔다.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본다 해도 이 전시회는 우리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문화에 감각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박물관이라며 안타까워하곤 한다. 그러나 내가 부족하게 느끼는 것은 박물관의 숫자가 아니라 박물관을 찾아가서 즐기는 관람문화가 약한 것이다. 좋은 전시회가 열리면 열심히 찾아가 구경해주는 문화적 향수가 곧 나라의 민도(民度)를 올리는 길이다.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은 매월 마지막 목요일 하루만은 무조건 무료입장으로 개방한다고 한다. 오늘(24일)이 바로 그날이니 놓치지 말고 박물관 문화에 동참해볼 만한 일이다.
조선일보 2009.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