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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본 영화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그녀의 이름앞에 수식어처럼 붙는 형용사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험한 말을 예사로 하는 교수남편의 부인으로서 파티에서부터
말다툼을 하기 시작하는데 집으로 돌아와서 칵테일 손님들을
불러놓고도 지속해서 싸운다보니 드디어 손님들마저 가세하여
새벽까지 다투는데...
리즈 테일러는 흥분하여 거의 광분한 상태가 되어 머리를 풀어헤친채
두눈을 부릅뜨고 소리소리 지르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영화에서의 열연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두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게 된다.
사실주의 작가 디오도 드라이저의<젊은이의 양지>
그레엄 그린의 위험한여로(1967)
테네시 윌리엄스의 <뜨거운 양철지분위의 고양이(1958)>를
위시해 20세기를 수놓은 극작가와 작가들의 원작에 출연하였던
리즈 테일러는 참으로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해냈다.
영화로 이룩한 그녀의 명성이 사생활로 얼룩졌다 해도
영화사에 남을 명연기와 명화로 길이 남을것임은 분명할 것이다.
엘리지베스 테일러(Elizabeth Tayor)는 1932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고 함.
2차 대전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아역배우로 출발한것은 아시지요...
10세 때 영화 <귀로>에 첫 출연하였고, 소녀시절 <녹원의 천사>
<신부의 아버지(1950)> 등을 거쳐 기록으로 보면 2004년까지 출연 하였더군요.
영국 출신이지만 일찌감치 할리우드에 진출해 아역 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타고난 아름다움으로 할리우드를 정복했다
10세 때 영화 <귀로(歸路)>에 첫 출연하였고, 소녀시절 <녹원(綠園)의 천사 >
< 신부의 아버지 Father of the Bride>(1950) 등을 거쳐
<젊은이의 양지(陽地) A Place in the Sun>(1951)에서부터
수려한 미모와 연기력이 돋보여 <자이언트 Giant>(1956),
클레오파트라 (1963) 등에 출연하였다. <버터필드 8 Butterfield 8>(1960),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1966)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2살때 할리우드서 아역배우로 출발한 그녀는 아역스타는 나이를 먹으면 인기를 잃는다
는 불문율을 깨고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이중 대표작이 20세기 폭스의 <클레오파트라> 헐리웃의 내노라 하는 미녀들인
킴 노박, 소피아 로렌 등을 제치고 "세기의 미인 클레오 파트라"역에 캐스팅된
테일러는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액수인 933만 달러를 출연료로 받았다.
5년에 걸쳐 제작된 ‘클레오파트라’는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고,
테일러는 이 영화 촬영중 ‘버터필드 8’로첫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8번의 결혼과 이혼. 30번이 넘는 크고 작은 수술.
만성 다이어트 중독증 환자로 명성 을 떨치게 된 것이다
테일러는 50년 호텔 거부 콘래드 닉키 힐튼 주니어.
52년 영국 배우 마이클 와일딩.
57년 영화 제작자 마이클 토드와 결혼과 이혼을 거듭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테일러를 잘 이해했던
버튼과 결혼생활은 그중 가장 길게 지속했다.
이들은 64년 결혼해 74년 이혼했다.
75년 재혼을 하지만 곧 처음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으며 이혼했고,
91년. 여덟 번째 남편 래리 포텐스키와 결혼한 테일러는
96년까지 8번째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만 끝내 이혼했다.
세번째 남편 토드가 죽은 뒤테일러는
토드의 절친한 친구이자 자신의 친구 데비 레널즈의 남편이었던
에디 피셔와 염문을 일으켰으며
당시 한 기자가 세간의 비판을 전하자 “날더러 어쩌라고?
그럼 혼자 자란 말야?”라고 응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국 원로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73)가 자신의 전남편 고 리차드 버튼의 고향인
웰시에서 영원히잠들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2005년 10월 18일(현지시각) 영국 연예사이트 피메일퍼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현재 중병에 걸린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옛사랑 리차드 버튼의 고향에 자신의
유해를 뿌려 달라는 바람을 나타냈다.
뇌종양 수술을 받은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특히 자신의 마지막 안식처로
영국 카디프 지역의 대학 ‘로얄 웰시 컬리지 오브 뮤직 앤 드라마’를 꼽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리처드 버튼이 스위스에 안장돼 있기 때문에
그 요구를 의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
평생 7번 결혼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리처드 버튼과 두 번 결혼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버튼과의 합장을 원하지만 버튼의 부인인 샐리 헤이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리처드 버튼의 형제인 그라함 젠킨스는 “엘리자베스가
‘로얄 웰시 컬리지 오브 뮤직 앤 드라마’
사진을 보더니 웰시에서 잠들고 싶어한다”고 전했다.엘리자베스 로즈먼드 테일러는
1932년 2월 27일 런던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일찍부터 딸의 재능을 키워주셨다. 전쟁 때문에 뉴욕으로 이주한 후
1942년 엘리자베스는 첫 번째 영화 배역을 맡는다. 12살 때 헐리우드에서
아역배우로 출발한 엘리자베스는 1943년 "래시"와 1944년 "내셔널 벨벳"에서
주인공으로 성공을 거둔다.
1956년 "자이언츠"로 틴에이저 스타에서 낭만적인 젊은 여배우로서의 변신에 성공하였다.
1960년 "버터필드 8"에서 콜걸 역으로 갈망하던 오스카 상을 받는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야심이 많았던 어머니에 의해 그녀의 성공이 키워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엘리자베스는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는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
경험하지 못한 채 항상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위해서 양보했으며 장미빛 인생만이
있었기에 행복하게만 지내왔었다.
그녀는 좌절을 거의 알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이었던 마이크 토드의 어의 없는
비행기 추락 사고는 그녀를 절망에 빠뜨렸으며 다시 혼자가 된 그녀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남자에게 매달리게 되었다. 그 남자가 가수 에디 피셔였다.
하지만 좋은 감정도 잠시, 자신을 지루하게 만드는 그런 남자에게서 점차 싫증을 느낄 무렵
"클레오파트라" 영화 촬영을 위해 로마로 왔다. 엘리자베스와 리차드 버튼은 정열적이고
야심차고 정직했으며 일을 하면서 서로 돕기도 했지만 불편한 얘기에 관해서도
진실하게 이야기 했다. 첫날 후에는 서로 더 이상 눈에서 떼어 놓을 수 없게 되었고
테일러의 개방적이고 깊이 없이 오로지 자신의 미모로 만들어진 성적 매력은
버튼을 간단하게 넘어뜨렸고,
리처드의 지성, 오만, 예민한 성격은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1962년 로마에서 미국 영화 "클레오파트라"가 탄생했다. 영화장비, 투입된 스타,
비용면에서 신기록을 세웠고 주인공으로서는 세 번의 결혼을 했고 세 명의 자녀를 둔
엘리자베스가 빛을 발했다. "클레오파트라가"에서 리처드와 엘리자베스가 사랑하는 장면을
찍는 동안 스태프 전체는 숨을 죽였다. 모두 그것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고 이 영화로 인해 둘은 실제 커플로 만들었던 것이다.
1960년 "버터필드 8"에서 콜걸 역으로 오스카상을 받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은 1964년에 결혼한다. 할리우드의 꿈과 같은 이상적인 커플.
두 사람에게 다 위대한 사랑이었고, 서로에게 모든 것을 의미하고
모든 것을 감동시키고 상대방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점점 그들은 서로를 불편한 관계로 만들고 있었다.
그는 조롱하는 버릇을 자제할 수 없었고 그녀는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참지 못했다.
그들의 결혼은 애정과 존중보다는 소동, 증오, 과도한 음주로 더 유명했다.
그는 육체적으로 때리기까지 했다. 절제를 모르는 삭막한 욕설, 역겨운 모욕,
고통스럽게 벌어지는 술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했고 그 사실은 본인들도 알고 있었다.
비록 전쟁과 화해가 계속되기는 했지만 테일러와 버튼은 몇 편의 영화에 함께 출현한다.
1965년에 나온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가장 유명하고 훌륭한 작품이다.
정열의 파괴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미의 대명사로 꼽혔던
테일러가 마스카라가 번진 얼굴로 열연을 펼쳤던 작품이다.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은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연기했다.
결혼 생활은 파경에 이르렀고 이들은 1964년 결혼해 1974년 이혼했다. 화려한 미모만큼
사생활도 화려했는데 8번의 결혼과 이혼. 30번이 넘는 크고 작은 수술. 만성 다이어트
중독증 환자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이다. 테일러는 1950년 호텔 거부 콘래드 닉키 힐튼 주니어,
1952년 영국 배우 마이클 와일딩, 1957년 영화 제작자 마이클 토드와 결혼과 이혼을 거듭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테일러를 잘 이해했던 버튼과 결혼생활은 그 중 가장 길게 지속했다.
1975년 재혼을 하지만 곧 처음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으며 이혼했다.
1991년 여덟 번째 남편 래리 포텐스키와 결혼한 테일러는 96년까지 8번째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만 끝낸 이혼했다. 숨가쁜 결혼 행진곡 속에서 이제는 늙고 뚱뚱한 여배우로
변해버린 테일러. 그러나 그의 사랑과 열정은 이 시대 위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출연작:
고인돌 가족(The Flintstones) , 1994
사랑과 열정(Sweet Bird Of Youth) , 1989
토스카니니(Il Giovane Toscanini:Young Toscanini) , 1988
고백(There Must Be A Pony) , 1986
춤추는 헐리웃(Malice In Wonderland) , 1985
남과 북(North And South) , 1985
거울 살인 사건(The Mirror Crack'd) , 1980
파랑새(The Blue Bird) , 1976
엔터베 특공작전(Victory At Entebbe) , 1976
엔터테인먼트(That's Entertainment) , 1974
나이트 워치(Night Watch) , 1973
화려한 사랑(Zee And Co.:X, Y And Zee) , 1972
비밀(Secret Ceremony) , 1968
리플렉션 인 골든 아이(Reflections In A Golden Eye) , 1967
말괄량이 길들이기(La Bisbetica Domata:The Taming Of The Shrew) , 1967
위험한 여로(The Comedians) , 1967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 1966
클레오파트라(Cleopatra) , 1963
버터필드 8(John O'Hara's Butterfield 8) , 1960
지난 여름 갑자기(Suddenly, Last Summer) , 1959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 , 1958
레인트리 카운티(Raintree County) , 1957
자이언트(Giant) , 1956
호걸 브롬멜(Beau Brommel) , 1954
내가 마지막 본 파리(The Last Time I Saw Paris) , 1954
아이반호(Ivanhoe) , 1952
쿼바디스(Qvo Vadis:Quo Vadis?) , 1951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 , 1951
신부의 아버지(Father Of The Bride) , 1950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 1949
아버지와 인생을(Life With Father) , 1947
내셔널 벨벳(National Velvet) ,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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