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조와 정순왕후 원릉
|
아버지 굶겨 죽인 할애비라고 파묘(破墓)자리 찾아 무덤 만든 손자를 무슨 말로 달래 주랴 홀로 잠든 정성왕후 밤마다 찿아가도 내 자리는 여전히 비었구나 고개 들지 못하고 낮춰야 했던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늘에 숨는 걸 배웠고 어머니 신분 높아지기를 기다렸다 임인옥사 일어나던 해 수백 명 신하들이 죽어가며 전해준 말 한 마디도 잊지 않아 살 수 있었다. 왕위에 올라 제일 먼저 한일은 무었인가 탕평책(蕩平策)펼쳐 다스렸지만 살얼음 정국(政局)으로 치닫다가 마흔넷에 얻은 아들 죽이고 말았다. 뒤주 속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와 어린 손자 울부짖음 모른 체 하고 나라를 위해 한 일이었다고 빌던 날 아무도 따라주지 않더구나 아들 죽인 죄 어떻게 씻으랴 살았을 때 자리 잡은 명당에 묻히지 못하고 할아버지 뒷자리 차지한 지금 때때로 날아 든 새가 웃고 있는 무인석 머리에 화성 소식 남기고 가는 걸 잃으며 골짜기 채워지도록 눈물 흘린다.
************************************************************************************ * 영조는 위태로운 옥사를 겪으며 왕위에 올라 의심이 많고 남을 믿지 않는 왕이었다. 재위 52년간 왕권 확립에 노력했고 많은 업적을 남겼어도 아들 사도세자를 죽였다. 자신이 자리 잡은 홍릉에 묻히지 못하고 효종의 파묘 자리에 묻혔다. 구리시 동구릉 소재
조선 왕릉의 사연을 엮은 서사시 왕릉 이오장 시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