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도 일찍 떠지고, 진관사도 둘러볼 겸 약속시간보다 30~40분 정도 일찍 집에서 나선다.
연신내역에서 하차 3번 출구로 나와 직진 아니고 왼쪽으로 돌아 조금 올라가 연서시장 앞에서 7211번 버스를 탄다.
하나고등학교 앞에서 하차 은평한옥마을로 들어가니 진관사가 나온다.
일행이 오기 전까지 진관사 한바퀴 돌아본다.
오늘 북한산 산행은 응봉능선 오르기...(삼천사 또는 진관공원지킴터 부터 사모바위에 이르는 능선)
긴 휴일을 보내고 마지막 날 몸풀기 정도의 산행이란다...
▲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은평 한옥마을...
▲ 진관사에 도착...
▲ 진관사 해탈문...
★ 진관사 (津寬寺)
북한산(삼각산) 서쪽 기슭에 있는 조계종 소속 고려시대의 고찰로, 불암사, 삼막사, 보개산 심원사와 함께
조선시대에는 한양 근교의 4대 사찰 중 하나였다.
고려 현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진관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지은 절이라고 전해진다.
고려경종이 죽자 젊은 왕비는 왕태후(천추태후)가 되어 파계승 김치양(金致陽)과 정을 나누다가 사생아를 낳았다.
그 때 목종에게 아들이 없어 태조의 아들이던 왕욱(王郁: 安宗)의 직손이며 법통을 이어받을 대랑원군(大良院君)이
왕위 계승자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왕태후는 대랑원군을 없애고 자신의 사생아를 옹립하기 위하여 목종에게 참소하여 숭경사(崇慶寺)에 가두고
죽일 틈을 엿보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시 삼각산 신혈사로 옮기도록 하였다.
신혈사는 진관(津寬)이 혼자서 수도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살해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이 사실을 눈치 챈
진관이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지하굴을 파서 열두 살인 대랑원군(욱)을 숨겼으므로 왕태후가 보낸 자객의
화를 면할 수 있었다.
3년 뒤 목종이 죽자 대랑원군은 개경으로 돌아가 현종이 되었고, 1011년 진관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대사의 이름을 따서 진관사라 하였다.
그 뒤 진관사는 임금을 보살핀 은혜로운 곳이어서 여러 임금의 각별한 보호와 지원을 받았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수륙재(水陸齋)가 열리는 근본 도량으로 춘추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수륙재란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를 달래며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의식으로,
이곳에서 조상의 명복을 빌고, 나랏일로 죽었어도 제사조차 받지 못하는 굶주린 영혼을 위해 재를 올렸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64년 이후 복원되었다.
진관사에서 북한산 정상방향인 동쪽으로 이어진 계곡을 진관사계곡이라고 부르는데 암반이 잘 발달되어 있다.
암반은 경사가 급하고 작은 폭포들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진관사계곡을 따라 산길을 오르면 북한산 사모바위와 비봉에 이르게 되고 이어 향로봉과 승가봉이 가까이 있다.- naver 펌
10시 50분에 진관사 해탈문 앞에서 일행을 만난다. 오늘 산행은 짧은 코스라 만나는 시간을 느직하게 잡았다.
백설의 소백산에서 칼바람 맞고 온 게 불과 열흘전인데 날씨가 봄날씨처럼 따스하고 하늘도 무지하게 파랗다.
극락교를 건너면 사모바위 2.6km라고 써있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왼편으로 돌면 응봉능선 들머리가 된다.
▲ 10 여분 정도 올라왔는데 공사중인 한옥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이젠 북한산 아래 높은 아파트는 그만 들어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시간 반 정도는 바위도 가끔 나오고 가파른 오름이 이어진다.
40 여분 오르니 하얀 바위가 드러나는 의상능선이 왼쪽으로 펼쳐지고 북한산에 왔구나를 실감케한다.
의상능선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가끔 앉아 쉬면서 담소도 나누며 오르니 여유있는 산행이 재미있다.
▲ 웨딩바위... 바위이름 하나 하나 알아가는 것도 흥미있다.
▲ 힘든 구간에서는 도움도 받고...
▲ 이런 바위를 오를 때의 재미가 쏠쏠하다...
▲ 북한산의 묘미는 바위에 오르는 것...
▲ 넘어야 할 바위가 또 하나 나온다. 흥미진진...
드디어 백운대, 노적봉, 만경대... 삼각산도 출현이다. 백운대 방향을 당겨본다.
★ 삼각산
삼각산(三角山)은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산봉으로서 백운대(白雲臺, 836.5m), 인수봉(人壽峰, 810.5m),
만경대(萬鏡臺, 787.0m)로 구성되어 있다.
세 봉우리가 삼각을 이룬 형태의 산으로 삼국시대에는 부아악(負兒岳), 횡악(橫岳), 한산 등으로 불렸다
만경대의 옛이름은 국망봉이며 봉명은 일찌기 이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때 왕사 무학이 영기에 올라가
새 나라의 도읍터를 바라 보고 정해서 국망이라는 봉명이 생겼다고 전해오기도 한다.
▲ 문수봉도 출현이다. 문수봉 방향을 당겨본다.
문수봉만 알고 칠성봉과 연화봉은 몰랐었는데 인터넷 서핑을 하다 바위 이름을 알게되었다.
저 바위를 이렇게 불렀었구나...
★ 문수봉 (文殊峰)
북한산 의상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높이는 727m이다. 의상봉에서 시작되는 의상능선의 마지막 봉우리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 속한다.
명칭은 봉우리 아래에 있는 고려 때 창건된 문수사(文殊寺)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봉우리 북쪽 자락의 청수동암문에서 의상능선과 산성주능선, 비봉능선이 만난다.
봉우리 위에 있는 두꺼비 모양의 바위 등에 걸터앉아 아들을 갖기를 축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보현봉 (普賢峰)
북한산 대남문 밖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서 높이는 해발 714m이다.
비봉·문수봉과 함께 북한산 남쪽의 주봉을 형성한다. 명칭은 마주보고 있는 문수봉의 동남쪽에 있다 하여,
4대보살(미륵·문수·관음·보현)의 위치에서 동남쪽에 있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대남문에서 보현봉을 거쳐 평창동으로 내려오는 보현봉능선은 추락 위험이 높은 암릉구간이 있다.
▲ 우리가 걸었던 길을 되돌아본다. 힘들게 올라왔던 바위도 더 높은 곳에서 보면 아주 작아보인다.
사모바위 도착 전 마지막 바위... 위회해서 올라가도 되는데 궂이 줄을 잡고 올라가겠다고 우긴다...
그게 재미있으니까...^&^
▲ 드디어 사모바위에 도착...
▲ 멀리 보이는 비봉에도 바위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 대장이 먼저 바위 위로 재바르게 올라가서 손을 흔든다... ^^
▲ 사모바위 위에서 바라본 비봉..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곳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겁이 나 오르지는 못하고 늘 우회하고 부러워만 했던 사모바위에 오늘은 일행의 도움으로 올라본다.
의상능선,비봉능선 등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너무 짜릿하고 흥분되는 순간이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준 일행에게 한없이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짧았지만 어느때보다 큰 희열을 맛보고 이젠 구기동쪽으로 하산이다.
내려오다 남들 잠깐 쉬는 사이에 승가사에 잠깐 들러보는데 입구에서 보니 계단이 까마득하다.
저기를 갔다오면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까봐 일주문 주변만 둘러보고 내려온다.
★ 승가사(僧伽寺)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교구 조계사에 속한 사찰로, 북한산 비봉 동쪽에 있다.
756년(경덕왕 15)에 낭적사의 승려 수태(秀台)가 창건하고 당나라 고종 때 천복사(薦福寺)에서 대중을 가르쳤던
승가(僧伽)를 기리는 뜻에서 승가사라고 이름지었다.
승가대사는 서역인으로서 서기 640년에 출생하여 당나라로 건너와 53년간 불교 전교에 헌신한 분으로 갖가지 변화를
자유자재로 하여 기적을 나타내어 동방의 불교 홍법에 큰 획을 이루어 관음보살로 회신되어 중국의 각지에 승가당이 설치되어 있다.
1024년(현종 15) 지광(智光)과 성언(成彦)이 중수하고, 1090년(선종 7)에 영현(領賢)이 중수하였다.
1099년(숙종 4)에는 의천(義天)이 불당을 고쳐 지었다.
1422년(세종 4)에 7종을 합하여 선교양종으로 통합할 때 선종에 속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불교 부흥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941년에 도공(道空)이 크게 고쳤으나 6·25전쟁으로 불에 타 크게 망가진 것을 1957년에 도명(道明)이 크게 수리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산신각·향로각·동정각(動靜閣)·범종각·대방(大房)·요사채 등이 있다.
유물로는 절 뒤편 자연 입석에 부조로 새긴 마애석불석가여래좌상(보물 215)이 전하고, 석굴 안에는 고려 현종 때
조성된 승가사석조승가대사상(보물 1000)이 남아 있다
햇살은 봄날씨처럼 따스해도 계곡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있고 그늘진 계곡물은 두텁게 얼어있다.
얼음이 풀려 계곡물이 흐르고 산이 연초록으로 뒤덮이면 또 얼마나 멋지려나...
.
이제 내려가면 아마도 그때쯤이나 오르겠지싶어 녹색의 풍광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본다
1시간 남짓 걸려 구기탐방지원센터에 도착... 이렇게 일찍 하산해보기도 처음이다.
구기동으로 내려와 뒷풀이로 도토리묵과 모듬전을 안주로 막걸리 한잔씩 하고 각자 집으로...
산행 시간은 짧았지만 어느때보다 즐거움을 만끽한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