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욥기 18장 1~21절
요절: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욥 18:5~6)
서론: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인간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는 그의 대작 《신곡》(Divine Comedy)의 〈지옥편〉(Inferno)을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로 시작합니다. "인생길의 반가운데서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을 헤매었노라." 단테가 묘사한 지옥의 입구는 단순한 육체적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근원적 빛을 상실한 존재들이 자신의 죄가 만들어낸 굴레에 갇혀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절망의 공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수아 사람 빌닷의 두 번째 공박입니다. 빌닷은 인과응보적 전통주의의 잣대로 욥을 정죄하며, 악인이 맞이할 비참한 종말을 정교하고도 섬뜩한 시적 언어로 폭로합니다. 비록 빌닷은 고난받는 의인 욥의 정황을 오해하여 이 말을 잘못 적용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지만, 그가 사용한 히브리어 시어들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맞이할 존재론적 비극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지적했듯,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죽음을 향해 던져진 존재'로서 끊임없는 어둠과 불안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비극에서 멈추지 않고, 신약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어둠이 어떻게 극복되는지 선포합니다. 빌닷이 묘사한 악인의 비극적 운명 속에 담긴 본문을 통해, 단테의 여정처럼 어둠에서 시작하여 영원한 빛으로 나아가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꺼져가는 인간의 빛(오르)과 참된 생명의 빛
빌닷은 5절과 6절에서 "악인의 빛(오르)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하셰크)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라며 악인의 상태를 '빛'의 소멸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빛'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오르'(אוֹר)는 창세기 1장 3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부르셨던 생명과 질서의 원천입니다. 반면 '어두워지다'로 번역된 '하셰크'(חָשַׁךְ)는 단순한 밤의 상태가 아니라, 생명력이 상실되어 혼돈과 부재로 돌아가는 절망을 의미합니다. 빌닷이 관찰한 악인의 '오르'는 하나님께 뿌리박지 않은, 인간 스스로 만든 인공적인 불꽃이었습니다. 자기 자랑, 세상의 권력, 자아도취의 등불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하셰크'(어둠)로 귀결됩니다.
단테의《신곡》지옥편에 등장하는 영혼들은 빛이 전혀 들지 않는 무지(無知)와 고립의 어둠 속을 헤맸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가 말했듯, "하나님이 없는 자아는 스스로를 빛이라 착각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그늘에 갇히게 된다"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 꺼져가는 '오르'의 절망을 깨뜨리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언하셨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밝힌 인공의 촛불은 바람에 꺼지지만, 참빛 되신 그리스도의 빛은 장막의 어둠을 완전히 몰아냅니다.
성도는 세상이 제시하는 가짜 빛, 곧 명예와 부와 자아 성취라는 '유한한 불꽃'을 나의 등불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나의 장막 안이 어둡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 내 힘으로 불을 지피려 하지 말고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마음의 창을 열어야 합니다.
2. 스스로를 옭아매는 올무와 그리스도의 해방
이어지는 8절부터 10절에서 빌닷은 악인이 어떻게 파멸에 이르는지 묘사합니다. "그의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그의 몸은 올무(파흐)에 얽힐 것이며"(욥 18:9). 히브리어 '파흐'(פַּח)는 새나 짐승을 잡기 위해 몰래 설치한 '올무'나 '함정'을 뜻합니다. 8절의 문맥을 유심히 보면, 악인을 덫에 빠뜨린 주체는 타인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발"입니다. 악인은 남을 해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덫을 놓지만, 결국 스스로 그 '파흐'를 밟고 구속당합니다.
존재론적 철학자 사르트르는 그의 연극《닫힌 문》에서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지만, 본문은 실상 "자기 자신이 곧 지옥의 덫"임을 폭로합니다. 죄는 외부에서 오는 물리적 구속이기 전에,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 스스로를 죄의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내면의 굴레입니다. 단테의 지옥에서도 탐욕스러운 자들은 자신이 모은 금전의 무게에 짓눌려 있고, 애욕에 빠졌던 자들은 그 욕망의 폭풍에 평생 휘둘리는 형벌을 받습니다. 죄 자체가 스스로를 징벌하는 '파흐(올무)'가 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7장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며 스스로 만든 율법과 죄의 올무 아래서 신음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 1~2절에서 반전을 선포합니다.
시편 기자가 고백했듯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파흐)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시 124:7)라는 은혜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자기 의, 비판하는 마음, 은밀한 죄의 습관이라는 '파흐'를 스스로 놓아두고 그 안에 갇히곤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법률주의와 비판의 덫을 거두어내고, 오직 십자가의 보혈이 주는 완전한 자유함 속에 거해야 합니다.
3. 세상에서 사라지는 이름과 생명책의 영원한 기억
17절의 "그를 기념(지크론)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셰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라며 빌닷이 말하는 악인의 마지막 비극은 존재의 완전한 소멸입니다. 히브리어 '셰임'(שֵׁם)은 단순한 호칭을 넘어 한 인간의 인격, 명예, 존재의 가치를 집약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지크론'(זִכָּרוֹן)은 기억, 혹은 후대에 남겨질 유산과 은혜의 흔적을 의미합니다. 빌닷은 악인의 끝이 땅 위에서 완전히 잊히는 것, 즉 '존재의 무(Nothingness)'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느끼는 가장 깊은 불안을 '절망', 곧 하나님 앞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세속적 철학에서 인간은 죽음과 함께 역사 속에서 잊혀질 존재에 불과합니다. 단테의《신곡》지옥편에 등장하는 가장 비참한 영혼들은 세상과 하나님 모두에게 잊혀 이름조차 불러지지 않는 '무명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 무서운 소멸의 판결이 뒤집힙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우리의 '셰임(이름)'이 무명하고, 우리의 일생이 세상 역사책에 '지크론(기념)'되지 못할지라도, 어린 양의 생명책(계 21:27)에는 성도의 이름이 영원히 각인됩니다. 빌닷의 정죄와 달리, 고난받는 욥의 이름은 땅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성경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신앙의 유산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세상에서의 인정과 이름 석 자를 남기기 위해 인맥과 업적에 목매지 마십시오. 우리의 진정한 존재 가치는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내 이름을 그분의 손바닥에 새기셨다는 사실(이사야 49:16)에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명성을 좇는 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천국 시민들의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결론: 지옥의 문을 지나 별을 바라보며
단테의《신곡》〈지옥편》은 마지막 구절에서 비극을 딛고 희망을 향해 나아갑니다. 지옥의 모든 어둠과 절망의 소용돌이를 통과한 단테와 인도자 베르길리우스는 마침내 어두운 동굴을 벗어나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고 우리는 다시 별들을 보러 나왔다(e quindi uscimmo a riveder le stelle)"를 고백합니다.
빌닷은 본문에서 악인이 맞이할 '꺼지는 빛(오르)', '스스로 옭아매는 올무(파흐)', '잊혀지는 이름(셰임)'이라는 차가운 비극만을 나열했습니다. 그는 욥의 고난을 악인의 심판으로 치부하는 신학적 조급함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빌닷의 이 정죄를 완전히 뒤집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친히 우리 대신 어둠(하셰크) 속에 거하셨고, 죄의 올무(파흐)에 매이셨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 존재가 소멸되는 듯한 버려짐을 경험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깊은 고난과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계십니까? 나의 등불이 꺼진 것 같고, 내 발이 세상의 덫에 걸린 것 같으며, 아무도 나를 기억해주지 않는 것 같은 외로움 속에 있습니까?
ㆍ빌닷의 시선에 머물지 마시고, 십자가 위에서 참빛(אוֹר, 오르)으로 서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ㆍ어두운 장막을 거두어내시고, 끊어진 올무(פַּח, 파흐)밖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십시오.
ㆍ하늘나라 생명책에 영원한 이름(שֵׁם, 셰임)이 기억(זִכָּרוֹן, 지크론)되게 하십시오.
그분께서 우리의 어둠과 올무와 무명을 대신 짊어지셨기에, 오늘 우리는 그 십자가를 통과하여 영원히 꺼지지 않는 생명의 빛을 얻었고,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는 성도님들과 우리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