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삼한시대에는 상주시 지역에 사벌국(沙伐國, 또는 沙伐梁國, 沙弗國)이라는 소국이 있었다.
그후 3세기 중엽에는 신라의 세력권에 들어 사벌주·상주(上州)·상주(尙州) 등 신라의 행정구역이 설치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상주목(尙州牧)·귀덕군절도사(歸德郡節度使)
조선시대에 들어 1392년(태조 1)에 경주로부터 관찰사영이 상주로 옮겨와
경상도의 정치·행정의 중심지가 되었으나, 임진왜란중인 1596년(선조 29)에 관찰사영은
경상도의 중앙에 위치한 대구로 옮겨갔다. 상주의 별호는 상락(上洛)·상산(商山) 등이었다.
1896년에 도제가 실시되어 경상북도에 소속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 이후 면적이 크게 축소되었다.
1914년 군면폐합 때에 상주군의 24개면이 15개면으로 폐합되고,
함창군이 폐지되어 공검·함창·이안의 3개면이 편입됨으로써 다시 영역이 넓어졌다.
1931년에는 내동면·내서면·내남면·내북면이 1914년에 통합되어 이루어진
1995년 실시된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상주군과 도시기능을 담당했던
상주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상주시를 이루었다
흔히 상주를 삼백의 도시로 불린다
흰것 3가지인데 "쌀" "누에" "곶감"이라한다
조선시대에는 경상감영(도청)이 상주에 있었으나 후에 대구로 옮겼다고 역사에 기록되어있다
한때는 경상북부의 중심지로 270.000의 인구가 살았으나
박통의 구미 살리기로 인해 경부고속도로가 구미를 통과하고
김천의 급성장세 이리치고 저리치인 상주는 인구가 급속히빠져 나가고
이제는 인구100.000만의 소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 이제 늦게나마 "영천~상주"고속도로가 개통하고
"당진~영덕"고속도로가 내륙을 통과하면서 조금씩 유동인구가
상주의 경제에 도움을 주고있는듯하다
걘적인 생각이지만 경북북부를 활성화 시키기위해서는
상주나 영주정도에 국가산단같은 전략단지가 들어선다면 좋지않을까싶다
물자운송도 수도권과 가깝고 낙동강이 가까이있어 공업용수도 확보도
어렵지않다
자는둥 마는둥 춥기도춥고
옆에 공원에 캠핑카족들 밤새도록 부어라 마셔라
새벽까지 떠들어댄다 !@@&^*%$#2133455
그렇케 개떨듯이 떨다가 길을 나설준비를하고
구룡산에서 먹었던 밤팥죽 한그릇 비우고 출발한다
상주보
조용하니 너무좋다
오로지 나혼자만이 이여유를 부려본다
날이 밝아오고
강창나루
죽암과 낙동 신상을 연결하는 잠수교가 놓여있다
낙동강을 내려오다보면 구문소지나 "철암천을 합류하여
송정리천을 합류하면서부터는 나룻터가 엄청많다
이름으로만 전해지지만 그당시에는 교통수단이 나룻배 황포돛배
이런것밖에 없었기때문에 조그마한 마을을 지날때마다 나룻터가 있었으리라본다
(요즘의 버스정류장)
국가의 세금,농산물,임산물,목재 무었이든지 나룻터를 이용하지 않고는
생활자체가 불가능했던 그때의 생활이 아니었을까싶다
요즘은 육로와 철도로 모든것을 이용하는시대
우리는 왜 이런 편리함을 느끼지 못하고살까 생각해본다
낙암서원
1745년(영조 21)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담수(金聃壽)·김정룡(金廷龍)·김정견(金廷堅)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나,
그 뒤 묘우(廟宇) 자리에 단소(壇所)를 만들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강당(講堂)과 1칸의 장판각(藏板閣)이 있으며,
동재·서재와 전사청(典祀廳) 등은 터만 남아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된다.
장판각은 문집의 판각을 보관하는 곳인데 현재 판각은 없고 판각된 문집만 몇 권 남아 있다.
낙암서원
푸르디 푸루른 무우밭 농부는 저렇게 가꾸기까지
얼마나 땀을 흘렸을까를 생각해봅니다
튼실하게 잘키운것같습니다 애쓰가꾼 보람이 있으시길 바래보면서 ~
토진 나루터 오기전 무우밭지나 야산언덕을 오르는데
자전거한대 지나가시더니 다시돌려 내앞에선다
나랑 얘기하면서 가고싶으시다고 하신다
가면서 이런얘기 저런얘기
일행이 있다는데 어디계시냐고 물으니 뒤에오고계시단다
인천에서 출발해 오고계신다니 아마 잔차 국토종주를 하시는듯~
어제 충주에서 허리를 다쳐 침을맞고 진행하시는듯
끈기가 대단하시다고 용기를 북돋우어 주시고
뒤에서오신 후배와함께 나에게도 화이팅을 외쳐주신다
안전하게 낙동강 하구뚝에 서시길 기도해주었다
중동교
한사람이 지나갈수없도록 어찌 이렇게좁게 다리를 놓으셨을꼬
불안하기만하다 지나는내내 콩닥 콩닥 ~~ 가슴은 뛰고
손을 들어 지나가는 운전자분께 양해를 구해본다
아침을 먹고가야겠기에 "들꽃식당"에 들러본다
인심좋아 보이는 아주머니 반갑게 맞아주시는데~
자전거는 어디두고 걸어오냐고 자전거를 갖고 오시란다 ㅎ
계속걸어서 왔다고하니 아주머니 깜짝놀란다
식당에는 열살남짓되는 사내아이와 아이의 아빠가 식사중
잔차국토종주 하시는 분 어제저녁에 주무시고 오늘 합천보나 창녕보까지 가실거라고 하신다
아들이 참대견스러보였다
어릴때 이런경험은 성인이 되어서도 큰자산이되지 않을까싶다
서로 힘내라고 격려해주고 밥도 든든히먹고 길을 나섭니다
산허리가 서로 고개를 숙이는 저곳이
왼쪽은 보현지맥,오른쪽은 팔공지맥이다
위천이 합류되는곳이기도하다 수암종택도 저어딘가에 있다는데
시간도없고 거리가 멀기도하다
팔공지맥
백두대간 에서 분기한 낙동정맥이 주왕산과 통점재를지나 가사령으로
내려가기전 1.1km지점(744.7m)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베틀봉(934m)면봉산(1121m)보현산(1126m)
석심산에 이르러 두갈래 산줄기가 갈래친다
남서진하며 여러산을 지나고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세띠마을
위천에서 그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120Km팔공지맥이라 부른다
보현지맥
석심산에서 북서진하여 어봉산 갈비산등 여러산군을 아우러며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위천에서 맥을 다하는
약130KM의 산줄기를 보현지맥이라한다
강태공아저씨
어제 밤새도록 낚시 한마리도 못잡으셨다네요
물의 탁도 때문이라 그러시더라구요
당진,영덕 고속도로인지 ?
알수가없다 ~ㅎ
낙동강역사문화생태단지
여기는 시간을 가지시고 한번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저는 대충보고 나옵니다
나무 화석
낙동리 마을길가에는 가로수로 감나무가 싶어져있다
가로수에는 과실나무를 잘심지않는데~
낙단보
낙동강 살리기 사업 제32공구[구미·상주·의성] 사업의 하나로 2009년 11월 23일
국토 해양부 고시 제2009-1117호에 따라 건립 공사가 시작되었다.
낙단보의 경관은 ‘자연은 이롭게, 사람들은 즐거운, 생명이 유익한 생태 환경 조성’이라는
주제의 ‘이락지천(利樂之天)’을 콘셉트로 설계되었다. 외형은
낙동강 3대 정자 중 하나인 관수루(觀水樓)의 처마를 모방하여
경상북도 의성군,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북도 구미시 세 지역의 자연과 역사,
문화가 융합되고 사람이 어우러지는 전통적인 이미지로 만들었다고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여름의 껍질을
깨고 나온 그녀는
말없는 웃음으로
가을을 부릅니다
꽃잎이 어쩌면 저렇게
고을수가 있을까 ?
양떼구름 하늘이
파랗게 열립니다
아마 지금쯤
고향마을 길가에도
수줍은 코스모스가
곱게 웃고 있겠지요
선산대교
아따 명박이 형아가 빤질빤질하게 딲아놓았네요
잔차에는 천국의 길이겠지만
걷는 사람에겐 ~~~ㅎ ㅎ
구미보
지나온 길에서 본구미보
사실 물은 자연그대로 흐르는게 젤루좋다
그러나 상업문화의 발달로 여러가지
용수가 대량으로 필요하고 식수등
물이란것이 인간의 삶에 첫번째 요소이다
가두기만 한다고 능사는 아니고....
기후변화도 한몫을하죠
4,5십년 전만해도 냇가에는 물이 사시사철 흘러내렸죠
요즘은 어떤가요
웬만한 하천에는 지표면에는 물이보이지않죠
물의 심각성은 날로 더해져가는데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된다고 봅니다
각자 개인은 물을 소중히 여기고 아껴쓰야하지 아닐까요
멀리보이는 금오산
해평철새도래지
금오산
금오산(金烏山)의 높이는 977m로, 기암 괴석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경사가 급하고 험난한 편이나, 산정부는 비교적 평탄한데 이곳에 금오산성(金烏山城)이 있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는데,
중국의 오악 가운데 하나인 숭산(崇山)에 비해 손색이 없다 하여 남숭산(南崇山)이라고도 하였다.
금오산이라는 명칭은 이곳을 지나던 아도(阿道)가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짓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금오산의 능선을 유심히 보면 ‘왕(王)’자처럼 생긴 것 같고, 가슴에 손을 얹고 누워 있는 사람 모양인데,
조선 초기에 무학(無學)도 이 산을 보고 왕기가 서려 있다고 하였다.
토욜날 갑자기 일정이있어 그걸 처리하느라
토욜날 오후에 상주로 출발한다
직행노선이 마땅찮아 포항에서 북대구로 북대구에서 상주로~
도착하니 5시가까이 되었다
저번구간에 제대로 못본것같아 택시타고 경천대에 내려
이곳저곳 몇군데 둘러보고 잠잘곳을찾아본다
그러다 상주보 올라가기전 정자가 하나있어 그기에서
한참을 머물렀는데 정리하다 지갑을 떠뜨렸나보다
비도 부슬 부슬 내리고 시내서자고 갈려고 나왔는데 우산도 하나사고...
지갑이없다 할수없이 다시 택시타고 정자로가서 찾았다
그냥여기서자자 결정하고 대충자리를펴고 잠자리에든다
한데잠을 잔지가 한두어달 되었나보다
늘그렇지만 눈만감고있을 뿐이지 잠은 오지않는다
왜이리 적응이 안될까 ?
반나절을 잃어버리니 오가는걸 생각하니 하루가 사라진다
그렇게 일올날 아침에 시작해 저녁에 마쳐야되니 마음만앞선다
그래도 상주보에서 구미산호대교까지 약51km를걷고
금오공대가서 버스터미날로 포항으로 집으로옵니다
첫댓글 글을 읽고
길을 상상합니다
좋은글 읽었습니다
구미까지 오셨군요
대구 지날때 얼굴한번 봐야하는데 대간 땜에 또 비켜가야할듯
핑계만 대고 죄송하나이다
강따라 내려오는길에 사연도 많고
끝이 보이지 않은 시맨트길이 지겹도록 길어 보이죠
열심히 걸음하시다 보면 많은것 느끼고 배우실듯 하네요
수고로운 발걸음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잔차길을 걸어서 그런가 어쩌다 잔차꾼이 지나긴 하나 봅니다.
아스팔트길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것이 상상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신 수양은 많이 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