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를 산악문화의 메카로 다시 서게 하자
우리나라의 산꾼들은 좋아하는 산을 입에 올리면서 흔히 두 산의 이름을 먼저 말한다. 하나는 지리산이고 또 하나는 설악산이다. 그들은 두 산에 대한 자신들의 애정을 강조하기 위해 아예 ‘산’을 빼고 ‘지리’, ‘설악’이라고 마치 다정한 친구처럼 말한다.
“나 주말에 설악에 간다.”
“지리의 품에 안기고 싶어.”
이렇게 말하면서 설악산과 지리산에 오를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지리산, 설악산 외에도 우리나라엔 명산들이 무수히 많다. 그런데 그 많은 명산들을 말하지 않고 왜 지리와 설악을 입에 올리기 좋아할까. 그것은 아마도 두 산이 우리나라 산들의 특징을 각각 대표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설악산은 높고도 날카로운 바위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서늘하게 빼앗는다.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설악산이 갖고 있는 그 서늘한 모습에 우선 공포를 느끼기 십상이다. 그러나 한번 산에 맛을 붙인 사람은 달력을 노려보면서 어떻게든 쉬는 날을 만들어 설악에 달라붙는 날을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그런데 지리산의 매력은 설악산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선 지리산은 하나의 산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산맥이다. 전남, 전북, 경남 세 개의 도에 구례, 남원, 산청, 함양, 하동 다섯 개의 시군을 가로지르니 그 규모에 있어서 설악산과는 비교를 거부한다. 99개의 골짜기에 수정처럼 맑은 물이 철철 흐르고 최고봉 천왕봉은 한라산을 빼면 남한에서 가장 높다.
지리산은 설악산이 갖고 있는 높고 뾰족뾰족한 바위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지리산은 크고 넓고도 길다. 설악산이 섹시하다면 지리산은 와일드하다고나 할까. 설악의 품에 안기면 가슴이 둥둥 뛰는 것 같은데 지리의 품에 안기면 한없이 포근해진다.
산꾼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삼사 일을 마냥 걷는 ‘워킹’족이고, 또 하나는 헬멧을 쓰고 로프를 메고 암벽을 타는 ‘바위’족이다. 바위족들은 북한산이나 설악산으로 몰려간다. 지리산은 바위족들이 매달릴 만한 바위가 없기 때문에 워킹족들만 온다. 지리산에 오는 산꾼들은 일단 지리산 종주를 꿈꾼다. 지리산을 종주하려 할 때 가장 긴 코스가 화엄사에 대원사까지 장장 44.7Km, 이름하여 ‘화대’코스이다. 구례의 화엄사가 지리산 종주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물론 대원사에서 출발하여 화엄사로 내려오면 구례가 지리산 종주의 종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 어찌됐건 구례는 지리산 종주의 시점이자 종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삼재 도로가 뚫리면서 지리산 종주의 시점을 화엄사가 아니라 성삼재를 삼는 산꾼들이 많아졌다. 화엄사에서 코재까지 오르면서 감내해야 할 체력적 소모를 줄이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성삼재에서부터 지리산 종주를 시작하려고 하는 산꾼들을 다시 화엄사로 끌어올 방법은 없을까. 구례를 단지 관광도시가 아니라 산악문화의 메카로 만들 방법은 없을까.
나는 그 방법으로 화엄사 근처에 인공암장을 만들고 유스호스텔을 지을 것을 제안한다. 전남에 인공암장은 영암의 월출산에 있다. 그런데 인공암장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좀더 특색있게 하여 클라이머들이 암장에 매달리지 않고 그냥 그대로 서 있어도 예술적인 영감을 주게 하여 구례의 랜드마크로서도 기능하게 해야 한다.
구례에 인공암장이 들어서면 우선 어린 학생들을 불러 암벽 교육을 할 수 있다. 구례의 아이들은 도시의 아이들보다 문화적 혜택을 덜 받는다. 놀 거리가 부족한 구례의 아이들을 모두 인공암벽에서 놀게 하자. 어린 학생들은 몸이 유연하기 때문에 쉽게 암장과 친해질 수 있다. 그러면 가까운 시일 내에 세계적 클라이머인 김자인을 능가하는 클라이머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일반 시민들도 암벽 등반의 매력을 적극 홍보하고 함께 암벽에 매달리게 해 시민들의 건강을 크게 증진하고 등산을 하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하게 해야 한다. 또한 모험심 강한 외국인들도 대거 암벽으로 몰려오게 해야 한다.
인공암벽에서 매듭법, 등반의 기술, 부상자에 대한 인공처치법 등을 교육하고 가능하면 구례 실내수영장과도 연계하여 수영과 익수자에 대한 구조법 등을 가르칠 수 있다면 구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슬픔에 잠겨있는 국민들에게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 도시로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암벽등반과 수영은 단지 취미나 건강관리의 수단뿐만이 아니라 나 또는 타인 누군가가 위험에 빠졌을 때 생명을 구출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지자체나 교육기관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이제 인공암장에 몰려온 산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먹고 잘 수 있는 유스호스텔이 필요하다. 그러면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 일주일 정도 머무르면서 바위 타는 기술을 익히고 시간이 남으면 걸어서 노고단까지 갔다올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구례는 이제 바위와 워킹 둘 다 즐길 수 있는 산악도시로서의 명성을 갖게 될 것이다. 혹시 천연 암벽을 오르고 싶으면 가까이 있는 용서폭포를 찾으면 될 것이다.
나는 20대 후반부터 지리산에 오르면서 지리산에 푹 빠져 살았다. 그러면서 몇 번인가 심각한 위험에 빠진 적이 있다. 심원마을에서 반야봉을 오르다가 길을 잃고 12시간 동안이나 길도 없는 벼랑을 오르고 관목숲을 헤치다가 밤 10시가 돼서야 반야봉에 올랐던 일, 어두워질 무렵 천왕봉에서 칠선계곡으로 랜턴만 믿고 내려오다가 랜턴에 건전지가 없어 칠흑처럼 어두운 길을 기어서 내려왔던 일, 삼신봉에서 해경골을 찾다가 길을 잃어 어두운 숲속을 하염없이 헤맸던 일 등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위대한 어머니 산인 지리산은 끝까지 나를 지켜주었다. 몸에 상처 하나도 없이 온전히 지켜주었다. 그래서 3년 전부터 아예 도시 생활을 접고 피아골 직전마을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산면 하사마을을 거쳐 지금은 토지면 용두리에서 구례 군민으로 정착해 살고 있다.
나는 나이 쉰이 되던 2010년에 서울 수유리에 있는 정승권 등산학교에 입교하여 한달 동안 등반교육을 받고 인수봉 정상에 올랐다. 나도 비로소 바위꾼이 된 것이다. 그 깎아지른 듯한 수직의 암벽을 로프 하나에 의지하여 정상까지 오르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손에 땀이 흐를 것 같다. 그 뒤로 구례에 내려와서 암벽에 오를 기회를 갖지 못하니 매듭법이니 등반법이니 하는 것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매듭이라는 것도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지 못한다면 쓸모가 없다. 위험이라는 것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닥치기 때문이다.
각종 사고는 늘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사고에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있다. 어물어물했다가는 이미 때는 늦어 버린다. 어떤 사고가 났다 하더라도 거기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용기와 기술을 동시에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고공화국’이라는 불명예도 벗고 누군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출해낼 수 있는 멋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화엄사 근처에 인공암벽과 유스호스텔이 들어서게 해서 구례에 바위족들과 워킹족들을 끌어들이자. 그러면 그렇잖아도 멋있는 구례가 더 멋있는 도시로 거듭나지 않겠는가.
첫댓글 너무 멋지십니다..
고맙습니다
언저쩍 사진인가
얼마 전이네
멋진 생각이십니다 저도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으로 지금은 주춤하고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지리산에 인공암장이 생긴다면
너무도 황홀하리라는 생각
용서폭포에는 한번 가봤는데 잘 관리가 안돼서 조금은 지저분 하다는 생각에 다시 가고픈 맘도 안들고 했답니다
님이 적극 추진할수 있는 그날까지 응원할게요
고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같이 산행도 하십시다.
구례를 산악문화의 메카로 다시 서게 하자에 저도 한표. . .
소중한 한 표..고맙습니다..ㅎㅎ
네가 위원장하거라
구례군청에 제안해보겠네~
야 근데 옛날사진 들이대고 몸짱인척 하지마라
어데서 니 멸치 몸땡이잖니~
ㅋㅋ 쫌 봐주라. 최근 사진은 좀 문제가 있어서...
사람들 여럿이 모이게해서 즐겁게놀고 돈도 쓰게하면 좋기도하련만, 산은 산대로 내비려두는게 좋을 수도 있지않나 생각함.엄청밥묵고 술먹는넘 노래방서 자는넘 고무신신고 산에다니는넘을 이해못하는 일인씀.
저도 산은 산대로 그냥두자는 주의입니다. 다만 진정 산 좋아하는 사람들 또 앞으로 좋아할 사람들 구례로 많이 끌여들이자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