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가무쇼 중 아리랑
▶ 제1일차 : 서울, 상해(上海)
2009년 12월 13일(일), 서울은 맑음, 상해는 흐림
놀기가 일하기보다 더 힘들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돈을 벌기보다 쓰기가 더 힘들다. 서너
날만 놀아보아도 알 수 있다. 여행은 떠나기 전이 여행이지 집 문밖 벗어나면 고생이라고 한
다.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관광여행 간다.
비수기라서 요금이 예상보다 싸다. 상해, 항주, 소주, 3박 4일. 다만 산이 없어 아쉽다.
구름의 두께가 얼마나 될까? 1만 미터가 넘는다고 단언한다. 김포공항에서 이륙하여 서해
안 상공으로 쭉 내려가다 제주도 모슬포 한참 비킨 상공 지나서는 하강하기 시작한다. 고도 1
만 미터 아래로는 온통 구름이다. 워낙 짙은 구름이라 비행기 날개에서 깜박거리는 불빛이 희
미하다. 상해 홍교(虹橋) 공항에 착륙할 때까지 그런다. 구름 위의 해를 보다가 곧바로 캄캄해
지니 낮이 밤으로 급변한 것이다.
서울과 상해의 시차는 1시간. 1시간 젊어진 것으로 아시라는 가이드의 재치 있는 멘트가 좌
중을 흐뭇하게 한다. 비행시간이 겨우 1시간 40분인데 중식인 기내식이 나온다(2시간 정도
지나서 여행사 일정에 의거 저녁밥 먹는다).
상해 시내에는 고가도로가 거미줄처럼 뻗어있다. 총연장 400㎞라고 한다. 상해에는 보통
승용차 값은 6백만원인데 번호판 값이 800만원이라고 한다. 상해 번호판을 달지 않고서는 고
가도로를 자유롭게 올라탈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상해 번호판 달지 않고 고가도로를 달
리다가는 벌금 200위안 문다).
기내식이 미처 소화되기도 전에 사천요리 샤브샤브로 저녁식사 한다. 식탁 밑에 큰 가스통
을 놓고 그 위에서 국물을 끓이는 방식이라 사고라도 날까봐 은근히 불안하다. 그래도 먹는
둥 마는 둥 깨작거린 것을 나중에 후회한다.
서커스 보러간다. 1시간 젊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 년 젊어지러 가는 것이다.
중국 최고의 기예라는 선전이 그리 틀리지 않다.
장대 오르기, 등 굴리기, 지권, 접시돌리기, 의자 포개 올리고 그 위에서 물구나무서기, 훌
라후프 돌리기, 밀짚모자 묘기, 두공죽(枓空竹) 묘기, 외줄타고 허공 날기 등등. 기상천외한
기예를 펼친다. 동작 하나하나에 맘 졸이다가 마침내 무사하여 큰 한숨 내쉬며 안심한다.
자전거 묘기에는 자전거 1대에 7명이 타다가 무려 10명이 탄다.
황관 묘기 이어 피날레인 스릴 카레이싱. 둥근 철망 안에서 오토바이 타고 종횡무진 도는
것이다. 한 사람이 들어가서 돌더니 점차 두 사람, 세 사람으로 늘리다가 다섯 사람이 들어가
서 돈다. 그 좁은 공간에서 간격은 1m 남짓.
중국이 장차 세계를 저렇듯 누비리라는 장담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여자 레이서가
오성홍기 흔들며 막을 내린다. 단 한 차례라도 눈을 깜박였던가. 박수 치다보니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1. 서커스 공연한 곳 간판, 글씨도 예술이다
상해 외곽에 위치한 당조호텔(唐朝酒店, 3성급 이상 호텔을 酒店이라고 한다)로 이동한다.
준 5성급호텔이다. 너른 홀 안의 반짝이는 트리장식 보고, 경쾌한 캐럴 들어 성탄절이 가까워
진 것을 여기서 느낀다. 더구나 사람들 생김생김이 비슷하니 이국에 온 것 같지 않다. 33층 건
물인데 31층에서 묵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금은 사방 둘러 평원이다. 언덕도 없다.
연암이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하며 경외의 눈으로 감탄하던 곳이 요동벌판뿐
일까. 연암의 부언이 그럴 듯하다. ‘간난아이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 캄캄하고 막히고 좁은
곳에서 웅크리고 부대끼다가 갑자기 넓은 곳으로 빠져나와 손과 발을 펴서 기지개를 켜고 마
음과 생각이 확 트이게 되니, 어찌 참소리를 질러 억눌렸던 정을 다 크게 씻어내지 않을 수 있
겠는가!’
2. 당조호텔 31층에서 조망
▶ 제2일차 : 상해, 항주(杭州)
2009년 12월 14일(월), 상해는 맑음, 항주는 비
06시 기상, 06시 30분 식사, 08시 출발이다. 조식은 우리 입맛을 배려하였음직한 중국식 퓨
전 뷔페다. 무엇보다 파스타와 김치가 맘에 든다.
항주로 간다. 버스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예로부터 경치 좋고 살기 좋아 ‘하늘에는 천당, 땅
에는 소항(蘇杭)’이라고 했단다. 오월(吳越) 시대에는 소주(蘇州)가 더 커서 소주를 앞세운다.
남송시대의 시장모습을 재현했다는 청하방(淸河房)에 들린다. 타임머신 타고 옛날로 돌아
간다. 궁정의 가무와 간신 가사도(賈似道)의 탐학, 문천상(文天祥) 등 송망삼걸(宋亡三傑)의
충절을 모르는지 서민들의 삶은 무심하다.
미염공(美髯公) 관우의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 찍는다. 남송은 1127년 조구(趙構) 고종이 이
곳으로 피신하여 수도를 세우고 9대 152년을 버티다가 1279년 조병(趙昺)에 이르러 몽고에
의해 멸망했다.
중국의 국차(國茶)라는 용정차(龍井茶) 농원 구경하러 간다. 용정차의 향, 맛, 색, 잎 모양을
일컬어 4절이라고 한다. 농원에서 차 맛보고, 장복하면 무병장수할 것이라니 한 통 산다. 꼭
꼭 눌러 담아 3만원이다.
찻잔에 뜨거운 물 붓는 것이 기예다. 찻잔에 찻잎을 넣고, 물을 약간 넣은 다음 찻잎이 어느
정도 불면 물주전자를 높이 올렸다 내리면서 물을 폭포수처럼 내리쏟아붓는다. 그래야 차의
농도가 골고루 섞이고 맛이 알맞게 우러난다고 한다. 아무래도 나는 제대로 된 용정차 맛보기
는 글렀다는 생각이 든다.
서호(西湖). 항주의 성가를 한층 높인, 숱한 시인묵객이 읊고 그린 호수다. 서호는 맑은 날
보다는 비 오는 날이 좋고 거기에 안개가 끼면 더욱 운치가 있다고 한다. 오늘은 이슬비가 내
린다. 서호를 보러간다. 소동파(蘇東坡)가 준설하여 쌓았다는 소제(蘇堤) 제방 입구에 소동파
의 전신 석조상이 있다.
제방 양쪽에는 아직도 푸른 버드나무가 가지 쭉쭉 늘어졌다. 거닐기 좋다. 소동파가 ‘비오
는 날엔 그 안개 낀 산색이 또한 신비롭네(山色空濛雨亦奇)’라고 읊은 것은 사실이다. 흠이라
면 오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혹 부딪칠세라 주의하여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다는 것.
명대(明代) 일본 사신이 지었다는 시 또한 적절하다.
‘예전 이 호수의 그림을 본적이 있었으나
인간 세상에 이런 호수가 있음을 믿지 않았네
오늘 호수를 다녀 보니
화공의 솜씨가 부족함을 알겠네’(위치우위,「중국문화답사기」)
배타고 호수 가운데 섬 한 바퀴 돈다. 배는 수질오염을 예방하기 위하여 축전한 배터리로
간다. 조용하니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뱃전에서 우산 받치고, ‘國破山河在(나라는 깨졌으나
산하는 여전하고)’한 당조 이은 송조(宋朝)를 생각한다.
소제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고 쓴 팻말의 글귀가 시적이다. ‘心中有綠, 脚下留靑’. 그러고
보니 팻말 등에는 사자성어를 흔히 사용한다. 小心地滑은 ‘바닥이 미끄러우니 조심하시오’일
것 같고, 음식점 입구바닥의 歡迎光臨는 ‘어서 오십시오’일 것 같다. 車輛慢行, 追尾危險, 安
全出口, ‘来也匆匆, 去也冲冲(화장실에서 방뇨 후에는 반드시 물을 내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등도 재미있다.
점심은 동파육, 저녁은 삼겹살이다. 우리 일행은 15명으로 둥근 테이블 두 개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소주와 중국 맥주도 곁들인다. 내 테이블에는 어르신네 한 분과 내가 술 마시니 분
음하기 적당하다. 동파육은 1인당 1점인데 비위에 맞지 않다고 사양하는 사람이 있어 포식한
다. 자리 잘 잡았다.
발마사지 하는 곳을 들린다. 요금은 5달러. 남자 손님은 여자가, 여자 손님은 남자가 담당하
는데 우리말이 어눌한 조선족이다. 편한 의자에 앉아 자세 잡자 발 만지작하며 호구조사 하듯
연령, 월수입, 형제유무 등을 묻고는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였다며 갉아낼 것을 강권한다. 추
가요금 1만원이다.
연전에 베트남에 갔을 때 그곳에서 수회 발마사지를 받았는데 아무 말 건네지 않고 차분히
발마사지에만 열중하던 그들이 생각나 이곳의 영업행태가 무척 아쉽다.
3. 항주 청하방 거리
4. 용정차 농원 가는 길
5. 용정차 농원
6. 소제 입구 소동파 석상
7. 소제
8. 소제
9. 서호 뱃놀이
10. 서호 뱃놀이
11. 서호에 있는 섬
12. 서호에 있는 섬
13. 서호
14. 서호에 있는 섬
항주가 세계에 자랑하는 가무쇼 ‘송성천고정(宋城千古情)’을 보러간다. 4일전 예약이 필수
라고 한다. 성문 입구에서부터 관람객들이 몰린다. 가이드 깃발 앞세우고 쫓아간다. 극장 수
용인원 3천명. 꽉 찬다. 가무 쇼는 4장으로 구성하였다. 진행시간 1시간 10분. 출연배우 300
여명.
혼을 쏙 빼는 화용월태 미희들의 가무로 시작한다. 현란한 조명과 무대전면을 활용한 영상,
이동식 좌석을 이용한 무대 확장이 돋보인다.
제1장은 항주의 빛으로 송나라의 태평성대를 압축했다. 황제 생일에 여러 나라 사신들이
축하하러 왔으며 궁정에서 다채로운 서커스와 아름다운 가무를 연출한다.
눈과 귀는 사뭇 즐겁다만 오죽 했으면 임승(林升)이「임안(臨安)의 객잔」에서 당시를 이렇
게 풍자했을까. 임안은 지금의 항주다.
‘산 밖의 푸른 산, 누각 밖의 누각,
서호의 가무는 언제나 그칠 것인가.
따뜻한 바람에 취한 나그네,
항주를 변주로 여기고 있네. (리샹, 「중국제국쇠망사」)
제2장은 전쟁이다. 악비(岳飛)의 금군에 대항한 용맹분투를 극화하였다. 악비는 간신 진회
(秦檜)의 모함으로 나이 38세에 죽임을 당했다. 그의 시(池州翠微亭)에는 저물어가는 송조를
붙들려는 충정이 짙게 배어있다.
經年塵土滿征衣(일 년 내내 출정하여 싸워 군복은 먼지가 가득 묻고)
特特尋芳上翠微(틈을 타 말을 타고 취미정에 와 아름다운 경치를 찾네)
好水好山看不足(조국의 강산 아무리 봐도 더 보고 싶은데)
馬蹄催趂月明歸(말굽소리에 밝은 달빛아래 귀로에 올랐네)
제3장 아름다운 서호다. 비 내리는 서호에서 연잎들의 군무가 펼쳐진다. 무대에는 주룩주
룩 굵은 비 내리고, 객석에는 이슬비 내린다. 서호의 전설을 춤으로 표현한다. 사선춤은 처녀
로 변한 백사가 총각을 사랑했는데 불법(佛法)이 허락하지 않고 처녀를 뇌봉탑(雷峰塔)에 가
둔다. 나비춤은 이수일과 심순애의 중국판 버전이다.
용정차 따는 처녀들의 모습은 초대형 스크린의 하늘거리는 연잎과 아주 잘 어울린다.
제4장 세계는 여기서 모인다. 매년 200만명이 송성천고정을 서로 다퉈 본다고(每年200万游
客名爭相觀看) 광고한다. 여러 나라의 가무를 선보인다. 우리나라 의 아리랑 음률에 맞춘 장
구춤과 상모돌리기도 나온다. 역시 우아하다.
給我一天 還你千年(나에게 하루를 주면 천년을 되돌려 주겠다)은 자신만만한 표어를 배경
으로 쇼는 막을 내린다.
15. 송성천고정 가무쇼 광고
16. 송성 성문
17. 가무쇼
18. 가무쇼
19. 가무쇼
20. 가무쇼
21. 우리나라 장구춤
22. 가무쇼
23. 가무쇼
24. 가무쇼
25. 가무쇼 피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