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수 선율에 실어 세상을 맑히는 소리꾼 “작은 것 소중해 하는 마음 한 토막 간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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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해맑은 함박 웃음 속에 그의 시심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채한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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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광천 출신의 소리꾼 장사익.
그는 직접 시를 쓰기도 하지만 때로는 남의 시라 해도 자신의 것으로 체득한 후 시어 하나 하나를 선율에 실어 구성지게 풀어낸다. 그의 시심과 노래 가락은 어디서 출발하기에 그처럼 세상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기도 하고, 눈물 짓게 하며 미소 짓게 하는 것일까!
그가 직접 쓴 ‘찔레꽃’. 아파트 담벼락 옆 화단에서 나오는 향기를 찾다가 읊조렸다고 한다.
“처음엔 장미꽃인줄 알았지유. 근디 덩쿨 장미향을 아무리 맡아 봐두 아닌 거유. 향기 따라 걸음 옮겨 보니 바로 찔레꽃이었어유.”
찔레꽃. 어릴 적 엄마 따라 꺾고 먹어 보았던 그 찔레꽃을 본 순간 자신의 처지가 찔레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 하얀 찔레꽃은 순박하지만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럽게 다가왔기에 밤새워 울고 만 것이다.
그의 앨범 4집에 실린 ‘여행’은 서정춘 시인의 연작시 중 ‘죽편1-여행’이다.
“여시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그는 ‘기차’와 ‘서울역’을 말했다. 고향 떠나 처음 내린 역이 ‘서울역’이요, 고향 갈 때 처음 찾는 역 역시 ‘서울역’이란다.
“고향 떠날 때의 두려움과 고향 찾는 설레임이 교차하는 광장이지유. 그곳에 하루종일, 아니 반 나절만 서 있어 봐유. 내가 살고, 내 친구가 있던 그 고향 사람들 만나지유. 모르는 사람이라고 내 고향 사람 아닌가유.
칸칸마다 밤이 깊었지만 다들 꿈 하나씩 품고 덜커덩 거리는 기차에 몸을 싣는 거 아니겠유? 근디 언제 닿을지 모르지만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니 참… 찐 허쥬. 한편으로는 서럽기두 허구, 한편으로는 여유스럽기두 허구.”
준비 중인 5집 앨범에는 어떤 시상이 그려져 있을까! 그가 ‘절창’이라고 탄복하며 들려 준 곡은 타이틀 곡 ‘황혼길’. 서정주 시인의 ‘황혼길’을 수년간 읊조리다가 이번에 녹음했다고 한다.
“새우마냥 허리 오그라든 할아버지 할머니가 저무는 황혼녘 딸네 집에 마실 가서 잠이나 든데요 글쎄. 그 많은 ‘인생 고난’을 소태같이 쓴 ‘가믄 날’이라 하고는 그것마저도 ‘내 사랑의 봇도랑물’이라며 흘러가레유. 그리고는 엇비슥이 비끼어 누워 잠이나 들겠다니… 어떻게 살아야 죽음을 ‘딸네 집에 마실 가서 잠이나 드는’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유?”
그는 무슨 대단한 이상을 꿈꿔야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저 지금 내가 사는 삶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다만, 작은 것을 소중히 볼 줄 아는 마음 한 토막만 갖고 살자고 제안한다.
“천년을 버텨 온 저 바위를 봐유. 100년도 못 사는 우리 인생 놓고 ‘죽을 맛’, ‘못 살겠다’는 말 쉽게 나오지 않아유. 나뭇가지에 걸린 잎새, 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면 아름답잖아유. 그냥 마음이 짠 하지유. 근데도 우린 하루에 하늘 한 번 제대로 못 보고 살아유. 마음이 맨날 딴데 가 있으니 볼 생각도 못하는 거지유.”
그는 이제 5집 앨범을 선보이기에 앞서 노래 한 판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인 12월 10일 오후 3시와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콘서트 ‘사람이 그리워서’를 연다.
신곡 ‘시골장’의 한 구절 “사람이 그리워서 시골장은 서더라”는 대목에서 콘서트 제목 ‘사람이 그리워서’를 뽑았고 이 제목은 그의 5집 앨범 타이틀이됐다.
유니세프 후원으로 마련된 이번 무대에서는 찔레꽃 등의 대표곡과 함께 ‘봄날은 간다’, ‘동백아가씨’, ‘과거를 묻지 마세요’ 등의 귀에 익은 대중 가요를 그의 독특한 가락으로 편곡해 들려준다. 이번 공연을 초청하는 인사말에 그는 대중에게 이러한 단상을 전했다.
‘하얀 모시, 광목바지저고리 까망 고무신 조그만 노래들 왕진 가방 속에 가득 넣어 세상 속 이곳저곳 달려가 노래로 보듬고 어루만져주며 행복주사 놓아주는 어릿광대 노래 의사.’
그의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의 창법과 음색이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찔레꽃 같은 향기 때문일 것이다. 02) 396-0514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878호 [2006-11-29]
5번째 앨범 ‘사람이 그리워서’ 낸 장사익
“제 음악의 잔이 다 채워진것 같아 이번엔 따라내려고…” 2006.12.06 / 문화 A27 면 기고자 : 최승현
무슨 이야기를 하든 ‘웃음 반, 말 반’이라 낯선 사람도 순식간에 ‘무장해제(武裝解除)’ 시키는 사람이 바로 가수 장사익(57)이다. 하지만 음반에서, 공연에서 다시 그를 만나게 되면 전율이 앞선다. ‘진실을 담은 노래의 힘’을 온몸으로 웅변하기 때문이다.
3년 반 만에 다섯 번째 음반 ‘사람이 그리워서’를 발표한 그는 “제 음악의 잔이 다 채워진 것 같아 이번에 따라내려 한 것”이라 했다. “왜 음반을 영어로는 레코드라고 하잖아요? 기록이라는 의미죠. 50대 중반이 된 제가 느끼는 인생과 자연을 남기고 싶었어요.”
그는 고달픈 인생살이를 입에 발린 말로 섣불리 위무하려 들지 않는다. 곪으면서 더욱 깊이 파고드는 삶의 가시를 전력 다한 노랫말로 끄집어낸 뒤, 통쾌한 음색으로 남은 상처를 보듬는다. 노래는 철저하게 목소리 중심. 해금, 소리북 등 국악기 위주 반주가 따라붙지만 그의 음성에 함부로 말 걸지 못한다.
미당 서정주의 시에 곡을 붙인 ‘황혼길’은 그가 “재미있다”고 추천한 노래.
“미당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에 이 시를 만났는데 기막히더라고요. 특히 ‘언덕 넘어 딸네 집에 가듯이 나도 인제는 잠이나 들까’라는 시구는 죽음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지혜를 느끼게 하죠.”
‘무덤’ 또한 죽음과 관련됐다.
“무덤 위에 누워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며 “한국적 레퀴엠(진혼곡)을 만들어봤다”고 했다. 그의 자유로운 정신은 이 노래에서 도드라진다.
“곡 전반에 ‘투루루루’하며 이어지는 생소한 악기 소리의 정체가 뭐냐?”고 묻자 함박웃음이 터져나온다. “최선배 선생님의 트럼펫 연주예요. 사실 연주에 앞서 트럼펫에 대고 입을 푸는 소리인데 너무 좋더라고요. 즉흥적으로 그 소리를 녹음했죠.”
죽음과 함께 이 앨범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화두는 희망이다.
첫 곡 ‘희망 한단’에서 그는 “아줌마, 희망 한단에 얼마예요?”라고 묻는다. 노래의 끝은 “희망이유? 채소나 한단 사가시유 선생님”이다. 끈질긴 일상 속에 희망이 산다는 얘기다.
장사익은 45세에 데뷔했다. 상고, 야간대학을 졸업한 뒤, 15개 직장을 전전하던 평범한 생활인이었던 그는 “작은 풀씨 같은 미물도 꽃을 피우고 죽는데 내 인생을 이대로 저물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국악에 매달렸다. 3년간 태평소 명인이 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다.
그러나 재능은 엉뚱한 데 있었다. 함께 어울리던 국악인들이 술 자리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감탄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노래는 이런 것이다.
“힘들어 죽겠는데, 발가벗고 노래 부른다고 위로가 되겠어요? 소주 한 잔 하면서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들고~’ 이런 식의 노래를 함께 불러야 슬픔을 씻어줄 수 있죠. 무릎을 치면서 ‘이것은 내 얘기야’라며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저는 불러요. 어릿광대가 팔자인 인생이죠.”
오는 1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그의 공연은 한 달여 전 매진됐을 정도로 폭발적 호응을 끌어냈다. “내키는 대로 불러 젖힌다”는 그의 호흡을 이젠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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