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가이버라는 외화 시리즈가 있었다.
주인공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다른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것들이 그의 손에만 들어가면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
이런 맥가이버를 생각할 때, 나는 나같이 쓸모 없고 부족한 자를 어떻게든 쓰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쓰신 ‘초라한’ 도구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모세는 목자의 지팡이로 수많은 하나님의 이적을 행했다.
삼갈(삿 3:31)은 소 모는 막대기로 전쟁에 승리했다.
이름 모를 한 여인(삿 9:53)은 아비멜렉을 맷돌을 떨어뜨려서 죽였다.
삼손(삿 15:15)은 죽은 나귀의 턱뼈를 주워서 천 명의 적들을 죽였다.
다윗(삼 17:50)은 물맷돌을 던져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한 마굿간의 짐승의 구유를 침대로 삼으셔서 태어나셨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로 제자들을 삼으셨고,
나귀 새끼를 타시고 왕으로서의 입성을 하셨으며,
빌린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부활하셨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내가 더 훌륭해질 필요는 없다. 더 뛰어날 필요도 없다.
훌륭하고 뛰어나신 분은 내가 아니라 그분이시다.
나의 역할은 그분의 손으로 닿는 범위에, 그분의 눈이 미치는 지역에 잠잠히 머무는 것뿐이다.
나는 엑스칼리버와 같은 명검이 되려고 애쓰기 보다는, 평생 그분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고 싶다.
멋진 폭탄이 되기보다는, 급히 내어던져진 맷돌이 되고 싶다.
최신 소총이 되기보다는 나귀 턱뼈와 물맷돌이 되고 싶다.
쿠션이 푹신한 고급 침대보다는 구유가,
학위를 여러 개 가진 학자보다는, 어부가 되고 싶다.
적토마가 되기보다는 새끼 나귀가 되고 싶다.
화려한 궁전보다는 그분이 잠시 머무르셨던 돌무덤이 되고 싶다.
사역은 ‘내가 하기 나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기 나름’이다.
내가 누군가 보다 그분이 누구신가가 내가 쓰임 받는 데에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