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미시 산책 · 44 ■
Be Glad Your Nose is on Your Face
/ Jack Prelutsky
Be glad your nose is on your face,
not pasted on some other place,
for if it were where it is not,
you might dislike your nose a lot.
Imagine if your precious nose
were sandwiched in between your toes,
that clearly would not be a treat,
for you'd be forced to smell your feet.
Your nose would be a source of dread
were it attached atop your head,
it soon would drive you to despair,
forever tickled by your hair.
Within your ear, your nose would be
an absolute catastrophe,
for when you were obliged to sneeze,
your brain would rattle from the breeze.
Your nose, instead, through thick and thin,
remains between your eyes and chin,
not pasted on some other place?
be glad your nose is on your face!
코가 얼굴에 있으니 다행이야
/ 잭 프렐러츠키
코가 얼굴에 있으니 다행이야
엉뚱한 곳에 붙어있지 않고.
그게 다른 곳에 있다면
무척이나 밉살스러울 거야.
귀중한 코가 발가락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다고 생각해봐.
분명 유쾌한 일이 아닐 거야.
억지로 발 냄새를 맡아야 할 테니.
코가 머리 꼭대기에 붙어있다면
정말 무시무시할 거야.
머리털이 끊임없이 간질여서
조만간 사람을 절망에 빠뜨릴 테니.
코가 귓속에 있다면
그건 완전한 재앙이야.
재채기를 할 때마다
재채기로 뇌가 요동칠 테니.
그래서 코는 하늘이 무너져도
눈과 턱 사이에 있는 거야.
엉뚱한 곳에 붙어있지 않고
코가 얼굴에 있으니 다행이야!
[작품읽기]
‘어린이가 지은 시’ 혹은 ‘어린이를 위한 시’를 국어사전은 동시라고
정의한다. 어느 쪽을 택하든 옛날에는 통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언어적 현
실감을 적잖이 상실한 뜻매김처럼 여겨진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알고 있
는 시 중에 어린이가 쓴 것은 거의 없다. 교육과 출판으로 매개되는 시의
대중화에서 아이들이 지은 시가 소외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은 시를 쓰지 않는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시를 쓰길 원치 않는다.
평화로운 공존을 조롱하는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을 신봉하는 어른들의 마
음에는 시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어린이가 지은 시’를 동시라고 한다면
우리는 분명 동시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고 ‘어린이를 위한 시’쪽이 형편이 크게 나은 것은 아니다. 아이
들의 장난감을 어른들이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른들이 꼭 좋은 장난
감만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반드시 좋은 장난감에 끌리
리란 법도 없다. 좋은 장난감은 재미없기 일쑤다. 어른들이 쓰는 ‘어린이
를 위한 시’에는 이러한 위험성이 늘 도사리고 있다. 거푸집은 아이의 언
어를 흉내 내고 있지만 알맹이는 철저하게 어른의 것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동시는 소위 교육적일지는 몰라도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몰입시키지
못한다. 요즘 말대로 중독성이 없다. 어른들의 수작이 지겨운지 아이들은
일찌감치 어른들을 흉내 낸다. 종작없는 대중가요의 가사가 동시로 승격
된 지 이미 오래다.
미국의 초등교육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부러운 것이 있
다. 학교 안팎에서 아이들에게 많은 양의 동시와 동요를 읽히고 부르게 한
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고 학부모들도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언어의 힘과 모국어에 대한 사랑은 정겨운 시적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믿
는 듯하다. 아이들이 동시와 동요를 즐기는 통에 학부모들도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읊조리거나 흥얼거린다. 짧지 않은 미국 체류기간 동안 어른들
의 노래를 흉내 내며 으스대는 유치원 꼬마나 초등학생을 본 적이 없다.
반면에 아이들이 친구나 가족들과 어울려 동요를 부르는 것은 드문 풍경
이 아니었다. 교육적인 의무에서 그런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재미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쾌락주의적 발상일지 모르겠으나 시는 누가 뭐래도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는 더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가 없으면 감동이 없고, 감동이
없으면 반복이 없고, 반복이 없으면 삶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 어린 아이
들에게 동시의 재미를 일깨워 주는 일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그들의
엉뚱한 상상력에 언어의 날개를 달아 주면 된다. 물론 간단하다고 쉽다는
뜻은 아니다. 어른들은 본능적으로 아이들의 엉뚱한 상상력에 족쇄를 채
우려 든다. 시냇물은 모두 ‘졸졸졸’ 흐른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조기 논술
교육에 마음이 쏠리는 부모들은 모두 그 족쇄의 주인들이다.
「코가 얼굴에 있으니 다행이야」는 재미있는 시다. 유치하게 보여도, 아
니 유치하기 때문에 재미있는 시다. 사실 재미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유치
함에 접근한다. (그래서 어른들이 골프에 미치는 것이 아닌가!) 코의 위치
를 바꿔보는 엉뚱한 상상은 코 모양을 바꾸려고 수 백 만원을 들여 수술하
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아프지 않고 부작용도 없고 건강하다.
장난기가 가득한 시인은 코를 발가락 사이, 머리 꼭대기, 귓속으로 이동
시켰을 때 벌어질 만한 시각적인 괴이함에는 짐짓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코의 원초적인 기능을 들뜬 어조로 재확인한다. 냄새 맡는 코, 재
채기하는 코. 그런데 그 냄새가 발 냄새고, 그 재채기가 머리털에 흥분된
재채기다. 웃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의도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차근차근 생각해 보니 냄새는 들숨의 흔적이고, 재채기는 급작스런 날숨
의 소란함이다. 코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호흡이다. 때와 장소와 상관없이
자신의 임무를 쉴 새 없이 수행해야 한다. 그걸 못하면 큰 탈이 난다. 그렇
다면 이 시는 코에 관한 시면서 동시에 호흡에 관한 시고 생명에 관한 시
인 셈이다.
그렇다고 이 시를 억지로 심각하게 읽을 필요는 없다. 아이들이 가벼움
에서 무거움으로, 유치함에서 성숙함으로, 엉뚱함에서 독특함으로 옮아가
는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깨우침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충분히 가볍고, 충
분히 유치하고, 충분히 엉뚱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만의 특권이다. 그 특
권을 제대로 만끽한 후에야 근사한 어른이 될 수 있다. 근사한 어른은 어
린 시절을 겸손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코가 얼굴에 있음을 기뻐한다.
[작가소개]
잭 프렐러츠키 (Jack Prelutsky, 1940~ )
미국 최초의 동시 계관시인. 30년 넘는 세월 동안 아이들을 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기
발하고 웃기는 시를 써오면서 아이들로 하여금 시를 사랑하게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
다. 이제껏 50권이 넘은 동시집을 발표했으며 수많은 시선집을 편집했다. 미국의 유명한
어린이 TV 시리즈『아서』의「나는 시인」이란 코너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노래 부르기
와 기타 연주를 좋아하며 현재 시애틀에 거주하고 있다.
백정국 교수
* 고려대 영어교육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에서 미국문학 석사. Rutgers University - Camden에서 영문학 석사,
University of California - Davis에서 셰익스피어 드라마 연구로 박사 학위 받음.
* 현재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