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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지도) , 북정가, 줄사철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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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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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북청가,줄사철나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글쓴이 지환 함두빈 근서 (우리나라지도 마 ~사바하 `)
((위대한 지혜로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以無所得故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菩提薩陀 依 般若波羅密多 故
心無罣碍 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보리살타 의 반야바라밀다 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三世諸佛 依 般若波羅密多 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 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故知 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 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3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해설
마하(摩訶)는 크다(대), 많다(다), 초월하다(승)의 뜻이고, 반야는 지혜, 깨달음의 뜻이며, 바라밀다는 저 언덕에 이르다(도피안)는 뜻이다.
심경은 핵심 되는 부처님의 말씀이란 뜻이다.
일체를 초월하는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 가장 핵심 되는 부처님의 말씀.
觀自在菩薩 行 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 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관세음보살)이 (삼계. 사생. 육도의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깊은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오온(물질적 현상, 감각작용, 의지적 충동, 식별작용)이 모두 공함을 (실체가 없음을) 확연히 알고 이 모든 고통(4고, 8고)에서 벗어났느니라.
관자재: 지혜,수행적 측면[스스로 자신을 관찰]
관세음: 자비,이타적 측면에서 호칭 됨.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여, 물질적 현상이 그 본질인 공과 다르지 않고, 공 또한 물질적 현상과 다르지 않으니, 물질적 현상이 곧 본질인 공이며, 공이 곧 물질적 현상이니라. 감각작용, 지각작용, 의지적 충동, 식별작용도 다 공이느니라.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이 모든 존재들이 외관상으로는 생겨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더러운 것 같기도 하고 깨끗한 것 같기도 하고 증가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감소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 모든 현상계의 본질적 차원(관세음보살의 차원)에서는 생겨나는 일도 없고 없어지는 일도 없으며,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으며, 감소하는 일도 없고, 증가하는 일도 없느니라.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그러므로, 사리자여) 이 현상계의 본질의 차원인 공의 입장에서는 물질적 현상도 없고, 감각작용과 지각작용 그리고 의지적 충동과 식별작용도 없느니라.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이 공의 세계에서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사유작용 등 감각작용도 없고, 빛깔과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비감각적 대상인 원리 등 객관대상도 없으며, 시각의 영역도(청각의 영역, 후각의 영역, 미각의 영역도(청각의 영역, 후각의 영역, 미각의 영역, 촉각의 영역) 사유의 영역등 주관작용도 없느니라.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이 공의 세계에서는) 무명도 없고, 무명의 소멸도 없으며(행, 식, 명색, 6입, 촉, 수, 애, 취, 유, 생도 없고 그 소멸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늙고 죽음의 소멸도 없느니라.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以無所得故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이 공한 세계에서는)고통도 없고, 고통의 원인도 없고, 그 원인의 소멸도 없고 그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수행방법도 없느니라. (그럼므로 이 공의 세계에서는) 깨달음도 없고, 깨달음을 얻은 것도 없고,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도 없느니라.
菩提薩陀 依 般若波羅密多 故
心無罣碍 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보리살타 의 반야바라밀다 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그러므로 사리자여)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느니라. (보살은) 뒤바뀐 잘못된 생각을 멀리 떠나 마침내는 열반에 이르렀느니라.
三世諸佛 依 般若波羅密多 故得 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 반야바라밀다 고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최상의 깨달음인 아뇩다라 삼먁삼보리(완전한 깨달음)를 얻었느니라.
故知 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그러므로, 이 반야바라밀다는 이 큰 신비한 주문이며, 큰 밝은 주문이며, 큰 최상의 주문이며, 이 얼마나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주문인가를 알아야 하느니라.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 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이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은 능히 일체의 고액을 소멸시키며 진실하여 거짓이 없나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설하노라.
그 주문은 곧,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3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세 가세 건너 가세 저 언덕 다같이 가서 보리 성취하세.
아제: 가세
바라: 바라밀 줄인말 저 언덕, 저건너
승: 승려와 같은 의미, 화합, 다같이라는 뜻
모지: 보리의 음 변화, 지혜 깨달음, 지혜
사바하: 빠른(성취), 만족
**불교 혼돈하기 쉬운 낱말 ***
처사; 거사란 말과 함께 불법에 귀의한 남자 신도를 통칭함
보살: 불법에 귀의한 여자 신도를 통칭함,
비구: 250가지 지켜야 할 계를 받은 남자 승려.
비구니: 348가지 지켜야 할 계를 받은 여자 승려.
北征歌북청가 /충무공 남이장군 , 글쓴이 지환 함 두빈
白頭山石 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豆滿江水 飮馬無두만강수 음마무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고
南兒二十 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後世誰稱 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리오
유명한 詩 다. 누구나 한번쯤은 접해 본 詩일것이다.
남이 장군(1441~1468)이 이시애의 난(1467년)을 평정하고 백두산에 올라 지은 시다.
대장부의 기개가 철철 넘친다.
특히, 二十에 未平國이라니 엄청난 포부다.
그러나 이 詩(여기서 平字를 得字로 바꾸어 나라를 찬탈하려 한다는 음모론이 제기 되었다.)로 인해 남이장군은 역적으로 몰려 유자광의 일당에게 28세의 나이에 안타까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만약 非命橫死 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까???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이 없었을까???
억울한 죽임에 눈은 어떻게 감았을까?
嗚呼라 !!!남이 장군은 조선 세조대의 인물로 약관의 나이도 되기 전에 무과에 급제했던 기린아였다. 평소 강직하고 굽힐 줄 모르는 성품을 지녔던 그는 함경도에서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을 때 뛰어난 무공을 발휘하여 출셋길에 올랐다. 이어서 파저강 일대의 건주위 여진족 정벌에 참여하여 추장 이만주 부자를 사살함으로써 일약 조선의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세조 말년에 남이는 임금의 총애를 받아 구성군 이준의 뒤를 이어 28세의 젊은 나이에 병조 판서가 되었다. 하지만 신진세력의 약진을 고까워하던 한명회와 신숙주 등 훈구대신들의 견제를 받았다.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이 등극하자마자 남이는 병조 판서에서 겸사복장으로 좌천되는 수난을 당한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남이는 역모를 꾀했다는 유자광의 고변으로 체포되어 능지처참 당하고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했다. 한명회의 친구였던 장인 권남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으므로 수렁에 빠진 그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했다.
백성들은 남이 장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채 피기도 전에 꺾여버린 그의 운명을 아기장수 설화에 대입시키기도 했다. 무속에서는 억울하게 죽은 그의 원혼이 크나큰 위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하여 신령으로 받들기까지 했다. 그는 조선시대에 있었던 9명의 충무공 중에 한 명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충무공 12 분***
우리나라에는 충무공이 몇분이나 있을까요? 고려시대에 3분이 계시고 조선시대에 9분~!!! 모두** 12분이나 계십니다.** 어? 충무공은 이순신장군 아니야? 하시는 분이 대부분이실거라 생각하는데요 물론 이순신장군님도 충무공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다른분들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거지요.
아 먼저 '충무공'이란 시호부터 설명해야 겠습니다. 공이 많은 신하가 죽으면 임금이 그 업적을 기려 시호를 내리는데요 **무인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시호가 충무공입니다.** 문인은 문충공, 충문공, 문성공이 이에 해당합니다.
**고려시대에는 3분의 충무공이 있었습니다. **지용수, 박병묵, 최필달. **혹시 아시는분 있으신가요?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문제입니다 너무 고려시대에 대해선 안가르칩니다. 관심도 없는 듯 하구요.
지용수장군은 고려 공민왕때 활약하신 장군으로 홍건적의 침입때 빼앗긴 고려의 수도 개경을 다시 찾는데 큰 공을 세웠고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원나라가 침입했을때도 이를 막아내었습니다. 또한 1370년 공민왕의 명에의해 요동을 정벌하고 돌아옵니다. 이때가 우리나라가 고구려와 발해 이 후 요동을 차지했던 마지막입니다 ㅜ.ㅜ 지용수 장군은 언제 태어나어 언제 돌아가셨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다른 충무공이신 박병욱은 나주박시의 시조이며 고려 평장사를 지내셨다는데 역시 기록이 없고, 최필달은 강릉최씨의 시조이고 고려 때에 삼중대광으로 삼한벽상 개국찬화공신에 책록되어 영첨의좌정승을 역임한 후 경흥군에 봉해졌다 하는데 더이상의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나주박씨나 강릉최씨 족보에 이분들에 관하여 더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있지 않을까요??
**조선시대에는 **9분의 충무공이 있었는데 **첫번째는 앞서 말씀드린 조영무입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의 무신으로 이성계를 도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하는데 일조하고 선죽교 정몽주를 죽인 사람이 바로 이분입니다. 이후 1차왕자의 난과 2차 왕자의난에서 이방원을 도와 공을 세웁니다. 조영무장군의 묘는 경기도 광주에 있습니다. 경기도 광주 퇴촌면이란 지명을 들어보셨나요? 조영무장군의 호가 바로 퇴촌입니다. 장군의 무덤이 바로 이 퇴촌면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 지명이 퇴촌면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가보면 이정표도 하나 제대로 되어있질 않아 아쉽습니다.
**2번째 충무공은 세종의 4째아들인 임영대군의 아들, 이준입니다. 25세의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이시애의 난을 남이, 강순과 함께 진압한 공로로 병조판서가 되었으며 1468년 영의정 되었는데 이 때 그의 나이는 27세로 조선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정승이 된 사람입니다. 뭐 집안이 빵빵하니~~ 쩝~~ 1470년(성종 1) 나이 어린 성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려 한다는 정인지 등의 탄핵을 받아 삭탈관직을 당하고 경상도 영해로 귀양보내져 10년 만에 죽었죽었습니다.
**3번째 충무공은 남이장군입니다. 남이 장군은 아는분이 많으시죠? 남이장군 역시 어마어마하게 빵빵한 가문의 남아로 태어납니다. 태종의 딸인 정선공주가 할머니입니다. 조선 개국공신 남재의 5대손이구요. 이시애의 난과 건주여진 정벌 등에서 공을 세워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27세의 나이에 공조판서가 됩니다. 그러나 세조가 죽자 억울한 모함을 받아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에 처해집니다. 남이장군의 묘는 2군데가 있는데 알고 계시나요? 바로 춘천 남이섬에 가면 남이장군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섬 이름이 남이섬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그런데 이건 가묘인 것으로 보이고 실제 남이장군묘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있습니다. 남이섬에 가실일이 있으시면 남이 장군묘에도 꼭 한번 들러보세요. 남이장군묘와 옆에 남이장군을 역모죄로 죽게 만든 문제의 시가 새겨진 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참 특이한 것이 이 남이장군의 옥사를 다스린것이 위에서 말한 2번째 충무공 이준입니다. 거 참~
남이섬에 있는 남이장군묘와 시비
**4번째 충무공은 우리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충무공~~!!!! 바로 이순신장군입니다. 워낙 많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분이고 모르는 분이 거의 없으시기 때문에 넘어가겠습니다
**5번째 충무공은 임진왜란당시 진주대첩의 영웅 김시민장군입니다. 1592년 10월 일본군은 진주를 통해 전라도로 진공할 목적으로 3만의 대군으로 진주성을 공략했는데, 김시민은 3,800여 명의 병사로 맞섰습니다. 10월 5일부터 11일까지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고, 성 안의 백성들까지 합세하여 수적으로 많았던 일본군의 공세를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김시민은 전투 마지막 날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도중에 일본군의 탄환을 맞아 38세로 전사하셨습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중 한산대첩의 이순신장군님과 더불어, 진주대첩의 이 김시민장군께서 충무공입니다. 행주대첩의 권율장군은 충무공이 아닙니다. 충장공이지요 ^^; 혹시 진주성에 가보셨나요? 진주성에 가보시면 김시민 장군의 동상이 있고 2차 진주성 전투 패배 후 적장을 안고 남강으로 장렬하게 뛰어든 논개의 사당도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김시민 장군 동상에 충무공이라고 한문으로 씌여있지요? ^^
진주성에 있는 김시민장군 동상(좌)과 논개사당(우)
**6번째 충무공은 이수일 장군입니다. 1583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셨습니다. 1602년 남도병마절도사가 되어 여진족을 소탕하였고,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에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부원수를 겸해 길마재[鞍峴]에서 반란군을 무찔러 서울을 수복한 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2등에 책록됩니다.
**7번째 충무공은 정충신 장군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 권율)의 밑에서 종군하였습니다. 이 때 권율이 장계를 행재소에 전달할 사람을 모집했으나 응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17세의 어린 그가 가기를 자청하고는 왜군으로 가득한 길을 단신으로 뚫고 행재소에 도착하였다고 합니다. 이괄의 난때는 이괄의 군사를 황주와 서울 안산에서 무찔러 진무공신(振武功臣) 1등에 책록됩니다.
**8번째 충무공은 인조의 외사촌이었던 구인후입니다. 인조반정에 참여하였고 정묘호란때는 인조가 피란은 간 강화도에서 주사대장이 되었고 병자호란때는 병사 3000명를 데리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국왕을 호위했다고 합니다. 1644년에는 심기원(沈器遠)의 모역 사건을 적발, 처리한 공으로 영국공신(寧國功臣) 1등에 책록됩니다.
**마지막 9번째 충무공은 김응하입니다. 1618년 광해군때 명나라가 후금을 칠 때 조선에 원병을 청해오자 이듬해 2월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후금정벌에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명나라 군사가 대패하자, 3,000명의 휘하군사로 수만 명의 후금군을 맞아 고군분투하다가 중과부적으로 패배하고 전사하였습니다. 이듬해 명나라 신종이 용전분투하다가 장렬한 죽음을 당한 데 대한 보답으로 특별히 조서를 내려 요동백(遼東伯)에 봉하고, 처자에게는 백금을 하사하였다고 하며, 광해군도 전사를 가상히 여겨 영의정을 추증하였습니다.
이상 우리나라의 충무공들을 살펴봤습니다. 생각보다 많지요? 몇분의 충무공을 알고 계셨나요?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의 한계이자 문제점이라고 봅니다. 좀 더 우리나라의 역사에 관해서 중등, 고등과정에서 가르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 그리고 여담으로 중국에도 충무공이 있습니다. 음 황제국가라 충무공이 아니라 한등급 더 위로, 제후 후자(侯)를 써서 충무후 로 쓰는 경우도 있구요.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의 인물 제갈공명~ 그의 시호가 충무후입니다. 그냥 무후라고 부르기도 하구요. 그 외에도 송나라때의 장군 악비도 있는데 중국역사는 빼도록 하겠습니다 ^^.
줄사철남무 10년전 추하에서 10CM 소품을 이렇게 큰 나무가 되었읍니다
하나는 석부작에 붙어있는 나무는 아직도 10CM 에서 자라고 있읍니다
어학사전
추하[楸下]
국어뜻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 더보기
일본어뜻祖先そせんの墓地ぼち 더보기
노박덩굴과 사철나무속에 속하는 상록 포복관목. 학명은 'Euonymus fortunei var. radicans Rehder'이다. 사철나무와 닮았지만 줄기에 뿌리가 내려 덩굴처럼 자라는 모양을 보고, 접두어 '줄'을 붙인 줄사철나무로 이름 붙여졌다.
형태
옆으로 기면서 자라고 줄기에서 뿌리가 내린다. 초록색의 어린 가지는 약간 모가 져 있다. 다소 두꺼운 잎은 길이가 2~5cm, 너비가 1~2cm로 마주나는데 가장자리에 고르지 않은 톱니들이 있다. 연녹색의 꽃은 연녹색이고, 잎겨드랑이에서 나와 취산꽃차례로 무리지어 핀다. 열매는 삭과로 연한 붉은색이다. 익으면 터져 씨를 감싸는 노란빛이 도는 붉은색 껍질이 드러난다.
생태
5~6월에 꽃을 피우며, 열매는 10월에 익는다. 주로 남쪽지방에서 자라지만 인천 앞바다와 울릉도 등지에서도 자란다. 사철나무와 비슷하지만 옆으로 기면서 자라며, 줄기가 둥글어 사각형인 사철나무와 다르다. 다른 물체를 감아올라 자라기 때문에 정원에 심기도 한다. 뿌리는 얕게 내리지만 줄기에서 많은 잔뿌리가 내리기 때문에 옮겨심기는 쉽다. 대체로 그늘진 곳에서 자란다. 줄사철나무와 비슷하지만 줄기가 곧추서며, 잎이 빽빽하게 달라붙어 올라가면서 소용돌이치듯이 비비 꼬이는 와동청도 정원에 심고 있다.
활용
한방에서는 줄사철나무의 줄기와 잎을 부방등(扶芳藤)이라고 한다. 각혈·생리불순·자궁출혈·외상 출혈 등에 지혈제로 사용하며, 풍습성관절염과 골절상·타박상 등의 동통 제거에도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