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40)
내가 되고 싶은 것
나는 우주와
동반자가
되고 싶어.
아직 남아 있는
개간되지 않은 들판의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잡초들 틈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머리
쑥 내미는
참나리처럼.
하지만
뭐,
참나리가 아니라
무리 지어 구불구불 자란
한낱 풀이라도 괜찮아,
바람에 나부끼며
태양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우면서도 거친 풀잎.
- 메리 올리버(1935-2019),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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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 없는/소멸을 꿈꿨다.//불에 태워져/재로 뿌려져/먼지로도 다시/태어나지 않기를…//누군가 딱 잘랐다./해탈만이/가능한 일//누구나 다/언덕을 넘고/너머에 이르지만/언덕도/너머도 다/다르다는 말씀?//돌이나 물이나 그런/태어남을 말한/시인이 있었지.//그럼 이제부터/돌로 태어나기를…//사람에서 돌로/돌에서 돌로/돌에서//누구의 눈도/담지 않고/누구의 손도/타지 않고/잊히기 전에/불리지도 않는/그런//돌,/돌,/돌,/돌,/돌로…”(남태식(1960- ), 「돌이나 물이나 그런」, 『돌이나 물이나 그런』, 리토피아, 2023)
“살면서 쓸쓸해지는 순간이 오면 사람들은 전생이나 후생을 이야기하곤 한다. 전생에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후생에는 무엇으로 이 세상을 찾아오게 될까. 믿든 믿지 않든 말이다. (…) 덧붙이자면 나도 다음에 태어나면, 물론 다시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라는 단서에 붙여진 바람이 하나 있다. 다른 생명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그런 생명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러니 돌이나 물이나 그런 건 아닐까?”(허수경(1964-2018), 『허수경이 사랑한 시 –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난다, 2020)
믿는다고도 안 믿는다고도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후생을 이야기한다면, 저는 한때 이생에서의 소멸을 꿈꿨습니다. 후생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안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만난 게 허수경 시인의 말이었습니다. “돌이나 물이나 그런”. 제 시의 제목은 이 허수경 시인의 말에서 가져 왔습니다. “돌이나 물”을 선택하고 풀어내는 과정은 다르지만, ‘굳이 태어나야 한다면’이라는 선택을 하는 전제는 같습니다. 전생이나 후생에 대한 생각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해 보입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종교를 떠나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궁금증에서 오는 것일 테니까요. 전생이나 후생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번성하는 까닭이 이런 궁금증의 표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메리 올리버의 시에서는 후생이라는 말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제목으로 보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합니다. 자연이 되는 삶은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의 연장선으로 이생에서의 시인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잇고 있습니다. “우주와”의 “동반자”만 된다면 그것이 “참나리”이든 “한낱 풀”이든 개의치 않겠다는 선언은 당당하기까지 합니다. 이 시가 수록된 시집은 시인의 열여섯 번째 시집으로 2009년에 출간하였습니다. 작고하기 10년 전으로 시인의 나이 70대 중반이었습니다. 이후에도 5권의 신작 시집을 더 출간하였으니 시선집을 제외하고도 총 21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는데 번역된 시집이 소수에 불과하여 늘 아쉬움을 느낍니다. 이 아쉬움은 다른 많은 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간 3월 마지막 주는 기독교의 부활절이었습니다. 부활은 죽음 이후의 사건입니다. 부활은 후생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이든 후생이든 죽음이 앞서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4월입니다. “사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가장 잔인한 달”(T.S.엘리엇(1888-1965), 「황무지」 일부, 『황무지』, 황동규 옮김, 민음사, 2004)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부활의 사건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부활 사건은 우리가 만드는 사건입니다. 명심하십시오. 부활 이전에 먼저 죽음입니다. 죽지 않은 자는 누구라도 부활할 수 없거니와 누구라도 죽지 않은 자를 부활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건 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을 확인했나요. 그럼 이제 누구를 부활시킬지 “가장 잔인한” 선택 행위를 해야 합니다. (20240403)
첫댓글 보광님 덕분에 메리 올리버 시도 읽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메리 올리버에 관심이 갑니다. 보광님의 <돌이나 물이나 그런> 시도 잘 다가오고요. 허수경 시인은 너무 일찍 돌아가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