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산(湧珍山 349m)의 두 봉우리 중 철계단을 타고 하늘을 오르듯 용을 쓰고 올라야하는 서쪽의 석봉(石峰)은 큰 바위가 겹겹이 쌓인 마치 붓끝처럼 뾰족하게 솟은 모습이 문필봉(文筆峰), 또는 기운차게 솟아오른 용출봉(湧出峰) 같다. 동쪽 봉우리는 석봉과 음양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 토봉(土峰)으로 불리고 있으나, 암릉과 낙락장송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연이어지는 절경이 자꾸만 억울함을 호소한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전국을 두루 돌다가 이 산의 빼어난 경치에 매료되어 산사에서 며칠을 머물고 갔을까.
4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가학정(駕鶴亭) 가는 길목의 깎아지른 높은 암벽에 새겨진 미소 짖는 자비로운 얼굴의 석가모니상이 무척 인상 깊다. 게다가소금강(小金剛), 불당일월(佛堂日月), 용진수석(聳珍水石) 등 일필휘지는 선인들의 멋진 해학과 풍류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수량 많은 한여름에는 열길 낭떠러지 계곡을 흐르는 해맑은 물소리가 무더위를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을 법하다. 학에 올라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가학정에서 황룡강을 굽어보며 자연의 풍취에 취해 시 한 수 읊조렸을 선비들의 환영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용진정사에서 석봉과 토봉에 올랐다가 원사호로 하산하는 코스가 풍부한 수량과 풍광이 빼어나다. 이 산은 왜정 때 전국에서 이름 있는 금광이 있었던 곳으로, 신임곡 일대는 작은 도시처럼 융성했었다. 용진산 서쪽 왕동제는 우리나라 지형을 닮은 호숫가에 아늑한 마을과 전원이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산줄기는 호남정맥 내장산과 백암산 사이 530m봉에서 가지를 친 영산기맥 상의 구황산 부근에서 남쪽으로 갈려나온 산줄기가 수련산, 동구산을 거쳐 용진산을 빚는다. 동쪽 산줄기는 호남정맥 도장봉 앞에서 갈래 친 산줄기가 어등산에서 황룡강에 숨어들고, 서쪽 산줄기는 영산기맥 태청산에서 갈려나온 산줄기가 나주의 제신산에 이르러 영산강에 잦아든다.
용진산 들머리 주차장에 있는 오중렬 선생상이 눈길을 잡았다. 등산안내도와 눈인사를 나누고 시멘트길을 오르면 곧이어 용진산장과 용진사터에 자리 잡은 용진정사가 반긴다. 북쪽의 산길을 오르면 야생 차나무가 지천이고, 돌계단을 오르면 울창한 송림이 시작된다. 운동기구와 벤치를 지나면 거대한 암벽을 향해 설치된 가파른 나무계단과 한동안 씨름해야 한다. 서쪽 암봉에 올랐다가 정상인 석봉을 철계단에 의지해 하늘을 향해 오르듯 한 발 한 발 옮기면 안개에 휩싸인 정상이다(주차장에서 40분 소요). 너럭바위에 큰 구덩이가 있다.
이정표가 용진정사(1.5km), 동쪽 사호동(2.5km), 토봉(0.5km)을 알려준다. 이곳은 평소에도 운해가 많이 발생해서 석봉이 구름 속에 솟은 모습을 연출한다. 석봉과 토봉의 안부를 향하는 하산길은 낙락장송과 칼날바위가 연이어?다. 반면 북쪽은 천길 낭떠러지여서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다가 철계단을 내려가면 남쪽 사거리 안부다. 남쪽은 용진정사 지름길이고, 토봉은 동쪽(0.5km), 사호동은 북쪽(2.3km) 사거리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계속되는 암릉과 낙락장송 틈 사이를 철계단에 의지해서 직진하다 뒤돌아보니 석봉이 우뚝 솟아있다.
맨손으로 바위를 잡으니 어찌나 강하고 날카로운지 손을 벨 것 같다. 토봉에 닿으면 삼각점(나주 305)이 마중 나오고, 무인 산불감시초소의 카메라는 임무수행에 여념이 없다(석봉에서 40분 소요). 토봉에서는 길이 없어 사호동으로 직진하지 못하므로 사거리 안부로 되돌아왔다. 송림이 울창한 숲길을 내려가면 넓은 공터에 운동기구와 폐광굴이 있고, 그 옆에는 약수가 있다. 이 약수는 식수로 적합하지 않으니 먹지 말라는 경고문이 버티고 서있다. 시누대 군락을 지나면 완만한 흙길로 시멘트 계단을 걷는 데 불편함이 계속된다. 산행 마무리로 발마사지를 하려고 돌길이 이어지다가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운동기구와 주차장이 있다. 적막이 감도는 마을 안의 시멘트 길을 걸으면 느티나무와 비문, 그리고 대형 주차장에 닿는다(토봉에서 50분 소요).
? 가학정(駕鶴亭) 임진왜란 때 벼슬도 없이 선조를 모시고 북쪽으로 피란 간 공로로 박경(朴璟)이 임금에게 죽림처사의 시호와 함께 하사받은 정자다. 북쪽엔 황룡강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른다. 그 길목에는 노송과 비자나무, 싸리나무, 상수리나무, 산비장이 등 갖가지 잡목이 우거져 푸른 숲을 이루며 곳곳에 단애를 이룬 암벽이 솟아있어 소금강을 방불케 한다.
? 용진정사(湧珍精舍) 중국매화, 치자나무, 벚나무의 울창한 숲이 우거진 이 산의 남쪽 골짜기에 자리한 용진정사는 조선 말 대학자이며 애국지사인 후석 오준선이 국난과 속세를 떠나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다. 기암괴석이 자연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이곳은 광산, 나주 출신의 한말 의병들의 근거지로, 면암 최익현과 전해산, 김태원, 오상렬, 오성술 장군 등 쟁쟁한 의병장들이 구국의 일념으로 오준선과 항일전략을 세우고 의논했던 곳이다.
용진산(湧珍山 349m)의 두 봉우리 중 철계단을 타고 하늘을 오르듯 용을 쓰고 올라야하는 서쪽의 석봉(石峰)은 큰 바위가 겹겹이 쌓인 마치 붓끝처럼 뾰족하게 솟은 모습이 문필봉(文筆峰), 또는 기운차게 솟아오른 용출봉(湧出峰) 같다. 동쪽 봉우리는 석봉과 음양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 토봉(土峰)으로 불리고 있으나, 암릉과 낙락장송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연이어지는 절경이 자꾸만 억울함을 호소한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전국을 두루 돌다가 이 산의 빼어난 경치에 매료되어 산사에서 며칠을 머물고 갔을까.
4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가학정(駕鶴亭) 가는 길목의 깎아지른 높은 암벽에 새겨진 미소 짖는 자비로운 얼굴의 석가모니상이 무척 인상 깊다. 게다가소금강(小金剛), 불당일월(佛堂日月), 용진수석(聳珍水石) 등 일필휘지는 선인들의 멋진 해학과 풍류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수량 많은 한여름에는 열길 낭떠러지 계곡을 흐르는 해맑은 물소리가 무더위를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을 법하다. 학에 올라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가학정에서 황룡강을 굽어보며 자연의 풍취에 취해 시 한 수 읊조렸을 선비들의 환영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용진정사에서 석봉과 토봉에 올랐다가 원사호로 하산하는 코스가 풍부한 수량과 풍광이 빼어나다. 이 산은 왜정 때 전국에서 이름 있는 금광이 있었던 곳으로, 신임곡 일대는 작은 도시처럼 융성했었다. 용진산 서쪽 왕동제는 우리나라 지형을 닮은 호숫가에 아늑한 마을과 전원이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산줄기는 호남정맥 내장산과 백암산 사이 530m봉에서 가지를 친 영산기맥 상의 구황산 부근에서 남쪽으로 갈려나온 산줄기가 수련산, 동구산을 거쳐 용진산을 빚는다. 동쪽 산줄기는 호남정맥 도장봉 앞에서 갈래 친 산줄기가 어등산에서 황룡강에 숨어들고, 서쪽 산줄기는 영산기맥 태청산에서 갈려나온 산줄기가 나주의 제신산에 이르러 영산강에 잦아든다.
용진산 들머리 주차장에 있는 오중렬 선생상이 눈길을 잡았다. 등산안내도와 눈인사를 나누고 시멘트길을 오르면 곧이어 용진산장과 용진사터에 자리 잡은 용진정사가 반긴다. 북쪽의 산길을 오르면 야생 차나무가 지천이고, 돌계단을 오르면 울창한 송림이 시작된다. 운동기구와 벤치를 지나면 거대한 암벽을 향해 설치된 가파른 나무계단과 한동안 씨름해야 한다. 서쪽 암봉에 올랐다가 정상인 석봉을 철계단에 의지해 하늘을 향해 오르듯 한 발 한 발 옮기면 안개에 휩싸인 정상이다(주차장에서 40분 소요). 너럭바위에 큰 구덩이가 있다.
이정표가 용진정사(1.5km), 동쪽 사호동(2.5km), 토봉(0.5km)을 알려준다. 이곳은 평소에도 운해가 많이 발생해서 석봉이 구름 속에 솟은 모습을 연출한다. 석봉과 토봉의 안부를 향하는 하산길은 낙락장송과 칼날바위가 연이어?다. 반면 북쪽은 천길 낭떠러지여서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다가 철계단을 내려가면 남쪽 사거리 안부다. 남쪽은 용진정사 지름길이고, 토봉은 동쪽(0.5km), 사호동은 북쪽(2.3km) 사거리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계속되는 암릉과 낙락장송 틈 사이를 철계단에 의지해서 직진하다 뒤돌아보니 석봉이 우뚝 솟아있다.
맨손으로 바위를 잡으니 어찌나 강하고 날카로운지 손을 벨 것 같다. 토봉에 닿으면 삼각점(나주 305)이 마중 나오고, 무인 산불감시초소의 카메라는 임무수행에 여념이 없다(석봉에서 40분 소요). 토봉에서는 길이 없어 사호동으로 직진하지 못하므로 사거리 안부로 되돌아왔다. 송림이 울창한 숲길을 내려가면 넓은 공터에 운동기구와 폐광굴이 있고, 그 옆에는 약수가 있다. 이 약수는 식수로 적합하지 않으니 먹지 말라는 경고문이 버티고 서있다. 시누대 군락을 지나면 완만한 흙길로 시멘트 계단을 걷는 데 불편함이 계속된다. 산행 마무리로 발마사지를 하려고 돌길이 이어지다가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운동기구와 주차장이 있다. 적막이 감도는 마을 안의 시멘트 길을 걸으면 느티나무와 비문, 그리고 대형 주차장에 닿는다(토봉에서 50분 소요).
? 가학정(駕鶴亭) 임진왜란 때 벼슬도 없이 선조를 모시고 북쪽으로 피란 간 공로로 박경(朴璟)이 임금에게 죽림처사의 시호와 함께 하사받은 정자다. 북쪽엔 황룡강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른다. 그 길목에는 노송과 비자나무, 싸리나무, 상수리나무, 산비장이 등 갖가지 잡목이 우거져 푸른 숲을 이루며 곳곳에 단애를 이룬 암벽이 솟아있어 소금강을 방불케 한다.
? 용진정사(湧珍精舍) 중국매화, 치자나무, 벚나무의 울창한 숲이 우거진 이 산의 남쪽 골짜기에 자리한 용진정사는 조선 말 대학자이며 애국지사인 후석 오준선이 국난과 속세를 떠나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다. 기암괴석이 자연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이곳은 광산, 나주 출신의 한말 의병들의 근거지로, 면암 최익현과 전해산, 김태원, 오상렬, 오성술 장군 등 쟁쟁한 의병장들이 구국의 일념으로 오준선과 항일전략을 세우고 의논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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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산 산행 : 광주역 (89번 시내버스)-무등경기장-흑석사거리-임곡-원임곡(삼화교)하차-다리건너 원사호마을(도보 약20분)
광주역-원임곡(삼화교) : 시내버스 약1시간16분소요- 약20,4km, 배차간격75분 // 번개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