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여행을 나섰다. 벌써 40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다.
부산의 동아대 승학캠퍼스 앞에 내려 에덴공원을 거쳐 하단-신평-장림-다대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신평까지의 공장지대를 지나 바닷가에 이르자 기분이 상쾌했다. 막힘없이 멀리 바라다보이는 바다
는 젊은 시절 마음의 위안이었었다.
에덴공원 자체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고 다만 주변에는 연못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주변에 많은 동동주집이 있었다는 정도이다. 아무튼 한적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밤이면 아베크족들이 모여드는 분위기 있는 곳이었다.
군대시절 인접한 부대 어느 하사관께서 병사들 앞에서 '에덴동산의 3장 5막'이란 말씀을 자주하셨다. 아베크족들의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나는 그 내용을 알았지만 듣는 병사들이 눈치를 채기나 하였을까? 대략은 알았겠지!
그 당시에는 밤 12시 통행금지가 있었고, 10시가 넘으면 버스가 끊기고 요즘처럼 택시도 많지않아 사정을 모르는 아베크족들을 무척이나 당황하게 만들었던 곳이다. 나도 그곳을 간 적이 있었다.
이은상 시비가 있다고하여 찾아 보았으나 보이질 않았다. 행여 친일이니 뭐니 하며 없애버린 것은 아닐터...지금은 여느 공원처럼 잘 꾸며지지도 않았고, 그저 평범한 동네 뒤산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나이든 공원 산책자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물으니 자세히 알지는 못하였다. 하긴 토박이가 아니면 알지 못하게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1973년 여름 다대포해수욕장
그 여름날 우리 집에 책을 가지려왔던 박00씨는 이틀 뒤 다대포해수욕장에서 친구와 함께 실종이 되었었다. 두사람 모두 헤엄을 칠 수 있고, 투브까지 빌려 바다로 나갔다고 하니 참으로 허망한 일이었다. 며칠 후 그들을 시체는 각각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 되었었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 의하여 전해지는 말인즉, 박양이 죽기전 슬프게 '파랑새'노래를 부르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책 심부름을 왔던 그녀의 모습이 한동안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 못할 무슨 사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대학병원에 근무하던 장래가 총망한 젊디 젊은 두사람의 생명이 사라져버린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나는 오늘 40년전 그 당시를 생각해보며 이곳을 걸었다. 며칠동안 걷기를 계속해서 다리가 불편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많은 것들이 변해 버렸지만 젊은 날의 내가 겪었던 사실과 그 이야기들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숨쉬고 있었다. 남은 세월 부디 좋은 감정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