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용서에 관한, 우리 시대의 가장 처절하고 아픈 소설 '밀양: 벌레 이야기'이 출간되었다. 1985년도에 발표된 단편으로, 시간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남는 소설의 전범을 보여주는 고전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청준은 이번 '밀양: 벌레 이야기'의 출간을 통해 다시 한 번, 한국 문단의 가장 지성적인 작가임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밀양: 벌레 이야기'는 아이의 유괴와 살인이라는 사회적이고도 묵직한 소재를 통해, 용서와 구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질문하는 소설이다. “신의 사랑 앞에 사람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과 권리란 무엇인가. 이 소설은 사람의 편에서 나름대로 그것을 생각하고 사람의 이름으로 그 의문을 되새겨본”(‘작가 서문’ 중에서) 소설이다. 이청준은 특유의 철학적이고 집요한 시선과 문체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짓밟히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한갓 벌레로 전락하는지를, 절대자 앞에서 어디까지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묻고 기록했다.
한편 새로운 독자들을 위해 다시 선보이는 만큼, 소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이미지와 결합했다.'밀양: 벌레 이야기'에 실린 네거티브필름과도 같은 이미지들은, 텍스트를 확장시키며 한 아이가 사라져가는 과정과 아이의 사라짐으로 인해 남은 자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삽화를 담당한 최규석은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상’을 수상한 바 있는 만화계의 촉망받는 젊은 만화가로, ‘적발’하고 ‘고발’하는 듯한 선 굵은 삽화를 완성해냈다.
용서와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약국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평범하고 행복한 가족에게 어느 날 불행이 닥친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알암이 하굣길에 사라져버린 것. 알암은 내숭스러워 보일 만큼 얌전하지만 성적만은 상급에 속할 만큼 제 할 일은 제대로 하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4학년에 올라가고 나서 주산반에 들어가더니 가까운 주산학원에 수강 등록을 시켜달라고 할 만큼 열성을 보였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곧장 주산학원으로 갔다. 그런데 어느 날, 귀가가 늦더니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실종신고와 ‘알암이 찾기 운동’ 등 모든 사람들의 노력에도 알암의 행방은 종무소식이고, 차츰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도 멀어져간다. 그러나 아내는 끈질긴 의지력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적극성으로 알암을 찾기 위해 거리로까지 나선다. 아내는 이웃에 살고 있는 김집사의 도움을 받아 절대자에게도 매달린다. 절대자는 모든 것을 의지한 가련한 영혼에게 은혜를 베푼다. 아이를 꼭 찾게 되리라는 희망을. 그러나 절박한 기도는 허사로 돌아간다. 알암이 주산학원 근처의 상가건물 지하실 바닥에서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 것. 남은 일은 이제 가상의 범인이 아닌 진짜 유괴범을 잡아내는 것뿐이다. 건물을 중심으로 한 재개발 구역 상가와 이웃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벌인 추적 수사 끝에 범인이 주산학원 원장인 김도섭임이 밝혀진다. 정작 범인이 밝혀지자 아내는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 을 견디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져”간다. 아내는 “원망과 분노와 복수의 집념으로” 다시 자신을 가다듬는다. 그런 아내를 지켜보던 김집사는 죄인에 대한 사람의 심판은 끝났으며 “가능하면 그를 용서하고 동정을 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을 마지막으로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절대자뿐이며 “사람에게는 오직 남을 용서할 의무밖에 주어지지” 않았다고. 아내는 처음에는 김집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김집사의 권유가 계속되자 예배와 기도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안정을 찾아간다. 김집사는 알암의 구원을 단언하며 범인 김도섭을 용서할 것을 아내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아내는 마침내 신앙심으로 아이를 죽인 범인 김도섭을 용서하기로 하고 교도소로 그를 찾아간다. 그러나 김도섭을 용서하겠다던 아내의 의지는 허사로 돌아간다. 그녀가 용서를 결심하고 찾아간 사람이 그녀에 앞서서 주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었던 것. “아내의 배신감은 너무도 분명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절망감은 너무도 인간적인 것”이었다.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가 있어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주님께선 내게서 그걸 빼앗아가버리신 거예요. 나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본문 중에서)
김도섭은 형장에서 “아이의 영혼을 저와 함께 주님의 나라로 인도해주시고 살아남아 고통받는 그 가족 분들의 슬픔을 사랑으로 덜어주고 위로해주십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고, 아내는 이틀 뒤 더는 견디지 못하고 유서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약을 마신다.
사람은 자기 존엄성이 지켜질 때 한 우주의 주인일 수 있고 우주 자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주체적 존엄성이 짓밟힐 때 한갓 벌레처럼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그 절대자 앞에 무엇을 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는가. (‘작가 서문’ 중에서)
이창동 감독 신작 영화 '밀양' 원작 소설
'밀양 : 벌레 이야기'는 ‘우리 시대 영상예술의 달인 이창동 감독’ 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소설에서처럼 영화는, 처참하게 아이를 잃은 한 영혼(알암의 엄마)의 궤적을 집요하게 그리고 있다. 평범했던 한 영혼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과정, 절대자와 대면하는 과정, 아이의 죽음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범인을 용서하고자 하지만 용서할 권리마저 절대자에게 박탈당하자 배신감에 치를 떠는 과정을 통해 “당신이라면 이래도 살겠냐”고 물어온다. 한편 '밀양'은 프랑스 칸영화제 경쟁부문 본선에 진출했으며, 엄마 역할의 전도연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인터파크 제공] |
작가 소개 |
저자 | 이청준 |
이청준이 문학의 길로 나서게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열 살도 되기 전 어린 시절 수년간에 잇달아 겪었던 아버지와 맏형 아우의 죽음이었다. 특히 스물여섯에 요절한 시골 멋쟁이 맏형은 그가 읽은 책들의 행간에 적어놓은 단상이나 일기장,생전의 친지들과 주고 받은 편지들을 통해 이청준의 문학적 상상력에 근원적 영향을 미쳤다. 오지벽촌에서 난 `광주유학생`으로 마을의 자랑거리이던 이청준은 법학을 공부하여 출세하는 길 대신, 고등학교시절부터 빠져들었던 문학의 세계를 좇아 독문학과에 진학하였다. 재학 중 군대에 간 사이 함께 자취하던 이가 이청준의 일체의 책이며 이불이며 일기장이며 성적표며 하는 것들을 모조리 갖고 사라진 바람에 이청준은 졸지에 자신의 `과거`를 온통 잃어버리고 말았다.
제대 후 볼펜 한 자루와 노트 한 권 달랑 챙겨들고 친구들 자취방을 찾아 동가식서가숙하던 `부랑아` 시절에 그는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다. `잃어버린` 자신을 복원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이청준은 고도의 관념적인 주제들을 붙들고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넓혀가며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치열하게 굴착하는 한편, 지식인의 역할, 산업사회와 인간 소외 등 현대사회의 묵직한 주제들을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화하였다. 등단작인 『퇴원』부터 『조율사』 『병신과 머저리』 『당신들의 천국』 『소문의 벽』 등은 이러한 계열의 대표작들이다.
또한 1976년 이후에는 『서편제』를 필두로 한 남도사람 연작을 발표하며 토속적인 정한을 담은 문제작들을 연달아 생산해 내었다.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서편제』는 잊혀져 갔던 `우리 것`의 가치를 전 국민적 차원에서 새롭게 조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6년에 다시 임 감독과 손잡고 영화제작과 동시에 그 밑그림으로 써낸 『축제』는 이청준 문학의 주요한 자양분이었던 어머니의 죽음과 장례식과정을 소설화해 낸 것으로 문학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등단 이후 120여편의 중단편과 11편 의 장편소설, 그리고 수편의 `판소리동화`에 이르기까지 이청준의 문학세계는 그 자체가 `서구 소설 장르의 한국적 갱신의 과정`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높이 평가되어 왔다. [알라딘 제공] |
출처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2913043
이청준 “희망 보탠 영상, 소설보다 현실감”
최근 원로작가 이청준씨(68)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두 편이 잇따라 만들어졌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인 ‘천년학’과 이창동 감독이 문화관광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처음 내놓은 영화 ‘밀양’이다. 이전에 임감독이 만들었던 영화 ‘서편제’와 ‘축제’까지 합치면 이씨의 소설이 영화화된 것은 네 차례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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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소설은 정치적 견해나 지역, 계층을 떠나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감동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녔다. 당대현실에 대한 예리한 문제의식과 그것을 삶의 모습으로 끌어안는 정신성, 여기에 한의 정서에 기반한 남도문화의 풍취가 더해진 그의 문학은 많은 지식인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원작의 영화화와 함께 발표한 지 20~30년이 지난 소설 ‘천년학’과 ‘벌레이야기’(열림원)도 새 장정으로 나왔다. ‘선학동 나그네’ ‘소리의 빛’ ‘서편제’ 등 3개 단편으로 이뤄진 소설 ‘천년학’은 소리꾼 아버지와 의붓남매의 예술과 사랑에 얽힌 이야기다. ‘벌레이야기’는 어린 아들을 유괴범의 손에 잃은 엄마가 기독교에 의존해 마음의 고통을 이겨내려 하지만 정작 용서를 결심하고 찾아간 죄인의 얼굴에서 이미 평화와 구원을 발견하고 절망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이다. 임권택 감독과 가깝게 지내는 그는 지난 한해 동안 전남 장흥의 촬영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만큼 ‘천년학’이 대중들의 외면을 받은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영화 ‘밀양’은 9일 저녁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열린 문인들을 위한 특별시사회에서 봤다. 박완서 서영은 신경숙 은희경 등 문인들과 함께였다.
-두 영화를 보신 소감은 어떻습니까.
“‘천년학’은 임감독의 100번째 영화이니까 자신의 성취로부터 한발이라도 더 나아가려 했을 테고 작품성은 양보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상업성을 부러 배제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벌써 개봉관에서 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깝고 조심스럽습니다. 영화의 정석을 밟은 영상예술이고 영화사의 규범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밀양’은 큰 틀에서는 내 소설의 느낌이 있지만 세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주인공을 자살이란 극단으로 몰아간 데 비해 영화에서는 감정적으로 고조시켰다가 희망적으로 끝을 맺더군요. 소설은 막막한데 영화는 숨통을 틔워주고 피로한 가운데서도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다는 느낌, 삶의 페이소스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소설보다 더욱 삶에 가까웠습니다.”
-원작을 쓰실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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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학’의 단편들을 쓰던 1970년대말은 워낙 말이 막혀있던 시대라서 그런 억압을 벗어버리는 방편으로 판소리 쪽으로 도망갔습니다. 아무리 억압해도 무너지지 않는 존엄성 같은 게 있다는 생각도 했고, 모든 것이 정치화돼 나 자신 정서가 굉장히 메말랐다는 생각 때문에 정(情)의 씨앗자루를 남긴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벌레이야기’는 광주민주화운동 직후였는데 당시 정치상황이 너무 폭압적이어서 폭력 앞에서 인간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피해자는 용서할 마음이 없는데 가해자가 먼저 용서를 이야기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럴 때 피해자의 마음은 어떨까요. 그런 절망감을 그린 것입니다.”
-선생님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영화를 위해 소설을 쓴 건 아닙니다. 영화감독은 소재를 해석하고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 못지 않게 치열하고 강하고 깊은 작업을 하는 예술가입니다. 그러나 제 입장에서는 그들은 고급의 취미를 가진 독자의 한 명입니다. 그들이 내 작품으로 또 다른 작품을 만든다면 그들보다 앞서 좋은 영화가 나오도록 기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인으로서 작가의 역할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삶과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미래의 전망을 마련하는 건 창작의 바탕이라고 봅니다. 창작행위 속에 이미 그 역할이 들어있는 거지요.”
-요즘 하고 계신 작업은 무엇입니까.
“가을쯤 소설집이 나옵니다. 나라가 없을 때 이민 가서 삶을 꾸린 사람들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는 우리한테 여러가지를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습을 그린 소설들입니다.”
〈2007년 5월에 --- 한윤정기자〉
----- 2007년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를 마지막으로 출간하였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5091820521&code=960205
소설의 배경을 생각할 수 있는 사건과 해석의 확대가 가능한 현대사적 사건
http://book.daum.net/detail/media/read.do?bookid=KOR9788970635538&seq=17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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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왜 사람들의 이야기를 벌레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용서란 무엇일까? 절망한 사람들이 용서가 가능할까? 신과 인간의 용서는 차이가 있을까? 피해자가 용서하지 못하는데 가해자는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진정한 피해자는 누구일까? 인간이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신은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소설의 소재와 소설의 서사는 어떻게 다를까? 소설의 확대 해석이 가능한 실제적 사실이나 역사적 사건을 어떠한 일들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