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호 : 146 / 147 등록일 : 2001년 02월 04일 19:39
등록자 : K1962999 조 회 : 6 건
제 목 : [희곡] 라마 사박다니
[희곡] 라마 사박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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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F01
라마 사박다니
이현화/작
[페이지] 040
라마 사박다니
이현화 작
[때]:아무 때나.
(일본 식민통치하의 한국일 수도 있다.
물론 시대와 국가의 설정에 따라 약간의 대사 변형이 있어야겠고---)
[곳]:지하 감방.
사람:1호
2호
3호
간수
당번
호송A
호송B
소리A
소리B
[무대]:싸늘한 서슬이 도는 철창을 사이로 간수의 테이블이 있고 그 위 벽에 커다란 벽시계
가 걸려 있다. 땅 위로 올라가는 긴 층계 끝에 철문이 닫혀 있고 묵직한 자물쇠가 매달렸다.
사형수들만 수감하는 이 음습한 철창 안에서 외계를 호흡할 수 있는 유일한 숨길은 벽 높이
에 딸린 조그마한 환기창뿐이다.
(뛰어오는 발소리)
[소리A] 정지!
(발소리 멈춘다)
[소리A] 누구냐?
[소리B] 순찰이다.
[소리A] 용무는?
[소리B] 초소 순찰.
[소리A] 5보 앞으로.
(달아나는 발소리)
[소리A] 서라! 서라!
(난사되는 총소리)
[소리B] 으아---악!
총소리와 비명이 긴 여운을 남기며 끝날 때쯤 해서 막이 오르면 숨막히는 정적을 시계 소리
가 재촉하듯 깎아 먹어 들어 가고 있다.
[1] (철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간수] (테이블에 엎드려 있다.)
[2] 또 하루가 시작되는 모양이군.
[3] 오늘도 넘길 수 있을까?
[2] 예측같은 건 땅위에서나 하는 심심풀이야.
[3] 저렇게 시계소리가 크게 들리던 날엔 반드시 한 사람 끌려나가곤 했어.
[2] 난 아직 차례가 아냐.
[1] (눈을 감은채) 자네보다 내가 먼저 간다는 게 무척 다행스레 생각되는 모양이지?
[2] (쓸쓸히) 이 땅속에서 그보다 더 큰 다행이 또 있겠어?
[페이지] 041
[1] (눈을 뜨며) 이봐, 3호. 결국 자네가 제일 복이 많구나.
[3] 그 반대일는지도 모르지.
[1] 어차피 순서는 시작했고 바꿀 수도 없는 것---.
[3] 지금 땅위엔 어떤 날씨일까?
[1] 맑다면?
[3] 아늑한 봄날씨일꺼야. 튕마루에서 암쾡이가 졸고 있는---.
[2] 천만에, 틀림없이 흐려. 지금 내 무릎뼈가 새큰새큰 쑤시고 있거든.
[3] (하늘을 볼 수 없는 환기창이 무척 아쉽다.)---실컷 마셔보고 죽고 싶어.
[2] 사형수에겐 술값 안 받는다든가?
[3] 파아란 하늘을 말야!
[2] 난 또 아가씨 엉덩이 두들겨 가며 한잔 하고프단줄 알았지.
[1] 자넨 아직 체념이란 걸 못 얻었구만.
[2] (허탈하게) 체념에도 순서가 있잖을까?
[1] 저 시계소리에게 물어봐. 초조에는 질서가 없어. 순서도 없이 숨이 막히도록 다가오기만
하거든.
(기분 언짢은 시계소리)
[2] ---
[1] 사각, 사각, 사각---. 생명을 깎아 먹어들어가는 소리 같잖아?
[3] 꼭 죽음의 사신이 다가오는 발소리 같단말야.
[1] 저 끔찍한 소리만 아니라도 좀 길게 어머니를 만나뵐 수 있었을 텐데---.
[3] 또 어머니 꿈 꾸었나?
[1] 새벽 꿈이라 좀 뒤숭숭해.
[2] (시계소리가 지겨운듯 귀를 막으며) 에이, 소름끼쳐.
[1] 미워해선 안돼. 소위 찬란하다는 우리의 역사도 저처럼 작은 순간들이 쌓여 이루어졌거
든.
[3] (퉁명스럽게) 역사는 우리를 배반했어.
[1] 우리가 역사를 배반한 건 아니었을까?
[3] 맹종하기엔 너무나 서글픈 역사였어.
[1] 역사 속엔 비극도 희극도 없겠지. 담담한 관조만이 있을 따름이니까.
[3] 하지만 관조만 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죄가 아니었을까?
[1] 결국 배반이겠지.
[3] 배반이 아니라 선각자의 거룩한 의지였어.
[1] 거창한 의미는 필요없네. 내 경운 단순한 감성의 유혹이었으니까---. 끝내 그것이 죽음
을 불러 왔지만---.
[간수] (벌떡 일어나 갑자기 크게) 야, 이놈들아! 일어났음 침구 정리해야 할 게 아냐!
[2] 어이, 그 말버릇 못 고치면 지옥 가서 나하고 만날 때 후회할 걸?
[간수] 미안하지만 난 천당간다. 이 악마의 후배야.
[2] 천당 파견나가, 입구 검문을 내가 맡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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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수] ---! (방망이를 던진다. 창살에 부딪쳐 소리를 낸다.)
[2] 어허, 그래서 죽을수 있을까?
[간수] 내가 안 죽이더라도 사형대가 기다리고 있으니 염려마라.
[2] 뭐야! (철창만 없으면---.)
[1] 이봐, 날 때부터 사형수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단지 집행유예 기간이 짧고 길 따름
이지.
[간수] 그래, 난 집행유예 기간이 백년이라 나중에 가마.
[3] 백년 징역보단 차라리 사형이 낫겠지.
[간수] 오냐, 좋을대로 먼저들 가라. 난 백년 징역 실컷 즐기다가 뒷차로 가마.
[2] 어이, 넌 뱃속에서 나올 때 웃으며 만세 불렀니? 그 좋은 징역살이라면 왜 나오는 애마
다 모두 우냐?
[간수] 야, 이 악마의 수제자들아! 아직 이 세상엔 남겨두고 가기엔 아까운 것이 있다. 보들
보들한 그---하하하 사형대에서 눈을 감고 그 감칠 맛을 되새겨 봐라. 못내 서러울
게다. 하하---.
[2] ---! (베개를 집어던지지만 철창에 부딪쳐 내릴뿐.)
[1] ---관두게.
[3] 죽을 사람 약 올리고 천당 갈 줄 아나? 이 멍청한 작자야.
[간수] 그럼 너 같은 예수쟁이만 갈 줄 알았니?
[2] 천당에선 보결생 안뽑는다.
[간수] 모르는 소릴, 내년부턴 거기서두 추천제라더라.
[2] 네 제비는 이미 지옥으로 뽑혔다고 하나님이 전화했어.
[간수] 허허, 옛날 얘길, 조금 전에 번의한다고 지급전보했던 걸.
[2] (분에 못이겨) 너, 내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죽어!
[간수] 히히히, 토정비결엔 나보다 네가 먼저 죽게 돼 있어.
[2] (철창을 흔들며) 두고 보자. 네 바지를 벗기구 그냥---.
[간수] 히히, 웃기지 좀 마라. 우리 색시 들으면 네 팔목 부러진다. 내 물건은 이미 님자가
있거든, 히히(약을 올리며), 너희들 써먹지도 못할 고추하곤 다르단 말씀야. (테이블에 발을
올려놓고 보란 듯 담배를 피운다.)
[2] 으이그. (이를 악물며 철창에 머리를 박는다.)
[3] ---참게, 참아.
[1] 장가 한번 못 가보고 눈감기가 서럽긴 하지.
[2] 여자 얘긴 치워.
[1] 나를 고대로 닮은 놈을 낳고 싶었지. 그래서 저 먼 남양에서 키워주고 싶었어. '타이티'
나 '발리하이'같이 치고 받을 필요 없는 섬나라에서---.
[3] 건 안돼.
[1] 어째서?
[3] 숙명일세.
[1] 숙명?
[3] 끼어든 탓이지.
[1] 끼어들어?
[1]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보니 어느샌가 대열 속에 끼어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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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가 이끄는 대열인데?
[3] 누구래도 좋아. 어쨌든 숙명적인 역사의 물결이었을거야.
[2] 골치 아픈 소리 관두라구. 그런 이론하곤 거리가 먼 내야. 단지 난 발광이 나 살인을 저
질렀을 뿐이니까.
[3] 발광의 의미가 문제겠지.
[2] 의미 같은 건 없어. ---그냥 여자가 원망스러웠고 그래서---.
[3] 그래서---?
[2] 반항을 않더군. 무엇을 기다리듯 조용히 감은 눈에선 찝찔한 소금물이 흘러내리고---.
[3] 왜 원망스러웠을까?
[2] 그건---.
[3] 그건?
[2] ---.
[3] 알고보니 놀랍게도 어떤 어떤 짓을 하는 여자였더라고 왜 밝히질 못하지?
[2] ---.
[3] 그것 때문인가?
[2] ---?!
[3] 치욕스럽게도 그런 짓을 하는 여자가 바로 너의---.
[2] 시끄러!
[3] 네가 정작 원망해야 할 상대는 따로 있었어.
[2] 자네같은 예수쟁이가 뭘 안다고.
[3] 짐작도 아는 것의 일부니까.
[2] ---
[1] 아픈 상처를 긁어대는게 아냐.
[3] 정작 자네가 원망해야 할 것들을 떠올려봐.
[2] 닥치란 말야! (3을 때린다.)
[3] (쓰러진다)
[1] 2호!
[2] ---미안하네, 3호.
[3] (천천히 일어나 앉으며) 더 때리게. 실컷 짓밟아. 그리고 한숨을 크게 한번 쉬어봐.
[2] (3에게) 이럴 셈이 아니었는데---(찢어진 입술의 피를 닦아준다.)
[3] (묘한 미소를 띄우며) 자네 역시 발작한 역사의 한 희생물이었어.
(노크 소리)
[간수] (열쇠를 꺼내들고 층계로 올라가)
누구냐?
[소리] 당번입니다.
[간수] 용무는?
[소리] 식사 배달.
[간수] (철문을 연다.) 왜 이렇게 늦장을 부려?
[당번] (식사를 들고 등장. 층계를 내려오며) 새벽에 비상 걸렸던 거 몰라요?
[간수] 비상?
[당번] 취사반까지 출동해서 식사가 늦었읍니다.
[간수] 한마리 날랐던 게로구나?
[당번] 5원짜리 하나가 탈옥했죠.
[간수] 아, 잠결에 들은 총소리가 바로---.
[당번] (끄덕이고) 시체를 보니 엉망이더군요. 머리가 빠스러져 눈알이---.
[간수] (제 자리로 돌아와) 야, 밥맛 떨어지겠다.
[당번] 언젠 뭐 맛보고 드시는 여물입니까?
[간수] 오늘도 멸치 목욕물이냐?
[당번] (테이블 위에 식사를 놓으며) 황우도강탕입니다.
[간수] 허어, 도살장 가던 소가 실족했나?
[당번] 어제 저녁 취사반장이 백정 딸을 살살 쓰다듬은 모양입니다. 히히히---.
[간수] (철창을 가리키며) 저 우리 속에도 멕이를 던져줘라.
[당번] (철창으로 가) 자, 식구통 여쇼, 여물 들어갑니다.
[1] (식기를 받아들이며) 아니, 왜 한 그릇은 하얀가?
[당번] 1호 식삽니다.
[1] 뭐, 내꺼?
[당번] 1호 주라던데요?
[1] 누가 면회왔나?
[당번] 면회?
[1] 사입해 줄 만한 사람이 없는데---? 더구나 이렇게 일찌기---.
[당번] 소장님 특별 지시래요.
[1] 특별?
[당번] 어서 받아 놓으쇼.
[1] 싫다.
[당번] 뭐라구요?
[1] 기분 나쁘단 말야.
[당번] 특식 싫단 사람 첨 봤네.
[1] 여기 두 사람은 빼놓고 왜 나만 유독 흰 쌀밥이냔 말야!
[당번] 특별 대우면 감사나 할 것이지.
[1] 감사는, 이---. 왜 하필 갑자기 선심이란 말야. 오늘 집행시키겠단 뜻인가?
[당번] 그게 아니란 말야.
[2] 그게 아니긴! 우리두 이 밥 안 먹겠다.
[당번] 나, 원 참---.
[2] 다른 깜자들은 모두 4등 여물인데 왜 하필 우리만 3등이냐?
[당번] 밥 더 주는데 싫단 말요?
[2] 일찍 죽을 놈들이니까 더 처먹으란 말밖에 더 되니?
[당번] 싫으면 관 둬. 원, 더러워서---.
[2] 뭐야!
[당번] 죽을 종자들이 웬 말이 많아? 멕이를 주면 곱게 받아 쌕이기나 할게지.
[2] 이놈! (국그릇을 집어 던진다.)
[간수] (국물이 튀었다.) 야, 이것들이.
(험상궂게 일어선다.)
[2] 이봐, 저놈 약올리는 거 그냥 보고 있어?
[간수] (당번에게) 야, 너 일루와. 너 일원짜리가 왜 감히 사형수에게 기어오르니?
[당번] 그게 아니라---.
[간수] (때리며) 임마! (발로 차고) 벽 타!
[당번] (거꾸로 서서 벽에 몸을 밀착시킨다. 얼굴이 벌겋게 충혈되며 고꾸라진다.)
[간수] (옆구리를 차며) 똑바로 해!
[당번] (다시 벽타기 한다. 손이 파들파들 떨린다.)
[간수] 또 쓰러지면 다리몽뎅이 뿌러질 줄 알어.
[3] 어이, 그만해 둬. 죽을 녀석들이 분풀인 하면 뭘 해?
[1] (귀를 기울이며) 하, 하나님께서 강림하신다.
[페이지] 045
[2]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3] 구내 매점은 원래 일찍 문을 연다구.
[1] 오늘 팔 커피 끓일 물을 길러오는 거겠지?
[2] 아냐, 목욕물일 꺼야.
[3] 야, 들린다!
(다가오는 발소리)
[1] (숨을 죽이고 기구라도 드리듯 환기창을 향해 두 손을 모은다.)
[2] (긴장하며 침을 삼킨다.)
[3] (무릎을 꿇고 환기창을 올려본다. 점점 커지는 발소리. 드디어 환기창에 나타나는 두 다 리. 여자-)
[1] 아-(신음을 하며 벽을 짚는다.)
[2] (몸을 뒤튼다.)
[3] (글썽해져 두손을 모은다.)---성총을 가득히 입으신 마리아여, 네게 하례하나이다. 주 너
와 한 가지로 계시니 너 총복을 받으시며, 네 복중에 나신 예수 또한 총복을 받아 계시
오이다---. (쏟아지는 물소리. 물질을 하는지 두 다리가 율동을 한다.)
[2] 휴-.
[3] (한숨처럼)---천주의 성모 마리아는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
서 아멘-.
[1] (낮게) 어머니---(끝이 떨린다.)
[당번] (곧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2] 야, 조용해!
[당번] (간수에게) 좀 봐주쇼.
[간수] 저 악다구리들에게 사과해.
(제 자리로)
(물소리 그치고 두 다리 사라진다.)
[3] (울먹이며) 갔구나-!
[1] 하나님은 원래 우리에게 인색했어. 다리만 보이니 더 미치겠단 말야.
[2] 그 두 다리가 (손짓하며) 요렇게---.
[1] 머리가 무척 아름다울거야. 긴 머리칼 나플나플 어깨를 스치는---.
[2] 얼굴이 더 예쁠걸. 불그레한 뺨에 조금마한 점 하나가 찍혀있구.
[3] 하필 점은 또 왜?
[2] 그래야 더 귀엽거든.
[1] 아냐, 머리카락이 길어야 돼. 그래서 머리 감을 때면 치렁치렁 주체하기 힘드는---.
[3] 옳거니, 우리의 여신은 머리카락이 길어 아름답구 뺨에 점이 있어 더 귀여워. 암 옳구말
구.
[1] 내일도 볼 수 있을까?
[3] 매일 이맘 때면 오는데 뭐.
[1] ---(벽에 손톱으로 흔적을 판다.)
[2] 몇 개째지?
[1] 몇 개를 더 팔 수 있느냐가 문제겠지.
[당번] (철창으로로와) 사형수 형들, 용서해 주.
[1] 용서는 이미 했다.
[3] 하나님께서도 그러길 바라시더라.
[2] 너두 빨리 나가 이런 곳엔 아예 또 들어오지 마라.
[당번] 사실은 오늘이 1호형 생일이라고 소장님이 특식을 하사한 겁니다.
[1] 뭐, 내 생일?
[2] 거 정말이냐?
[3] 1호, 축하하네.
[1] 자넨 자신의 생일을 축하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자신할 수 있나?
[3] 심각한 얘기야?
[1] 아닐 수도 있지.
[2] 파티를 열자.
[1] 파티?
[2] 생일을 즐겨야지?
[1] 즐거울까?
[3] 구태여 슬퍼할 필요는 없겠지.
[1] 어머니 뱃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3] 일종의 '홈 씨크'인가?
[1] 따뜻한 체온이 몸을 감싸주는 아늑한 둥우리---. 자네 말처럼 그 곳은 나의 영원한
고향이었는지도 모른다.
[3] 고향은 누구나 버리기 마련이야.
[1] 후회되지 않나?
[3] 후회랄 것도 없지. 고향은 우릴 추방했으니까.
[1] 추방이었을까?
[3] 스스로는 더욱 아니잖아?
[2] (식기들을 당번에게 내주며) 밥은 어차피 안먹을거니까 가져가.
[당번] 굶을 셈예요?
[2] 근무자한테 예기해서 내 영치금으로---.
[당번] 빵으로 배가 찰까요?
[2] 빵이 아냐.
[당번] 매점엔 빵밖에 먹을 게 없는데요.
[2] 커피 석 잔만 시켜 달라고 해.
[당번] 커피?
[간수] 잘 논다. 토끼장이 너희집 안방인 줄 아니?
[2] 귀빠진 날이래잖아?
[3] 계란도 곁들여서 모닝 커피로---.
[2] 하나님이 주시는 하사품으로 파티를 여는 거야.
[당번] (갸우뚱하며 식기들을 정리한다.)
[1] 어쩐지 오늘 새벽꿈에 어머니가 뵈더라니---.
[3] 어머니가 퍽 늙으셨던?
[1] 생일이라서 그랬던가봐. 어머니가 내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상위에 촛불을 켜놓질 않겠
어?
[2] (낮게) 뭐라구?
[1] 어머닌 아무말 없이 음식을 권하는데 난 도대체 몸을 꼼짝할 수도 없구,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못했단 말야.
[3] ---! (뭔가 집히는듯 불길하게 2와 마주 본다.)
[1] 왜들 그러지?
[2] (당황히) 아냐.
[3] 생일이라서 그런 꿈을 꾸었을 거야.
[당번] 저, 형들에게 아양떠는 뜻으로 이거 드릴께요. (품속에서 여자 속옷을 꺼내준다.)
[2] (눈이 둥그래져 받으며) 야, 너 이 보물 어디서 났니?
[당번] 헤헤, 어제 사역 나갔다가 구내 매점 뒷담에서 훔쳐왔죠.
[2] 뭐?
[3] 아니, 그럼---?
[1] 그리고 보니 바이블이었구나?
[페이지] 047
[3] 바이블치곤 참 귀여운데?
[2] (뺨에 부비며) 야, 고맙다, 고마워.
[당번] 헤헤, 그럼 형들, 나 벼르는거 아니겠죠?
[2] 오냐.
[당번] 헤헤, 나 그럼 이젠 안심했수.
(식기를 들고 층계 위로)
[간수] (철문을 열어준다.)
[당번] (퇴장)
[간수] (철문을 닫아건다.)
[3] (철문 닫히는 소리가 신경쓰이는 듯 층계 쪽을 노려 본다. 하염없는 원망같은 것이 서렸
다.)
[1] 바이블 얻은 기념으로 강아지 한마리 굽는 게 어때?
[2] 개꾼이 있어야지?
[1] 나한테 한 마리 있어. (엉거주춤 엉덩이를 뒤로 빼고 바지속에서 작은 봉지를 꺼낸다.)
비록 황구지만 맛은 꿀일 걸세. (비닐봉지를 열고 꽁초 하나를 꺼낸다.)
[3] 머리는 여기 있네. (양말을 벗고 발가락사이에서 성냥알 한개를 집어낸다.)
[1] (2에게) 장판은 자네한테 있지?
[2] ---(꽃 향기라도 맡듯 눈을 지긋이 감은채 속옷을 깊숙히 품었다.)
[1] 장판 꺼내란 말야.
[2] ---응?
[1] 장판 어디 뒀지?
[2] 뼁키통 밑에 숨겨 뒀어.
[1] (변기통 밑에서 성냥갑의 마찰부분 한 조각을 집어낸다.) 세파트 뭐하지?
[2] (식사 중인 간수 쪽을 넘겨보며) 여물 쑤셔 넣고 있어.
[3] 난 비행기나 띄울게. (저고리를 벗어 허공에 빙빙 휘둘러 젓는다. 연기를 없애기 위해서
다.)
[1] (꽁초를 붙여 문다. 한번 들여 마시곤 비틀비틀 벽에 부딪친다.) 핑도는데?
[3] 너무 오랜만에 구어서 그래.
[1] 황구 파묻었더니 진도개가 된 모양인가?
[2] 임무 교대. (꽁초를 받아든다.)
[1] (3대신 비행기를 띄운다.)
[2] (역시 비틀비틀 벽을 짚는다.)
[간수] 야, 웬 개장국 냄새냐?
[2] (급히 변기통속에 꽁초를 버린다.)
[1] (태연한척 시치미를 뗀다.)
[간수] (다가와) 요런, 강아지 궜구나?
[1] (과장해서) 원, 천만에---.
[간수] 야, 이 놈들아! 규정 위반하고 오리발만 내밀면 그만인 줄 아니?
[2] 닭털 찾아보슈.
[간수] 좋아. 특감이다. (철 창문을 연다. 들어가 조사할 셈이다.)
[2] (속옷을 품속에 넣으며 씩 웃는다.)
[간수] (들어와) 손 올려!
[1,3] (손을 올린다.)
[간수] 뒤로 돌앗!
[1,3] (뒤로 돈다.)
[간수] 벽 짚엇!
[1,3] (몸이 꼿꼿이 45'를 이루게 벽을 짚는다.)
[간수] (2에게) 넌 왜 안해?
[2] (싱글 싱글대며) 잘 들어오셨다구.
[간수] 뭐?
[2] (재빨리 문을 잠근다.) 내 요런 기회가 올 줄 알고 기다렸다고.
[1,3] (돌아서 간수를 둘러싼다.)
[간수] 아니, 이것들이---.
[2] 염라대왕을 대신해서 환영해용---.
[간수] (뒷걸음치며) 야, 너 미쳤니?
[2] 야, 뭐, 백년 징역 즐길테니 앞차로 가라고?
[간수] (피할 길이 없다.) 어, 어, 이게 돌았나?
[2] (턱을 후려치고) 네 주둥아리가 돌았다.
[간수] (턱을 쥐고 쓰러진다.) 수감자가 근무자를 쳤지?
[2] 발로 차기도 했다. (옆구리를 찬다.)
[간수] (비명을 지른다.)
[3] 이젠 그만 해 두지.
[2] 아냐, 그런 놈은 그냥---. (꼼짝 못하게 붙들고 바지를 벗긴다.)
[간수] (발버둥치며) 배운 사람들이 이럴 수 있니?
[2] 배웠으니까 널 미워할 줄도 안다. 이 못난 놈! 그래 뭘 못해먹어 침략자 놈들의 손가락
발가락이 돼 극성을 떠니? (팬티를 벗길 참이다.)
[간수] 아-(발악하지만 꼼짝할 수가 없다.)
(노크소리)
[3] 누가 왔나봐.
[2]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노크소리)
[1] 놔줘야겠어.
[2] (일어난다.)
[간수] (급히 일어나 옷을 입고 철창문을 열어 도망치듯 나간다. 자물쇠를 건다.)
[2] (간수에게) 떠들면 네 망신이야?
[간수] (급히 층계로 올라가 철문을 연다.)
[당번] (등장. 커피잔들이 얹힌 쟁반을 들었다.)
[간수] 뭐야?
[당번] 커핍니다.
[간수] (철창쪽을 노려보며) 다 마신 담에 보자.
[2] (킬킬 웃는다.)
[당번] (쟁반을 내밀며) 계란은 어제 떨어졌대요.
[2] (받아들이며) 야, 하나님 하사품이다.
[당번] (간수에게 가서 옷을 털어 주고 구두를 닦아 준다.)
[3] 우선 바이블을 받쳐들구 기구 먼저 드리지.
[2] (품속에서 속옷을 꺼내 철창에 높직히 모셔 건다.) 자, 여기, 하나님이 굽어보신다. 감사
의 기구 드려라.
[3] (속옷 아래 무릎을 꿇어 성호를 긋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신자여, 네 이름의 거룩
하심이 나타나며, 네 나라에 임하시며 네 거룩하신 뜻이 하늘에서 이룸같이, 땅에서
또한 이루어지이다.
[1,2] (3에 따라 이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 죄를 면하여 주심을 우
리가 우리에게 득죄한 자를 면하여 줌과 같이 하시고, 우리를 유감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또한 우리를 흉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2] 자, 이젠 마시자.
[3] (잔을 들고) 술 아니라서 안됐는데---.
[2] 특주 한잔씩 든다고 생각하구 마시자구.
[3] 자, 귀빠진 날을 위해.
[1] 잠깐.
[2] ---?
[1] (철창에 걸린 속옷을 가리키며) 이왕 거룩한 여신 앞에 무릎을 꿇은 기회에 우리의 재판
을 상소하자.
[3] 재판?
[1] 인간들의 법은 이미 재판을 끝냈지만 우리의 귀여운 여신에게 재심은 청구하자구.
[2] 하늘의 법은 우릴 칭찬할까?
[1] 훈장은 몰라도 이해는 있을 걸세.
[3] 좋아, (1에게) 자넨 검찰관해. 난 변호사다.
[1] (속옷 앞에서 엄숙히) 어흠, 피고 들으라.
[2] (무릎을 꿇는다.)
[1] 너는 네 죄를 알렸다.?
[2] (고개를 들며) 낮술에 눈이 뒤집혀 여자를 죽인 죄인 줄로 아뢰오.
[1] (준엄히) 네 이놈, 젊은 놈이 대낮부터 술 퍼먹는 것도 떳떳치 못한 일이거늘, 항차 여자
를 목눌러 죽여?
[2] 취중의 과실인 줄로 아뢰오.
[1] 네 놈의 주법엔 발광하고 살인하란 조목도 있다더냐!
[2] 죽어 마땅한 줄로 아뢰오.
[당번] (구두를 닦으며) 히히히---.
[간수] 뭘 웃어.
[당번] 염라대왕앞에서 받을 재판 미리 연습하는 모양이죠?
[1] (속옷을 향해) 오, 현명한 재판장이신 여신이여, 저 자의 죄는 마땅히 두 손목을 꺾어 죽
은이의 무덤 앞에 바쳐 사죄시킴이 가할 줄로 아뢰오.
[2] (조아리며) 지당하신 말씀이오이다.
[3] 가만있어. 변호사가 변론해야지.
[1] 피고인 착석하시오.
[2] (다시 꿇어 앉는다.)
[간수] 잘들 논다.
[3] 피고인이 고아원에서 자라게 된 동기는?
[2] 학살당하셨읍니다. 부모님께서.
[3] 왜?
[2] 반역의 무리라고---.
[3] 반역?
[2] 예.
[3] 어느 쪽 반역?
[2] 반역자의 반역자를 반역자측에서 볼 땐 반역일 수밖에 없지 않겠읍니까?
[1] 본 법정만은 반역자들의 악법이 넘보지 못하니 피고인은 변죽을 울리지 말고 이실지고
하렷다.
[2] 예.
[3] 여동생이 있었다던데?
[페이지] 050
[2] 그 난리통에 헤어졌읍니다.
[3] 얼굴을 기억하는가?
[2] 물론이죠. 무척 사랑스런 얼굴이었읍니다. 특히 뺨에 조그만 점 하나가 무척 귀여웠고
---.
[3] (속옷을 향해) 현명한 재판장이신 여신이여, 굽어 살피소서. 본 변론인이 알기엔 피고인
이 숨지게 한 여자의 뺨엔 분명히 점 하나가 있었다 하옵니다.
[2] (벌떡 일어선다.)
[3] 오랜 헤어짐 끝에 만난 동생이 짐승같은 놈들의 노리개가 되어 있을 때,
[2] 이봐!
[3] 더우기 부모를 학살한 원수 놈들의 치욕스런 끄나불이 되어 있을 때---.
[2] 닥치지 못해!
[1] 피고인 정숙하시오.
[2] (속옷을 우러러보며) 오, 여신이여, 본 피고인은 죄를 깊이 뉘우치고 당신께서 내리신 사
약을 기꺼이 마시겠나이다. (커피잔을 높이 쳐들었다 마신다.)
[모두들] (웃는다)
[간수] 야, 시끄러! 너희들 정말 눈알 나오게 벽타길 해야 알겠어?
[2] 잔소리 말구, 오줌구멍이나 막는 게 어때?
[간수] (바지를 내려다본다. 열어진 단추를 멋적게 닫는다.)
[당번] 히히히---.
[간수] 웃지마!
[1] 하하하---.
[2] (3에게) 피고인, 증언대 앞으로.
[3] (속옷을 향해 꿇어 앉는다.)
[2] 피고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있는가?
[3] 검찰관님, 본 피고인은 우선 제죄가 뉘우칠 성질의 것인가부터 알고 싶습니다.
[2] 적전의 범죄는 가중된다는 걸 잘 알텐데?
[3] 살인하지 못했다는 것도 죄가 됩니까?
[2] 죽여야 할 사람을 안 죽였을 때도 죄가 된다.
[3] 살인은 더욱 큰 죄일 겝니다.
[2] 살인이 아니라 의무야.
[3] 하늘의 법은 그런 의무를 부여하지 않았읍니다.
[2] 너는 치안대원의 신분을 망각했는가?
[3] 또한 한 종교인의 신분이었읍니다.
[2] 종교 역시 역사의 흐름을 무시할 순 없어.
[3] 그 따위 역사란 마땅히 무시당해야 할 겝니다.
[2] 네, 이놈. 개전의 빛이 전혀 없구나!
[간수] 야, 정말 조용히 못하겠어?
[1] 당시 피고인의 지위는?
[3] 초소장이었읍니다.
[2] 철야 근무 중이었다는데?
[3] 비상사태이어서 며칠밤을 새웠읍니다.
[1] 심신이 무척 피로해 있었겠군?
[3] 게속되는 긴장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읍니다.
[1] 환각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나?
[페이지] 051
[3] 환각이라기보다 깊은 회의에 빠져 있었읍니다.
[1] 어떤?
[3] 내 총이 겨누고 있는 저 친구가 과연 나의 적일까? 저자를 쏜다면 살인이 아닐까---.
[2] 잠깐, 당시는 밝은 달밤이었다는데?
[3] 네, 기어오는 그 친구의 얼굴이 똑똑히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무척 애띤 예쁜 얼굴이었
읍니다.
[2] 그렇다면, 피고인은 당시 그자가 불순 집단의 잔당임을 확인하고 있었다는 결론이 아닌
가?
[3] 하지만 녀석을 겨눈 가늠쇠 구멍에선 갑자기 뿌연 안개가 끼었고 어렴풋이 나타나고 있
는 것은 어린 동생의 얼굴이었읍니다.
[1] 동생?
[3] 이마에,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이 선뜻하게 느껴지며 저는 어느샌가 못난 형이 되어 있었
읍니다. 짐승보다 못한 침략자놈들에게 빌붙어 먹이를 얻어 먹는 지지리도 못난
형이---.
[2] 무슨 궤변을 늘어놓는가?
[1] 결국 환각을 느꼈던 게 아니오?
[3] 방아쇠에 걸린 제 손가락은 까닭없이 떨렸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 친구는 사라진
뒤였읍니다.
[2] 마땅히 쏘아야 했을 반역의 파괴분자를 통과시켜 준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 파괴와 살상
을 가져올 것인가를 당시 느끼고 있었나?
[1] 아니, 먼저 명확히 해야할 것은, 안 죽인것인지, 못 죽인것인지---?
[3] ---둘 다 아닐 겝니다.
[1] 아니라면?
[3] 당시 본 피고인의 머리는 황야를 헤매고 있었읍니다.
[1] 황야?
[3] 승냥이들의 울음소리가 너울너울 손짓하는 태초의 들을---.
[2] ---?
[3] 전 그 때 다가오는 그 어린 승냥이에게 짙은 냄새를 맡았던 것입니다.
[2] 냄새?
[3] 아, 너는 나와 같은 살냄새를 갖고 있었구나! 아아, 나는 옛부터 너와 같은 냄새를 지닌
한 마리의 들짐승이었구나!
[1] ---!
[3] 흥, 담밑에 웅크리고 먹이를 받아먹던 충견이 비로소 목에 걸린 쇠사슬을 서늘하게 느끼
기 시작했던 거죠. 그리고 무리, 무리라는 것을---.
[2] 그따위 유치한 눌변으로 피고는 본 법정을 우롱할 셈인가?
[간수] 엇쭈? 지랄두 여러 가지군.
[1] (속옷을 향해) 여신이여! 여기 드디어 제 무리를 찾은 한 마리의 착한 들짐승이 있나이
다. 너그러운 이해와 아량을 베풀어 피고인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당번] 옳거니! 히히---.
[간수] 넌, 구두나 빨리 닦아!
[페이지] 052
[3] (커피 잔을 쳐들며) 오오, 여신이여, 현명하신 판결을 감사하나이다.
[모두들] (웃는다.)
[간수] 시끄러! 이 악만 남은 독종들아!
[1] 쉿, 강림이다.
(발소리)
[3] (귀를 기울이며) 오늘은 웬일로 두 번씩이나---.
[2] (환기창쪽으로 가며) 이번엔 진짜 목욕물일꺼다.
[1] 자넨 그저---.
[2] (몸을 비비 꼬며) 어휴, 그---.
[3] 조용해!
(점점 커지는 발소리)
[1] 우리들이 자기 속옷을 가지고 있는 걸 모르겠지?
[2] 어쩜 속옷을 안 입었을지도 모르잖아?
[3] 설마 속옷이 하나 뿐일라고?
[2] 내기하자. 난, 분명히 속옷을 안 입었을거라 믿어.
[1] 물어볼 수도 없는데 어떻게 내기를 하지?
[2] 보일지도 몰라. (환기창쪽으로 바짝 다가간다.)
[3] 아니, 저런 사람 봤나---.
(환기창에 나타나는 것-무지스런 남자의 두다리가 궁상 맞다.)
[1] 아니, 저건---.
[2] 퉤, 퉤, (침을 뱉으며) 에이, 재수 옴 붙었다.
[3] 어쩐지---.
(물소리)
[2] (베개를 던지며) 꺼져, 재수 없다.
[간수] 뭐라구?
[3] (간수에게) 자네보고 그런거 아닐세.
(물소리 그치고 다리 사라진다.)
[1] (철창에 걸린 속옷을 걷어 팔에 걸치며) 이것들봐, 나 이 여신한태 장가갈려네.
[2] 재판 안 하고?
[1] 아들을 낳아야겠어.
[3] 그래서 남양으로 간다?
[1] 우선 어머니에게 보여야지. 요녀석이 당신의 손자입니다 하고---, 무척 기뻐하실꺼야.
[2] (큰 기침) 어흠, 에---, 신랑, 신부 입장.
[1] (속옷을 걸친 손을 팔장을 낀듯 올리고 으젓이 발맞춰 걷는다.)
[3] 딴딴딴따, 딴딴딴따---(웨딩마치)
[2] 신랑은 신부를 사랑하는가?
[1] 네. (속옷에 키스한다.)
[2] (커피잔을높이 들었다 내밀어주며)
신랑, 신부는 이 합환주에 백년해로를 맹세하라.
[1] (잔을 받아들고) ---나를 닮은 예쁜 아들을 낳아 백년을 같이 키우겠읍니다. (마신다.)
[3] (박수한다.)
[페이지] 053
[간수] 야, 너희들 내 미소신경 건드렸어?
[당번] 히히, 그럼 내가 신부를 훔쳐다 바친 셈 아냐?
[2] 어머니께 폐백을 드려야지.
[1] 어디 계신지도 모르는걸.
[3] 몰라?
[2] 고향에 안---?
[1] (끄덕이고) 이미 죽음의 마을이지---.
[3] 태풍이 지나고 마을에 남은 건 폐허뿐이더라?
[1] 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어머니 머리 위에도 쏟아져 내렸지.
[2] 머리?
[1] 무척 아름다운 머리카락이었어. 그 긴 머리카락들이 길거리에 흩어졌지. 못된 놈의 에미
라고 그놈들이 끌어내다 칼로 박박 밀어 버렸던거야.
[2] 그놈들이라니?
[1] ---?
[2] 어느 쪽?
[1] 자네 말마따나 반역자의 반역자는 반역자의 못된 놈이요, 반역자는 반역자의 반역자의
쥑일 놈이 아닌가?
[2] 쥑일 놈들!
[1] 난, 난, 그 길거리에 흩어진 머리카락들을 몰래 줏어 모아 가슴에 품고 뒷산에 숨어서
밤새도록 울었지.
[2] 그때 돌아가셨어, 어머닌?
[1] ---살아 계실는지도 몰라.
[3] ---그러는지도 모르지---.
(의미있게 끝을 흐린다.)
[1] 그리고, 그리고 그날 새벽 난 그놈들의 소굴을 찾아가 불을 질러버렸지.
[3] ---.
[1] 허지만 그렇게 그렇게 엄청나게 커질줄은 몰랐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번] 그릇 내주쇼.
[2] (식구통으로 잔들을 내준다.) 오늘같은 날은 약주라도 한 사발하는 건데.
[3] (침착을 잃어가는 1을 안스럽게 응시한다.)
[2] (덤덤히 바라본다.)
[1] 나라, 겨레---. 도대체 뭘까? 그게-.
[3] ---!
[1] 애국, 애족---도대체, 도대체 그게---.
[3] 양심의 본능이지.
[1] 본능?
[3] 본능의 고집.
[1] 고집-.
[3] 아무도 못끄지. 그 불꽃은---.
[1] 과연 저 창살이 녹아내릴까? 그 불꽃에.
[3] 용기를 필요로 하는 양심이기도 하고.
[1] 용기?
[3] 거룩한.
[1] 사형대에게 물어 볼까?
[3] 이미 대답해주고 있어. 우리의 역사가.
[간수] 야, 일 끝났음 빨리 꺼져.
[당번] 녜, 녜. (쟁반을 간추려 든다.)
[1] 부탁이 있네.
[3] 무엇이든.
[1] 기도해 주겠나?
[페이지] 054
[3] 기도?
[1] 내가 끌려나갈 때.
[3] ---!
[1] 어차피 사내로 태어나 한 번 갈 길, 예쁜 뜻을 뿌려 주고 싶네. 용기있는 양심의 뜻을.
[3] (손을 잡는다.)
[1] 거룩한-.
[3] (손에 힘을 준다.)
[1]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 보겠네. 사형대 위에서.
[3] ---?
[1] 그 뜻의 필요성을---.
[3] ---!
(노크소리)
[간수] (층계 위로 올라가) 누구야?
[소리] 호송이다.
[간수] 용무는?
[소리] 열둘 넷 다섯, 구 하나 다섯, 호송,
[간수] ---! (철창 쪽을 돌아본다.)
[1] 무슨 소리냐?
[간수] (철문을 연다. 귀에 거슬리는 쇳소리---.)
[호송A,B] (등장)
[간수] (A에게 경례)
[A] (답례하고 천천히 층계를 내려온다.)
(시계소리 들리기 시작한다.)
[간수] (입을 꽉 다문 채 긴장한다.)
[A] (철창으로 가) 1호, 면회다.
[2] 면회?
[1] 누굴까?
[3] ---!
[간수] (열쇠로 철창문을 연다.)
[1] (나오며) 면회올 사람이 없는데?
[A] (B에게) 맹꽁이 연결쇠 결합.
[1] 다른 사람 찾아온 거 아니오?
[A] 예쁜 여자더라.
[1] 여자?
[간수] (외면하며) 머리가 긴 예쁜 여자래.
[B] (수갑을 꺼내 1의 손에 재빨리 채운다.)
[1] 아니, 왜 수갑을 채우죠? 면회왔다면서---.
[A] (시선을 피한다.)
[1] 아---! (알아차린다.)
[A] 때가 됐잖아? (힘들이 없다.)
[1] (핼쓱해지며 비틀비틀 철창에 기댄다.)
[3] (소리없이 뺨을 적신다.)
[2] (고개를 숙인다.)
[1] (허무러지듯 철창을 미끄러져 내려 바닥에 주저 앉는다. 망연히 천장을 본다.) 허허허
---
(허전한 웃음. 이미 제 정신이 아니다.)
[B] ---자, 일어서라.
[1] (갑자기 생각난 듯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한다.)
[A] 뭐 떨어뜨린 거 있나?
[1] (뭘 찾듯이 바닥을 유심히 보며 온통 기어다닌다.)
[B] 뭘 찾는거야?
[A] 잃어버린 거 있음 말해.
[1] (바닥에 뺨을 대고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한다.)
(시계소리)
[B] (끌어 일으키며) 자, 가자우.
[간수] (낮게) 1호---.(입이 씰룩인다.)
[페이지] 055
[당번] (겁에 질린 듯 웅크리고, 물기를 띄는 간수의 눈이 의외롭다.)
[1] 저, 아직 세수 안했는데?
[B] 뭐, 세수?
[1] 신부하구 키스하려면 양치질도 해야겠구---.
[A] 무슨 소리야?
[1] 아직 결혼식이 안 끝났단 말야.
[A] 결혼식?
[1] (2에게) 주례 양반, 이 얼굴로 괜찮겠어요?
[2] ---(끄덕인다.)
[1] 그럼 식을 끝내야죠?
[2] (속옷을 식구통으로 내준다.)
[1] (수갑찬 손에 걸쳐 받으며 3에게)
악사 양반, 웨딩 마치는 좀 슬로우로 해주시오.
[3] (끄덕인다.)
[1] (A,B에게) 들러리, 내 뒤를 따라야지?
[A,B] (어이없이 마주본다.)
[1] (속옷을 높이 받쳐들고 천천히 발맞추어 층계 위로 올라간다.)
[3] (떨리는 음성으로) 딴딴딴따, 딴딴딴따---.
[1] (천국으로 향하는 듯한 자세에 환한 미소가 넘친다.)
[2] (쿡 치미는 것이 있다.)---잘 가라!
(일행 퇴장하자 철문이 긴소리를 내며 아가리를 닫는다.)
[3] (입술을 깨물며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2] (철창을 짚은 채 고개를 떨어뜨린다.)
(암상을 떠는 시계소리-)
[3] (환기창을 우러러 두손을 모은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점점 시계 소리 고조될 때.)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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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관객들]_자료실
[희곡] 라마 사박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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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07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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