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원통골
김은미
학교에서 돌아오니 엄마가 없었다. 그날따라, 학교에서 일어난 들려드릴 이야깃거리가 많았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자 서글픔이 밀려왔다. 그 무렵 엄마는 땔감을 마련하느라 먼 곳에 있는 산에까지 가서 나무를 해왔다. 헛간에 나무 둥치가 전날 모습 그대로인 것이 아직 산에서 오지 않은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때까지도 점심을 굶고 산에서 나무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나는 작은방 두데 통(고구마 따위를 보관하기 위하여 만든 통)속에 있는 고구마를 꺼내어 부지런히 삶아 퍼런 배추김치 한 보시기와 함께 보자기에 쌌다. 마을을 지나 언덕이 시작되는 좁은 밭둑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의 뒷산 끝자락 골짜기에 ‘원통골’이 있다. 전날에도 그곳에서 캐왔다며 엄마는 단 칡을 잘라서 자식들에게 나눠 줬었다.
그날도 그곳에서 나무를 하고 있을 거라 믿고 무작정 찾아 나섰다. 내가 자란 안좌도의 원통골은 깊고 음산하여 애기 무덤이 많다는 자갈 골짜기를 지나야 한다. 칡넝쿨이 많고 으슥하여 남들이 가기를 꺼리는 곳이라서 무서웠을 텐데도 땔감이 많다며 그곳에서 나무를 해왔다. 그곳이 왜 ‘원통골’인지 궁금하여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도 시집온 이후 살게 된 마을이라서 모른다고 하시며 별 의미를 두려 하지 않았다. 동네 아이들은 옛날부터 아기가 죽으면 자갈이 많은 그곳 골짜기에 묻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피워보지 못한 어린 영혼들의 원통함이 묻혀있어 그런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마땅한 놀이터가 없던 어린 시절의 우리는 마을 뒷산이 놀이터였다. 명절이면 보자기에 각자 음식을 싸서 친구들과 산에 오를 때도 원통골 골짜기는 피해서 다녔다. 겁 많은 내가 그곳을 어떻게 찾아갔는지. 휘적휘적 겨울바람을 헤집고 산으로 접어드니 여기저기 숨어 있던 산새가 낯선 소리를 낼 때면 모골이 송연했다. 세찬 바람은 이따금 깊은 산을 휘저으며 회오리처럼 지나갔다. 긴장하며 걷던 내 발소리에 놀라 얼른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
어디쯤에서 나무를 하는지 엄마를 찾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걱정을 하며, 자갈이 많은 골짜기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엄마가 지나간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낫질 자국이 역력한 산은 잔디를 깎듯 단정하게 마른풀 밑동만 남아 있고 베어놓은 마른 잎들이 군데군데 놓여있었다. 나무를 해서 모아놓은 것이 엄마를 찾은 듯 반가웠다. 그때 산바람 소리에 묻혀 툭! 툭! 하며 나무 자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더니 이내 쓰윽 쓰윽 하며 갈퀴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기웃거리며 가는데 멀리서 희끗희끗 하얀 머릿수건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흥얼거리며 그곳에서 혼자 나무를 하고 있었다.
“엄마!”
나는 반가운 마음에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누가 거기까지 와서 “엄마!”하고 부르리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듯 깜짝 놀라는 얼굴로 “내 딸이 여기를 어떻게 찾아왔어?” 하시고는 들고 있던 갈퀴를 내던지고 얼른 내게로 달려왔다. 갑자기 산속은 낮달이 찾아온 듯 환한 빛이 감돌았다.
엄마는 머리에 쓰고 있는 마른 솔잎이 묻은 수건을 벗어 몸에 붙은 검불을 툭툭 털어 내고 고구마 한쪽을 잘라서 ‘고시래!’ 하고 던지고는 남은 고구마를 달게도 드셨다. 그 옆에서, 그날 학교에서 내가 발표를 잘해 칭찬받았더니 단짝인 경주가 다른 애들 모아 놓고 내 흉을 봤던 얘기를 종알종알 일러바쳤다. 경주가 다른 친구들과 놀다 가자는 걸 기분이 나빠 뿌리치고 발끝에 걸린 돌멩이를 차며 혼자서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낮은 산이 있는 논 옆길을 지날 때 내 머리 위를 서너 마리의 솔개가 빙빙 돌고 있었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에 앞뒤를 돌아보니 길에는 나 혼자였다. 금방이라도 나를 잡아채 갈 것 같은 공포감에 집을 향해 있는 힘껏 뛰었었다. 무서웠던 솔개 얘기를 했을 때 엄마는 “큰일 날 뻔했네! 내 새끼” 하며 나를 꼬옥 안아 주었다. 산속에서 우리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엄마는 낫질하고 나는 갈퀴로 마른 솔잎을 긁어모아 메꾸리(짚으로 짠 바구니)에 가득 담았다. 엄마를 도와 바닥에 두 줄을 깔고 그 위에 여기저기에 베어놓은 나무 덩이를 한 아름씩 차곡차곡 얹어 큰 다발인 나무 둥치를 만들었다. 커다란 나무 둥치를 나란히 머리에 이고 내려오다 사치도 앞바다가 노을빛에 붉게 타는 모습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노을빛은 우리가 서 있던 원통골이 있는 산까지 금방이라도 삼킬 것처럼 이글거렸다.
“엄마, 무서워!”
나는 공포감에 엄마 뒤로 바짝 다가갔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저녁노을이 참 아름답다고 하셨다. 그때는 내가 어렸고 처음 보는 노을이라는 자연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긴 했지만, 그런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엄마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건 경이롭고 아름다운 잔잔한 풍경의 노을이 아니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았던 그날의 바다는 시뻘겋게 불탔고 그 불은 주변을 한입에 삼킬 것만 같은 바다 불덩어리로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자리했다.
어른이 되어 그 광경을 다시 보고 싶을 때가 많았다. 고향에 가면 뭐가 그리 바쁜지 매번 다음을 기약하고는 아직도 산을 올라가 보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중턱에만 올라가도 목포 유달산이 보이는 안좌도 우리 마을 뒷산. 곳곳의 산세며 바위 형태를 제집처럼 훤하게 꿰뚫고, 가을이면 산 다래며 머루나무 위치를 알고 먼저 찾아가던 아이들. 나무 널빤지로 언덕진 마른 풀밭에서 썰매를 타고 눈이 쌓이면 그곳은 눈썰매장이던 곳. 나무를 하고 놀이를 하던 유년의 추억들이 쌓여있는 엄마 품속처럼 포근한 뒷산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유년의 그해 겨울, 엄마와 함께 나무 둥치를 이고 집으로 가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원통골의 음산함과 사치도 앞바다의 붉게 타는 바다는 어른이 된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자기 몸보다 더 큰 나무 둥치에 머리가 파묻힌 채, 힘겹게 나무를 이고 잰걸음으로 산에서 내려가던 엄마의 뒷모습이 아련한 아픔으로 남아 있는 건 지금의 내가 더 나이가 들어서일까.
김은미 수필가
2021년 수필 문예지 『한국산문』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회원
동인지 『목요일 오후』 공저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