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연인의 손이 되어주면
임성욱
(시인/사회복지학박사)
완벽한 인간은 없다. 미완성품이기에. 그래서 날마다 만나도 새로움이 피어나는지도 모른다. 여백의 미 때문이 아닐까. 오래전에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루브르 박물관에서 인간의 초라함을 강하게 느낀 적이 있다. 모래사막에서 발견되어 보관된 인간 미라[mirra]를 대했을 때 그랬다. 개구리가 자연에서 말라비틀어져 형성된 미라 같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외경심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모습을 다각적인 방향에서 조각해 회화와 같은 반열로 올린 사람이 또한 파리에 있었다. 바로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1.12.~1917.11.17. 프랑스)이다. 그는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7세 이후 에콜 데 보자르 입학시험에도 3차례나 낙방했다. 1862년에는 누이인 마리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수도사가 될 생각도 했다. 하지만 1864년 재봉사인 로즈 뵈레를 만나 일생을 같이했다. 그런데 정식 결혼은 1917년 2월 그녀가 죽기 몇 주 전에야 했다. 이렇게 된 데는 로댕의 유별난 여성 편력도 한몫 했다고 본다. 인생 초창기에는 천재성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 35세가 넘어서야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로댕이 생존한 시대의 평균수명은 매우 낮을 때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들자면 1950년~1955년의 평균수명이 48세 정도였다. 이를 로댕이 살던 시대의 평균수명으로 환산해보면 35세라는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로댕은 오랜 시일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함에도 열심히 노력했다. 그 노력은 로댕을 배신하지 않았다. 천재성이 발휘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연인의 손, 정복당한 자, 생각하는 사람, 청동시대, 칼레의 시민, 지옥문> 등 수많은 걸출한 조각품들을 창출해 냈다. 세상 사람들이 현대의 ‘미켈란젤로’라고까지 칭송할 정도로.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물론 등장했다. 그만큼 조각의 거장 또는 비범한 천재성의 화신으로 지금까지도 추앙받고 있다. 책 삽화, 동판화, 여인의 누드 드로잉도 많이 남겼다. 미술에도 심취했다. 문학적 자질도 풍부했다. 그래서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각 분야의 자질들이 상호 간에 시너지효과를 가져왔기에 작품들에 녹아있는 예술성이 더더욱 빛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연인의 손>에서 로댕의 또 다른 천재성이 드러난다. 마치 하늘을 향해 애절한 소원을 기원하는 듯한 손. 그리고 또 다른 손은 그러한 연인의 소원을 이뤄질 수 있도록 받쳐주는 듯하다. 그야말로 아무리 힘든 난관이 닥치더라도 서로가 노력하고 밀어주는 형상이다. 서로의 아름다운 영혼이 함께 어우러져서 그 어떤 난관도 극복해가자는 뜻이 아닐까. 요즘 세상이 참으로 힘들다고 한다. 그만큼 각자의 경제 사정이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풍요가 춤추는 세상에도 있었다.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때문에 조금만 욕심을 내려놓으면 평화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인간인 이상 욕심을 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가질 필요가 있을까. 고통은 연속적으로 또 다른 고통을 배태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영원불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때라고 생각할수록 상호 간에 로댕의 <연인의 손>이 되어주면 어떨까. 그러면 따뜻한 온기가 영혼을 감싸줄 것이고 이는 곧 당사자 모두를 안온하게 품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로댕도 혹한기를 잘 이겨냈기에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