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갈매기들이 달라졌어요
강용숙
바닷가 모래사장에 갈매기들이 힘없이 앉아 있었어요. 갈매기들은 원래 옹기종기 모여 있기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웬일인지 등을 보이고 멀찍멀찍 떨어져 있지 뭐예요? 들락거리는 파도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갈매기. 불안한 표정으로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갈매기도 있어요.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나 봐요.
뚱이가 징징거렸어요.
“엄마, 배고파. 밥 줘.”
엄마가 텅 빈 모래사장을 둘러보며 말했어요.
“나도 배고프다. 잠깐만 기다려 봐. 곧 먹을 게 올 거야.”
그 때 마이크에서 아저씨 말소리가 해변에 울려 퍼졌어요.
“알려드립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여러분들의 해변 입장을 금하고 있습니다. 저어기 모래사장에 들어가는 분들은 속히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거리두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해변에서 나와 주세요.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뚱이가 물었어요.
“엄마, 코로나 19가 뭐야? 아저씨가 왜 사람들을 해변에 못 들어오게 해?”
엄마가 우물쭈물 했어요.
“거시기 뭐냐. 코 뭐시기는~”
“엄만 그것도 못 외워? 아저씨가 어제도 막 소리쳤잖아? 코로나 19라고. ”
엄마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글 세...... 코로나는 사람들이 친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병인가 봐. 그러니까 자꾸만 거리두기인가 뭔가를 하라는 거지. 그래서 우리도 이렇게 떨어져 앉아 있는 거잖아?”
뚱이가 쫑알거렸어요.
“우린 사람이 아니잖아? 왜 우리까지 떨어져 있어야 해?”
엄마 갈매기가 퉁명스레 말했어요.
“모르는 소리! 우리도 사람이 주는 음식을 먹고 살잖아? 사람들한테 코 거시기가 옮을 수도 있다고. 사람들은 무서운 병이 많거든.”
“암튼 엄마, 얼른 밥이나 줘.”
엄마가 짜증을 냈어요.
“보채지 말고 기다려 봐. 사람들이 와야 뭘 먹지. 그렇게 북적대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코로나가 그렇게 무서운가? ”
“물고기 잡아다 주면 되잖아. 다른 엄마들은 물고기도 가져다주던데.”
“넌 그동안 빵이랑 과자만 먹여서 다른 거 먹으면 배탈 나요. 물고기보다 빵이랑 과자가 훨씬 달달해서 맛있잖아.”
나지막한 바위에 있던 갈매기 한 마리가 총. 총. 총. 걸어오더니 아는 척을 했어요.
“뚱이 엄마, 오랜만이야. 뚱이는 여전히 뚱뚱하네.”
엄마 갈매기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어요.
“얄순 엄마! 2 미터 떨어져. 아저씨 말도 못 들었어? 붙어 있으면 코로나 옮는다잖아? 우리 뚱이가 병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얄순 엄마가 코웃음을 쳤어요.
“유난 떨지 마. 갈매기는 코로나 같은 거 안 걸려. 근데 아직도 사람들 먹을 거 기다리고 있어? 사람들만 오면 미친 듯이 쫓아다니며 과자를 먹어대더니 어쩌냐? 과자 못 먹어서. 호호호.”
엄마 갈매기가 한 대 칠 기세로 달려들었어요.
“내가 언제 미친 듯이 쫓아 다녔어? 그러는 넌 과자 안 먹었어? 왜 시비야?”
“내 저번 일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려. 새우깡을 혼자 다 먹으려고 입에 물고 발로 감추고 난리였잖아? 내가 한 개 먹으려고 하니까 부리로 찍어서 머리에 피가 났었다고. 네가 욕심쟁이라는 건 이 해변에서 모르는 갈매기가 없지.”
엄마 갈매기가 버럭 소리쳤어요.
“그러게 힘을 좀 기르지 그랬어? 힘 있는 새가 잘 먹고 잘 사는 건 당연한 거야. 힘없는 것들은 늘 불평만 많더라.”
얄순 엄마가 우쭐대며 말했어요.
“내가 그래도 친구로 생각해서 알려주는데 사람들 과자는 우리 몸에 해로워. 공짜라면 독약이라도 먹을 거야? 이 기회에 신선한 물고기 먹고 너랑 뚱이 다이어트 좀 해 봐.”
엄마 갈매기가 입을 삐죽거렸어요.
“그래 너 잘 났다. 과자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니까 그런 소리 하지.”
뚱이가 울먹였어요.
“엄마, 싸움할 기운 있으면 얼른 먹을 거나 찾아 봐.”
엄마 갈매기는 하는 수 없이 물가로 나갔어요. 파도가 달려와 엄마 갈매기의 다리를 철썩 때렸어요. 엄마 갈매기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어요.
“어 맛! 무서워라. 물이 왜 이렇게 차갑지? 그런데 물고기를 어떻게 잡더라?”
용기가 나지 않아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데 얄순 엄마가 또 다가왔어요.
“물고기 잡는 거 잊어버렸지? 내가 가르쳐 줄까? 아니면 먹을 거 잡아다 줘? ”
엄마 갈매기가 입을 삐죽거렸어요.
“됐거든. 왜 자꾸 와서 귀찮게 하지? 참견 말고 너나 잘 먹고 살라고.”
얄순 엄마가 혀를 차며 돌아섰어요.
“배가 고파도 자존심은 챙기고 싶은 모양이네. 도와주려고 했더니 하는 수 없지.”
뚱이가 비실비실 엄마 곁에 왔어요.
“엄마, 얄순 아줌마에게 물고기 잡아 달라고 해. 응? 아무한테나 얻어먹고 배만 부르면 되잖아?”
엄마 갈매기가 고개를 흔들었어요,
“아니야. 한 때는 내가 물고기를 얼마나 잘 잡았는데. 조금만 기다려.”
바위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엄마 갈매기가 용기를 내어 날개를 폈어요. 너무 오랜만에 날다보니 몸이 무거워 물에 떨어질 것 같았어요.
‘에휴, 너무 살이 쪘나봐. 오, 저기 물고기가 보인다.’
엄마 갈매기가 바닷물을 향해 부리를 내리꽂았어요. 저런! 한 발 늦었네요. 엄마 갈매기는 다시 물속을 향하여 돌진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물고기가 더 날쌔게 도망을 쳐 버렸어요. 숨을 헉헉거리며 해변으로 나온 엄마 갈매기는 창피하고 속상했어요.
‘뭐가 잘못 됐지? 갈매기가 물고기를 못 잡는 것이 말이 돼? 옛날 민첩했던 나는 어디로 간 거야. 앞으로 나랑 뚱이는 어떻게 살아야하지? 그동안 내가 너무 사람들을 의지했나 봐. 바보같이.’
배고프다고 보채는 뚱이 목소리가 엄마 갈매기 귓가에 자꾸만 맴돌았어요. 뚱이를 위해 얼른 고기를 잡아야했죠. 엄마 갈매기는 크게 숨을 몰아쉬고는 물속으로 돌격했어요. 그때, 지나던 고래 한 마리가 놀라 멈추어 섰어요.
‘아니, 저 녀석이 겁도 없이 왜 내게 달려들지? 참 별일이군. 덕분에 저절로 간식을 먹겠구먼.’
고래는 엄마 갈매기가 바싹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코앞에 갈매기가 다가오자 고래는 입을 크게 벌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아얏!’ 비명을 지르며 입을 다물지 뭐예요. 고래는 불침을 맞는 것처럼 온몸이 따끔 거렸어요.
그 때 얄순 엄마 고함 소리가 들렸어요.
“뚱이야, 빨리 도망쳐. 빨리! 고래가 안보여?”
엄마 갈매기가 얄순 엄마 고함소리에 놀라 퍼뜩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무슨 상황인지 아직 눈치도 못 채고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위에는 수 십 마리의 갈매기들이 엄마 갈매기를 에워싸고 있었어요. 기진맥진한 엄마 갈매기는 해변에 쓰러지고 말았지요.
얄순 엄마가 말했어요.
“오랫동안 사냥을 안 하더니 감이 무뎌졌지? 주위를 살피고 물에 들어가야지 무조건 물고기만 보고 돌진하면 되냐? 옆에 고래가 널 먹으려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고. 왠지 불안해서 친구들과 따라와 봤더니 하마터면 고래 밥이 될 뻔했구먼. ”
엄마 갈매기는 부끄러웠어요. 고맙단 말을 해야 하는데 마음에도 없는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지 뭐예요.
“얄순 엄마! 왜 자꾸 나를 따라다니며 성가시게 하는 거야?”
얄순 엄마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엄마 갈매기를 쳐다보았어요. 그리곤 조그만 소리로 말했어요.
“난 네가 불쌍했어. 과자가 맛있긴 하지만 그건 우리를 병들게 하고 게으름뱅이로 만든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너를 위해 쓴 소리를 했는데 속상했다면 미안해. 좋은 건 함께 나누어야 하잖아.”
엄마 갈매기는 이상하게 눈물이 났어요. 이웃 갈매기들이 물고기를 잡아 뚱이네 앞에 내려놓았어요.
“뚱이야, 뚱이 엄마! 이거 먹고 힘내. 뚱이 너도 이제 고기 잡는 법을 배워야 해. 늘 엄마가 먹이를 줄 수는 없어.”
나이가 많은 갈매기가 말했어요.
“뚱이 엄마만 흉볼 일이 아니야. 우리 모두 그동안 사람들 주위를 맴돌며 과자 얻어먹는 즐거움에 빠졌었잖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지. 사람들은 코로나 19 때문에 손해가 많다지만 우리에게도 좋은걸 깨닫게 해줬어. 앞으로는 공짜 좋아하지 말고 바다로 나가야지. 갈매기답게.”
갈매기들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맞아. 그동안 고기 잡아먹는 즐거움을 잊어버렸어. 코로나 덕분에 우리가 철들었네.”
“그럼 나가 볼까? 저녁밥 준비하러.”
엄마 갈매기도 친구들의 뒤를 따라 힘껏 날아올랐어요. 뚱이가 외쳤어요.
“엄마, 나도 갈래. 고기 잡는 거 가르쳐 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