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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국정부의 무지와 교수들이 식민사학자들 1)이승만 정권때 친일파 청산 못함 역사인식에 대한 부족
2)박정희는 일본 장교로 지냄 35년간 일본 침략사에 대한 보상을 국민의 합의 없이 단독 강행 그로 인해 한국 피해자 보상 어려움 친일파 청산 못함 전두환,노태우도 군사 쿠테타로 자신의 욕심 체움
3)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역사의 무지로 역사왜곡 바로 세우지 못함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철저한 대책이 미흡 현재 대부분 대학의 교수들이 식민사학을 답습하여 고구려에 대한 지식 부족 고구려는 국제화 세계적 국가였다.
정계의 대표 이완용(前)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황궁내부대신서리" (前) 일본백작, 조선 총독부 중추원 고문 이완용(1858~1926) 조카 이병도가 서울대를 주측으로 왜곡된 역사 가르침
이병도(큰아버지: 이완용) (前) 대한민국 제7대 문교부 장관 (前) 제7대-17대 학술원 회장, 외무부 외교연구위원회 위원장 (前) 국민사상지도원 전문위원, 국사편찬 위원
이병도외한국 대학에 식민사학자들이 교수가 되어 역사 가르침 (78명의 교수) 현재까지도 역사 바로 세우지 못함
이완용의 조카가 이병도이고 그의 스승이 이마니시로우(今西龍)였다 이마니시로우는 단군 실존사를 신화로 왜곡 삼국 이전의 역사를 신화로 왜곡함 이병도(1986-1989)교육부장관 역임-제자 이기백 이기동 최몽룡 노태돈 신석호의 제자는 -김정배 이병도의-손자 이장무는 서울대학교 총장 역임 함 제13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2007년) 삼성이건희장학재단 이사(2002년) 대한민국 교육인적자원부 대학교육분과위원장(2002년) 이완용의 증손자, 친일역사학자 이병도의 손자 이장무의 친동생 이건무는 국립중앙박물관장 (전)대한민국 문화재청장 이건무 (이장무 총장의 친동생)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 부장(1989) 국립중앙박물관 관장(2003) 한국고고학회 회장(2008)
현재에도 식민사관 위주로 논문을 제출해야 박사학위를 주는 실정
정치계 일본의 앞잡이들이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을 지냄 그로 인해 한국의 정통성 세우지 못함 현재 일본에게 해방되었으나 역사는 해방되지 못함
한국국민 대부분 잃어버린 역사를 알려고 하지 않은 이유 돈을버는데 촛점 배우려는 자세 부족 정통성과 법통성을 찾으려고 안함 현재 대부분 한국국민들은 지나인(중국인)들에게 대륙에서 쫓겨와 한반도에 살고 있다는 내용을 모름
일본국민 한국역사를 모름 일부 정치계에서 역사 왜곡 우경화 강행 2차세계대전 전범국가에 대한 반성 부족
중국국민 공산화로 대부분 국민이 무지함 교육을 시키지 않음 중국정부에서 역사 왜곡 강행 고대한국선조들을 한반도로 내몰고 -주은래 전총리 반성내용 본 카페에 게재함 대부분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을 한반도로 내몰고 자신들이 영토를 차지하고 있다는 내용을 잘 모름
미국학계 한국고대사연구 활발함 하버드대 남가주대 보스턴대 등 고대한국에 대해 학자들 연구 활발 일반 국민은 한국의 역사 모름
한국학계 대부분 고대사 연구를 소홀히 함 일본이 만든 역사만을 받드는 형편임 일부 몇몇 학자만 연구
1980년대 황상기 박사 아들이 국사 교육을 잘못 받는데 대해 문교부에 소송함 안호상 고대사 연구-문제점 한문은 동이족 즉 한국 선조가 만든것을 중국인들이 만들었다고 판단 한글 전용화로 고대문헌 연구부족 초래함
임승국 한단고기 번역과 25사 연구 서희건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저술 정용석 이상시 변호사 , 박찬범 교수 임균택 박사 이일봉 씨 등 일부인만 고대사 연구
일본학계 양심있는 니시므라 신지 나까다 도쿄대 교수가 연구 한국의 찬란한 역사 인정 일본의 양심있는 학자들은 한국의 찬란한 고대사를 인정하고 있다.
중국학계 서량지 홍콩대교수,필장복 등 고대의 한국의 찬란한 역사가 현재 중국 영토에서 발생했다.인정 북경대 조걸(趙杰)교수이야기-한국에는 식민사학들의 책만 있다 함
러시아 학계 한국 고대사 찬람한 역사 인정 대표적인 학자 유엠퓨진
세계 학자들이 보는 한국의 역사 한국의 고대사 찬란하였다 그러나 주변 강대국의 일부정치인들이 역사왜곡함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을 생각해 보자
명나라때(중국)에 쫒겨난 한민족
한국의 선조들은 한인시대 배달국시대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때까지 현재 중국의 영토 중원에 있다가 고려말에 명나라 주원장에게 쫓겨나 한반도에 살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영토였던 중원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중국은 2008년 북경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선조들의 찬란한 고대 유물을 없애버리고 자기들의 역사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 서희건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3권 침고
일제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과 1910년 한일합방으로 조선을 총칼로 침탈하고서 조선의 민족혼 자체를 말살시켜 그들의 역사보다 수천 년이 앞선 조선역사의 왜곡과 을 조선 총독부에 의하여 추진했다. 일제는 서점, 향교, 서원, 구가(舊家), 양반가, 세도가 등을 샅샅이 수색했다. 다음해 12월말까지 1년 2개월 동안 계속된 제 1차 서적 색출에서 조선총독부 관보를 근거로 판매금지한 서적과 수거된 서적은 총 51종 20여만 권이라고, 광복 후 제헌국회사와 <문정창(文定昌) 저> 군국일본 조선강점 36년사에서 밝히고 있다. 한인시대, 배달국시대, 고조선시대 기자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 발해 고려 조선의 무려 1만여년의 역사가 있다.
역사왜곡의 대명사 이병도(이완용의 손자뻘)-
한국인을 역사의 사생아로 만든 1등 공신
일황의 칙령에 의하여 『조선 반도사』편찬에 착수한 일제는라는 고대부터 반도국가로 왜곡시킨 우리역사를 합리화하고 세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어용 학술단체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1922년의 조선사편찬위원회와 1925년의 조선사편수회였다. 이완용.박영효.이윤용, 권중현 같은 역적으로, 임명되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 총독 사이토는 '『조선 반도사』편찬위원회'를 “ 조선사편수회 ”로 명칭을 바꾸고 , 일황(日皇)의 칙령으로 설치근거의 격을 높이고 확대 개편하였다.
『조선 반도사』 편찬 실무자 스에마쓰(末松保和) 등 20여명의 일인 학자들과 한민족의 반역자 이완용의 후손 두계(斗溪) 이병도(李丙燾).신석호(申奭鎬).홍희(洪憙) 같은 한인학자들이 참여하여 드디어 24,111쪽에 달하는 반도 조선사 35권이 완간 했던 것이다.
이병도의 일제시대 행보는 떳떳할 수 없는 경력이었다. 그러나 친일파 식민사학자 이병도가 남한 학계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1950년 6.25전쟁이었다. 6.25전쟁은 많은 민족주의 인사들이 납북됨으로써 남한 학계를 가짜 실증사학의 병도 독무대로 만들었던 것이다. 1976년 동도학원(東都學院) 이사장에 선임됐고 1980년 85세의 고령으로 국정자문위원(國政諮問委員)에 위촉됐다. 그 동안 문화훈장 대한민국장, 학술원 공로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5.16민족상 등을 수상했다
1986년 10월 9일(목)자 조선일보에 단군은 신화가 아니고 우리나라 국조이며 "역대왕조의 단군제사는 일제 때 끊겼다" 라는 제목으로 특별기고 하여 우리나라 고대역사 왜곡의 사실을 발표.
이병도의 손자 이건무 문화재청장 가문 3대 11명이 교수 이건무 전 국립박물관장이 문화재청장에 발탁되면서 . 그는 한국사학계의 거목이었던 이병도 박사(1886~1989)의 손자일뿐 아니라 이장무 서울대 총장의 친동생이다. 3대에 걸쳐 교수가 11명인 ‘ 는 가문’ 출신이다.
이병도 이병도 박사는 1919년 일본 와세다대(사학 전공)를 졸업 1919~25년 중앙학교(현 중앙고) 교원과 1932~43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 강사, 1941~43년 이화여전 강사. . 일제 때 총독부 중추원 산하의 조선사 편수회에 촉탁으로 일했다. 해방 후 1945~62년 서울대 문리대 교수를 문교부 장관, 학술원 회장을 역임했다. 박사학위는 1952년 서울대에서 받았으며 1967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박사는 슬하에 5남 3녀를 뒀다. 그의 장남 기영(1914~2002)씨는 경성고보(경기고 전신)와 경성의전(서울의대 전신)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제2대학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의대 교수를 지냈다.
기영씨의 자녀도 모두 교수다 . 장녀 인혜씨는 미국 켄터키 주립대, 장남 영무씨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차남 웅무씨는 아주대 자연과학부 교수다. 이 박사의 차남 춘녕(1917년생)씨는 일본 규슈대 농학부를 마쳤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농대 교수와 학장을 지냈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춘녕씨의 아들이 바로 장무·건무 형제다. 장무(1945년생)씨는 경기고와 서울대 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공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를 지냈으며, 1997~2002년 공대 학장을 역임했다. 2006년 7월부터 서울대 총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차남 건무(1947년생)씨는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거쳐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박물관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며 2003년 4월부터 2006년 8월까지 차관급인 국립박물관장을 지냈다. 그 뒤 용인대 예술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이 대학 문화재대학원장 등을 지내다 이번에 차관급인 문화재청장을 맡게 됐다.
이병도 박사의 삼남 태녕(1924년생)씨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화학교육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문화재 보존분야를 개척해 관련 과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석굴암의 과학적인 비밀을 밝혀내 1973년 2월 '석굴암의 구조와 습기문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일제가 석굴암에 담긴 과학적인 원리를 모르고 보수를 하는 바람에 습기가 차게 됐다는 내용이다. 문화재 반환위원회 부의장을 지냈으며, 문화재보존과학회 초대 회장도 맡았다.
그의 아들 경무(1957년생)씨는 서울대 의대를 나와 충북대 의대 재활의학교실 교수로 있다. 삼녀 희경씨는 영국 런던대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역량 있는 학자로, 국민대 조형대 도자공예학과 교수다.
오남 본녕(1936년생) 씨도 미국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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