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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이야기:⑤/ 단테의 지옥
단테의 지옥:
<성경>의 지옥에 대한 묘사는 너무 단순했고 그리고 간단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기독교의 지옥은 점점 더 잔인해져갔다.
지옥하면 단테(1265-1321)가 쓴 <신곡>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케년 대학(Kenyon college)의 티모시 셔트 (Timothry B. Shutt) 교수는 문학가로서는 셰익스피어가 제일인자이지만, 책 한권으로 따질 것 같으면 <신곡>이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했다. 단테는 예루살렘이 지구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예루살렘 땅 밑으로 내려가면 지옥이 있다고 했다. 단테에 의하면, 지옥은 원추형으로, 처음 시작은 아주 넓지만, 나선형(Spirally)으로, 밑으로 내려가면서 더 좁아져간다. 가장 밑바닥은 아주 비좁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심한 처벌을 받는다. 지옥은 9환으로 돼 있다. 처음에는 ①림보 (Limbo)이고 ②육욕 (Lechery), ③탐식 (Gluttony), ④탐욕 (Avarice) ⑤분노 (Wrath), ⑥이단 (Heretics), ⑦폭력, ⑧사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⑨배반을 기준으로 해서 지옥이 구분돼 있다.
지옥입구에, “지옥에 들어가는 자들이여, 모든 희망을 버리라”라고 써진 푯말이 꽂아있다. 지옥에는 ‘죽음의 희망도 없고’ (No hope of death), 세상은 귀가 먹어 (The world is deaf),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의 아픔을 아무 누구도 들어주고 있지 않다. 지옥에는 하나님이나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가니까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해주는 목사나 신부가 전연 없다. 지옥에는 구원이라는 게 없다. 그래서 지옥에 한번 들어가면 영생토록 고통을 받도록 돼 있다. 그게 바로 기독교의 지옥인 것이다.
단테가 직접 지옥에 들어가서 구경했다. 지옥은 예루살렘 바로 밑 지하에 있다. 예루살렘에서 지옥 밑바닥까지 가는데 12시간 걸린다. 지옥 밑바닥을 지나서 지구 반대편 남반구로 빠져나온다. <신곡>의 지옥에는 동양 사람이나 흑인이 단 한명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지옥의 가장 위쪽의 환은 림보인데, 림보에는 예수가 태어나기 이전의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그리고 세례를 미처 받기 전에 죽었던 어린아이들이 림보에 가 있다. 림보에서는 지옥에서 받는 고통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림보 밑에 있는 지옥에서는 온갖 처절한 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호색했다고 해서 ‘육욕’지옥에 와 있다. 이곳은 춥고 어두컴컴하고 그리고 영겁으로 비만 내리는 곳이다. 예수는 인간이지 신이 아니라고 말한 교황 아나스타시우스(Anastasius: 486-498)는 ‘이단자’의 지옥에 와 있다. 여기는 악취가 너무 심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곳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사람을 너무 죽였다고 해서 ‘폭력’의 지옥에 와 있다. 이곳은 부글부글 끓는 물에 사람이 데워지는 곳이다. 단테가 나무 가지 하나를 꺾었더니, 나무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왜 자기 몸을 자르냐고 항의한다. 전에는 자기도 사람이었는데 지옥에 와서 나무가 된 것이다. 나무줄기 옆에는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다. 나무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어떤 지옥인들은 사자, 거위, 염소와 같은 동물이 돼 있다. 쁠 달린 악마들이 지옥사람들을 회초리고 두들겨 패고 있다. 어느 지옥인들은 온 몸에 기름이 발라져있고, 그리고 붙에 타고 있다. 어느 곳에는, 땅덩어리가 불로 돼 있다. 이곳에서는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다. 사람이 타서 재가 되면 다시 살아나서 계속 불에 탄다.
어느 곳에는 수십 명의 사람 머리를 땅에 거꾸로 박아서 사람으로 울타리가 만들어져 있다. 지옥사람들은 울면서 단테 옆을 지나가는데 다들 벙어들이다. 어떤 지옥인은 얼굴하고 가슴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돼 있다. 얼굴이 뒤로 향해서 있기에 걸을 때 뒤로 걷고 있다. 악마들은 지옥인들의 발목을 잡아서 위아래로 흔들기도 하고 다리 밑으로 집어던진다. 물위로 떠오르면 갈고리로 낚아채서 몸뚱이를 찢어놓는다. 그런가하면 독사뱀들이 지옥인들의 몸을 휘감아 물어뜯고 있다. 어떤 사람은 지상에서 위조지폐를 만들었는데, 그 죄과로, 지옥에서는 발이 너무 무거워서 걷지를 못한 채 서서만 있다. 지옥의 맨 밑바닥은 배반자들이 와 있다. 여기는 코사이터스(Cocytus)라고 하는 데 이곳에는 불의 지역 (Fire of realm)이 아니고 얼음으로 꽁꽁 얼어있는 아주 추운 곳이다. 이곳에는 언어가 있어도, 자기 혼자만의 언어이기에 옆 사람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 코사이터스의 아주 밑바닥은 아주 비좁다. 이곳에는 사탄(Lucifer, Satan)이 앉아있다. 사탄은 3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각 얼굴에는 하나의 입이 있다. 각 턱에는 2개의 날개, 그러니까 사탄은 다 해서 6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 날개가 움직일 때마다 찬바람이 불어서 모든 것을 얼게 만들어버린다. 지옥에서 제일 나쁜 곳, 코사이터스 맨 밑바닥에는 누가 와서 고통을 받고 있을까?
지옥의 제일 나쁜 곳에는 누가 있을까?:
100여 년 전에 써진 <영어작문> (English Composition by Barrett Wendell, 하버드 영문학 교수)이란 책에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이야기가 써져 있었다.
미국 학생들은 학교에서 셰익스피어가 쓴 <주리어스 시저> (Julius Caesar: 100?-44 B.C.)라는 작품을 읽는다. 주리어스 시저는 로마제국의 첫 번째 황제가 되었다. 주리어스 시저가 황제가 되기 전까지는 로마는 공화국이었다. 공화국이란 국민들이 선출한 사람들이 국가를 운영하는 제도인 것이다. 헌데 주리어스 시저는 공화제도를 무시해버리고, 황제가 되어 독재자로서 국가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원로원 카시우스(Senator Cassius)는 공화제국을 위해서 주리어스 시저를 없애버리자고 음모를 꾸몄다. 카시우스는 원로원 브르터스(Senator Brutus)에게 시저를 암살하자고 꼬였다. 브르터스는 시저로부터 가장 많은 신임을 받고 있었던 충실한 부하였다. 하지만 브르터스는 한 개인이 황제가 되어 국가를 운영해 나가는 것은 국가 발전을 위해서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시저를 배반할 수밖에 없었다. 브르터스는 음모파에 가담했다. 음모파 사람들과 함께, 원로원에서 브르터스는 앞장서서 시저를 직접 칼로 찔러 죽였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책 <주리어스 시저> (Julius Caesar)에서, 로마 공화국을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로마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시저를 죽인 브르터스하고 카시우스를 영웅으로 묘사했다.
이와 반대로, 유명한 소설가 단테 (Dante: 1265-1321)는 시저의 신임을 받고 있으면서 시저를 배반했다고 해서, 단테는 그의 책 <신곡> (Divine Comedy)에서 브르터스하고 카시우스를 지옥에서 제일 나쁜 코사이터스(Cocytus) 지역으로 보냈다.
브르터스하고 카시우스를 바라보는 각도가 셰익스피어하고 단테는 판이하게 달랐다. 만약 셰익스피어가 <천당>이라는 책자를 썼다면 셰익스피어는 브르터스하고 카시우스를 단연코 천당으로 보내 영생을 행복하게 살도록 했었을 것이다.
단테는 “배반”을 가장 사악한 것으로 취급했다. 지옥으 맨 밑바닥은 3명밖에 들어설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곳이었다. 시저를 배반한 브르터스, 카시우스 그리고 예수를 배반한 유다, 3명을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집어넣었다. 이곳은 불이 아니라 항상 얼어서 지독히도 추운 곳이었다. 가운데는 유다, 왼쪽에는 카시우스, 그리고 오른쪽에는 브르터스가 있었다. 세 명은 어름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자유로이 움직일 수도 없었다. 사탄은 세 개의 얼굴과 세 개의 입을 가지고 있었다. 사탄은 양 옆에 있는 두 입으로 카시우스하고 브르터스를 씹고 있었다. 그리고 가운 데 입으로 유다를 씹어 물고 있었다.
유다는 억울했다!:
<성경>에, “대사제 카야파, 수석사제들, 백성의 원로들이 모여서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고 했다. (마태26:3-5). 유다가 수석사제한테 찾아가서 예수가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은돈 서른 닢을 받았다.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것이다. (마태 26: 14-16)
저녁때가 되자 예수는 열두 제자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수는, “사람의 아들(예수)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태26: 20-24).
여기서 보면 유다가 예수를 완전히 배반했다. 왜 유다가 배반했을까? 배반한 이유가 무얼까? 돈 서른 닢에 탐이 나서 예수를 배반했을까? 혹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에 예수를 배반했을까? 하여튼 유다가 예수의 제자인데, 제자로서 예수를 배반했다는 것은 예수에게 무슨 결함이 있었을까? 예수의 지도력이 좋지 않았기에 유다가 배반을 했었을까? 하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데 어떻게 예수에게 결함이 있을 수가 있다고 하겠는가? 예수에게 어떤 결함이 있었다기보다는 유다에게 결함이 있었다고 보아야 옳지 않았을까? 하여튼 요한복음을 읽어보면 문제가 좀 더 복잡해져가고 만다.
<요한13: 21-28>: “예수께서,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 고 말했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그게 누굽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줄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하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예수가 유다가 배반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다가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라고 했다. 배반했었기에 사탄이 유다한데 들어갔다는 말인지, 혹은 사탄이 유다의 몸에 들어가서 배반하도록 했다는 말인지? 유다가 배반한 책임을 이제는 사탄에게 넘겼다. “그때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라고 말했다. 예수는 유다가 배반한 것을 이미 알았고 그리고 유다에게 어서 배반하라고 부추겼다. 왜 배반하라고 부추겼을까? 배반하지 말라고 말을 해주었으면 유다가 배반을 중단하고 예수를 당국에 고발하지 안했을 수도 있었다. 헌데 예수는 유다더러 배반하라고 부추겼다. 왜 부추겼을까?
<요한 18: 3-11)>에 보면,
“예수를 잡으러 온 군인들에게 예수가 다가가서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하고 물었습니다. 군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소.’ 라고 말하자, 예수가 ‘내가 그 사람이다.’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체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보면, 예수는 얼마든지 도망칠 수가 있었고, 그리고 체포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예수는 일부러 체포되었다. 왜? 십자가에 못 박히어 피를 흘려 죽기 위해서 일부러 체포되었던 것이라고 기독교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처럼 예수가 자발적으로 체포될 바에야 왜 유다로 하여금 배반하게 했었을까? 유다에게 배반하라고 말할 필요 없이 그냥 자수해서 체포가 되어버렸으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설령 유다가 예수를 배반했다고 하더라도 예수를 죽인 사람은 유다가 아닌 것이다.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기 전에 이미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유태인의 대사제, 수석사제들이 음모를 꾸몄었다. 그리고 그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는 로마제국의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사형시키도록 명령을 내렸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죽인 사람은 유다가 아니고, 유태인의 대사제, 수석사제들 그리고 로마의 통치자 빌라도인 것이다. 예수를 죽인 사람하고 예수를 배반한 사람하고 누구의 죄질이 더 나쁜가? 물론 예수를 죽인 사람들의 죄질이 훨씬 더 나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죽인 사람들이 지옥의 맨 밑바닥에 던져져야 하는데 왜 단테는 유다를 지옥의 맨 밑바닥에 집어넣었을까?
2001년도 베스트 셀러 영화 <예수 크리스트, 수퍼스타> (Jesus Christ, SuperStar. Andrew Lloyd Webber 음악)에는, 유다는 예수한테, “당신이 하라고 해서 고발했는데 왜 내가 이처럼 고통을 당해야만 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리고 유다는 자살을 했다.
2004년도에 베스트 영화 <예수의 정열> (The Passion of Jesus, Mel Gibson 감독)에 보면, 유다는 예수를 당국에 고발한 후, 예수가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괴로워해서 나무에 목을 메워 죽었다. 성경 <마태27:3-6>에도, “유다는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으신 것을 보고 뉘우치고서는, 목을 대달아 죽었다”고 했다. 예수도 유다의 자살에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유다가 진짜로 배반했다면 지옥에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예수가 하라고 해서 예수의 말을 듣고 고발했었다면, 유다는 지옥에 보내져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유다는 천당에 가 있어야 할 것이다.
2006년4월 호 <내셔널 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에 <유다복음>이 공개되었다. 유다복음은 아마 3세기에 써진 책이다. (1970년대 이집트의 골동품 시장에서 파피루스 (Papyrus)에 적힌 채 발견되었는데, 2000년 스위스 취리히의 메세나 고미술재단에서, 5년에 걸쳐, 복원했다). <유다복음>에는, 예수가 고발하라는 대로 했었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어 죽음으로 해서 인간을 모든 죄악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기에 유다는 예수의 12제자 중에 제일가는 수제자가 되었다. 예수의 수제자라는 것은 유다는 지금 천당에서 예수의 오른쪽에 앉아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가톨릭에서는, 예수의 수제자는 베드로 (Peter)이지 결코 유다가 아니라고 말을 하면서 <유다복음>을 가짜 복음이라고 해서 복음서로서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
위에서 보다시피, 유다를 예수의 수제자로 보고 유다를 천국으로 보내는 복음서가 있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유다를 배반자라고 해서 지옥에 보내버리는 단테가 있는 것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똑같은 사람을 지옥에도 보내고 혹은 천당에도 보낸다. 만약 당신이 지옥에 관한 책자를 쓴다면 당신은 유다, 카시우스, 그리고 브르터스를 지옥? 혹은 천국? 어느 곳에 보내고 싶으신지?
기독교는, 예수가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수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십자가에 못 박히어 죽지 않고도 얼마든지 다른 평화적인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할 수가 있었을 텐데 왜 구태여 유다로 하여금 배반하게 하고 그리고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어 죽어야만 했었는지에 대해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간다.
단테는 모하메드도 지옥으로 보냈다!:
지구상에 지금 현재 가장 큰 종교가 이슬람이다. 이슬람의 신도를 무슬림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70억 인구 중에 거의 20억이 무슬림인 것이다. 모하메드가 7세기에 바로 이슬람을 세운 사람이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예배하고 있듯이, 무슬림들은 모하메드를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모하메드는 천당에 올라가 하나님 곁에 앉아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데 기독교 신자 단테는, 모하메드는 “분열과 이간질의 씨를 뿌린 죄”로 지옥에다 보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보면, 모하메드는, 자기 손톱으로 자기 몸을 긁고, 두 손가락으로 가슴을 헤쳐 열어젖히고, 내장을 파헤쳐 토막을 내고 있다. 모하메드의 온 몸은 갈기갈기 잘라져 여러 토막으로 돼 있다. 단테는 이슬람의 4대 칼리프 (Caliph, 이슬람의 최고 성직자) 알리 (Ali) 도 지옥으로 보냈다. 지옥에서 알리도 모하메드하고 같이 고통을 받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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