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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삼한시대 스크랩 단군신화는 전설이 아닌 실제 단군조선국의 건국비사다./안창범
天風道人 추천 0 조회 27 13.08.12 14: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단군신화는 건국비사다. (고조선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Ⅰ. 문제의 제기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기(古朝鮮記)는 우리민족의 상대 역사를 압축 은닉한 건국비사(建國秘史)이며, 한편 신선사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신선도의 비기(秘記)이다. 그와 같이 중대한 금석지문(金石之文)이 이웃 강대민족인 지나족과 일본인에 의해 신화로 취급됐던 것이 우리민족의 광신적 유생(儒生)들과 친일 사학자들에 의하여 지금도 신화로 오도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민족의 상고사가 불신당하고 있는가 하면, 우리민족은 아예 본원사상도 본원종교도 없는 하찮은 민족으로 멸시받고 있다. 이에 따라 민족의 긍지는 땅에 떨어지고, 천교(신선도)를 설한 성인이시며 국조이신 환인천제와 환웅천황과 단군성제는 황당무계한 우상으로 멸시받고 있다. 만약 고조선기를 신화의 늪에서 구출할 수 있다면, 그것은 민족정신사의 새로운 뿌리를 밝히는 것이며, 민족의 긍지를 회복하는 것이며, 환인천제와 환웅천황과 환검단군(단군성제)에 대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의도에서 우선적으로 <삼국유사> 고조선기가 신화인가 아닌가를 규명하여 보고자 한다.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있어 도읍을 아사달(阿斯達 ; 經에는 無葉山이라 하고 또한 白岳이라고도 하였는데 白州에 있다. 혹은 開城 동쪽에 있다고도 하는데 지금의 白岳宮이 바로 그것이다)에 정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朝鮮)이라 하였는데 요(堯=高)와 같은 때였다고 하였다. 또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한인(桓因:帝釋을 일컬음)에게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있어 항상 천하(天下)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내거늘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 봄에 홍익인간 할만 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3000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정(太白山頂:지금의 묘향산)의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한다. 그리고 이 분을 환웅천황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악(善惡) 등 인간의 360여사(餘事)를 주관하여 세상을 이화하였다. 이때에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신웅(神雄)에게 빌어 사람이 되기를 원하였다. 이때 신웅(神雄)이 신령스런 쑥 한 줌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일광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고 하였다. 곧 곰과 범이 그것을 받아먹고 三七일(21일)동안 기(忌)하니 곰은 여자의 몸으로 변하였으나 범은 기를 잘못해서 사람의 몸으로 변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혼인해서 같이 살 사람이 없으므로 날마다 단수(壇樹) 밑에서 잉태하기를 원하였다. 환웅이 잠시 거짓 변하여 그와 혼인했더니 이내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아기의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단군왕검은 당고(唐高)가 즉위한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註:지금의 西京)에 도읍하여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불렀다. 또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기니 궁홀산(弓忽山)이라 하고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그는 1500년 동안 여기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나라 호왕(虎王)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다. 이에 단군(壇君)은 당장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서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는 1908세였다.


이상이 <삼국유사> 고조선(왕검조선)기의 내용이다. 이를 보면 고조선기는 실재 역사 같기도 하고 신화 같기도 하다. 즉, 국조 단군왕검과 조선이라는 국호 및 그 도읍지인 평양과 아사달 그리고 지나의 요임금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고조선기는 실재 역사 같기도 하고, 반면에 한인(桓因)을 제석(帝釋)이라 주석하고, 그 아들 환웅과 동물 곰이 사람으로 변신하는가 하면,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가 등장하며, 단군왕검이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1908세를 살다가 산신이 되었다느니 한 것을 보면, 고조선기는 신화같기도 하다. 실로 고조선기는 실재 역사인지, 신화인지, 애매모호하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기(古朝鮮記)를 황당무개한 신화로 돌리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역사적 사실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승(僧) 일연(一然)은 신비스러운 사실을 기록한 기이편(紀異篇)에 고조선기를 수록하면서 “대체로 옛날 성인은 예절과 음악을 가지고 나라를 세웠고, 인의(仁義)를 가지고 가르치는 일을 베풀었다. 그런데 괴력난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왕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부명(符命)을 얻고 도록을 받게 된다. 때문에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뒤에야 대변(大變)의 기회를 타서 대기(大器)를 잡아 대업을 이룩할 수가 있는 것이다”고 하면서 기이한 사실을 옹호하고 있다. 이는 곧 고조선기의 내용이 허위가 아니라 사실임을 독자들에게 시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조선기는 사실이요 어떠한 사정에 의해서 실재 역사를 압축 은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고조선기가 신화인가 사실인가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2. 신화의 구성요건

그러면 신화란 무엇인가? 신화는 일정한 구성요건을 그 자체 내에 지닌다. 따라서 <삼국유사> 고조선기가 신화라면 거기에 신화로서의 일정한 구성요건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신화가 아니라면 거기에 신화로서의 구성요건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신화는 어떠한 구성요건을 지니고 있는가? <새 우리 말 큰 사전> (삼성출판사, 1972)은 신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신화란 역사상의 근거는 없으나 그 씨족이나 부족 또는 민족에 있어서의 신격을 주동자로 하여 엮어져 전하여 오는 설화, 여러 가지 자연현상, 문화현상(사회제도)을 원시적인 인생관이나 세계관에 의하여 설명한 것으로서 역사적, 과학적, 종교적, 문화적 여러 요소를 분화되지 않는 상태로 포함하고 있음. 내용에 따라 자연신화와 인문신화의 둘로 크게 나눔.

<교육학대사전>(교육과학대사전, 1972)에는 신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신화란 인간의 세계관?인생관 등의 가장 원시적인 사상형태이다. 신들이 주인공이 되는 상징적 이야기를 통하여 우주의 기원과 발생, 인간의 유래와 운명, 세계의 본질과 장래 등을 암시하여 주는 내용이다. 역사 이전의 전설이며 이론적 표현이나 설명에 달하지 못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 비유적인 해석과 의미가 중심이 된다. 그러나 그 속에 천지개벽, 인간적 시조, 생활의 운명성, 내세관과 윤회관 등이 실려 있어 많은 철학적 종교적 의미를 제공하고 있다. 최초의 종교 도덕 철학에 남겨 준 영향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서 신화의 구성요건을 인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신화는 역사 이전의 전설로서 역사적 근거가 없다.

② 신화는 신(神)들이 주인공이다.

③ 신화는 그 사상형태가 원시적이다.

이상 세 가지 명제가 신화의 구성요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삼국유사> 고조선기의 내용이 위의 세 가지 요건에 해당하면 신화라 할 수 있고, 해당하지 아니하면 신화라 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3. 고조선기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가?

우선 <삼국유사> 고조선기가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첫째, 환인(桓仁)의 환국(桓國)이 있었다.

<환단고기> 삼성기전 하편과 태백일사를 보면, 옛날에 환인(桓仁)이 천산(天山)에 살면서 득도하여 7세(七世)를 전하였다 하고, 환인 7세가 3301년(일설에는 63,182년) 동안 통치하던 환국이 있었다. 그 나라는 중앙아시아의 天山을 거점으로 남북으로 5만리, 동서로 2만여리인데, 나누면 12개국이며 합하면 환국(桓國)이라 하고, 12개국의 국명과 환인 7세의 명호도 다 밝혀지고 있다.

둘째, 환웅(桓雄)의 배달국(倍達國)이 있었다.

<환단고기> 삼성기전 하편에 의하면, 환국(桓國)의 말에 서자부(庶子部)에 있던 환웅이 3천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태백산(백두산)에 이르러 천도(天道)를 깨치고 삼신(三神)으로 종교를 일으켜 신시(神市)를 베풀고 홍익인간 이화세계하였다고 하였다. 그때 환웅이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의 두 여인에게 쑥과 마늘을 주어 100일 동안 기(忌)하게 한 후 삼칠일(21일)만에 선계(仙界)의 백성이 된 웅족(熊族)의 여인과 혼인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고 하였다.

또한,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를 보면, 배달은 환웅이 정한 천하의 호니 그가 도읍한 곳은 신시요, 뒤에 청구국(靑邱國)으로 옮겨 18세를 전하고 역년은 1565년이었다 하고, 이어서 18세의 환웅명과 재위기간 및 생존한 연세를 하나 하나 모두 밝혀주고 있다.

셋째, 단군의 고조선(古朝鮮)이 있었다.

<단군세기(檀君世紀)>를 보면 고조선은 47세를 전하고, 그 역년은 2096년이다. 왕명과 재위기간 및 생존연세를 하나 하나 모두 밝혀주고 있다. 또한 <단기고사(檀奇古史)>와 <규원사화(揆園史話)를 보아도 <단군세기>와 마찬가지로 47세의 왕명을 모두 밝혀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글자 하나 틀림이 없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재위기간과 생존연세가 다소 다를 뿐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 대조하고 간지(干支)를 바로 잡으면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이상에 소개한 <삼국유사> 고조선기의 기록과 <환단고기>, <단기고사>, <규원사화>의 기록을 비교하여 보면, <삼국유사>의 고조선기는 태고사를 압축하고 은닉한 상대비사(上代秘史)임을 알 수 있다. 즉, 환국(桓國)의 7세 환인(桓仁)을 아버지로, 환국 다음 왕조인 배달국의 초대 환웅천황을 아들로, 배달국 다음 왕조인 단군조선의 초대 단군왕검을 손자로 압축하여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이 <삼국유사>의 고조선기이다. 다시 말하면,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과 고조선(古朝鮮)을 조부손(祖父孫)으로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 <삼국유사>의 고조선기이다.

그밖에도 환웅천황이 대인의 신분으로 여민동락(與民同樂)하는 것을 “가짜로 사람이 되었다”로, 속인이던 곰족의 여인이 선인(仙人)이 된 것을 “곰이 사람이 되었다”로, 제1세 단군왕검이 조선국을 세운 때(B.C. 2333)로부터 제43세 단군 물리제(勿理帝)가 도적의 무리인 우화충에 의하여 도성이 함락되자 좌우의 궁인들과 함께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어 모시고는 해두(海頭)로 피난하여 운명하던 을묘 36년(B.C. 426년)까지의 1908년을 “단군이 1908세를 사시었다”로, 마지막 임금 47세 단군 고열가제(古列加帝)가 입산수도하여 등선(登仙)한 것을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로 위장 은닉하여 우화같이 표현하고 있는가 하면, 주(註)에서 환인(桓仁)을 한인(桓因) 곧 제석(帝釋)이라 은닉하고, 태백산을 지금의 묘향산이라 하여 상대의 광활한 강토를 반도 내로 축소시켜 표현한 것이 <삼국유사>의 고조선기이다.

그러면 위와 같이 승 일연이 태고사를 우화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압축 은닉 반도사관으로 축소하여 서술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풀이할 수 있다.

하나는 고대로부터 구전되어오는 가운데 압축되고 우화적으로 된 것을 누구인가 어떤 책에 기술하고 그것을 다시 승 일연이 <삼국유사>에 옮겼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시대적 사회적 여건에 의해서 승 일연이 고의적으로 태고사를 압축은닉하고 반도사관으로 축소하여 기술하였다고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자의 입장부터 그 연유를 살펴보자.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와 당나라에 의하여 멸망되고, 그때 두 나라의 국서고가 소실되었다. 그러므로 승 일연이 생존하던 고려사회의 사서는 거의 신라를 통하여 전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라는 고조선이 망하자 그 유민에 의하여 세워진 나라이다. 유민이 망명 올 때 돌과 나무에 새겨 둔 사서를 가져 올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신라를 세운 고조선의 유민들에 의하여 환국과 배달국(신시)과 고조선사가 구전되어오는 가운데 탈락되면서 하나의 우화같이 꾸며지고, 그것이 누구에 의해 사서에 기술되고, 다시 그것을 승 일연이 ?삼국유사?에 옮겼다고 볼 수도 있다.

다음은 후자의 입장에서 그 연유를 사펴보자.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1206-1289)은 13세기 사람으로 그 때는 고려중엽이다. 그러므로 본 상대비사(上代秘史)가 <삼국유사>에 수록된 시기는 비록 승려이지만 묘청(妙淸)이 국풍파(國風派)와 더불어 서경천도(西京遷都)를 실현하려다가 뜻대로 아니되므로 반란을 일으키자(1135년)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金富軾) 일당인 유생들에 의하여 몰락됨으로써(1136년) 사대파(事大派)인 유생(儒生)들이 득세하고, 국풍파와 그 학풍은 억제를 당하던 때이며, 한편 최씨무단정권(崔氏武斷政權)의 전성기인데 몽고군의 침략으로 수도가 강화도로 천도되었다가 몽고군에 굴복당하는가 하면, “이 때(고려 고종 때)에 이르러 원(元)나라 임금 홀필열(忽必烈)이 고려 백성으로부터 민족정신인 조선정신을 빼앗아 오래도록 노예로 부리겠다는 야심에서 단군을 받드는 모든 교파를 탄압하여 원나라의 절대적 세력밑에서 단군교의 문이 닫히게 되었고”, 국풍파들은 그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운 때이다. 또한 호국을 위하여 막대한 경비와 인력을 소비하면서 불교의 팔만대장경을 판각하였는데 이 때에 그것이 소각되었고, 신라 제24대 진흥왕이 또한 호국을 위하여 세운 황룡사 및 9층탑이 전란으로 불에 타고 무너졌다. 승 일연은 이러한 것을 모두 목격하였다. 또한 국풍파를 타도한 유생들도 국가환란 앞에는 무력하기 그지 없음을 승 일연은 목격하였다. 즉 일연승은 불교도 유교도 다 국가환란 앞에 무력함을 본 것이다.

더욱이 일연은 비록 승려이지만 선불혼융(仙佛渾融) 시대의 승려로서 그의 정신은 민족적 주체의식으로 충만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그에게 국가환란을 당하여 요청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최치원 선생이 신라말기 화랑정신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하여 <난랑비서>를 쓴 것처럼, 승 일연도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바른 역사를 남겨야 하겠다는 의욕으로 충만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이나 그때나 고조선도 인정하지 아니하는 그때에 고증할 수도 없는 무려 7세나 전하고, 역년이 3301년 아니면 63182년이라는 환국이나, 18세를 전하고 역년이 1565년이라는 배달국(신시와 청구국)의 역사와 사상을 사실대로 전한다는 것은 모화사대파인 유생들이 득실대고, 천교의 문을 완전히 닫게 한 몽고군이 지배하고 있던 그때에 상상할수도 없는 문제이며, 만약 사실대로 썼다면 저서의 압수소각은 물론 저자의 생명까지도 위협받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사를 남기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한 시대적 사회적 여건 하에 태고역사와 그 사상을 전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연구한 것이 그 내용을 압축하여 우화적으로 신화처럼 표현한 것이 <삼국유사>의 <고조선기>가 아니었던가 한다. 이와 같이 ?삼국유사? 고조선기는 상대비사(上代秘史)로서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신화가 아니라는 사실이 제1차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4. 환인, 환웅, 환검과 웅, 호는 神인가?

첫째, 한인(桓因)은 환인(桓仁)을 신격화시킨 역사적 인물이다.

고조선기의 한인(桓因)을 일연승은 제석(帝釋)이라 주석하였다. 한인이 하나님이란 것이다. <규원사화(揆園史話)>에도 한인(桓因)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상계의 주신(主神)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그 형체는 나타내지 아니한다 하고, 인(因)은 본원이니 만물이 이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것을 뜻한다고 하였다. 곧, 한인(桓因)은 “만유의 근원(根源)”이란 뜻으로서 천상의 조화주(造化主)이며 하나님이란 것이다.

그러나 「환단고기」에는 한인(桓因)을 환인(桓仁)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환인(桓仁)의 환(桓)자는 木과 二와 日의 회의문자이다. 木은 동방을 의미하고, 二는 하늘과 땅을 의미하며, 日은 태양, 광명,  빛을 의미한다. 따라서 환(桓)은 “동방의 밝은 빛”이라는 뜻이다. 인(仁)은 “어진이, 어르신”의 뜻이다. 곧, 자의로 해석하면, 환인(桓仁)은 “동방의 밝은 어르신, 동방의 밝은 어진이, 동방의 밝은이, 동방의 밝어른”의 뜻이다. 곧 환인(桓仁)은 어진 성인(聖人)을 의미한다.

비유컨대, 한인(桓因)이 신(神)이라면, 환인(桓仁)은 인간이다. 한인(桓因)이 하나님이라면, 환인(桓仁)은 성인이시다. 한인(桓因)이 종교적 표현이라면, 환인(桓仁)은 역사적 표현이다. 발음에 있어서도 桓因은 이를 ‘한인’이라 발음할 수도 있으나, 桓仁은 이를 ‘환인’이라 하는 것이 정당하다. 이와 같이 한인(桓因)과 환인(桓仁)은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한인은 환인을 종교적으로 신격화시킨 역사적 인물인 것이다. 신이 아닌 것이다.

둘째, 환웅(桓雄)은 밝가범을 의미하고 신(神)이 아니다.

환웅(桓雄)의 웅(雄)은 “우두머리, 지아비, 아버지, 아범”의 뜻이다. 곧, 환웅(桓雄)은 “밝아범, 박가범(薄伽梵)”의 뜻이다. 불교사전에 의하면, 박가범(薄伽梵)은 모든 부처님을 의미한다. 석가불(釋迦佛)도, 아미타불(阿彌陀佛)도 박가범이다. 환웅천황(桓雄天皇)도 개벽의 시조로서 선천시대의 부처님이었다. 그러므로 환웅(桓雄)은 박가범(薄伽梵)인 아미타불의 원래 명호인 것이다.

셋째, 서자(庶子)는 서자부(庶子部)의 약칭이며, 신(神)이 아니다.

삼성기전 하편을 보면, 환웅천황을 서자부(庶子部)의 대인(大人)이라 했다. 서자(庶子)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만약, 서자(庶子)를 첩이 낳은 자식이라 풀이하거나 뭇 자식이라 풀이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마누라가 있고, 첩이 있다는 말이 된다. 아직까지 우리 나라의 전설이나 역사적인 기록에 하나님에게 마누라가 있고 첩이 있다는 기록을 본 바도 없고 드른 바도 없다. 하나님은 남성?여성의 구별도 없고,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서자(庶子)는 서자부(庶子部)의 약칭이며, 서자부는 “여러서(庶)”와 “씨자(子)”라는 의미로 의해하면, 여러 가지의 중요사안을 관장하는 지금의 총무부(總務部)와 같은 부서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천하(天下)니 천부인(天符印)이니 하는 천(天)은 천산(天山)의 약칭이다.

<환단고기> 삼성기전 하편과 태백일사 환국본기를 보면, 환인(桓仁)이 있던 곳은 하늘이 아니라 중앙 아시아의 천산(天山) 환국(桓國)이었다. 따라서 ?삼국유사? 고조선기에서 말하는 천(天)은 천산(天山)의 약칭이다.

다섯째,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는 관직을 의미한다.

그것은 당시 임금을 보필하던 사람의 관직명이다. 관직명이므로 시대에 따라 담당관이 바뀌게 마련이다. 환웅천황 때에는 풍백에 석제라(釋提羅), 우사에 왕금(王錦), 운사에 육약비(陸若飛)였고, 그 후를 보면 풍백에 팽우(彭虞), 우사에 복희(伏羲)와 소정(小丁), 운사에 배달신(倍達臣) 등의 이름이 <환단고기>에 보인다. 이와 같이 풍백, 우사, 운사도 역사적 관직명이며, 도명(道名)으로서 신(神)이 아닌 것이다.

여섯째, 웅(熊)은 맥이(貊夷)를 의미하고, 호(虎)는 예이(濊夷)를 의미한다.

우리 민족의 근간이 되는 선민(先民)을 흔히 예맥(濊貊)이라 지칭하는데, <대한한사전(大漢韓辭典)?을 보면, 맥이(貊夷)를 웅이(熊夷)라 하고, <후한서(後漢書)>를 보면, “예(濊)는 해마다 10월이면 하늘에 지사를 지내는데 ……범(虎)을 신으로 여겨 제사한다고 하였다.” 곧 예이(濊夷)는 범을 모시는 민족으로서 호족(虎族)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곧 웅족(熊族)은 역사상의 맥이(貊夷)를 의미하고, 호족(虎族)은 예이(濊夷)를 의미한다.


   5. 고조선기의 사상체계는 원시적인가?

<삼국유사>의 고조선기는 태고시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압축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신화처럼 묘사되고 있다. 예컨대, 환인(桓仁)을 한인(桓因 : 하나님)으로, 환웅천황을 하나님의 서자로, 단군왕검을 하나님의 손자로, 환웅천황의 부인이며 단군왕검의 어머니를 동물 곰으로 묘사하고 있다. 실재적으로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태고시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해치었다거나 신앙에 위배되었다면 절대 그와 같이 묘사되었거나 표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표현들은 태고시대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무관했고, 오히려 그것이 태고시대 우리 민족의 신앙과 부합 일치되었기에 오늘날까지 그대로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삼국유사> 고조선기의 내용은 우리 민족의 의식과 사고의 반영이며, 신앙과 철학의 집약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본 항에서는 고조선기에 표현된 그대로 분석 고찰하여 거기에서 우리 민족의 철학이며 신앙인 신선사상을 도출하면 다음과 같다. 1) 홍익인간 사상, 2) 신선사상, 3) 삼신사상, 4) 생명평등사상, 5) 선악일체사상, 6) 신분평등사상, 7) 청조설 부정, 8) 천조동일숭배사상 이다.

 

6. 결  론

이상에서 논한 바를 정리하면,

첫째, 신화는 역사 이전의 전설로서 역사상 근거가 없는데, 지금까지 신화로 취급되어오던 고조선기는 환국, 배달국, 고조선 등 태고역사를 압축 은닉하고 있었을 뿐,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둘째, 신화의 주인공은 신들인데, 고조선기에 등장하는 桓仁(桓因은 종교적 표현), 桓雄, 桓儉(단군) 및 풍백,우사, 운사와 웅호는 하나님도 신도 아닌 인간들이었다.

셋째, 신화에 표현되고 있는 사상형태는 원시적 비합리적인데, 소위 단군신화라고 하는 <삼국유사> 고조선기의 사상형태는 은유적으로 표현되고 있을 뿐, 너무나 체계적이고 합리적이며 철학적이었다.

이상과 같이 고조선기는 어느 하나도 신화의 구성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고조선기는 신화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상대 비사이며, 신선사상을 함축적?은유적으로 표현한 천교의 비기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제주대학교 명예교수(한국 본원사상 연구 30년), 안 창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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