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예수님과 함께 봄을 만드는 시인
이령怡玲 박천순 (시인)
이상진 시인의 시를 읽으면 맑고 향기롭게 우려낸 차를 마시는 것 같다. 마음이 깨끗하고 담백해지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오른다. 너나 할 것 없이 피로에 지친 현대인들이 쉼을 얻기에 충분한 시집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들로 인해 시로부터 멀어졌던 독자들도 이 시집을 읽으며 노래가 되고 즐거움이 되던 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은 쉬운 언어로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뜨겁게 사랑을 노래하고 그리움을 토로하며 독자에게 다가간다. 뛰어난 서정성을 보여주며 추수 때가 된 보아스의 밭처럼 읽을거리가 풍족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풍성한 시의 밭에서 룻처럼 이삭 줍는 기쁨을 누리며 마음에 따스한 휴식을 얻으면 좋겠다.
이 시집의 시를 읽어보면 시인과 늘 동행하는 분이 계심을 알 수 있다. 바로 절대자이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시인이 걷는 길에 등불이 되시고, 가족처럼, 연인처럼 늘 곁에 계신다. 시인은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듯 시를 쓴다. 혹자는 사랑이나 그리움이 너무 진부한 소재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처럼 인간의 마음을 위무(慰撫)하고, 선한 용기를 얻게 하고, 세상을 따스하게 하는 것은 없다.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사랑’은 우리의 혈관을 타고 영원히 흐르는 소중한 가치이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영원한 사랑과 그리움, 고향과 가족 이야기, 삶의 관조가 그것이다. 이제 이 세 부분을 중심으로 짧은 시평을 쓰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영원한 사랑과 그리움’을 먼저 살펴보자.
영원한 사랑과 그리움
시인은 이른 새벽 눈을 뜨면 맨 먼저 예수님을 생각한다. 그리고 예수님도 자신을 생각한다는 사실에 행복해 한다. “눈 뜨며 받아든 행복 하나/ ‘예수님 마음에 내가 있다’/ 어둠 속에 불이 켜지듯/ 머릿속에 불을 켜준 생각이었습니다.”(<오늘 아침 선물>)
새벽이 저만치 있지만
일어나 당신 생각을 하는 것은
아직 다른 생각들이 깨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 생각을 하는 것은> 전문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 어찌 다른 생각이 없을 수 있을까마는 시인은 다른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예수님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 거다. 나아가 시인은 주변 현상에도 감정을 이입하여 “나도/ 그리움도/ 새벽비도 당신 생각으로 내립니다.”(<새벽비도 당신 생각으로 내립니다>)라고 고백한다.
내 주인이 자나 깨나 한 분
그 한 분께 나를 보냈으니
내 주인은 그분 하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이제 당신이니
-<내 마음의 주인> 부분
이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의 마음은 시인의 것이 아닌, 하늘 아버지의 아들(예수님)의 것이다. 온통 예수님 생각에 빠진 마음은 예수님이 주인일 수밖에 없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밤낮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을 연인과 결부시킨다. 시인은 매일 눈뜨자마자 새벽기도 가는 길을 시작으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예수님과 동행한다. 아니, 꿈속에서도 예수님을 생각한다. “당신이 늘 그립습니다/ 그리움은 낮과 밤이 없는가 봐요(<그대가 더 보고 싶어진 날>). 그리하여 예수님과 함께 살아온 모든 길이 ‘詩’라고 고백한다.
어느 누구나 살아 온 길처럼 진솔한 詩는 없다.
다만, 흘러간 시간에서 詩를 읽어내지 못할 뿐이다
……
당신 손을 잡고 걸으니 지난 세월 모두가 詩입니다
……
예수님 손을 잡고 가는 길은 아름다운 詩입니다.
-<당신 손을 잡고 찾은 詩> 부분
이 시는 인간이 걸어온 희로애락의 모든 길을 ‘詩’로 비유한 절창이다. 시인은 누구나 걸어온 걸음이 ‘詩’인데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시인 역시 자신의 길이 ‘詩’인줄 몰랐으나 이제는 예수님과 손잡고 걷는 길이 가장 아름다운 ‘詩의 길’임을 안다. 그래서 “당신 가시는 곳에/ 내 마음 가지고 가셔요”(<내 마음도 가지고 가셔요>)라고 예수님께 부탁한다. 다음 시를 보면 시인에게 예수님은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꽃이고, 어떤 향기보다 향기로운 존재이며, 어떤 새소리보다 심금을 울리는 노래임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과장된 듯한 이 표현이 ‘천만 다행이다’ 한 마디로 인해 얼마나 솔직하고 담백한 고백으로 바뀌었는지 보라.
들꽃, 봄 향기, 새들의 노래
사람들마다 예쁘다 해서
은근 걱정했는데
내 님 만큼 예쁘지 않아
가슴 쓸어내릴 일도 없었다
천만 다행이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 전문
이상진 시인의 마음은 절대자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흘러넘치고 있다. ‘그리움’은 마치 시인과 한 몸 같아서 시인이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된다. 피 한 방울 같은 ‘사랑’이 시인의 온몸을 흔들고 무섭도록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다.
물에 비친 그대
손바닥에 담아
가슴에 안으렸더니
우레처럼 사방팔방
심장이 파문(波紋)을 일으킨다
가슴 속
피 한 방울
사랑이란 이름으로
떨구었을 뿐인데
이 작은 흔들림이
폭풍보다 무섭구나
-<파문(波紋)> 전문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사막의 모래 한 톨 같은 나를/ 천하보다 귀하다 하신 유일한 분”이시고, “내 마음이 춥고 외로울 때 오셨기”(<당신이 가신 길을 따라가게 하소서>) 때문이다. 누구나 절대고독의 상태에 직면할 때가 있다. 사막에 혼자 버려진 듯 마음이 춥고 막막할 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단번에 십자가 밑에 앉혀 주시고, “천하보다 귀한 내 자녀”라고 말씀하시면 얼마나 기쁠까! 이제 시인은 더 이상 춥지 않다. 기쁨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국화차를 마시며 고백하고 있다. 누구나 어둠 속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을 생각하면 이 시가 쉽게 다가올 것이다. “고요하게 피어오른 국화 향기/ 가슴으로 들어와 심장을 감싸고/ 온 몸의 실핏줄을 따라/ 당신 생각을 뜨겁게 합니다/ 두 손에 안긴 찻잔처럼/ 따스한 당신 생각” (<당신이 안아준 아침이 행복합니다>).
고향과 가족 이야기
이상진 시인은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강원도 인제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시를 읽어보면 고향집은 못을 쓰지 않은 전통 한옥이며, 마을 앞으로 하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마을에 있다. 사람의 감성은 살아온 산수풍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시인이 지금까지 소년의 감성을 가지고 날마다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 아름다운 고향마을(집) 덕분일 것이다.
동구 밖 느티나무보다 더 오래된 집은
쇠못 하나 사용하지 않은 나무집이다.
가슴에 못 박힐 일 없게
발걸음에 못 밟힐 일 없게 살라는 뜻이다.
옹이가 있어도 예쁘게 성기며 사는 집이 한옥이다.
……
집 구조가 불이(不二) 탈물(脫物)인 것은
바람 한 줄기, 햇빛 한 가닥으로, 산수 한 폭에
우물가에 향나무 심어 청풍명월 산수까지
내 것으로 두지 말고 세상에 두어 분별 있게 살라고
욕심 부리지 말고 더불어 살라고 가르치는 집
나는 시골 한옥 옛집이 좋다.
……
한지는 점잖은 팔색조다
창호지 바른 창에 먼동이 트면 청회색이고
한낮에는 밝은 미색이었다가 석양에는 붉게 물든다.
창호지에 햇빛이 실리면 그 밝은 빛에 마음이 밝아진다
문고리 배면에 코스모스 백일홍 넣어 곱게 만든 것은
마음의 창에 햇빛을 실어 꽃처럼 곱게 살라는 것
-<나는 시골 옛집 한옥이 좋다> 부분
고향집은 시인의 가슴에 자리 잡고 축복과 가르침을 준다. 가슴에 못 박힐 일 없고, 옹이마저 예쁘게 껴안으며 살라 한다. 분별을 가지고 세상과 더불어 살라 한다. 시인의 눈은 집을 그저 사물로 보지 않고 자연의 변화와 조화를 이루며 하나가 되는 생명체로 보고 있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 풍경과 집, 인간이 더불어 사는 모습을 세밀한 관찰과 풍부한 지식으로 아름답게 그려냈다. 이 아름다움은 한지 창을 묘사한 부분에서 더욱 빛난다. 때에 따라 변하는 창의 빛깔이 눈에 선하다. 특히 “문고리 배면에 코스모스 백일홍 넣어” 예쁘게 단장한 것을 보면 시인의 가족이 꽃을 사랑하고 한국적 멋을 즐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가난 때문에 이사를 가야 했지만, 어린 시절을 보낸 전통한옥의 정서는 시인의 심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어머님은 말씀하셨지
자식은 아무리 커도 부모에게는 어린이라고
어머님은 어린이 날이면
손자를 본 아들에게도 양말 한 켤레를 선물로 주셨지
오늘은 내가 어머님을 대신하여
손자를 본 아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자식은 아무리 커도 부모에게는 어린이라고
그리고 어머님처럼 책 한권을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왜 난 어머님 생각에 눈물이 나지?
-<어린이 날(1)> 전문
가슴이 뭉클한 시다. 시인에게 가장 큰 스승은 어머니이시며 가정교육은 대를 이어 내려간다. 어려서 받은 가정교육은 마치 기초가 탄탄한 건물처럼 시인의 내면을 단단하게 해서 “머뭇거릴 때마다 한 치씩 높아지는 벼랑”을 만나도 “뛰어내리는 대신 날기로” 마음먹게 하며 마침내 “작은 새가 앉는 큰 나무”(<미운 오리 날다>)가 되게 한 것이다.
이렇게 맑은 눈
이렇게 밝은 미소
이렇게 곱살스런 귀여움
하나님이 주신 선물
다옥하게 자라 세상을 맑고 밝게 만들 손주들
-<어린이 날(2)> 부분
이 시집에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많이 나온다. 위의 시에서 “다옥하게”의 원형 “다옥하다”는 ‘잘 자라서 우거져 있’는 모습을 표현한 형용사이다. 어머님으로부터 귀한 가르침을 받은 시인이 아들을 가르치고, 아들은 또 손주를 가르친다. 그 손주들은 무성한 나무처럼 다옥하게 자라 세상을 맑고 밝게 만들 것이다. 희망 찾기가 힘든 세상에서 손주들을 통해 희망을 보는 시인의 눈빛이 환하다. 다음 시는 1연과 2연이 대구를 이루며 “네 살 박이 손자”가 보는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진다. 시를 읽는 우리 눈도 아이처럼 맑아진다.
할아버지!
구름이 뛰어가요
바람 불던 날
구름은 정말 하늘을 뛰어 갔다
할아버지!
꽃이 나비가 되었어요.
바람 불던 날
꽃은 정말 나비처럼 날았다.
거친 바람이 불던 날도
네 살 박이 손자의 눈에는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할아버지! 구름이 뛰어가요> 전문
삶의 관조
시인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니 마치 검투사와 같았다고 고백한다. “검투사가 되어 살았던 인생을 벗고/……/ 인간 환생을 하려는 검투사의 귀향입니다/……/ 아주 빈 마음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세상을 안고 가려는 귀향입니다.”(<검투사의 귀향>). 흔히 삶의 현장을 ‘전쟁터’라고 표현한다. 시인은 이제 치열한 생존의 싸움터를 벗어나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 귀향은 세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안에서 더 넉넉해진 가슴으로 세상을 품는 귀향이다.
검투사를 벗은 시인의 귀는 강물의 시를 듣는 여유를 찾았다. “흘러가야 할 것은 흘러가게 하고/ 머물게 해야 할 것은 머물게 하고/ 그러면서도 멈추지 않는 강물/……/ 오늘도 멈춘 듯 잔잔히 강물은 세상사 詩를 지으며 흐른다.”(<물의 정원에서 강물의 詩를 듣는다>). 이 시를 읽으면 강물의 모습과 시인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시인은 이제 머물거나 흘러가는 것들을 순리대로 관조하며 잔잔한 모습으로 ‘詩’를 지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웃집 가듯 가볍게 삶의 길을 걸어가자고 말한다. “살아간다는 것도 여행이니/ 짐을 줄이고 가볍게 가자/ 이웃집 마실 가듯 편안하게 가자”(<이웃집 마실 가듯 인생길을 가자>). 이는 고난의 길을 헤쳐 나온 자가 마침내 얻을 수 있는 여유이며 가치이다. 가벼운 몸으로 봄 속을 걸어가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봄은
꽃이 피어도 봄이고
꽃이 져도 봄이다.
꽃이 피고 져도 봄인 것처럼
내가 걸어 온 삶도
꽃 피는 봄이었고 꽃 지는 봄이었다.
사계절을 걸어 온 삶
희로애락 모두가 내 삶이었다.
마지막 발자국은 봄으로 남겨지면 좋겠다.
-<마지막 발자국은 봄으로> 전문
이로써 시인은 자신이 살아온 삶 모두를 ‘봄’으로 만들었다. 긴 시간 자신을 담금질하고 세상과 정직하게 마주한 결과일 것이다. 희로애락 모두를 기꺼이 껴안고 예수님과 함께 끝까지 ‘봄’으로 남기를 소망하는 시인의 삶을 응원한다. 매일 기도의 향을 올리며 “꽃이 피어도 봄이고/ 꽃이 져도 봄”인 길을 걷는 시인의 마음! 분명 예수님께 잘 전해졌으리라 믿는다.
휴대폰에다
배달 앱을 깔았습니다.
오늘 보낸 당신 생각이
당신께 전해졌는지
알고 싶어서
-<배달 앱을 깔았습니다> 전문
어찌 보면 세상에 ‘사랑’은 발에 채이는 돌처럼 흔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참사랑’이 무엇인지 선뜻 말하기는 어렵다. 이 시집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다』는 ‘참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겸손한 ‘사랑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인이 얼마나 골똘히 예수님을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시를 소개하며 시평을 마치려 한다. 이상진 시인께서 한국 서정시인의 중심 계보를 이어가며 특히 ‘사랑 시’의 일인자로 자리매김하기를 기원한다.
어느 순간 사위가 고요해진다
세상의 소리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뭘까?
네 생각을 하는 동안은
세상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네 생각은 소리의 블랙홀이다.
-<소리의 블랙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