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 외1편
강 신 월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시퍼렇게 눈이 부어서 떠난 납실댁
하루 종일 호박 따기 싫어서 떠난 원천댁
한 두 해 건너
보따리 싼 여자들이 무수한 사연 남긴 채
막차 타고 마을을 떠났다
외등 하나 없는 캄캄한 밤
아홉시에 떠나는 막차 기다리던 버스 정류장
탑둔지 해남댁도 조계골 납실댁도 집다리골 원천댁도
윗말 여자들이라면 한번쯤 앉아 봤던 간이의자
버스가 내 앞에 도착할 때까지
어디로 갈지 몰라
맨발인 채 간이의자에 앉아 내 긴 그림자를 만지작거렸다
두 줄 빛줄기 끌고 산 너머로 사라지는 버스
나는 어둠속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뒤돌아보면
어린 딸들이 기다리고 있을
집이 위태롭게 깜박거렸다
대부도에 가면
=흥성리 나루터
강 신 월
대부도 맨 끝자락
흥성리 나루터에 가면
늙은 과수댁과 도마 하나 있다
한때는 나룻배로 흥성거리던 포구
하루에 잘라낸 낙지발만 해도
한 대야가 넘었다는데
섬에서 섬으로 시집 온 열여섯 새댁은
이제 팔순 노파가 되었고
낙지발처럼 뚝뚝 끊어졌던 섬과 섬
길고 긴 다리가 생기고 육지가 되면서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된 선착장
고기잡이배도 나룻배도 들어오지 않는 포구
흘러들어온 길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
날마다 길게 늘어났다 줄어드는 갯벌
갯벌은 아직 숨 쉬고 있어 사람들 다시 불러들이고
노인은 오늘도 칼자루 쥐고 낚지를 자른다
남편과 아들을 삼킨 바다가 노인을 물고 놓아주질 않는다
칼을 내려칠 때마다 도마에 찍히는 흔적들
도마에 패인 자국만큼 깊이 패인 노인의 주름들
붉은 해
바다를 통째로 시뻘겋게 물들이면서
선재도 산등성이 넘어가고
밀물과 함께 검은 어둠이 만조를 이루면
서둘러 포구를 빠져나가는 사람들
찌를 던지는 낚시객도
조개를 캐던 연인도
아이들 웃음소리도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늙은 과부 밥상 같은 포구가 다시 적막과 마주 앉는다
나루터 끝에 서면
낡은 배 한 척이 바다 물결 따라 몸을 뒤척이고
야윈 초승달이 금방이라도 물길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은 시간
손으로 휘휘 저으면 모였다가 사라지는 물그림자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