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26~28 하나님의 형상으로 봅시다
인도는 1858년부터 1947년까지 89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는데요. 그 시절 인도 ‘간디’가 영국에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때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식민지 인도 출신인 학생 간디를 아니꼽게 여기던 ‘피터스’라는 교수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간디가 대학 식당에서 피터스 교수 옆자리에 점심을 먹으러 앉았습니다. 그러자 피터스 교수는 거드름을 피우며
"이보게,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돼지와 새가 같이 식사하는 일은 없다네."
간디가 재치 있게 응답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님! 제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복수심에 약이 오른 교수는 다음 시험 때에 간디를 애먹이려고 했으나 간디가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자 간디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길을 걷다 돈이 든 자루와 지혜가 든 자루를 발견했다네. 자네라면 어떤 자루를 택하겠나?"간디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야 당연히 돈이 든 자루죠."교수가 혀를 차면서 빈정댔습니다.
"쯧쯧, 만일 나라면 돈이 아니라, 지혜를 택했을 것이네."
간디가 간단히 대꾸했습니다.
"뭐, 각자 부족한 것을 택하는 것 아니겠어요."
거의 히스테리의 상태에 빠진 교수는 간디의 시험지에 '멍청이'라고 써서 돌려주었습니다. 간디가 교수에게 말했습니다.
"교수님 제 시험지에는 점수는 없고, 교수님 서명만 있는데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해 과학계의 혁명을 이끌자 엄청난 강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쉴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운전기사가 아인슈타인에게 "박사님이 너무나 바쁘시고 피로하신데 제가 상대성 이론을 30번이나 들어 거의 암송하다시피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번에는 제가 박사님 대신해서 강연하면 어떨까요?"
운전사는 옷을 바꿔 입고 연단에 올라서서 강연했습니다. 강연은 훌륭했습니다. 말, 표정, 진짜 아인슈타인과 정말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 교수가 손을 들고 이론에 관한 질문을 했습니다.
가짜보다 운전사 복장을 한 진짜 아인슈타인이 뒤에서 더 놀랐습니다. 그런데 운전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그 정도의 질문은 제 운전사도 답할 수 있습니다. 여보게, 올라와서 설명해 드리게"
재치가 부러울 정도로 뛰어납니다. 당황할 때나 화를 내야 할 때 우리도 재치를 발휘하여 유머로 넘기는 여유가 있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며 은혜가 된 말씀이 있어서 모든 성도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창세기는 50장으로 되어있는데요. 크게 1~11장까지와 12~50장까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부분 1~11장은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천지 창조, 사람의 타락, 노아 홍수, 바벨탑 사건 등 4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 부분 12~50장은 아브라함의 한 가정을 중심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 4대 족장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라는 말씀으로 창세기는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그 사람이 살아갈 환경을 조성해 주셨습니다. 왜 사람을 중심으로, 주인공으로 하셨을까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느라” (창 1:26~28)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짐승 닮은 자도, 사탄 닮은 자도, 천사 닮은 자도 아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자로 만들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형상대로, 하나님 닮은 자로 사람을 만든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와서 잘 사는 것은, 창조주의 목적대로 사는 것입니다.
핵심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 닮은,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하셨으니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에돔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에돔은 이삭의 첫째 아들 에서의 별명입니다. 그 에서의 후손들이 에돔입니다. 이삭의 둘째 아들이 야곱입니다. 후에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니 에돔과 이스라엘은 형제 국가입니다. 그런데 에돔은 이스라엘을 미워했습니다.
“그가 칼로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암 1:11)
에돔이 형제국인 이스라엘을 향해 그랬다는 말씀입니다. 형제국이 어려움에 부닥쳐 도움을 주어야 할 시기에 돕기는커녕 적에 편에 서서 형제국을 공격했습니다. 이런 잘못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모스 1:11~12절 말씀입니다. 에돔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정도로 잘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뭐라 하셨을까요?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신 23: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네 형제이니 그래도 너는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그네로 430년 동안 신세 졌으니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잘못한 에돔은 하나님께서 심판할 테니 너는 좋은 점만 생각하며 미워하지 말라. 너는 에돔을 우리를 미워하는 자, 우리를 공격한 자, 우리를 힘들게 하는 자로 보지 말고 네 형제로 보라는 것입니다.
♪감사송 메들리
저는 이 말씀을 새벽에 설교하면서 다윗을 생각했습니다.
다윗에게는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힌 장인 사울 왕이 있었습니다. 다윗을 10여 년의 세월 동안 집요하게 추격하며 죽이려 했습니다. 사울 왕 때문에, 도피 생활을 해야 했고 마음 편히 잠을 잘 수도, 살 수도 없었습니다. 힘들고 억울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다윗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다윗을 죽이기 위해 군사를 끌고 온 사울 왕을 동굴에서 죽일 기회를 잡았습니다. 옆에 있던 측근들이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니 빨리 죽이자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안 된다며 말렸습니다. 말씀 확인하겠습니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삼상 24:6-7)
측근들은 당신을 죽이려 한 사람이니 죽입시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라고 해도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니 해하지 말라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자기를 괴롭힌 자, 죽이려 하는 자로 보지 않고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으로 본 것입니다.
그 후로 또 한 번의 기회가 왔습니다. 동굴에서 죽이지 않고 보내주었으면 사울 왕도 그만해야 하는데 계속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했습니다. 두 번째 기회를 잡은 다윗의 말입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삼상 26:9-10)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기를 신원하실 것이라고 믿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울 왕을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로만 보았습니다. 측근들에게 우리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 방법으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을 뭐로 보아야겠습니까? 있고 없고 잘했고 못 했고 젊고 늙었고 배우고 못 배우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을 닮은 자로 보라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로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약 2:1~6)
신약은 사람을 더 가치 있게, 더 귀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믿고 믿음에 부요한 자로, 천국을 상속으로 받을 자로 보라는 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하고 비싼 영혼으로, 우리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시고 살리신 귀한 영혼, 예수님 목숨값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막 5:1~20절의 말씀을 보면 군대 귀신에 들려 무덤 사이에서 거처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쇠사슬로 어렵게 묶어 놓으면 쉽게 끊어버렸습니다. 늘 소리를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자해했습니다. 군대 귀신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절을 하며 군대 귀신이니 저기 있는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해 달라 청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허락했습니다.
그 안에 있던 군대 귀신들이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2천 마리의 돼지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모두 죽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군대 귀신이 나가자 귀신 들렸던 그 사람은 온전해졌습니다.
그것을 보고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예수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물질적 손해를 더 볼까 싶어 떠나시라 청한 것입니다. 그러나 고침 받은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허락지 않으시고 집으로 돌아가 체험한 바를 친속에게 알리라 하셨습니다. 그는 순종하여 돌아가 데가볼리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귀신 들렸지만, 그 한 사람을 돼지 2천 마리보다 더 귀하게 보셨습니다. 성도는 신구약의 말씀을 통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고 천하보다 더 귀한 존재로 보고 차별하거나 판단하거나, 미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늘 비전 가족 여러분,
모든 사람을 모두 귀하게 보고 예수님 믿고 천국 갈 수 있도록 품고 기도하며 전도합시다.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의 열매가 풍성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 – 감사를 하고 싶소